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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표절, 학적 자격미달, 그리고 학계의 책임 회피 (1/2)

“학계의 부조리 문제를 공론화로써 해결하려는 것은 지위를 중심으로 한 상아탑의 위계질서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 따라서 기득권을 누리는 학자들이 이에 대한 논의를 꺼리는 것이다”



아래 글은 호주 울롱공 대학교(University of Wollongong)  사회과학과 브라이언 마틴(Brian Martin) 교수의 논문 ‘Plagiarism, incompetence and responsibility: a case study in the academic ethos’을 연구진실성검증센터가 번역한 것이다.

아래 미발표 논문은 무려 9개 학술지에서 게재가 거부됐을 정도로, 파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논문은 결국 전반적인 내용이 수정된 버전인 ‘Plagiarism and Responsibility’로 게재되어야 했다. 공식발표된 해당 논문에 대해서도 연구진실성검증센터와 미디어워치가 이미 ‘논문 표절과 학계의 책임 회피’라는 제목으로 번역 공개한 바 있다.

아래 미발표 논문에서도 계속해서 다뤄지고 있는 1980년대 호주 뉴캐슬 대학교에 있었던 ‘스파우츠 박사와 윌리엄스 교수 사이의 분쟁 사례’는 브라이언 마틴 교수가 30여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해서 자기 논문에서 사례 근거로 제시하고 있을 정도로 중요한 함의를 담고 있는 사건이다.  진실을 추구하는 것 자체가 임무인 학계에서도 권력이 어떻게 작동해 진실을 짓밟는지 잘 보여주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조국 교수 석박사 논문 표절 사건’이나 ‘손석희 JTBC 사장 석사 논문 표절 사건’, ‘김상곤 교육부장관 석박사 논문 표절 사건’이 유사한 사건이며, 연구진실성검증센터와 미디어워치는 앞으로 관련해 지속적으로 기록을 남길 것임을 독자들에게 밝힌다.

아래 번역 내용에서 사진, 그림 등과 캡션, 소제목은 가독성을 위해 연구진실성검증센터가 덧붙인 것이다.



논문 표절, 학적 자격미달, 그리고 학계의 책임 회피
(Plagiarism, incompetence and responsibility: a case study in the academic ethos)


총 9개의 학술지가 아래 논문을 게재하기를 거절했다. 10번째로 논문을 투고한 학술지가 아래 논문에 대한 게재를 알려왔지만 결국 아래 논문을 대대적으로 수정한 형태의 버전을 게재하게 되었다. 여기에 공개하는 것은 수정 게재하기 이전 버전 논문의 원문 텍스트다. 학술지에 논문이 게재되는데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은 논문이 어떤 형태의 논문인지를 보여주고자 한다. 아래 버전은 1983년 7월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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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표절 문제나 학적 자격미달자의 임용, 승진 문제는 학계에서 결코 드물게 일어나는 사건이 아님에도 이런 문제들이 공론화되는 경우는 별로 없다. 학술적 문헌들에서 이러한 문제들이 다뤄지는 경우는 더더욱 없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논문 표절 문제와 학자의 학적 무능 문제가 실은 학계에 널리 퍼져있다는 사실이 상아탑에 대한 대중적 이미지에 미칠 영향, 또 논문 표절 문제와 학자의 학적 무능 문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상아탑이 갖고 있는 특권에 미칠 영향 때문인 듯하다. 

또 다른 이유는, 학계의 부조리 문제를 공론화로써 해결하려는 방식이 지위를 중심으로 한 상아탑의 위계질서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상아탑의 위계질서는 지위와 능력을 암묵적으로 동일시하는데서 비롯되고 있다.

이 논문에서 필자는, 선임 교수의 학적 자격증명 문제에 대해 공개적으로 의문을 제기하는 것과 관련하여 구체적인 사례 분석을 통해서 이러한 문제들을 논의해보고자 한다.

먼저 이 사례에 대해 간략하게 개괄부터 하겠다.[1]


윌리엄스 교수 박사논문 표절 의혹 사건 THE CASE OF PROFESSOR WILLIAMS' THESIS

마이클 E. 스파우츠(Michael E. Spautz) 박사는 1973년에 호주 소재 뉴캐슬 대학교(University of Newcastle)의 상학부 소속 선임강사(senior lecturer)로 임용됐다. 

