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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법 개정안에 대한 단상- 언론장악금지법인가, 노영방송도입법인가?(1)

<편집자 주>


국회 야당이 강력히 추진 중인 '방송법 개정안'에 대해, 방송문화진흥회 유의선 이사가 반박 의견을 냈다.


유의선 이사는 본인의 소신이 왜곡 폄하될 우려가 있지만, 법안의 문제점을 외면할 수 없다면서 취지를 밝히고, ‘방송법 개정안으로는 야당과 언론노조(민주노총 산하) 등이 주장하는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통한 방송 공정성과 독립성이 실현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도리어, 이를 해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유의선 이사 의견이 담긴 원고 내용은 편집 없이 2회에 나눠 게재한다.




방송법 개정안에 대한 단상- 언론장악금지법인가, 노영방송도입법인가?


1. 최근 야3당이 소위 ‘언론장악금지법’이란 별칭 하에 방송법 개정안 등 언론관계법을 잇달아 발의하였다. 그동안 논란이 되어왔던 공영방송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취지에서이다. 그러나 이 법안은 그 별칭이 의미하는 바와 달리 매우 우려스러운 내용을 포함하고 있어 재검토가 필요하다. 


2. 우선 이 법안의 주요 골자는 KBS, MBC 공히 이사회의 정원을 13명으로 증원하고 그 추천권을 국회가 갖도록 하고 있다(여당 교섭단체에서 7명, 그 외 교섭단체에서 6명). 또한 이사회에 사장추천위원회를 두고 사장 선임 시 특별다수제를 도입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아울러 동 법안은 노사 동수로 편성위원회를 구성하여 편성위원회가 편성책임자를 제청하고 편성규약을 제정‧공포토록 하고, 보도·제작·편성분야 간부 임명에 있어서 직선제·임명동의제·추천제 중에서 선택하여 운영하도록 하고 있다. 


이 중 가장 논란의 소지가 많은 조항 중의 하나는 노사 동수의 편성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것이다. 이 조항은 방송사업자와 방송제작 실무자에게 방송편성 관련 결정권을 동일하게 부여함으로써, 방송사업자가 갖는 편성 권한을 훼손하는 선을 넘어 실질적으로 무력화시킬 수 있을 뿐 아니라 편성 결정이 노사 간에 상시적 쟁의 사항이 될 수 있도록 제도화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즉, 방송사업자는 노조 측과의 타협이 없이는 어떠한 조치도 취할 수 없는 결정 불능 상황에 지속적으로 맞닥뜨릴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 조항을 근거로 노사협약이 이루어진다면, 노조 측은 보도본부장 등 책임보직자에 대한 임명동의권 및 해임권 등을 행사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실질적인 ‘노영방송’이 제도적으로 보장받게 된다는 의미다. 


 3. 야당과 언론노조가 이 법안의 통과에 전력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이 해석될 수 있다. 


우선 원활한 정권 교체를 위해 언론노조와 호흡을 갖이 할 필요성이 있는 야3당은 이 법안을 거부할 이유가 전혀 없다. 특히 동 법안이 정부 대신 국회에 주위 인사들을 추천하여 공영방송 이사진을 구성할 수 있는 권한도 부여하고 있으니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다. 마치 방송 영역에서 국회 비례대표제 의원을 추천하는 효과와 같다. 


