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콘텐츠는 '과학중심의학연구원(http://www.i-sbm.org)'이 제공하는 공익콘텐츠입니다. 이번 글은 네이버 블로그 등을 통해 한의학을 비판해온 문화비평가이자 과의연 특보인 서범석님의 시리즈 한의학 비판 글인 '고대중국의학 몽매주의'입니다. 서범석님은 스타일리스트로서의 필치에 더해 한의학 문제를 바라보는 보다 풍부한 관점을 제시해주고 계십니다. 귀한 원고를 투고해주신 서범석님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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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트 버틀러(Kurt Butler)’는 고대인도의학인 아유르베다의 신봉 체계가 다음과 같은 세 카테고리로 나뉜다고 분석한 바 있다.
(1) 아유르베다 의학이라고는 결코 들어본 적도 없는 사람들에게도 잘 받아들여질 수 있는 분명하고 잘 정리된 것들.
예) 푹 쉬고 과식을 금할 것 등.
(2) 적정한 연구가 뒤따른다면 유용함이 밝혀질 수도 있는 것들.
예) 약초라고 주장되는 것들 중에 유용한 약용 성분을 함유하고 있는 것들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위험성 및 한계는 과학적으로 조사되지 않았다.
(3) 위험할 수도 있는 멍텅구리 같은 생각들.
예) 질병과 불운은 악령, 악마, 별 및 행성의 영향으로 일어난다거나, 이빨과 혀를 양치한 물로 몇 분간 눈을 문지르면 백내장이 치료된다는 등의 주장.
모든 고대의학이 마찬가지겠지만, ‘고대중국의학’도 정확히 이 세 범주로 나눌 수 있다. 사실 ‘고대중국의학의 현대화’라는 것은 해당 업계 종사자들 자력으로 쟁취한 것이 전혀 아니다. 자연 과학의 발달에 따라 (3)번에 해당하는 항목이 강제적으로 탈락되어나간 과정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기(邪氣)를 요즘 말로 하면 박테리아나 바이러스라는 둥, ‘상한론(傷寒論)’이라는 고대중국의학 서적이 현대로 치면 면역학 서적에 해당한다는 둥, ‘침술과 인간의 혈의 운행에 따른 치료는 해부학적이고 물질적인 양의에 비해 또 다른 이점이 있다는 것이 고대로부터 경험과 수많은 임상 사례들에 의해서 밝혀져 왔다’는 둥 견강부회하려는 자들은 여전히 있다. 모두 상당히 동의해주기 어려우며, 후대의 과학적 발견들로 고대인들의 몽매성을 덮으려는 언설일 뿐이다.
이들의 말이 맞다면, 우주적 생명력의 근원이라는 ‘기’가 사실은 미생물을 가리키는 것이었다는 말인가. 미생물이라는 것이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시대에? 그것이 전혀 아니고, 당시로서는 명백히 나쁜, 사악한 ‘기’라고 생각했던 것 뿐이다. 이집트인들이 병을 불러일으키는 악령이 있다고 생각한 것과 하등 다를 바가 없다. 또, 인체 면역계에 대한 인식까지 있었다는 사람들이 그 긴 세월 동안 허다한 돌림병에는 왜 그렇게나 속수무책이었단 말인가. 병원균이 득시글거리는 속에서 ‘기’나 돌리고 ‘침’이나 꽂겠다고 하다가 그리 된 것 아닌가. 무엇보다도 그렇게나 탁월한 임상 체계 하에서 살았다는 사람들의 평균 수명이 왜 고작해야 현대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것인가.
앞서 ‘마왕퇴한묘’에서 부인의 미라가 출토된 적이 있다고 말하였다. 미라화된 사체를 검시한 결과 그녀가 생전에 만성 수은 중독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신선이 되려고 선단(仙丹)을 복용하였기 때문이다. 이 선단의 원료라는 것이 실은 수은이다. 동의보감에도 수은이나 납의 유용성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민간에서 전해 내려오는 처방들을 수집하여 정리했다는 ‘잡방(雜方)편’에는 더 심한 내용들도 많다.
이런 몽매주의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상했을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상황이 이런데도 한국의 ‘고대중국의학’계에서는 동의보감이 UNESCO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는 사실로 세계가 그 과학성을 인정했다는 둥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는 발언을 계속 하고 있다. UNESCO는 동의보감이 과거 인류의 기록유산으로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인정했을 뿐이지 미래 인류의 치료처방체계로서 인정한 것이 전혀 아니다. 그러니, 자꾸 ‘그릇된 권위’에 호소하는 행위는 삼가야 할 것이다.
