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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쿼터 축소시켜도 잘만 풀린다”

문제는 스크린쿼터 축소가 아니라 시장전략, 변화 택하니 관객호응 따라줬다

2011년 한국영화산업 통계가 결산됐다. 그리고 이미 예상됐듯, 대단히 긍정적인 결과가 드러났다. 2011년 한국영화의 시장점유율은 51.9%를 기록했다. 2006년 이후 5년 만의 50%대 돌파다. 전년도로부터 무려 5.3%나 점유율이 상승하는 결과를 보여줬다. 다른 수치들은 더 놀랍다. 2011년 한국영화 관객수는 8286만8518명을 기록, 2006년에 이어 역대 2위에 랭크됐다. 입장료 상승 요인 등이 작용하긴 했지만, 어쨌든 매출액 측면에선 아예 역대 1위다. 이에 반해 할리우드영화를 위시로 한 해외영화들은 시장점유율, 관객수 측면에서 모두 지난해보다 떨어졌다. 특히 입장료가 60% 가깝게 비싼 3D영화들을 밀고 들어왔음에도 매출액 측면에서 지난해에 비해 4% 감소한 모습을 보였다.

총합적으로 2011년 한 해 동안 전체 극장 관객수는 1억5979만2400명을 기록, 기존 역대 1위였던 2009년의 1억5539만8654명을 경신하고 새로운 1위 자리를 꿰차게 됐다. 물론 주로 한국영화의 약진 덕택이다. 이로써 한국시장은 인구 1인당 1년에 약 3.2편의 영화를 극장에서 관람하는, 세계 기준으로도 대단히 왕성한 영화시장이 됐다. 미국의 3.6회엔 조금 못 미치지만, 일본의 1.4회보단 월등히 높다.

200만 돌파 영화 15편 역대 최다이자 가장 고른 흥행분포

더 흥미로운 점도 있다. 2011년은 단순 액면 상으로만 한국영화 관객수가 늘어난 해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가장 고르게 흥행분포가 이뤄진 해이기도 했다. 한국영화 관객수 역대 최고치를 보유중인 2006년은 사실상 1301만9740명이 관람한‘괴물’이 견인한 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2011년엔 그 정도 흥행작이 한 편도 없었다. 1000만 영화는 전무하고, 최고라 봤자‘최종병기 활’이 동원한 745만9974명이 한계였다.

대신 2011년엔 200만 관객 이상을 동원한 영화가 무려 15편이나 나왔다. 역대 최고치다. 그리고 그 15편은 장르도 쏠림 없이 다양했거니와,‘써니’ ‘완득이’ ‘도가니’ ‘위험한 상견례’ ‘의뢰인’ ‘블라인드’등 주로 중급영화들이 중심을 차지하고 있었다. 한국영화산업에 비관적 시각을 보내던 이들이 주로 훈수 두던 부분, 즉 블록버스터가 아닌 중급영화가 손익분기를 넘겨주며 산업 허리 역할을 맡아줘야 한다는 주장이 현실화된 한 해였던 셈이다.

물론 1999~2006년 상황은 조금 다르긴 했다. 이른바‘우리도 할 수 있다’ 식 할리우드 벤치마킹 블록버스터들이 축 늘어져 있던 시장분위기를 혁신시키고 한국대중의 열렬한 호응을 얻어낸 시기다. 그러나 이런 식의 국가적 자긍심 차원 벤치마킹 전략은 그 효용기간이 무척 짧다. 길어야 10년 정도다. 한국은 이미 8년차를 넘어선 시점부터 피로현상이 일어났다. 그래서 2007년부터 시장점유율 50%대가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 200만 이상 동원작이 9편으로까지 떨어진 2008년 이후 조금씩 상황이 달라졌다. 영화흥행의 기본은 해당 시점, 해당 문화권 대중의 심리적 니즈를 파악하는 것임을 각 제작사들도 깨닫기 시작했다. 경제 불황 상황에서 대중의 불안한 심리와 사회적 분노, 과거회귀 욕구 등을 하나씩 잡아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200만 이상 동원작들이 늘기 시작했다. 2010년엔 13편, 2011년엔 15편 등으로 계속 상승곡선을 보였다.

반면 할리우드영화들은 순간 폭발력은 좋았지만, 정작 200만 이상 동원작들을 따지고 들어가면 그 액면 숫자는 크게 줄기 시작했다. 거대한 규모에 화려한 비주얼, 눈부신 기술적 성취라는 강점은 그야말로‘보편적’인 대중요구에 불과할 뿐, 해당 문화권 대중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킬러 아이템은 아니었던 것이다.