언론노조도 이 법이 통과되기를 고대한다. 그래야만 방송사에서 자신들의 영향력을 극대화하고, 그에 반하는 인사들은 편성위원회, 사장추천위원회 등을 통해 봉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기적으로 노조 입장에서는, 지금이 이 법을 통과시킬 수 있는 여건이 성숙한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 법안이 발의안에 제시된 대로 방송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 치유책이라고 볼 수 없다는 데 있다. 오히려 이 법은 방송의 독립성과 공정성 확보에 치명적인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사실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의회가 공영방송사 이사진 ‘전원’을 추천하고 노사 동수의 편성위원회를 두어 방송사업자의 경영권·편성권을 제약할 수 있게 하는 곳은 없다. 법치에 맞지 않고 상식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 이유를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4. 공영방송이 제대로 운영되기 위해서, 다시 말해서 방송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치권력 및 자본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다 (여기서 독립의 의미는 우리 사회의 실체적 존재인 정치권력이나 자본권력으로부터의 완전한 독립, 즉 진공 상태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정치권력이나 자본권력과 일정 부분 소통하더라도 그러한 힘에 의해 좌지우지되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미디어의 자유는 소위 주관적 기본권으로서 미디어의 설립·운영·편집·보도 등 거의 모든 활동에 있어서 원칙적으로 ‘국가의 간섭을 배척할 수 있는 자유’를 기본 내용으로 한다 [다만 내적 자유의 관점에서 방송 자유의 법적 주체는 분명 방송사업자이지만, 기자 등 종사원의 독자적인 지위(예: 양심에 반해 보도를 강요받지 않을 권리)를 원칙적으로 인정해 주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정치적 이해관계로 이전투구가 심한 국회에서 공정방송 확립을 위해 정치적 독립성이 반드시 요구되는 공영방송 이사진을 ‘전원’ 구성토록 하는 것은 분명 논란의 소지가 있다. 물론 정부나 공적기구가 대주주가 되는 경우가 많은 공영방송사의 경우, 정부가 직접 공영방송 이사를 임명하기도 한다. 단, 임명 시 공영방송 이사에 부합한 인물을 선정하기 위해 ‘법에 정해진’ 나름대로의 원칙과 관련 기준을 마련해 적용하고 있다. 


결국 ‘누가 공영방송 이사가 되느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한 사람 선정의 문제이고 이를 위해, 가능한 한 정당과 같은 권력추구 집단의 추천보다는, 행정을 집행하는 정부가 각계의 의견 또는 추천을 받아 법에 정해진 기준에 따라 이를 수행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다만 국회가 국민의 대의기구 임을 감안할 때, 국회 추천을 ‘필요한 최소 범위’ 내에서 반영하는 것이 주요 선진국의 추세이다.  


5. 국회가 직접 공영방송 이사 ‘전원’을 추천할 경우, 정파적으로 임명된 공영방송 이사회에서 사장 선임과 관련하여 시행되는 특별다수제가 제대로 기능할 수 있을지도 회의적이다. 특별다수제의 근본 취지가 사안의 중대성과 관련하여 절대 다수의 동의를 요구한다는 것인데, 전문성보다는 정파적 선명성이 강한 인물이 공영방송 이사가 된다고 가정할 시 법리나 상식에 따라 소위 상대방 추천 인사에 대한 교차투표(cross-voting)를 하는 것이 쉽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공정방송에 대한 소신과 철학을 갖고 있는 인사가 선임되기보다 서로가 비토하지 않는 무색무취한 인사가 특별다수제를 통과하거나, 국회선진화법 시행 후의 ‘식물국회’와 같이 일종의 ‘식물이사회’ 상태가 야기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특별다수제가 제대로 교차투표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공영방송에 대한 이해가 높은 전문성·윤리성이 겸비된 이사진 구성이 관건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6. 더 큰 문제는 앞서 지적한대로 ‘노사동수의 편성위원회 구성’에 있다. 