스파우츠 박사는 미국 소재 UCLA(University of California at Los Angeles) 대학교에서 심리학 학위를 취득했으며 조직 행동 분야와 인사 관리 분야에서 연구실적과 강의실적이 있었다. 그는 뉴캐슬 대학교에 임용되기 전까지 미국에서 관련 학계와 업계에서 여러 직책을 맡았었다.

뉴캐슬 대학교 상학부는 1974년과 1975년에 각각 부학부장 자격 교수 임용 공고를 냈다. 스파우츠 박사는 두 번 다 지원을 했었으나 당시에는 아무도 임용되지 않았다. 뉴캐슬 대학교 상학부는 1976년에 또 임용 공고를 냈다. 스파우츠 박사는 이때는 지원하지 않았는데, 대신에 부학부장 자격 교수에 임용된 사람은 앨런 J. 윌리엄스(Alan J. Williams) 박사였다. 윌리엄스 교수는 호주의 각종 중등, 고등 교육기관에서 연구와 강의 실적이 있었고 호주의 명문대학교인 서호주 대학교(University of Western Australia)에서 1975년에 박사학위를 취득했었다.

윌리엄스 교수가 1977년 초 부학부장 자격 교수로 임용된 직후로는 윌리엄스 교수와 스파우츠 박사의 사이에는 별달리 문제가 없었는데,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 것은 윌리엄스 교수가 1978년 하반기에 상학부에 신설된 경영학과(상학부가 두 학과로 분리된 것 중 하나)의 학과장 및 MBA 과정의 책임자가 되고부터였다.

스파우츠 박사도 역시 경영학과로 배치되었는데, 이때 스파우츠 박사는 윌리엄스 교수가 경영학과의 학과장이 되는 것에 반대를 했다. 스파우츠 박사는 윌리엄스 교수가 학과장이 되기 직전에 윌리엄스 교수의 서호주 대학교 박사논문 내용에 있어서 방법론과 결론에 대해서 의혹을 제기했다.[2] 또한 1979년 5월에는 윌리엄스 교수의 박사논문에 있는 출처표시들의 결함 문제에 대해서도 의혹을 제기했다.[3]


초기에 스파우츠 박사의 윌리엄스 교수의 학적 자격증명(credentials)에 대한 의혹 제기는 윌리엄스 교수에게 사적으로, 또 상학부의 관계자들과 대학 당국자들에게 서신과 메모랜덤을 발송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1979년 무렵에는 두 학자 간의 분쟁 때문에 상학부 내 구성원들의 개인적 관계와 직업적 관계가 심각하게 영향을 받고 있었다. 이에 더해 1979년에는 스파우츠 박사가 뉴캐슬 대학교는 물론이거니와 다른 대학교들의 여러 학자들에게도 이 사건에 대해 알리기 시작했다. 널리 배포한 일련의 서신과 메모랜덤을 통해 스파우츠 박사는 윌리엄스 교수를 학적으로 무능한데다가 표절이나 저지르는 사기꾼이라고 고발했다.”[4]


뉴캐슬 대학교 측은 스파우츠 박사의 문제제기 행위에 초점을 맞춘 두 번의 조사를 진행했고, 결국 1980년 5월에는 스파우츠 박사의 종신재직권(tenure)을 박탈했다. 필자는 스파우츠 박사에 대한 이러한 해임 조치가 부각시킨 논점들에 대해서는 다른 논문에서 다룬 바 있다.[5]

윌리엄스 교수 박사논문의 결함 문제는 스파우츠 박사에게는 매우 중요한 문제였고 또 그가 나중에 벌인 일에 핵심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는 공식적이거나 공개적인 주목을 받지 못했다.[6]

여기서 필자의 목적은 윌리엄스 교수 박사논문의 문제에 대해서 세부적인 옳고 그름을 평가하려는 것이 아니다. 필자의 목적은 스파우츠 박사가 윌리엄스 교수의 학적 자격증명에 의혹을 제기하면서 불거진 다른 중요한 논점들을 짚고 넘어가려는 것이다. 

