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공지나 지시사항을 누구도 오해하지 않게 정확히 전달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도 많이 보게 된다. 무엇이 문제일까? 후자는 주로 자신의 관점에서 혹은 자신의 기준으로 내용을 전달한다. 이들은 자신이 말하는 내용에 대한 ‘맥락(context)’을 듣는 사람도 당연히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교사로 일하다 보면 2020년이라는 연도를 빼고 월일(月日)만으로 일시가 적힌 문서를 주고받는 경우가 많다. 이는 많은 경우에 별문제가 없을지 모르지만, 정확히 일의 경위를 알아보고자 할때에는 혼동을 일으킬 수 있다. 한국 사회 전체가 정확한 의미 소통에 어려움 소통의 어려움은 개인뿐 아니라 한 사회에서도 발생한다. 한 사회의 구성원들이 쓰는 언어가 정확한 의사소통을 하기에 어려움이 많다면, 그것은 그 언어가 ‘객관적 엄밀성’보다는 ‘맥락 중심적’인 체계를 갖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나는 언어학자는 아니지만, 역사교사치고는 꽤 다양한 학문 영역을 공부할 수 있었다. 처음엔 치의학 공부를 했었고 대학 졸업 후에는 영역을 바꿔서 역사학을 공부하면서 사료(史料)를 독해하기 위해 한문을 익혔다. 이후 석사과정을 하면서 이전의 두 학문 영역을 융합한
최근 좌편향 사관으로 미디어의 주목을 받고 있는 한국사 교과서를 보면서 자연히 역사교사들의 한일관계에 대한 시각에 생각이 미치게 된다. 아마도 역사교사들의 역사관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도 한일관계를 바라보는 시선일 것이다. 역사교사들, 입으론 ‘일본은 친구’ 머리로는 ‘반일프레임’ 표면적으로는, 한국의 많은 역사교사들은 한일관계를 평화와 미래지향의 동반자적 관계로 사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 중엔 한중일의 동아시아사에 관심을 갖고 활동해온 이들이 적지 않다. 고등학교 교육과정에 동아시아사라는 교과목의 존재 역시 그러한 방증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실상을 들여다보면, 여전히 한국의 역사교사들은 ‘반일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 예로 한국의 역사교사들이 얘기하는 일본과의 소통은 일본의 좌익 지식인 및 교육자들과의 소통이거나, 혹은 일본의 우익을 제외한 나머지 일본인들와의 소통만을 의미한다. 오늘날 우파 성향의 내각이 이끄는 일본이라는 사회의 일반적인 시민 집단과의 진정한 소통과는 거리가 먼 셈이다. 일본 좌익 데려와 다같이 아베 욕하는 게 ‘한일 소통’? 작년 11월 초 ‘2019 역사인식과 동아시아 평화포럼’에 참가했던 기억이 난다. 행
추정을 단정으로 성급히 몰아가는 비합리성과 조급성은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다. 개인들이 가진 이러한 인간성의 결함들은 전문가들 사이의 열린 토론과 상호 비판이 고취되는 사회에서라면 그만큼 제어될 것이다. 반면, 공식적 담론이 도전 받지 않고 ‘주류의 시각(mainstream view)’ 혹은 ‘인민의 요구’라는 명분 하에 위력을 발휘하는 사회에서는 추정은 쉽게 단정이 되고 급기야 그에 따른 재판까지도 내려질 수 있다. 몇 주전 지만원에 대한 이른바 명예훼손 형사재판처럼 말이다. 5.18 사건을 민주화 운동이라고 성역시하는 사람의 눈으로는 당연히 지만원의 주장은 모욕이라고 여겨질 것이다. 하지만, 지만원에 대한 형사재판은 크게 두가지 생각할 거리를 나에게 던져 주었다. 첫번째는 한국 사회의 놀라울 정도의 개인과 집단을 바라보는 위선의 프레임이다. 집단주의 사회임을 숨기듯, 한국 사회에서 이 재판은 마치 원론적인 개인과 개인 사이의 명예 훼손 사건처럼 위장하고 있다. 사안이 단순한 개인간의 사건이 아닌 (진영논리가 판을 치는) 정치적 사건임을 감안하면, 그 배후에 막강한 사회적 파워의 영향을 당연히 생각해 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20년전 한국논단의 명예 훼손
학교 사회를 보수적이라고 흔히 생각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현재 한국사 교과서가 문제시 되고 있지만, 몇 년 전의 국정교과서 반대 때와 비교했을 때, 작년 한국사 교과서들이 검정을 통과하고 학교에 채택될 때까지 현장에서 교사들이 낸 거부의 목소리는 미미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국정 교과서 문제 당시 이를 반대했던 교사들 중 일부는 자유주의적 입장에서 반대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애당초 민족주의와 사회주의에 경도된, 소수 목소리가 힘을 얻기 힘든 한국사학계와 역사교육계의 정서 그리고 이들에 의한 한국사 교과서 시장독점 체제를 고려하면, 그 자유주의 반대론자들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는다. 그들 주장의 근거가 되는 자유주의의 원칙 대로 한국사 교육과정이 운영될 수가 없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교사들, 진보적 생각이 곧 좌파적 생각이라는 데 별 관심 없어 이는 비단 역사교육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사회 전체가 그렇듯, 학교 교사들 안에 소리없이 녹아 든 진보의 생각 자체가 그 본질이다. 대부분의 교사들은 ‘진보’적 생각이 대개 좌파적 (leftist), 사회주의적 생각이기도 하다는 것에 대해서 별 관심이 없다. 진보적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는 교사들조차도
어제 국회 의원회관에 열린 ‘2020 역사교과서 이대로 가르칠 것인가?’라는 토론회에 다녀왔다. 국사교과서연구소와 자유한국당 교육위원회가 주최한 토론회였다. 이날 첫 번째 발제자는 전 원광대 역사교수 이주천, 두 번째 발제자는 자유민주연구원의 양일국, 세 번째 발제자는 국사교과서 연구소장 김병헌이었고, 토론은 명지대 교수 강규형이 맡았다. 이 중 이날 토론회의 가장 핵심적인 발제역을 맡아 열성적으로 토론에 임했던 이주천의 내용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가 성토하다시피 쏟아낸 많은 지적과 주장들은 나로 하여금 지금의 한국사교과서 문제에 대해 다시금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민중민주주의와 민족사관에 입각한 한국사교과서 이주천은 검정을 통과한 대부분의 역사교과서가 객관성을 상실했다고 주장하였다. 당대사 내용을 필요 이상으로 많이 담고 있으며, 현 정권에 대한 미화가 심하다는 것인데, 이는 정확한 시각으로 보인다. 가령 그가 지적한 ‘세계가 인정한 한국의 촛불 혁명’이라는 교과서 표현은 내가 보기에도 교과서라기보다 정당 광고 문구에 들어가기 더 적합한 표현이라 여겨진다. 이렇게 역사에 대한 강한 주관적인 평가가 배어 있는 표현들만 봐도, 검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