우선 노사가 합의하면 방송공정성이 확보된다는 가정에 큰 오류가 있다. 공영방송에 대한 현재의 비판이 맞다면 경영진은 집권여당과 거리가 가까운 속성을, 언론노조는 노조 강령 제4항에서 보듯이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를 도모하는 진보성향을 지니고 있다고 추정할 수 있다 (물론 언론노조 구성원 대부분이 그렇다고 단정짓는 것은 일반화의 오류이다. 그러나 MBC의 경우 노조 구성원들이 직급에 따라 조금씩 다르겠지만 거의 매달 10만원 안팎의 적지 않은 노조 회비를 내고 있고, 구성원들 사이에서 소위 ‘왕따’를 당하지 않는 심리적 소속감 내지 실질적인 신분 보장, 진보정권 시의 승진 기회, 자율적 취재 및 보도 권한 확대에 대한 동경, 자신들의 권리를 위해 고생하는 노조 간부들에 대한 동료 의식 등이 작용하여 사상적으로 진보성향이 강한 노조 지도부의 파업 계획이나 집행에 상당수의 노조원이 ‘별다른 이의없이’ 따라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집권여당이 진보정권이라면 그 정권 내내 노조파업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상호 협조적인 관계를 보이고 (사실 이 기간 동안 노조간부들은 사장, 부사장 등 출세가도를 달리고 이후 진보정권과 연계되어 국회로 진출하기도 한다. 그래서 우스갯소리로 노조 출신만으로도 국회 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다는 말도 안되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집권여당이 이명박, 박근혜 정부처럼 보수성을 띠고 있다면 노사대립이 심화되고 노조의 파업 빈도 및 농도가 심해지는 것으로 통계 수치가 입증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파업들은 우연인지는 모르겠으나 주로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인 선거 때 즈음에 자주 일어난다. 실질적으로 언론노조 집행부가 특정 정치세력과 상당한 교감을 갖고 있다고 추정되는 이유이다. 이런 연유로 언론노조 대부분 구성원의 개인적 사상이나 성향과 관계없이, 언론노조가 극히 정치화되어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이다.  





7.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사측과 언론노조 모두 국민의 이익, 즉 공익을 대표하기에는 적지 않은 흠결이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간 제기된 이런 저런 언론 자료에 기초할 때, 사측 경영진이 보수•진보 정권 여부에 관계없이 역사적으로 정부의 직간접적 간섭을 받는 경우도 있지 않았나 추정되고, 한때 온 국민의 지탄을 받던 통진당과 연계되었던 민주노총의 산하 단체라 할 수 있는 언론노조 역시 그 정치적 성격상 국민 모두의 견해를 공히 대변할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방송공정성은 특정 집단 간의 합의가 아닌, 정통 저널리즘 원칙에서 접근해야 방법론상 타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방송공정성을 논할 때, 특정 시각을 가진 학계 인사들이 ’방송공정성이 훼손되어 온 이유로서 인용될 수 있는 권력과 방송 간의 본질적 관계를 통시적으로 분석하지 않고’ 자신이 반대하는 특정 정부 내에서의 방송공정성 문제만을 제기하는 것도 본질을 벗어나는 단시안적 접근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방송공정성 확보를 위해 법리와 저널리즘 원칙에 기초한 보다 심도깊은 학술적 논의가 필요하다. 앞서 언급한대로, 방송공정성 확보의 제 1요건은 방송이 ‘비록 정치권력·자본권력과 상호작용할지라도’ 저널리즘의 기본자세를 잃지 않게 하는 환경 조성에 있지 이해당사자간 합의에 있지 않는 것이다 (즉 논쟁적 사안에 대해서 고위 공직자가 자신의 의견을 언론사에 표명할 수는 있어도, 편집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암묵적 강요나 과도한 압력으로 비춰지는 행위를 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언론사가 이런 압력에 좌지우지 되지 않는 저널리즘 기본 정신을 지키고, 이러한 행위로 인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하는 언론환경과 문화를 스스로 조성하는 데 있다). 


다시 말하지만, 방송공정성이 진실성·사실성을 기반으로 균형성 등이 추가적으로 요구되는 개념이라면 현재의 사측과 노조처럼 극단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두 집단이 합의한다고 해서 방송공정성이 확보된다고 단정함은 논리상 문제가 많다. 오히려 양 집단의 합의가 방송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다는 순진한 가정보다, 


(i) 경영진의 부당한 지시가 있다면 방송제작실무자가 자신의 양심에 반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부당한 지시에 대해 합법적으로 저항할 수 있도록 하고 (한 예로 오스트리아 ORF의 경우, 방송제작실무자는 자신의 양심에 반하는 보도를 강요받지 않고 이로 인해 지위상 불이익을 받지 않게 되어 있다),