이 논점들은 박사논문 문제 그 자체보다 더욱 심오한 논점으로, 학내 분쟁을 처리하는 메카니즘의 결함과 학계의 대외적 이미지 관리를 위해 생긴 상아탑 내 금기사항 문제와 관련된다.  

아래에서 다룰 중요한 논점들은 윌리엄스 교수 논문의 방법론의 유효성과 그 결과에 대한 스파우츠 박사의 비판, 스파우츠 박사가 제기한 윌리엄스 교수의 표절 의혹, 그리고 이와 같은 비판과 의혹에 대해 조사하는 일과 관련한 학계의 책임에 대한 문제제기이다.


잘못된 통계와 뒤집어진 인과관계? SPURIOUS STATISTICS AND INVERTED CAUSALITY?

1975년 서호주 대학교에서 윌리엄스 교수가 박사학위 자격으로 제출한 논문은 750 페이지라는 상당한 분량으로 제목은 ‘서호주 소상공인들의 특질과 성과(A Study of the Characteristics and Performance of Small Business Owner/managers in Western Australia)’이다. 

참고로, 뉴캐슬 대학교 상학부의 논문 발표율은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을 언급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윌리엄스 교수는 학술지논문 발표 실적이 별로 없기 때문에,[7] 그의 박사논문이 그의 연구 능력과 업적을 따지는데 있어서 중요한 근거가 된다.  

(여기서 언급해둬야 할 또 하나의 사실은, 학술지논문 발표 실적이 학계에서의 성공에 있어 반드시 필수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뭇 사람들이 믿는 것처럼 평균 논문 발표율은 그리 높지 않다.[8] 어떤 학자의 학술지논문 발표 실적이 떨어진다고 해서 그 학자가 교육이나 행정, 그리고 사회에 대한 기여도가 떨어진다거나 학적 활동에의 전반적인 참여도가 떨어진다고 절대적으로 단정할 수도 없다. 연구에 대한 기여와 논문 발표 실적에 대한 과도한 환상과 집착은 학자 개인은 물론, 학계 전체에 대해 심각한 부정적 영향을 초래할 수 있다.[9])

윌리엄스 교수는 1975년도에 제출한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의 중요한 발견점들을 두어 개의 학술지논문으로 추려서 ‘리얼에스테이트저널(Real Estate Journal)’에 발표했다.[10] 이 학술지논문들에서는 소기업의 흥망과 관련한 중요한 통계수치를 제시하고 있다. 주요 결론은 기업인들이 경영을 하면서 생기는 감정적 스트레스에 대해 심리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경영 실패의 핵심 요인이며, “경영을 하면서 생기는 감정적 스트레스에 잘 적응하고 대처할 수 있는 기업인이 가장 실적이 좋다(individuals who can adapt to and cope with the stress of managing a small firm are the best performers)”는 것이다.[11]

한편, 스파우츠 박사는 1979년 5월, ‘리얼에스테이트저널’에 윌리엄스 교수의 저 학술지논문에 대해서 10가지의 테크니컬한 비판을 담은 짧은 글을 하나 제출했다.  

스파우츠 박사의 윌리엄스 교수 논문에 대한 비판점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번째 비판은 윌리엄스 교수가 제시한 통계 중 다수가 근거로 뒷받침이 되지 않았거나, 부적절한 방법을 통해 계산되었다는 것이다(예컨대 ‘이봉분포(bimodal distributions)’로 계산하기에 부적절한 ‘상관관계 테스트(correlation tests)’를 했다). 이것이 바로 윌리엄스 교수의 논문이 잘못된 통계를 제시하고 있다는 스파우츠 박사 주장의 핵심이다.

스파우츠 박사의 두 번째 비판점은 윌리엄스 교수가 원인과 결과를 혼동했다는 것으로, 경영 실패가 사실 감정적 스트레스의 원인이 아니라 감정적 스트레스의 결과라는 것이다. 이 점이 바로 윌리엄스 교수의 논문이 뒤집어진 인과관계를 토대로 하고 있다는 스파우츠 박사의 주장이다. 