현재 한국에서 고대중국의학이 주로 감염력을 발휘하고 있는 분야는 위의 (2)번에 해당하는 시장이다. ‘괜찮을 수도, 안 괜찮을 수도 있는 (2)번 아이템’에 ‘상식적인 이야기인 (1)번 아이템’을 얹어서 두루뭉술하게 설명하면 더욱 강한 정신감염력을 유지할 수 있다. 어느 날인가, 작심하고 앉아 케이블 TV의 한방 상담가들이 말하는 내용을 분석해 보았더니 전부가 이 유형이었다. 이 과정에서 (3)번에 해당하는 아이템은 철저히 배제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핵심인 (2)번 아이템에 대한 불필요한 의구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2)번이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주로 한약과 관련되어서이다. 한약같은 고대 의학 약물들은 여러 식물을 섞어서 끓이는 것이 보통이다. 이 점은 아프리카건 이집트건 중국이건 인도건 모두 마찬가지로, 이를 다미약(多味葯)이라고 한다. 이런 다미약들은 유효할 수도 있지만 무효하거나 되려 유해할 수도 있다. 다미약에 들어가는 다양한 식물들이 실제로 효능이 있기는 한 건지 충분히 조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버드나무에서 ‘살리실릭산’을 추출하여 진통제 ‘아스피린’을 만들고, 주목나무에서 ‘파클리탁셀’을 추출하여 항암제 ‘탁솔’을 만들었듯이 약용 성분이 있어 활용할 여지가 있는 식물들이 존재하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유해하거나 무효한 식물들이 압도적으로 더 많기 때문에 ‘약용 성분이 있는 식물도 존재한다’는 단순한 사실을 한약의 안전성에 대한 면피용이나 우수성에 대한 홍보용으로 활용하는 것은 곤란하다.
‘현대과학기반의학(MSBM)’ 약물에서 한약에 들어가는 감초나 복령 혹은 당귀 등의 성분이 검출되는 경우란 없다. 애당초 무슨 효과가 있는지도 모르는, 조잡한 물질들을 넣을 하등의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반면, 한약의 경우 유해한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무효할 경우가 많기 때문에, 드라마틱한 약효가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현대과학기반의학(MSBM)’ 약물 첨가라는 무리수를 두는 경우가 왕왕 발생한다. ‘정력환’이라고 해서 복용했는데 ‘비아그라’ 성분이 검출된다든가, ‘피부병 특효연고’라고 해서 발랐는데 ‘스테로이드’나 ‘항진균제’ 성분이 검출된다든가, ‘발모탕약’이라고 해서 마셨는데 ‘호르몬’ 성분이 검출된다든가 하는 촌극이 잊을만 하면 터져 나오는 것에는 다 이런 이유가 있다. 한약 관련해서는 이 부분을 원천 봉쇄할 강력한 제도적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위에서 언급한 성분들은 모두 효과 못지 않게 만만찮은 부작용들을 수반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모든 질환은 나아지거나 좋아지거나 둘 중 하나이며 그 와중에 좋아졌다, 나빠졌다 하게 되어 있다. 이것은 누구나 그 도중의 어떤 타이밍에서든 최소 50%의 예언력은 발휘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현재 고대중국의학 종사자에게 진료를 받으러 가면 대개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상황이 전개된다.
(1) 말한 대로 해서 좋아지면 고대중국의학은 역시 효력이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2) 상태가 조금 나빠지면 명현현상으로 치부된다. 인체가 치유되기 전에 모든 나쁜 증상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진다는 이 명현현상은 모든 고대의학 및 사이비 의료기기 시장에서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독특한 개념이다. 그들이 왜 이런 개념을 필요로 하는지 추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이 모호한 개념이 치료 부작용에 관해 묻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거나 명백히 나빠지는 상황을 은폐하는 등 사태를 호도하는 데 이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3) 지속적으로 혹은 상당히 나빠져서야, 큰 병원 - 현대적 과학기반의학(MSBM)에 근거해 운영되는 종합병원 - 에서 정밀진단을 받아야 할 질환으로 판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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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프로필 :
퇴몽사(退蒙士) 서범석
현재 모 고등학교에서 입학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사회기여활동으로서 과학중심의학연구원의 ‘홍보특별보좌관’도 겸임하고 있다. 경희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했으며, 성균관-조지타운 대학교 TESOL 과정을 수료했다. 20년 넘게 중증 아토피로 고생하며 여러 대체 의학을 접했지만, 그 허상에 눈을 뜬 후 사이비 의‧과학 속에 자리잡고 있는 ‘몽매주의’를 퇴치하는 번역 및 집필 작업에 뛰어들었다.
저서: Q&A TOEIC Voca, 외국어영역 CSI(기본), 외국어영역 CSI(유형), 외국어영역 CSI(장문독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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