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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시오카 쓰토무(西岡力, 1956년 4월 16일 -). 현대조선(現代朝鮮) 연구자, 레이타쿠(麗澤)대학 객원교수, 공익재단법인 모라로지연구소(モラロジー研究所) 역사연구실장/교수. ‘북조선에 납치된 일본인을 구출하기 위한 전국협의회(北朝鮮に拉致された日本人を救出するための全国協議会)(구출회(救う会))’ 회장. 도쿄도(東京都) 출생.
니시오카 쓰토무(西岡力) 출생(生誕): 1956년 4월 16일(63세), 일본 도쿄도 국적(国籍): 일본 연구분야(研究分野): 지역연구(현대조선 연구) 연구기관(研究機関): 레이타쿠대학 출신교(出身校): 국제기독교 대학(ICU/학사), 쓰쿠바 대학(석사) |
목차 1 학력, 경력 2 인물, 활동 2.1 위안부 문제 3 저서 3.1 단저 3.2 공저 3.3 감수 3.4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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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학력, 경력(学歴・職歴)
일본 국제기독교(国際基督教)대학을 졸업하고 쓰쿠바(筑波)대학 대학원 지역연구과 수료 후에 한국·연세대학교 국제학과에 유학했다. 1982년~84년 일본 외무성 전문 조사원으로 주한 일본 대사관에서 근무했다. 1990년~2002년 월간 ‘겐다이코리아(現代コリア研究所)’ 편집장을 역임했다. 현재 ‘북조선에 납치된 일본인을 구출하기 위한 전국 협의회(구출회)’ 회장이며, 도쿄기독교대학 교수를 지냈고, 현재 레이타쿠 대학 객원교수이자 모라로지 연구소 실장이다. 2015년 제30회 ‘세이론 대상(正論大賞)’ 수상.
- 1979년 국제기독교대학(ICU) 졸업
- 1982년 주서울일본대사관 전문조사원 (~1984)
- 1983년 쓰쿠바대학 대학원 지역연구과 석사과정수료. 한국 연세대학교 국제학과 유학.
- 1984년 겐다이코리아연구소 주임연구원 (~1991)
- 1991년 도쿄기독교대학 신학부 전임강사
- 1996년 도쿄기독교대학 신학부 조교수
- 2000년 도쿄기독교대학 신학부 국제기독교학과 교수
- 2008년 도쿄기독교대학 신학부 국제기독교복지학과(학과명 개칭) 국제기독교학 전공교수
- 2016년 레이타쿠대학 객원교수
- 2017년 공익재단법인 모라로지연구소 역사연구실 실장, 교수
2 인물, 활동(人物・活動)
다나카 아키라(田中明)를 사사(師事)했다. 겐다이코리아 연구소의 발행잡지 ‘겐다이코리아(현대코리아)’ 편집장을 2002년까지 맡았다. 1998년 4월 ‘북조선에 납치된 일본인을 구출하기 위한 전국협의회(구출회)’ 설립에도 관여했다. 현재 ‘구출회(스쿠우카이)’ 회장이자 동 협의회 지부 ‘북조선에 납치된 일본인을 구출하는 도쿄모임(구출회 도쿄)’의 회장직도 겸임하고 있다.
나카니시 테루마사(中西輝政), 야기 히데쓰구(八木秀次), 시마다 요이치(島田洋一), 이토 테쓰오(伊藤哲夫)와 함께 아베 신조 수상의 브레인 ‘5인조’의 한 사람이라고 도쿄신문(東京新聞)이 보도한 적이 있다. 니시오카는 도쿄신문의 취재에서 “‘북조선에 납치된 일본인을 구출하기 위한 전국협의회’(구출회)의 상임부회장으로서 아베 수상과 공동보조를 맞춰왔다”면서도, “다만 아베 수상과 구출회의 부회장으로서 만난 적은 있지만 직접 질문을 받은 적도 없고, 조언을 드린 적도 없다. 시모무라 하쿠분(下村博文) 의원이나 이토(伊藤) 씨를 통한 관계이지 결코 브레인은 아니다”라고 답변했다.
조선반도 문제, 일본인 납치 문제에 관한 언론인이자 활동가의 한 사람이다.
2.1 위안부 문제(慰安婦問題)
요시미 요시아키(吉見義明), 다카기 겐이치(高木健一), 도츠카 에츠로(戸塚悦朗 또는 戶塚悅郞), 후쿠시마 미즈호(福島瑞穂) 등이 주장하는 ‘위안부 강제연행’ 문제에 대하여 부정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니시오카는 2007년과 2012년에 출판사 소우시샤(草思社)에서 ‘알기 쉬운 위안부 문제(よくわかる慰安婦問題)’ 등 위안부 문제에 대한 서적을 2권 발표했는데, 그 책에서 위안부 강제연행을 주장하는 변호사들에 대해 “사실을 왜곡해서라도 일본을 비난하는 게 좋다는 자세를 갖고 있다” 등의 비판을 했다.