하지만 스파우츠 박사의 윌리엄스 교수 연구결과에 대한 비판적 논문은 1979년 8월, ‘리얼에스테이트저널’로부터 게재를 거절당했는데, 학술지 편집인들이 생각하기에 독자들이 1975년에 발표된 윌리엄스 교수의 논문 내용에 대해서 기억을 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였다.[12]

한편, 윌리엄스 교수의 박사논문을 토대로 한 마이클 배튼(Michael Batten) 기자의 학술 기사가 경영학 잡지 ‘리쥐스(Rydge's)’의 1978년 1월호에 실렸다.[13]

스파우츠 박사는 서신 형태로 1979년 4월에 ‘리쥐스’ 편집자에게 마이클 배튼 기자의 기사에 대한 반박성 글을 기고했다. 이 서신은 본 논문의 부록에도 실려 있다. ‘리쥐스’는 명예훼손성 내용이라는 사유로 1979년 7월에 해당 반박 서신의 게재를 거절했다.[14]

특정인의 연구에 대한 토론, 논쟁을 가로막아야할 이유가 있는가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필자는 윌리엄스 교수의 박사논문이나, 또는 스파우츠 박사의 관련 비판 내용의 가치에 대해서 어떤 평가를 내릴 의도는 없다. 다만, 한 학자의 논문에 대해서 사이비 통계와 인과관계의 도치 가능성에 대해서  문제가 제기됐다는 점에서 보다 넓은 논점을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첫째는, 논문 내용의 타당성에 대한 학적 분쟁은 매우 흔한 일이라는 점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15] 

아이디어와 결론에 대한 격렬한 비난, 심지어는 인신공격 역시 학자들 사이에서는 꽤 흔하게 일어나는 일로서, 학술지의 ‘레터란(letters columns)’에서 자주 목격할 수 있다.[16]



이러한 맥락에서 따져본다면 사실 스파우츠 박사가 ‘리얼에스테이트저널’과 ‘리쥐스’에 제출한 글의 내용은 상대적으로 강도가 약한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스파우츠 박사의 서신(이 논문 맨 뒤의 부록을 참고하라)은 정말 엄격한 의미로 따져봐야만 명예훼손의 가능성이 있고, 실질적으로 부적절하다고 할만한 여지가 있는 것은 단지 제목 뿐이다. 

초반에 통상적인 학계의 소통절차를 통해서 윌리엄스 교수의 논문에 비판을 가했을 때의 스파우츠 박사가 보인 ‘진지한‘ 태도는 그가 나중에 의도적으로 보인, 또 다른 태도와 크게 상반된다.  

둘째는, 만약 스파우츠 박사의 비판이 입증될 수 있다면 이것이 어떠한 여파를 초래할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기실 잘못된 통계 제시, 뒤집힌 인과 관계, 또는 두 측면 모두에서 심각한 비판을 받을 수 있는 논문들은 학계에 널려 있다.

20세기 통계학의 개척자 중 한 사람인 영국의 프랑크 예이츠(Frank Yates) 박사는 왕립통계학회(Royal Statistical Society)의 성명을 통해, “일상적 통계 작업의 기준이 애석할 정도로  형편이 없다. 생물학자들, 경제학자들, 사회과학자들의 데이터 제시와 분석을 살펴보면 너무나 기초적인 오류가 너무 많으며 이는 완전히 잘못된 결론으로 이어지게 된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17]
 
기발표 논문들에서의 통계학적 방법론 이용 실태와 관련된 비판적 연구들을 살펴보면, 통계를 활용하는 대다수 학술논문들에서 심각한 오류가 있으며 이에 부적절한 결론이 도출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18] 이러한 비판적 연구들은 많은 연구자들이 자신들의 연구를 수행해나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함정을 피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19]

물론,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누군가의 연구에서 방법론이나 결과가 부적절하다고 해서 해당 연구자의 직위를 박탈하거나 또는 연구 자체를 “사이비과학적(pseudo-scientific)”이라고 낙인을 찍지는 않는다. 순전히 오류를 범했다고 해서 그것을 두고 부정한 학적 죄악을 저질렀다고 보지는 않으며, 부정행위나 부적절행위로 판정하려면 어디까지나 연구자가 의도적인 편향이나 조작,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태만과 같은 더욱 심각한 행위를 저질렀음이 입증되어야만 한다.

