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3일, 새누리당 이혜훈 최고위원은 “한의학은 우리나라의 전통의료이기 때문에 주인노릇을 해야 한다”며 “건강보험 재정에서 한의계가 차지하는 비율이 낮은 것은 주객이 전도된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과학중심의학연구원은 국민건강과 직결된 의료·과학의 문제를 정치적·문화적 문제로 왜곡시키는 이혜훈 최고위원의 발언에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의학과 한의학 간 관계는 양복과 한복, 일식과 한식 같은 취향 차원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의료는 질병이라는 적을 상대로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켜내는 전쟁이다. 그리고 전쟁에선 항상 취할 수 있는 최고의 첨단무기로 대응해야만 한다. 우리민족 전통의 우수성 따위를 입증하기 위해 박물관에나 있어야할 조상들 무기를 집어 들고 전장에 나선다면 결과는 늘 필패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국민건강과 생명을 건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어떤 방법이 가장 효과적인지 우열을 가린 뒤 가장 뛰어난 방법을 사용해야지, 명백히 뒤처지는 방법을 놓고도 단지 전통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보존하고 배려해야 한다는 입장이라면, 바로 그것이야말로 이혜훈 최고위원이 말한 “주객이 전도된” 발상이 된다.

물론 우열이 쉽게 드러나는 군사무기와는 달리 의술은 어떤 방법이 가장 효과적인지 쉽게 드러나진 않는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수 세기에 걸쳐 정교하게 효과를 비교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냈다. 그 방법을 기반으로 전 세계 학자들이 지혜를 모아 효과가 떨어지는 방법을 도태시키고, 더 나은 치료법들을 발전시켜 맺은 열매가 오늘날의 현대의학이다.

거기다 한의학은 흔히 인식되는 바와 달리 우리민족 고유의 의학조차 아니다. 한의학이라는 명칭은 본래 우리나라를 뜻하는 ‘韓’의학이 아니라 중국 한나라를 뜻하는 ‘漢’의학이었다. 이렇게 중국 한나라 때 형성된 의학을 지칭하던 한의학은 1986년 대한한의사협회의 요청으로 漢을 韓으로 바꾸게 됐다. 즉, 중국전통의학이 1986년에 이르러 갑자기 한국전통의학으로 탈바꿈한 셈이다.

실제로 서양에서 연구하고 실시되는 거의 대부분 한의학은 한국전통의학이 아닌 중국전통의학(traditional Chinese medicine)이다. 이를 한(韓)의학으로 부르다보니 마치 우리 고유 전통이 조명 받고 있다는 잘못된 인식이 퍼졌다. 게다가 서양에서도 중국전통의학은 현대의학과 동일선상에서 대우받는 것이 아니라, 요가, 태극권, 명상, 마사지 등과 함께 보조적인 요법 수준에서만 다뤄지고 있다.

인체와 질병에 국경이 없듯이 의학에도 국경이 있을 수 없다.

한의학, 즉 중국전통의학이 현대의학에 편입되지 못한 것은 단순히 그럴만한 가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현대의학에서 도태된 한의학을 우리 조상의 것이라는 이유만으로 의료현장에 배려해서는 안 된다. 한국에서 태어난 죄로 승산 없는 전통무기를 들고 전장에 나가서야 되겠는가?

덧붙여, 한의학은 이제 의료현장이 아닌 전통박물관과 한국민속촌으로 자리를 옮겨야 할 방법론이다. 그리고 국민건강 및 생명과 관련해 대한민국 정치인에 주어진 과제는, 진단능력도 치료효과도 없는 한의학을 배려하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그에 몸을 맡기다 피해를 입는 국민이 없도록 계도하는 일일 것이다.


2014년 3월 24일

과학중심의학연구원 이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