홍콩도 2011년 영화산업 부흥 계기 맞아

이와 비슷한 상황이 1980~90년대‘아시아의 할리우드’라 불려던 홍콩에서도 지난해 똑같이 일어났다. 다들 잘 알다시피, 홍콩은 21세기 이후 완전히 영화흥행전선에서 패퇴한 나라다. 주로 불법복제시장 확대와 주요 인력의 할리우드 수출 등에 의해 일어난 일이었지만, 이후 할리우드에서 인력들이 되돌아오고 시장이 상당부분 정화됐어도 홍콩영화의 흥행은 여전히 부진했다. 전략이 이전과 똑같았기 때문이다.

여전히 블록버스터와 졸속 코미디 위주로 시장을 구성했다. 어쩌다 주성치가 거대 블록버스터 하나 만들어내면 그에 시장 중심이 맞춰졌다. 그리고 나머지는 설날 연휴에 개봉되는 가족 코미디 하세편(賀歲片)에 기댔다. 1990년대‘황비홍’식 쿵푸영화나 중국의 내선일체(內鮮一體) 블록버스터들에 의존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렇게 1990년대와 별다를 것 없는 전략으로 10여 년 이상을 끌어왔으니 시장이 지칠 만도 했다.

그러나 2011년, 홍콩영화계는 확실히 진일보했다. 2000만 홍콩달러 이상을 벌어들인 중화권영화가 6편이나 나왔다. 물론 최전성기 1990년대 초반에 비하면 보잘 것 없지만, 적어도 21세기 들어서는 최고의 수치였다. 그런데 그 6편의 면면이 독특하다. 홍콩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중급영화 중심 개편이 이뤄진 것이다. 중급영화긴 하지만, 홍콩대중의 심리적 니즈를 정확히 건드린 영화들이다.

홍콩 역시 한국처럼 대중심리 니즈 반영한 중급영화 열풍

먼저 1위를 차지한 대만영화‘나사년, 아문일기추적여해(那些年,我們一起追的女孩)’를 보자. 우리말로는‘그 몇 년, 우리가 함께 쫓아 다녔던 여자애’ 정도 의미다. 제목이 드러내듯, 청소년기의 노스탤지어를 로맨스 요소와 함께 풀어낸 영화다. 대만의 인터넷 소설이 기반이 됐다. 이 정도 소재로 역대 중화권영화 흥행 1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주성치의‘쿵푸 허슬’기록을 경신했다.

퍼뜩 떠오르는 것이 있을 것이다. 2011년 한국의‘써니’열풍과 유사한 요소가 많다는 점이다. 소녀시절 노스탤지어를 소년시절 노스탤지어로 바꿔놓으면 곧바로‘나사년, 아문일기추적여해’가 된다. 세파에 지친 경제 불황기 대중의 과거회귀 욕구가 한국과 홍콩에서 동일하게 반영된 결과다.

과거회귀 욕구라는 측면에서 또 주목해야 할 영화가 바로‘아애향항개심만세(我愛香港開心萬歲)’다. 하세편 하면 바로 떠오르는‘가유희사(家有喜事)’시리즈 최신판‘최강희사(最強囍事)’를 누르고 하세편 1위를 차지한 영화다. 이 영화는 확실히 이전의 전형적인 하세편, 즉 무조건적 긍정주의 노선에서 크게 벗어나있다. 영화는 계속해서‘좋았던 1980년대’를 회상하며 지금의 홍콩이 그에 비해 얼마나 살기 팍팍하고 어려운지를 드러낸다.

그러면서 결론적인 영화의 핵심정서는, 그 주제곡 가사가 대변해준다.“홍콩은 당신에게 어떤 곳인가요? 1997년 홍콩의 중국 반환 이후에도 당신은 남았어요. 그리고 요즘에는 모두가 다시 돌아오고 있죠. 우리 모두 여기서 잘 지냈었기 때문이에요. 홍콩 사람들은 어려움을 함께 극복해왔어요. 우린 홍콩을 사랑해요.”결국 홍콩대중의 현 심리상태를 속이지 않고 정확히 드러내 성공한 경우로 볼 수 있다.