반면, 실제로 매우 심각한 학적 결함이 입증된다면 제재조치가 부과되는 것이 고려될 수 있는데 그 중 해임, 승진 누락, 좌천, 종신재직권 박탈 등이 있다.

하지만 여러 제도적 요소들 덕분에 이런 일은 실제로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적어도 고위직책을 가진 사람에게는 말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뒤에 논의할 것이다. 

일반적인 기준에 미달하는 연구에 대해서 널리 수용되는 학적 제재조치는 곧 해당 연구자의 학적 명예 실추다. 이는 추후 연구를 위한 기회, 자원, 영향력 등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찬가지로, 만약 스파우츠 박사의 비판이 잘못된 것으로 드러났다면 스파우츠 박사의 학적 명예가 실추될 것이다. 

(물론 이론적으로 윌리엄스 교수의 박사논문과 스파우츠 박사의 비판, 둘 다 결함이 있을 수 있다. 또는 윌리엄스 교수의 박사논문도 대부분 타당하고, 스파우츠 박사의 비판도 역시 정당할 수도 있다. 후자의 경우는 스파우츠 박사의 비판이 윌리엄스 교수의 학적 내용 중에서 상대적으로 사소한 부분을 지적해서 틀렸음을 입증했을 때에는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필자가 방금 전에 살폈듯, 학적 결함이 있는 연구에 대해서 ‘널리 수용되는 학적 제재조치’를 논하는 것은 이제 세 번째 논점을 환기시킨다. 즉, 윌리엄스 교수 박사논문에 대한 스파우츠 박사의 비판과 같은 경우를 처리할 수 있는 만족스러운 메카니즘이 없다는 것이다. 

연구의 공과를 둘러싼 분쟁을 해결할 메카니즘의 부재

‘리얼에스테이트저널’과 ‘리쥐스’ 둘 다 스파우츠 박사의 기고문을 게재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학술지들과 학자들이 논문을 편집게재하는데 있어 공공연하게 논란이 되는 일은 피하기를 선호한다는 것을 고려할 때 이는 놀랍지 않은 일이다.

사실 학술지에 발표되는 거개 논문들이 맞이하게 되는 일반적인 운명은 ‘무관심’이다. 어느 정도의 실질적인 영향력이 있는 논문이 아니라면 (예를 들어, 정책 입안을 위한 이론적 틀을 마련하거나 상당한 후속연구를 불러올 논문 등), 대부분의 학자들은 어떤 특정 논문에 대해서 세세히 비판적 반론을 쓰는 일을 쓸모없는 일로 생각한다. 

이는 발표된 지 몇 년이 지난 ‘오래된’ 논문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분야에 따라 그 기간은 다를 수 있다). 이러한 심리가 ‘리얼에스테이트저널’이 스파우츠 박사의 논문 게재를 거절하는데 어느 정도 명분을 준 듯 하다. 

학계가 지난 연구를 끄집어내어 새삼 비판을 가하는 것을 꺼리는 이유가 몇 가지 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학자들은 통상 그냥 지금 진행하고 있는 연구에 매진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고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상당수 학자들이 자신들의 과거 연구를 엄격하게 검증하는 일에 대해 당혹스러워 한다는 것이다. 

학계 바깥의 인사들은 상아탑에서 쏟아지는 대다수 연구결과물의 학적 수준이나 학적 기여도가 얼마나 빈약한지 잘 모른다.[20] 학계의 현실이 이렇게 되어버린 것은, 연구비 지원의 확보와 그 정당화 및 논문 발표 실적에 대한 압박감, 논문을 사려 깊게 심사하는 일에 대한 동기와 보상 부족, 학업에 대한 기여보다 학자 개인의 사익 추구, 그리고 논문의 결함과 비판이 공론화되는 일에 대해서 필요 이상으로 꺼리는 지적 나태 때문이라는 것이 필자의 견해다.

