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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12월 22일 역적 이완용이 이재명 의사의 칼을 맞고 병원으로 실려가면서 한 말이 있다.

“나 아니었어도 역적은 나왔을 것이다.”

일본이 조선침탈을 위해 이완용 자신이 아니었더라도 얼마든지 다른 인물을 내세웠을 거라는 말이다. 이완용은 ‘나도 어쩔 수 없었다’는 시대상황의 불가피함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노무현의 역적질이 화제다. 그는 북방한계선(NLL)을 무력화시키고, 김정일의 의견에 동조하는 등, 서해해상경계선을 인정하여 사실상 우리 해역을 포기한 인물이다. 더 나아가 우리 주적 김정일을 존경해온 인물이기도 하다.

이번에 밝혀진 노무현의 역적질에 대한 논리적 근거는 크게 7가지로 분석된다.

1. <대통령으로서 보고받은 기밀문서를 적군 수괴에게 통째로 넘긴 노무현>

2. < 북괴 급변사태 대비계획 작계5029 저지를 보고하고 수괴에게 존경을 표한 노무현>

3. <수도권 주한미군 철수도 용의주도한 적화계획 실행으로 자랑하면서 보고? >

4. <적군 수괴 앞에서 동맹국의 대북금융제재 BDA 맹비난하는 노무현>

5. <적군수괴 앞에서 적군 대변인, 변호인 역할 자랑하는 노무현>

6. <미국을 맹비난하고 주적개념 삭제를 자랑하며 반미동맹 연대의식을 표현한 노무현>

7. <연방제 적화통일을 위한 쐐기발언을 하는 노무현>

이처럼 영토주권을 포기하고 주적을 존경한 노무현과 일본에 나라를 팔아넘긴 이완용은 누가 더 악랄한 역적일까?

이완용은 적어도 자발적인 역적은 아니다. 그도 처음엔 애국협회에서 활동하는 등 애국활동을 한 적이 있었다. 다만 처세에 능하여 변신을 거듭한 결과 매국노의 길을 걸었다고 한다.

그러나 노무현은 자발적인 역적이다. 아무도 그에게 미국을 저주하고 북한을 추종하라는 압박을 가하지 않았다. 그는 대통령이라는 최고의 권좌에 올랐으면서도, 헌법과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지키는 수호자의 길을 포기하고, 동맹국 미국을 자주하고 주적 김정일에게 NLL까지 헌납한 사람이다.

이러한 노무현을 이재명 의사(義士)께서 보셨다면 어떻게 하였을까?

1. 이재명 의사는 인력거꾼이 방해하는 것 같아 인력거꾼을 한 번 찌르고는 이완용을 3번 찔렀다. 그런데 한 번 찔린 인력거꾼은 그 자리에서 즉사했지만, 3번 찔린 이완용은 병원으로 후송 후 살아남았다.

2. 노무현을 본 이재명 의사는 최소한 5번 이상은 찌르고자 하였을 것이다. 지금쯤 이재명 의사(義士)의 넋이 있다면, 부엉이 바위에서 칼을 들고 너털웃음을 터뜨리고 있을 것이다. 노무현은 영혼마저 쫓기고 있을 거라 필자(筆者)는 확신한다.

이러한 노무현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이완용은 만고역적으로 통한다. 그 자손들도 낯을 들지 못하고 이완용의 후손임을 감추고 살고 있다.

노무현도 만고역적으로 역사에 새겨야 한다. 그 자손과 추종자들도 노무현이 대통령이었음을 수치로 여기고 살아야 한다.

전두환과 비교하면?

전두환은 독재자라지만 그래도 북한을 효과적으로 방어한 인물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정책을 이어 대한민국 경제를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 그럼에도 백담사 귀양살이와 감옥 생활, 대통령으로서 모든 예우를 박탈 당하엿다.

노무현은 민주를 외치면서 나라 주권을 북한 김정일 밑에 놓은 사람이다. 또한 경제마저 위태롭게 만든 사람이다. 결국 대한민국 영토와 국격(國格)까지 포기하였으니, 모든 기록물에 치욕을 새겨 넣고, 권양숙과 그 가족들에게 주는 예우는 반드시 박탈해야 한다.

만약 이 사건이 기사화 된다면?

이완용 <1909년 12월 23일, 대한매일신보 기사 중>

총리대신 이완용씨는 어제(작일) 오전 11시, 종현 천주교당에서 설행한 비국 황태자 폐하 추도식에 참례하였다가 돌아오는 길에 전후좌우로 엄밀히 보호하고 교당 문 밖에서 일곱 여덟 시간 동안 되는 데 이르러서는 단발한 사람 한 명이 돌출하여 여덟 치 남짓한 한국 칼로 인력거 끄는 차부부터 질러 꺼꾸러뜨리고 몸을 소스쳐 차위에 앉은 이완용씨의 허리를 찌르매 이씨가 달아나려 하거늘 이씨의 등을 찔러서 세 군데가 중상하였는데 그 자객은 평양 사람 이재명이라 즉시 포박되었다더라.

노무현 <2013.6.25, 저승매일신보 기사 중>

전(前) 대한민국 대통령 노무현씨는 어제(작일) 오전 11시, 종현 천주교당에서 설행한 북한국 황태자 폐하 김정일 추도식에 참례하였다가 돌아오는 길에 전후좌우로 엄밀히 보호하고 교당 문 밖에서 일곱 여덟 시간 동안 되는 데 이르러서는 단발한 사람 한 명이 돌출하여 여덟 치 남짓한 한국 칼로 인력거 끄는 차부부터 질러 꺼꾸러뜨리고 몸을 소스쳐 차위에 앉은 노무현씨의 허리를 찌르매 노씨가 달아나려 하거늘 이씨의 등을 찔러서 세 군데가 중상하고, 노씨는 한달음에 천리를 도망치다가 떨어졌는데 그 도망치다 떨어진 자리가 고향마을 앞 부엉이 바위더라. 그 자객은 평양 사람 이재명으로 1909년 역적 이완용을 찌른 그 분이라 하니, 영혼마저 분에 못 이겨 치를 떨었다 하더라.

노무현은 아마도 순국선열들의 꾸짖음 속에서 귀신마저 온전치 못하고 있을 것이다. 이승에서는 노무현을 영웅으로 만들어 그 밑에 피신하고자 하는 친노세력들이 혼백마저 놓아주지 않고 있는데, 저승이라고 그 영혼이 온전할 것인가.

과거 가장 치욕스러운 욕은 ‘이완용 같은 X’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가장 치욕스러운 욕은 ‘노무현 같은 X’이 아닐 것인가?

필자(筆者)는 여기에 60세 고령으로 사이토 총리에게 폭탄을 던지고 순국하신 의사(義士) 강우규 선생께서 절명(絶命) 직전 감옥에서 남기신 유언시를 싣는다. 역적 노무현과 그 일당은 이 시를 읽고, 일말의 양심이 있다면 대한민국에서 낯을 들고 다니지 말 것을 주문한다.

단두대 위에 서니 오히려 봄바람이 이는구나.

몸은 있으되 나라가 없으니 어찌 감상이 없겠는가

(斷頭臺上 猶在春風 有身無國 豈無感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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