니시오카로부터 비판을 받은 다카기 겐이치 변호사는 명예를 훼손당했다며 니시오카 쓰토무와 출판사 소우시샤에 대하여 출판금지와 1000만 엔의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명예훼손 소송을 도쿄지방재판소에 제기했다, 하지만 2014년 2월의 1심에서 도쿄지방재판소는 “기술된 전제사실의 중요한 부분이 진실이거나, 진실이라고 믿게 된 상당한 이유가 있다. 공익을 위한 목적으로 집필한 책이며 논평의 영역을 일탈한 것은 아니다”라며 원고(다카기 게이치)의 소송을 기각했다.
2심의 도쿄고등재판소도 1심을 지지했다. 2015년 1월 14일, 최고재판소 제2소법정(오니마루 가오루(鬼丸かおる) 재판장)은 원고 측 상고를 기각했다. 이로써 다카기 겐이치의 패소가 확정되고 니시오카가 승소했다. 이 재판의 승소에 대하서 니시오카는 “언론에는 언론으로 대응한다는 원칙에 반하는 재판이 벌어진 것이어서 뒷맛이 개운치 않다”라고 말했다.
니시오카는 또한 전 아시히신문 기자, 우에무라 다카시(植村隆)가 썼던 ‘(위안부가) 여자정신대의 이름으로 연행됐다’는 기사에 대하여 2014년 2월 6일 슈칸분슌(週刊文春, 주간문춘)의 기사를 통해, “이름을 밝히고 나선 여성(김학순)은 자신은 부모가 팔아넘겨 위안부가 됐다고 소장에 썼고 한국 신문의 취재에도 그렇게 대답했다”, “날조기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하여 우에무라는 2015년 1월 9일, (니시오카의 기사 이후에) 자신이 ‘날조’를 했다는 비판을 계속 받고 있으며 가족과 주변까지 공격을 받았다는 이유로, 대리인으로서 170명의 변호사를 선출하여 니시오카와 출판사 분게이슌주(文藝春秋, 문예춘추)에 대하여 총 1,650만 엔의 손해배상 등을 요구하는 명예훼손 소송을 도쿄지방재판소에 제기했다.
이 소송에 대해서 니시오카는 분게이슌주 2015년 1월호 지면을 통해, 자신이 우에무라의 반론에 대하여 재차 반론했음에도 불구하고, “(우에무라가) 재반론에 대해서는 답변하지 않고 돌연 민사소송을 제기한 점에 크게 실망했다. 언론인이라면 언론을 통해 싸워서 자신의 명예를 지켜야한다”고 비판했다.
이어서 니시오카는 “언론에는 언론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원칙에 의거하여 우에무라 씨와 논쟁을 이어가고 싶었다”라고 밝히며, 다카기 겐이치와의 재판과 마찬가지로 우에무라와의 재판이 벌어진 것에 대해서도 뒷맛이 쓴 심정이라고 말했다.
니시오카는 또한 “과거에 위안부 문제로 일본의 책임을 묻는 캠페인을 벌인 측이 그를 비판한 학자와 언론인에 대하여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제기하는 상황이 다른 곳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그 배경에 무엇이 있는지 생각하는 중”이라고 발언했다.
이 소송에 대하여 산케이신문도 언론에 대해서는 언론을 통해 반론하는 게 순리이며, 자신에 대한 비판기사 등이 협박범죄를 초래했다고 주장하는 우에무라 측의 소송 이유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니시오카 쓰토무는 2018년 9월 5일에 진행된 상기 소송의 본인 신문 과정에서, 우에무라 다카시가 김학순에 대하여 쓴 기사 중 ‘여자정신대의 이름으로 전쟁터에 연행되어(女子挺身隊の名で戦場に連行され)’라는 표현에 대하여, “이 분(김학순)은 한 번도 ‘여자정신대의 이름으로’라고 말한 바 없었다. 우에무라 씨의 기사는 오보이며 독자들의 오해를 초래하는 캠페인”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하여 우에무라는 “김 씨 자신이 당시의 기자회견에서 ‘나는 정신대였다’고 발언했으며, 나의 기사는 오보가 아니다”라고 반론했다.