이러한 이유를 고려하면, 학술지 측과 마찬가지로 대학에서도 연구의 공과를 둘러싼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조사위원회나 내부학술지와 같은 메카니즘이 딱히 마련되어 있지 않은 것은 한편으론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분쟁 해결을 위한 메카니즘의 부재는 학계에 전혀 이로울 것이 없다. 

만약 스파우츠 박사가 (초반에 시도했었던 것처럼) 학술지와 같은 어떤 학문적 소통수단을 통해 자신의 비판을 알릴 수 있었다면 추후의 갈등과 분쟁은 피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다른 한편으로는, 만약 스파우츠 박사가 자신의 반론을 제기할 수 있는 학적 활로를 찾았었고 또 다른 소통수단을 통해서 계속 공론화를 할 수 있었다면 지금처럼 부당한 일을 당했다고 불평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학적 분쟁 해결을 위한 메카니즘이 있었다면 윌리엄스 교수 역시 자신의 박사논문에 대한 비판에 대응할 수 있는 제대로 된 공론장을 활용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일부는 이러한 분쟁이 시간 낭비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서 지식의 발전에 대한 유의미한 기여가 일어날 수도 있다. 또한 과거의 연구에 대한 분석과 비판이 가능한 공론장이 있다면 현재 연구의 질을 높이는데 유익한 효과를 불러올 수도 있다. 

공개적이고 엄밀한 논쟁은 건전한 학구적 과정의 반석(盤石)이 될 것이며, 폐해보다는 이득이 클 것이 확실하다. 비록 처음에 스파우츠 박사가 학문적 소통수단을 통한 비판을 시도했던 것이 무산되기는 했으나, 그가 실패에 굴하지 않고 학문적 소통수단을 찾는 일을 지속적으로 시도했다면 어떤 적합한 활로가 열릴 수도 있었을 것이므로 계속 노력해봤어야 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21] 

스파우츠 박사가 그랬더라면 분명히 어떤 수단을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학술지가 아니라면 세미나, 컨퍼런스, 내부 보고서를 통해서도 비판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 증거가 시사하는 바로는 학술지에서 게재가 거부당한 논문은 영구히 게재가 금지되는 것이 아니라 최종 게재가 일시적으로 연기되는 것일 뿐이다.[22]

모든 방법이 실패했을 때는, 현재의 기준으로는 다소 비정통적일 수 있지만, 자비(自費)로 비판 논문을 출간하는 일이 적절한 전략일 수 있으며 이미 이와 관련해서 성공적인 선례들도 많다. 스파우츠 박사는 (윌리엄스 교수의 박사논문과 관련하여) 세미나 하나를 진행하고 조사 보고서 하나를 배포하기는 했다.[23]

그가 그 이상의 다른 방안들을 활용해보지 않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필자가 여기서 지금 스파우츠 박사가 지속적으로 학계의 소통수단을 해결 방법을 찾지 못한 사실을 비판한다고 해서 학계 시스템에 책임이 없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만약 좌절한 지식인을 위해 제공되는 공인된 소통수단들이 더 많이 있다면 — 가령, 갖가지 종류의 학문적 논쟁을 위한 정보저장소와 같은 — 기존의 ‘제도적 수단를 통한 해결법’에 대한 불만이 줄어들 것이고 이외 다른 수단에 호소하는 것을 정당화하기가 어려워 질 것이다. 

연구의 사회적 적용성과 관계된 논점

설령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학계의 소통수단이 극적으로 확대되고 개선된다 하더라도, 사회적 함의를 지니는 연구에 대해 적절히 대처하는 방법에 대한 문제가 남아있다.   

윌리엄스 교수 박사논문의 핵심적 결론, 즉 어떤 소기업 소유주/경영인의 흥망이 그 사람의 특정한 성격이나 특질에 따라 통계학적으로 결정될 수 있다는 것은 사회에 직접적으로 적용되는 사안이기 때문에 비판과 토론이 최소한 권장되거나 아예 의무화되어야 한다. 

