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력 산출에 있어 여러 지표가 인용되지만 ‘한 국가의 제도권 지식층의 지력’도 무척 중요한 지표다. 근래 중공발 일대일로(一帶一路)의 전망이 어두워지자 초기부터 일대일로의 폐해를 강하게 지적하며 관련 국제적 논쟁을 주도했던 인도 제도권 지식층의 선견지명 사례가 새삼 회자되고 있다.
첼라니 교수는 “서아프라카 국가인 시에라리온(Sierra Leone)이 중공과 맺은 일대일로 사업 중 하나인 3억 1,800억 달러 규모의 공항 프로젝트를 최근에 폐기했다”고 지적하며 칼럼 서두를 열었다.
일대일로 사업이 연일 좌절되고 있는 위기 배경으로 첼라니 교수는 채권추심형 부채 함정 문제를 꼽았다. 중공의 주권 침해에 대한 우려로 여러 일대일로 관련 국가들이 관련 사업을 폐기하거나 축소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첼라니 교수는 인도야말로 시진핑의 ‘시그니쳐(signature)' 정책인 일대일로 사업의 이런 폐해 문제를 최초로 비판하고 반대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인도가 시진핑이 일대일로 사업의 대대적인 홍보의 장으로 활용하려 했던 ‘일대일로 정상회의(One Road One Belt Summit)’도 대대적으로 보이콧하는 결기를 보였던 사실도 독자들에게 상기시켰다.
2017년 5월, 베이징에서 열린 ‘일대일로 정상회의’에는 러시아의 푸틴, 터키의 에르도안 등 29개국 정상들이 참석했다. 미국 역시 장관급 인사를 참석시켰다. 하지만 인도만 유일하게 ‘일대일로 정상회의’ 불참을 끝까지 고수했다.
첼라니 교수는 “인도는 애초부터 중공의 일대일로 사업을 ‘불투명한 신식민지 사업(a non-transparent neocolonial enterprise)’로 규정했었고, 중공이 이 사업을 통해 재정구조가 취약한 저개발 국가들을 부채 함정에 빠뜨리면서 지정학적 이익을 편취하고 있다는 점을 경고해왔다”고 말했다.
실제로 일대일로 정상회담을 앞두고서 인도의 정부 당국자들은 다음과 같은 내용의 공개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일대일로 사업은 ▲보편적인 국제적 기준(international norms) ▲법의 지배(the rule of law) ▲개방성 및 투명성(openness & transparency) ▲질적인 준거법 적용(good governance) 등을 통해 상호 동등한 관계에서 추진되어야 한다. 또한 ‘재무적 책임성(financial responsibility)’의 일반 원칙도 준수해야만 사업 부실화를 방지할 수 있다”
하지만 인도의 이러한 원칙과 결기는 그간 대내외적으로 혹독한 비판에 시달려야 했다. 첼라니 교수는 인도 당국자들이 ‘일대일로 정상회담 불참’이라는 결정을 내린 것과 관련하여 인도 내부에서도 ‘성급한 결정이며국제 사회에서 고립될 수 있는 일’이라는 식의 비판이 쏟아졌었다고 말했다.
첼라니 교수는 “당시에 비판가들은 일대일로를 ‘미래지향적인 사업’으로 규정하며 뉴델리(인도의 수도)가 일대일로에 적극 참여해 국제적 왕따를 모면해야한다고 주장했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인도는 이런 비판을 받는 와중에서도 일대일로 정상회담에 참가한 유럽연합(EU)로부터는 이미 ‘암묵적 지지’를 얻어냈다. 일대일로 정상회담장에서 유럽연합은 일대일로가 투명성과 지속가능한 사회적 환경을 담보하지 못한다며 인도와 비슷한 입장을 펼쳤다. 최종적으로 유럽연합은 일대일로 지지 성명을 거부함으로써 시진핑이 개최한 일대일로 정상회의에 오점을 남겼다.
유럽연합에 이어 얼마 후에는 미국 역시 일대일로를 새로운 형태의 제국주의라고 규정하고 나섰다. 렉스 틸러슨(Rex Tillerson) 당시 미국 국무부 장관은 “중공의 새로운 제국주의적 팽창은 과거 유럽의 식민통치를 연상 시킨다(China's new imperialist practices are reminiscent of European colonialism)”고 일갈했다.
중공의 대외 정책 행태를 ‘약탈적(predatory)’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이제 국제적 상식이 되어 버렸다. 국제통화기금(IMF)조차 중공발 차관은 지속 불가능한 부채 부담을 야기한다고 공개적으로 경고했다.