또한 니시오카 쓰토무는 증거로 제출한 과거 자신의 논문에서 한국 한겨레신문의 기사를 인용했었는데, 김학순과 관련 “나(김학순)는 40엔에 팔렸고 기생 수행을 몇 년 동안 받은 후, 일본 군대가 있는 곳으로 갔다”라고 하는, 애초 한겨레 기사에는 없는 표현을 추가한 점에 대하여서는 “잘 못 썼다. 나중에 알게 되어 정정했다”고 하면서 오보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 편집자주 : 여기서 니시오카 쓰토무가 인정한 것은 ‘40엔에 팔렸고 기생 수행을 받았다’와 같은 김학순 증언의 출처로 한겨레를 자기 논문에서 거론했던 것은 잘못이었다는 것이다. 니시오카 쓰토무가 인용한 김학순의 증언, 즉 “나(김학순)는 40엔에 팔렸고 기생 수행을 몇 년 동안 받은 후, 일본 군대가 있는 곳으로 갔다”는 증언 자체는 김 씨 본인의 것이 맞다.]
또한 ‘(김학순이) 인신매매를 당해 위안부가 됐다고 소장에 썼다’는 점의 사실여부 문제에 대해서는 잘못 기억한 부분이라고 답변했으며, 슈칸분슌 기사의 잘못을 인정했다.*
[* 편집자주 : 이 부분은 위키 서술의 오류로 보인다. 니시오카가 밝힌 ‘김학순이 인신매매로 인해 위안부가 됐다’는 부분도 역시 김학순 본인의 증언에 따른 것이다. 김학순 씨는 실제 소장에서 “가난 때문에 양녀가 되어 기생학교에 들어갔고, 또 양부에 의해 일본군 위안소로 끌려갔다”고 밝힌 바 있는데, 이는 당시 시대 상황을 본다면 “인신매매로 인해 위안부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니시오카가 자신의 오보를 인정했다는 부분은 어디까지나 일부 출처 혼돈 문제(한겨레신문)와 관련된 것으로, 실제 김학순 본인의 증언 내용에 대한 어떤 가감이나 왜곡과는 관련이 없는 것이다. 즉, 우에무라의 오보와는 질적으로 다른 오보이다. 니시오카는 결국 2019년 6월 26일, 도쿄지방재판소 1심에서 우에무라에게 승소했으며, 그가 우에무라의 기사에 대해서 날조라고 평가한 부분과 관련해서도 일정한 합리성(상당성)이 있다는 점을 인정받았다. 니시오카는 2020년 3월 3일, 도쿄고등재판소 2심에서도 우에무라에게 승소했다.(2020.3.3.)]
3 저서(著書)
3.1 단저(単著)
- ‘일한오해의 심연(日韓誤解の深淵)’ (아키쇼보(亜紀書房), 1992년)
- ‘코리아 타부를 푼다(コリア・タブーを解く)’ (아키쇼보, 1997년)
- ‘어둠에 도전한다! - 납치, 기아, 위안부, 반일을 어떻게 파악할 것인가(闇に挑む!―拉致、飢餓、慰安婦、反日をどう把握するか)’ (도쿠마쇼텐(徳間書店), 1998년)
- ‘기아와 미사일 – 북조선은 앞으로 어떻게 되는가(飢餓とミサイル――北朝鮮はこれからどうなるのか)’ (소우시샤(草思社), 1998년)
- ‘폭주하는 국가, 북조선 – 핵미사일을 막을 수 있는가(暴走する国家・北朝鮮――核ミサイルは防げるのか)’ (도쿠마쇼텐, 1999년)
- ‘김정일과 김대중 –남북융화에 속지 말라!(金正日と金大中――南北融和に騙されるな!)’ (PHP연구소, 2000년)[* 편집자주 : 이 책의 한국어판은 동일한 제목으로 박화진 씨의 번역으로 2000년도에 한국논단 출판사에서 간행됐다.]
- ‘김정일이 준비한 ‘대일 대모략’ 납치의 진실(金正日が仕掛けた「対日大謀略」拉致の真実)’ (도쿠마쇼텐, 2002년)
- ‘테러국가 북조선에 속지 말라(テロ国家・北朝鮮に騙されるな)’ (PHP연구소, 2002년)
- ‘납치가족과 함께 한 6년 전쟁 –적은 일본에도 있었다!(拉致家族との6年戦争――敵は日本にもいた!)’ (후쇼샤(扶桑社), 2002년)
- ‘북조선이 집어먹은 한국 –지금 이웃나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北朝鮮に取り込まれる韓国――いま"隣国"で何が起こっているか)’ (PHP연구소, 2004년)
- ‘일한 ‘역사문제’의 진실 - ‘조선인강제연행’, ‘위안부문제’를 날조한 것은 누구인가(日韓「歴史問題」の真実――「朝鮮人強制連行」「慰安婦問題」を捏造したのは誰か)’ (PHP연구소, 2005년)
- ‘한국분열 – 친북좌파 vs 한미일 동맹파의 투쟁(韓国分裂――親北左派vs韓米日同盟派の戦い)’ (후쇼샤, 2005년)[* 편집자주 : 이 책의 한국어판은 동일한 제목으로 이주천 교수의 번역으로 2006년도에 기파랑(기파랑에크리) 출판사에서 간행됐다.]