윌리엄스 교수의 연구와 관련된 기사들에 따르면 호주의 퍼스(Perth) 지역과 뉴캐슬(Newcastle) 지역에 있는 은행 몇 군데에서는 “대출인의 사업 성공 가능성을 평가할 목적으로” 윌리엄스 교수가 연구에 활용한 설문지를 활용하고 있었다.[24] 스파우츠 박사는 윌리엄스 교수의 연구가 이같이 실제 상황에서 적용되는 것에 대해서 깊이 우려했다(이 논문 맨 뒤의 부록을 참고하라).

연구의 사회적 적용성은 여러 관련 주제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하는데, 그런 주제에는 이해관계충돌(conflict of interest), 제도적 의사결정 방법론, 미디어의 역할, 과학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의 대립, 그리고 정치적 권력과 이데올로기가 있다.[25]

이런 넓은 범위의 주제들은 윌리엄스 교수의 연구와 관련해서 심도있게 논의되지 못했고, 윌리엄스 교수의 연구가 품고 있는 사회적 함의에 대해서도 스파우츠 박사를 제외하고는 별로 주목한 사람이 없었다. 


표절? PLAGIARISM?

표절은 “타인의 생각, 표현, 지적 고안품을 훔쳐서 마치 자신의 것처럼 사칭해 이용하는 행위(the taking and using as one's own of the thoughts, writings, or inventions of another)”로 정의된다.[26] 표절에는 여러 유형과 정도가 있다. 한 가지 특정한 예시를 들어 보자.

다음은 로버트 제이 리프튼(Robert Jay Lifton)의 ‘깨어진 관계(The Broken Connection)’라는 문헌에서 가져온 영문 예시다.[27]

“Ruth Benedict suggested that whole cultures could be classified according to the Nietzchean duality of Appollonian stress upon measure, control and moderation; and the Dionysian embrace of excess, of 'annihilation of ordinary bonds and limits of existence' in the struggle to 'break through into another order of existence.'(1)”


위 리프튼(Lifton)의 문헌 내용에서 맨 마지막 각주(1)에 있는 출처로 제시된 문헌은 “루스 베네딕트(Ruth Benedict), 문화의 패턴(Patterns of culture)(New York: New American Library, 1946)”이다. 필자가 저 내용과 관련해 에세이를 쓴다고 가정해보고, 위 내용을 다음과 같이 변형시켜보자.

“Ruth Benedict, the anthropologist, has proposed that whole cultures can be classified according to a distinction made by Nietzsche: a stress on measure, moderation and control as made by the Apollonians, or a stress on 'annihilation of ordinary bonds and limits of existence' in the struggle to 'break through into another order of experience' as made by the Dionysians.'(1)”


필자가 루스 베네딕트의 ‘문화의 패턴’이라는 책을 읽지 않고 그 출처를 제시한다면, 그리고 그 출처를 소개하고 관련 이해에도 도움을 준 리프튼의 문헌에 대해서 ‘재인용’으로서의 추가적인 출처표시를 하지 않는다면, 필자는 표절의 종류 중에 한 가지를 범한 것이 된다. 
  
리프튼이 베네딕트의 문장을 쌍따옴표(“”)로 처리하여 ‘직접 인용’한 내용을 똑같이 옮기는 것, 즉 베네딕트의 문헌을 출처표시하고 베네딕트의 문장표현을 쌍따옴표를 이용해서 인용처리하는 것은 당연히 용인된다. 

마찬가지로 리프튼의 문장을 ‘말바꿔쓰기(paraphrase)’하는 것도, 리프튼 문헌을 출처표시를 하기만 한다면 용인된다. 단, 이 경우에는 원 문장과 너무 유사해서는 안되고 본질적으로는 같은 내용이면서 최대한 다르게 표현하는 것이 선호된다. 

그렇다면 표절은 어디서 발생하는가. 표절 문제가 생기는 것은 바로 루스 베네딕트(1차 문헌)에 대해서는 출처표시를 하면서, 정작 루스 베네딕트에 대한 리프튼(2차 문헌)의 아이디어와 문장표현을 출처표시 없이 그대로 사용했을 시 일어난다.  

