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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희 ‘기적의 재테크’(?)...평창동 저택 구입 관련 불어나는 의혹

집 내놓고 미국연수...1999년 귀국 4년만에 평창동 호화저택 주인 된 손석희

손석희 씨가 ‘한국판 베버리힐즈’로 불리는 평창동의 저택을 구입한 시기가 MBC 평사원 시절 자비를 써가면서 미국연수를 마치고 돌아온 지 고작 4년만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인터넷 상에선 손 씨의 재산형성과정에 대한 의구심이 증폭되고 있다.

당시 손 씨가 목동아파트를 기본자산으로 아나운서 + 겸임교수 연봉을 100% 저축했다고 가정해도, 공영방송사 평사원의 연봉만으로 해외 자비 연수 후 4년만에 15~20억원으로 추정되는 평창동 82평 호화저택을 산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실제 본지의 기사가 나간 이후, 인터넷에선 손 씨의 평창동 저택을 두고 ‘기적의 재테크’라는 비아냥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미국 연수도 전셋돈으로 갔다” 경제적 어려움 강조했던 손석희

손씨는 유명한 수필 ‘지각인생’에서 1997년 봄 미국 미네소타대학으로 연수를 떠날 당시를 회고하면서 “직장생활 십수년 하면서 마련해 두었던 알량한 집 한채 전세 주고, 그 돈으로 떠나는 막무가내식 자비 연수였다”고 썼다. 한 마디로 자신은 ‘연수도 전세낸 돈으로 갈 정도로 형편이 넉넉치 않았다’는 것이다. 

미국 생활에 대한 묘사도 ‘가난한 만학도’라는 이미지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었다. 손씨는 “미네소타 대학의 퀴퀴하고 어두컴컴한 연구실 구석에 처박혀 낮에는 식은 도시락 까먹고, 저녁에는 근처에서 사온 햄버거를 꾸역거리며 먹을 때마다 나는 서울에 있는 내 연배들을 생각하면서 다 늦게 무엇 하는 짓인가 하는 후회도 했다“고 썼었다. 누구라도 위 문장을 읽으면 고된 학업과 넉넉치 않은 호주머니 사정으로 인해 저녁식사조차 햄버거로 때우는 만학도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어쨌든 자신이 쓴 글대로 1997년 봄 출국한 손씨는 1998년 미네소타대학에서 석사과정 1년 동안의 수업연한(2개 학기)을 마치고 1999년 초에 귀국했다. 추후 연구진실성검증센터에 의해 표절논문으로 판정난 석사학위 논문은 귀국 이듬해인 2000년 5월에 국내에서 완성해 제출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 손 씨가 평창동에 대지 130평, 연면적 82평 2층+지하실 단독주택을 부인 명의로 구입한 것은 2003년 7월 28일. 귀국 4년 만이다. 이를 액면 그대로 풀이하면, 집을 전세 내 마련한 돈으로 미국 연수을 떠날 정도로 경제사정이 넉넉치 않았던 공영방송 아나운서가 귀국 4년만에 당시 시세 15~20억원으로 추정되는 평창동 호화저택을 구입했다는 얘기다. 


MBC 평사원이 귀국 4년만에 평창동 호화저택을 샀다?

상식적으로 손석희 씨의 당시 부동산 자산과 연봉만으로는 귀국 4년만에 20억원을 마련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손석희 씨가 2003년 평창동 주택 매입 직전까지 살던 집은 목동 9단지 아파트였다. 손씨 부부가 소유한 집이 한 채라는 전제에서다. 평창동 현 주택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명의자인 부인 신현숙 씨의 주소지는 서울 양천구 목동 901단지 신시가지아파트로 나와있다. 

손씨 부부가 이 집을 처분했다면 최대 4억원 가량을 마련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2003년 5월 경 목동9단지 매매가는 27평형 3억6000만∼3억7000만원에 시세가 형성돼 있었다. 

MBC 평사원이었던 손석희 씨의 연봉도 최대 1억을 넘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중 절반을 저축했다고 해도 5년만에 모을 수 있는 돈은 2억5천만원에 불과하다. 

손씨가 귀국한 1999년부터 2003년까지 MBC에서의 직책은 ▶아나운서국 아나운서1팀 차장(1999.4) ▶아나운서국 아나운서1부 부장대우(2002.3)까지 였다. 당시 손석희 씨는 '100분토론‘을 비롯해 진행하던 프로그램은 4~5개에 달했지만, 프리랜서 선언을 하지 않은 공영방송사 아나운서는 몇 개의 프로그램을 진행하든 직책에 따른 연봉만을 받는 것이 원칙이다. 

MBC 관계자는 “부장대우라는 직책을 고려해도 2003년 당시 손석희 씨의 세전 연봉은 8000만원 가량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1억원은 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손석희 씨는 당시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2000.8~2002)로 잠시 재직 했었다. 하지만 사립대학이라는 점을 고려해도 겸임교수 수입은 재산형성 과정에 크게 기여했다고 보기 어렵다. 한 사립대학 관계자는 “어느대학이나 겸임교수는 비정규 교원이기 때문에 수업 시수에 따라 시간당 7만원 가량의 돈을 받는다”며 “일반적으로 월 80만원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고 전했다. 

결국 부동산과 아나운서 연봉, 겸임교수 수입으로 추정해 볼 수 있는 손석희 씨의 2003년 당시 재산은 최대 6억~7억원에 불과한 셈이다. 


남는 경우의 수는 대출·상속·스폰서...의혹 밝혀야

이와 관련 한 부동산 전문가는 “평창동 주택이 아니라 부동산 투기 지역의 일반아파트였다고 한다면, 구입한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서 그걸로 구입 자금을 마련하는 방법도 가능하긴 하다”면서도 “하지만 ‘평창동’이란 지역은 투기지역과는 거리가 먼 대한민국 최상류층 거주 지역이라 그런 식으로 집을 구입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결국 손석희 씨가 한국판 베버리힐즈에 82평짜리 저택을 구입할 수 있으려면, 거액의 유산을 상속 받았거나, 이른바 ‘스폰서’로부터 지원을 받았을 가능성이 남는다. 

그러자 일각에선 손석희 씨의 집안이 애초 가난한 집안이 않았을 것이란 추측을 내놓기도 한다. 한 제보자는 “손석희 씨는 아버지가 중간에 사업 말아먹고 감옥 가면서 집이 기울었다고 했는데, 손석희 누나는 대학에 가서 교수까지 하고 손석희 본인도 대학에 가기 위해 재수(再修)를 했다”고 지적하면서 “그 시절에는 가난 때문에 아들도 대학에 못 보낸 집이 허다했는데, 딸 대학 보내고 아들은 재수까지 시킨 집이 ‘흙수저’였을리가 없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스폰서 가능성까지 조심스럽게 제기한다. 한 언론인은 “손석희 연배 언론인 중에는 스폰서에게 받은 집에서 사는 사람들이 없지 않았다”면서 “당시 ‘MBC 100분토론’을 진행하던 손석희 씨의 대중적 인기를 감안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이런 주장들은 현재까지는 모두 추측으로, 관련 직접증거가 없이 뭐라 단정을 하기는 어렵다.

결국, 불어나는 의혹을 잠재우는 가장 빠른 길은 손석희 씨가 직접 평창동 저택 구매 과정을 투명하게 밝히는 길이다. 

손 씨의 명확한 해명이 없이는 ‘손석희 손목시계’, ‘손석희 만원버스’, ‘손석희 단벌신사’ 등으로 포장된 서민적이미지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평창동 저택에 대한 의혹 제기는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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