한편 2011년 흥행 4위를 차지한‘절청풍운 2(窃听风云 2)’는 주가조작을 다룬 스릴러영화다. 마찬가지로 경제 불황기 대중이 갖는 사회 불신 풍조가 반영된 콘텐트다. 한국에서도‘10억’등이 비슷한 소재를 취한 적이 있고,‘부당거래’가 같은 대중심리 하에서 대히트를 기록하기도 했다. 4000만 홍콩달러 이상을 벌어들인‘옥보단 3D’의 경우 중국관광객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은 경우로 볼 수 있다. 본래 홍콩에선 이런 식의 3급영화, 즉 미성년자 관람불가 에로영화들은 시장 바깥으로 밀려나기 일쑤였지만, 3급영화에 목마른 중국관객들 요구에 적절히 대처한 콘텐트였던 셈이다. 역시 시장 환경에 적응한 경우다.

할리우드영화와의 진정한 승부의 장은 2012년

2011년 한국영화시장과 유사한 사례는 홍콩만 있는 게 아니다. 2006년‘일본침몰’ ‘데스노트’ ‘리미트 오브 러브 우미자루’등 할리우드식 블록버스터들로 무려 21년 만에 시장점유율 50% 돌파에 성공한 일본, 1990년대 후반부터 뤽 베송과 파테사(社)를 중심으로‘택시’ ‘아스테릭스’ ‘크림슨 리버’등 무수한 할리우드 벤치마킹을 통해 시장을 재점령한 프랑스 등이 더 있다. 그러나 일본은 지난해 들어‘간츠’등이 다소 실망스런 흥행을 보이며 서서히 할리우드 벤치마킹 약발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고, 별의 별 유사 할리우드 콘텐츠가 난무하던 프랑스도 2008년 소품 코미디‘스틱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가 역대 흥행기록을 갈아 치우면서 시장분위기가 한 차례 큰 변화를 겪었다.

이런 식으로 세계영화계는 할리우드영화에 정복당한 1980~90년대->할리우드영화 벤치마킹으로 시장을 탈환한 1990년대 후반~21세기 초반->이후 일시적인 시장저하->대중심리 니즈를 치는 중급영화들로 시장재탈환 순서를 차례로 밟아나가고 있는 셈이다.

물론 올해는 2011년보다 상황이 좋진 않다. 2007년 당시 한창 뜨고 있던 한국영화산업 분위기를 일순간에 저하시킨 할리우드의‘속편전략’이 또 다시 재연될 전망이다. 지금 당장도‘미션 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이 시장을 초토화시키고 있는 상황이지만, 앞으로도‘다크 나이트 라이지즈’ ‘맨 인 블랙 3’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본 레거시’등 될성부른 속편들이 즐비해있다.

그러나 제대로 전략이 만들어지지 않았던 2007년 당시와 지금은 상황이 크게 다르다. 시장분위기에 적응해낸 상황과 갈피를 못 잡아 우왕좌왕하던 상황을 같이 놓고 보기란 어렵다. 그런 점에서 할리우드영화들과의 진정한 승부는 사실상 2012년 올해가 될 수도 있으리란 전망이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승부, 즉 보편적 니즈를 치는 할리우드와 특화된 니즈를 치는 한국의 전략이 서로 맞부딪히는 치열한 진검승부의 장(場)이 펼쳐질 수 있다.

소비자 중심 사고로 변모하는 한국영화시장

어쨌든 2011년 통계를 통해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론자들의 일관된 주장, 즉‘스크린쿼터 축소하면 한국영화는 할리우드영화로부터 보호받지 못해 망한다’는 주장은 물거품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2011년은 영화산업 역시 시장변화에 맞춰‘진화’할 수 있다는 점을 방증한 한 해였기 때문이다. 유통업 등 시장개방 상황에 적응해 오히려 더 큰 성공을 거둔 여타 산업 분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그리고 올해 2012년도 마찬가지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한국영화산업은 그 결과에 맞춰 또 다시 진화할 것이다. 지금까지 늘 그래왔듯 말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가장 큰 득을 보는 건, 보다 면밀하게 자신들 요구를 반영 받을 수 있는 대중 본인들이다. 대중이 반기든 말든 스크린쿼터용 졸속 영화들이나 줄기차게 만들어내던 시절과 크게 다른 부분이다. 시장은 점차 이런 식의 소비자 중심 사고로 변모하고 있다. 그리고 그 방향은, 분명 대중문화산업은 물론 여타 모든 산업 분야에 있어 순방향에 속한다. 모두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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