일종의 ‘무의식적 표절(unconscious plagiarism)’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필자가 베네딕트의 ‘문화의 패턴’을 직접 읽었으나 리프튼의 문헌도 역시 참고했었던 관계로, 리프튼이 작성한 문구와 유사한 문구를 무심코 작성해버렸다고 생각해보자. 나중에 이 문구가 리프튼의 문헌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필자의 문구로 착각해 리프튼에 대한 인용처리없이 필자의 에세이에 활용해버린다면, 이는 무의식적 표절이 될 수 있다. 이와 같은 일은 특히 문장과 단어 기억력이 좋은 사람에게 우연히 일어날 수 있다.[28] 



변명의 여지가 없는 표절은 베네딕트의 문헌을 출처로 제시했으면서도 실제로는 그 문헌을 전혀 살펴보지 않았을 경우이다. 

여기에 관계된 개념적 요소들을 한번 정리하고 가는 것이 중요하겠다. 간접인용으로서의 ‘말바꿔쓰기’는 널리 행해지며, 원문과 지나치게 비슷하지만 않다면 이는 학문적 글쓰기로서 인정받는다. (원문과 너무 비슷한 말바꿔쓰기를 할 바에야 차라리 원문을 그대로 옮겨와 쌍따옴표(“”)로 처리하는 직접인용이 권장된다. 물론 “너무 비슷함”에 대한 평가는 개개인의 판단과 성향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그 기준에 대해 여기서 규정하지는 않겠다.) 

원 1차 문헌(베네딕트)을 검토하고 출처로써 제시하는 일은 당연히 용인되는 일이며 유용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시되는 것은 2차 문헌(리프튼)에 대한 출처표시의 부재이다. (2차 문헌 출처표시는 손수 1차 문헌의 내용을 검토하지 않은 경우에 1차 문헌을 제공해 준 2차 문헌의 기여에 대해서, 그리고 1차 문헌을 말바꿔쓰기하여 재정리해준 내용에 대해서 이뤄져야한다.) 이런 유형의 표절을 이른바 ‘2차 문헌 표절(재인용표절)’이라고 한다.[29]

의혹이 가는 경우에도 정말 2차 문헌 표절을 했는지 단정하기는 어렵다. 특히 2차 문헌의 문장들을 아주 잘 ‘말바꿔쓰기‘해줬다면 더욱 그렇다.   

2차 문헌 표절의 증거

하지만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증거가 2차 문헌 표절의 가능성을 증대시킬 수 있다.  

하나는, 불분명하거나 접근이 쉽지 않은 1차 문헌을 출처로써 제시한 경우다.

어떤 논문에서 러시아어 원서가 각주에 출처로 제시되어 있는데 논문 저자는 정작 러시아어를 전혀 할 줄 모르는 사람인 상황을 가정해보자. 이 경우 당연히 출처로 제시되지 않은 다른 2차 출처(서면 또는 구두 출처)를 저자가 참고했을 것이라고 밖에는 달리 생각할 수가 없을 것이다.

‘2차 문헌 표절’의 가능성을 살필 수 있는 또 다른 경우는 중복된 실수이다. 즉, 2차 문헌의 저작자가 한 실수를 모르고 그대로 베껴오는 경우이다. 

만약 어떤 2차 문헌의 저작자가 1차 문헌에서 인용을 하는 과정에서 오기(誤記)를 했는데 당신도 역시 2차 문헌에 있는 것과 똑같은 실수를 그대로 했다고 가정해보자. 이 경우 당신은 1차 문헌을 참고하지 않았고, 오기가 포함된 2차 문헌을 배껴왔다는 강력한 의심을 받게 될 것이다. 이에 대한 대표적인 사례인 어네스트 티터톤 경(Sir Ernest Titterton)의 경우는 관련해 상세한 기록이 남아 있다.[30]

이러한 유형의 표절이 -- 재인용처리가 제대로 안된 2차 문헌 표절 -- 윌리엄스 교수 박사논문의 곳곳에서 저질러졌다고 스파우츠 박사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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