(ii) 기자나 PD 등도 상급자의 정당한 지시를 거부하거나, 자신들의 주관적 사고나 사상을 기초로 한 편향적 방송 제작을 하고자 할 경우 데스크가 책임지고 이를 견제할 권리를 갖도록 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인 방송공정성 확보 방법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여:야의 비율이 7:6이라는 외견상 그럴듯한 수치가 갖는 함정도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앞서 말했듯이, 방송공정성은 저널리즘 원칙을 지킬 때 가능한 것이지 정당별 정치 성향 분포를 고려하지 않고 이를 기계적으로 7:6으로 나눈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야3당이 제기한 법안처럼 국회 교섭단체에서 공영방송 이사진을 전원 구성할 경우, 비록 여:야가 7:6으로 조율된다고 할지라도, 실제 내용은 ‘현 정치 구도상’ 진보(성향)정당:보수(성향)정당 비율이 10:3이나 9:4가 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 경우 공영방송의 정치적 색채는 동 법안이 원래 의도했던 입법 취지와 달리 특정 시각에 매몰될 수 있고, 이로 인해 보도의 균형성은 심하게 훼손될 수 있다. 김대중 정부 때 마련되어 그간 개선 필요성이 제기되어 온 현 공영방송 이사 선임 구조보다 더 효과적으로 방송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단언하기 어려운 이유이다. 


8. 방송노조가 ‘실질적으로 아무런 내부 견제 없이’ 본인들의 사상이나 주장을 공유재인 전파를 통해 국민 모두에게 전달한다면 과연 어떠한 일이 벌어질 수 있을 것인지도 한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언론은 ‘권력의 감시견’으로 그쳐야지 ‘또 하나의 권력’이 되어 사회를 임의로 재단할 수 있게 놔둬서는 안 된다. 


사회가 정상적으로 발전하려면 그것이 어느 세력이든 그 힘이 남용·오용 되지 않도록 견제와 균형(check & balance)이 적절하게 작동되어야 한다. 언론권력이 아무런 견제 없이 그 힘을 발휘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우리는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보도행태를 통해 생생히 경험하고 있다. ‘아니면 말고’ 식의 보도, 말초적 감각을 자극하는 선정 보도, 허위·왜곡 보도, 이미 결론을 정해놓고 이루어지는 방향성 보도 등을 우리는 그간 너무도 많이 목도하였다. 


필자가 개인적 차원에서 안타깝게 생각하는 어느 해고 언론인의 말처럼 언론이 순치되어 사회감시견으로 제대로 역할을 못한다면 이 역시 정말 큰일이다. 그 언론인의 말처럼 부당한 사회 권력을 물고 늘어질 수 있는 강한 이빨을 언론은 분명 가져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 이빨을 아무런 견제 없이 제멋대로 휘두르게 내버려 둔다면, 더욱이 그것을 법적으로 상당 부분 보장한다면 그 부작용 또한 심히 크다고 아니할 수 없다 (사실 어느 데스크나 간부가 자기 인사권을 실질적으로 쥐고 있는 노조에 저항할 수 있겠는가?) 


지금 야당은 당장의 ‘원활한’ 정권 교체를 위해, 협조가 필요한 언론노조의 부탁을 들어주려고 하는지 모르겠으나 지나치게 성장한 언론 권력은 언젠가 분명 어느 정치 세력이든 간에 가공스런 위협으로 느끼는 날이 올 것이다. 견제를 받지 않는 절대 권력은 스스로의 힘에 취해 그 권력을 반드시 남용 또는 오용하게 되어 있다. 특히 방송과 같은 언론권력이라면, ‘광우병 사태’에서 보듯이 얼마든지 우리 사회를 손쉽게 혼란에 빠뜨릴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이럴 때일수록 정치역학적 접근보다는 합리적 범주 내에서, 일반 상식적 법리와 상충되지 않는 영역 내에서, 공영방송이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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