첼라니 교수는 중공발 부채 함정은 단순 국가 재정 문제 영역을 넘어 주권 침해로 귀결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베이징은 약탈적인 신용 대출로 군사력 확장을 꾀하고 있다. 첼라니 교수는 대표적으로 지부티(Djibouti) 사례를 꼽았다. 지부티는 자국의 부채 탕감을 위해 연간 2천만 달러의 임대차 계약 조건으로 군사시설인 해군 기지 사용권을 중공에 제공했다. 중공은 동일한 방법으로 파키스탄의 과다르(Gwadar) 항만을 중공의 해군 기지로 개발할 계획을 갖고 있다.
첼라니 교수는 중공의 약탈적 행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면서 중공이 몰디브(Maldives)에서도 인도양 군도의 작은 섬을 획득했던 사례를 거론했다. 임대 계약 조건이 공개되지 않았지만 이전에 중공이 ‘페이도후 핀노루(Feydhoo Finolhu)’섬도 불과 4백만 달러의 비용으로 경찰 훈련 시설 용도로 활용했던 것을 미뤄볼 때 몰디브 군도 역시도 염가로 획득했을 개연성이 높다.
첼라니 교수는 일대일로 사업 방식의 치명적 맹점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일대일로로써 중공은 정부 주도 방식인 ‘탑 다운(top-down)’, ‘채무 주도(debt-driven)’ 개발 사업 모델을 해외로 수출하려 하고 있다. 중공은 공개경쟁 입찰을 원천적으로 차단함으로써 국제적으로는 중공 방식의 무역 질서 개편을 노리고 있다. 중공은 궁극적으로는 ‘패권 확장(project Chinese power far and wide)’ 전략의 일환으로 일대일로를 활용하고 있다”
그는 스리랑카가 함반토타(Hambantota, 스리랑카) 항만 시설에 대한 ‘99년 사용권’을 중공에 내준 일을 다음과 같이 비유했다.
“부채에 허덕이는 농장주가 딸을 악랄한 채권자에게 양도하는 것과 같다(heavily indebted farmer giving away his daughter to the cruel money lender)”
하지만 중공의 거창한 일대일로 사업은 이제 참여국들의 광범위한 저항에 부딪치고 있다.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모하메드(Mahathir Mohamad) 총리는 리커창(Li Keqiang) 중공 국무원 총리와의 회담에서 다음과 같이 직격탄을 날렸다.
“중공은 일대일로를 ‘지정학적 목표(geopolitical objectives)’를 완성하는 하나의 ‘대외 경제정책 수단(geo-economic tools)’으로 활용하고 있다...이는 새로운 형태의 식민 통치(new version of colonialism) 전략이다”
함반토타 항구를 빼앗긴 스리랑카의 경우가 중공으로부터 빚독촉에 시달리는 국가들에게 특히 강한 ‘경종(wake-up call)’을 울렸다. 많은 일대일로 참여국들이 베이징과의 재협상을 개시하며 사업을 폐기하거나 일부 사업을 축소하고 있다. 말레이시아 총리는 정상회담을 위해 베이징을 방문한 자리에서 230억 달러 규모의 사업 폐기 선언을 했다. 중공의 맹방인 파키스탄도 역시 일대일로 철로 사업을 20억 달러 규모로 축소 조정했다.
첼라니 교수는 국가 재정구조가 취약한 일대일로 참여국들이 중공발 차관 공여가 결국 ‘빛 좋은 개살구(Too Good to be True)'였음을 깨달았으며 장기적으로 부채의 덫으로 빠져들 위험성을 분명하게 인식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그는 중공이 과거 유럽이 제국주의 팽창 시절에나 활용했던 99년 임대 계약을 차용하고 있으며 일대일로 참여국들 곳곳에서 중공의 ‘중상주의 방식(mercantilist practices)’의 팽창 행태에 저항하는 기류가 형성되어 있다고도 말했다.
첼라니 교수는 참여국들의 이러한 저항이 바로 원칙과 소신에 입각한 인도의 일대일로에 대한 일관성 있는 반대에 기인한다고 밝혔다.
“인도의 제도권 지식인층이 중공 일대일로의 재무적·안보적 위험성 문제에 대해서 세계 최초로 ‘진실의 빛’을 투영했으며 관련 국제사회의 논쟁을 주도했다(India‘s the intellectual leader that helped shine a spotlight on BRI’s financial and security risks and thereby moulded the international debate)”
첼라니 교수는 중공의 약탈적인 행위에 대한 저항에 가속도가 붙으며 이는 일대일로 추진에 엄청난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하며 칼럼을 끝맺었다.
이번 칼럼에서 첼라니 교수는 인도가 중공의 패권 야욕을 견제할 수 있었던 것은 무력이나 경제력이 아니라 바로 한 국가 제도권 지식층의 지적 ‘정직성’, 그리고 ‘결기’라고 말했다.
안타깝게도 한국의 친중(親中) 제도권 지식층은 일대일로 폐해의 환경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중공발 스모그조차 국내 요인으로 둘러대고 있는 수준이다. 애절함마저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