- ‘북조선의 ‘핵’, ‘납치’는 해결할 수 있다(北朝鮮の「核」「拉致」は解決できる)’ (PHP연구소, 2006년)
- ‘알기 쉬운 위안부문제(よくわかる慰安婦問題)’ (소우시샤, 2007년) 이후에 증보 신판 문고 출판, 2012년
- ‘아사히신문의 ‘일본인에 대한 대죄’, ‘위안부 날조보도’를 철저히 추구(朝日新聞「日本人への大罪」 「慰安婦捏造報道」徹底追及)’ (고쿠우슈판(悟空出版), 2014년)
- ‘요코타 메구미 씨 등을 되찾아오는 것은 지금밖에 없다(横田めぐみさんたちを取り戻すのは今しかない)’(PHP연구소, 2015년)
- ‘공갈과 협박의 국가(ゆすり、たかりの国家)’(왓쿠(ワック), 2017년)
- ‘역사를 날조하는 반일국가, 한국(歴史を捏造する反日国家・韓国)’(왓쿠, 2019년)
- ‘날조된 징용공 문제(でっちあげの徴用工問題)’(소우시샤. 2019년 3월)
3.2 공저(共著)
- 니시오카 쓰토무(西岡力), 와타나베 도시오(渡辺利夫), 오카자키 히사히코(岡崎久彦), 고지마 도모유키(小島朋之), 다쿠보 다다에(田久保忠衛), 이나가키 다케시(稲垣武) ‘아시아, 방심은 대적! - 북조선, 홍콩, 중국...동란의 시나리오를 읽다(アジアは油断大敵!―北朝鮮、香港、中国…動乱のシナリオを読む)’ (PHP연구소, 1997년)
- 오가와 가즈히사(小川和久), 고토 미쓰유키(後藤光征), 시미즈 요시카즈(清水美和), 시게무라 도모미츠(重村智計), 윤덕민(尹徳敏) ‘북조선 문제를 정리하는 5가지 파일(北朝鮮問題を整理する5ファイル)’ (지유고쿠민샤(自由国民社), 2005년)
- 히라타 류타로(中西輝政), 에야 오사무(惠谷治), 시마다 요이치(島田洋一) ‘남북조선은 동시붕괴하는가?(南・北朝鮮、同時崩壊か?)’ (도쿄재단(東京財団), 2007년)
- 조갑제(趙甲済), 니시오카 쓰토무(西岡力) ‘김현희가 보낸 편지(金賢姫からの手紙)’ (소우시샤, 2009년)
- 나카니시 데루마사(中西輝政), 니시오카 쓰토무(西岡力) ‘왜 일본은 역사전에서 계속 지는가?(なぜニッポンは歴史戦に負け続けるのか)’ (닛폰지츠교출판사(日本実業出版社), 2016년 4월)
- 마이클 욘(Michael Yon, マイケル・ヨン), 스기타 미오(杉田水脈), 다카하시 시로(高橋史朗), 니시오카 쓰토무(西岡力), 도쿠나가 신이치(徳永信一), 야마오카 데츠히데(山岡鉄秀), ‘‘위안부’ 모략전에 맞서라 – 일본 아이들을 누가 지킬 것인가?(「慰安婦」謀略戦に立ち向かえ―日本の子供たちを誰が守るのか?)’ (메이세이샤(明成社)), 2017년)
3.3 감수(監修)
- 장진성(張真晟) (저(著)), 가와무라 아코(川村亜子) (번역) ‘김왕조 ‘어용시인’의 고백 –모략의 나날(金王朝「御用詩人」の告白 わが謀略の日々)’ (분게이슌주(文藝春秋), 2013년)
3.4 기고(寄稿)
- ‘잡지 ‘세카이’는 조선을 어떻게 봤는가?(雑誌『世界』は朝鮮をどう見たか’ (‘세카이’조선 관련 기사 자료 포함), 상/중/하 ‘조선연구(朝鮮研究)’ 일본조선연구소(日本朝鮮研究所), 1980년 1월, 3월, 7월
- ‘일본의 신문이 전한 광주사건(日本の新聞が伝えた光州事件)‘ ‘조선연구(朝鮮研究)’ 일본조선연구소(日本朝鮮研究所), 1980년 8월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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