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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산케이, “위안부 관련 한국의 역사왜곡 문제, 배후에 북한 있다는 의심”

한겨레신문은 위안부 법정 본인 진술서조차 왜곡 ... “‘팩트’로 반박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거짓 역사의 창작은 계속된다”

올해 4월, 일본의 반공우파 매체 산케이신문은 위안부 문제로 한국의 언론, 시민사회 등이 “거짓역사”를 만들어내고 이 문제를 조성하는 배후에는 북한이 있음도 지적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산케이신문의 기사는 ‘[역사 전쟁 · 제 17 부 새로운 거짓말 (하)] 왜곡된 "불편한 진실" 위안부 권유, 조선인에서 일본인으로…"지킴이"에는 북한의 그림자도(【歴史戦・第17部新たな嘘(下)】 改変された「不都合な事実」 慰安婦勧誘、朝鮮人から日本人に… 「守り人」には北朝鮮の影も)’라는 제목으로 2017년 4월 13일자로 게재된 것이다. 이 기사는 앞서 징용노동 문제와 관련 한국의 역사왜곡 문제를 지적하는 한국인 이우연 박사의 논문을 소개한데 이은 연속 기획 기사 중 세번째 기사다.




나치의 유태인 혐오를 방불케하는 일본인 혐오 신문인 한겨레신문의 곡필

산케이는 먼저 기사 서두에서 4월 4일 한국에 사는 위안부 중 최고령 여성이 노환으로 서울 시내의 모병원에서 타계했다. 이순덕(李順徳). 98세였다“면서 이순덕 씨의 부고부터 알렸다. 

산케이에 따르면, “이순덕 씨는 입원하기 전까지 반일 단체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 최근에 정의기억연대로 개칭하였음)’가 운영하는 서울 시내의 시설에서 다른 위안부 여성들과 공동생활을 했다”고 한다.

이순덕 씨에 대해서 산케이가 특히 주목한 이유는 무엇인가. 산케이는 일단 그녀에 대해서 “지금부터 25년 전 일본 정부에 사과와 손해 배상을 요구하며 야마구치(山口) 지방법원 시모노세키(下関) 지부에 위안부들이 소송을 걸었는데 이순덕 씨는 이에 동참한 한명이었다”고 소개했다.

산케이는 당시 재판에서 이순덕 씨가 제출한 진술서에 주목했다. 산케이는 “이 재판은 2003년 대법원이 상고를 기각하여 원고 측 패소가 확정됐지만, 1998년의 1심 판결을 살펴보면 이 씨의 경력에 대하여 본인의 소송문을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사실을 파악할 수 있다”고 전했다. 산케이가 인용한 이순덕 씨의 소송문 내용은 무엇인가.

“1937년 봄, 만 17, 18살 때, 저녁을 준비하기 위해서 밭두렁 길에서 쑥을 뜯고 있던 중 40세 정도의 조선인의 남자가 『 나를 따라 오면 신발도 주고 옷도 주겠다.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식당에 데려가 주겠다』라고 말을 걸었다. 집이 가난하여 신을 만한 신발도 없었고, 근근이 허기를 면하는 생활을 하였기에 유혹에 응하여 따라가기로 결정했다”

“『 부모에게 인사하고 가고 싶다』고 간청했음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 시간이 없으니 서둘러야 한다』며 손에 끌어갔다. 할 수 없이 울면서 이끌려갔다. 남자의 앞으로 걸어가게 하여, 약 1시간 후에 어느 여관에 당도하였다. 방은 밖에서 열쇠를 걸어 잠궜고, 비슷한 나이의 여자애들이 14, 15명 정도 있었고, 나를 어디로 무엇 때문에 데려 가는지 몰라서 울었다. 다음날 일본군 군인 3명이, 열차에 태우고 3일 걸려 상하이역에 도착했다” (판결문의 표현을 기본으로 일부 요약) 

한마디로, 이순덕 씨는 일본인이나 일본군에 의해 납치된 것이 아니었다. 법원에 제출한 본인의 진술서에 따르면 이순덕 씨는 가난 등의 배경 속에서 낯선 조선인 남자, 곧 인신매매 중개업자에 의해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일본 신문 산케이는 이순덕 씨의 부고를 전한 한국 신문 한겨레의 왜곡보도를 번역으로 확인한 후 경악할 수 밖에 없었다고 전한다.


“17세 때 『 쌀밥에, 좋은 옷도 입을 수 있다는 일본인의 말에 속아 』 일본군에 끌려가...”(4월 5일 한겨레 전자판) “ - 산케이신문 번역


위안부 본인의 재판부 제출 진술 내용조차 완전히 뒤집어놓은 한겨레신문의 명백한 곡필이었던 것이다. 일본인에 대한 인종주의적 증오를 유도하는, 가히 나치 시대의 독일 언론에서 볼법한  왜곡이 아닐 수 없다.



'전쟁과 여성 인권 박물관', 일본의 성의나 사죄는 일체 평가하지 않아


산케이는 이어서 정대협이 운영하고 있는 '전쟁과 여성 인권 박물관'의 문제에 대해서도 짚었다.


산케이는 “정대협은 2015년 12월, 위안부 문제에 관한 한일협정에 대해서 '굴욕적인 합의'(상임대표인 윤미향의 입장)라고 반대하고 있다”며 “한일합의의 시점에서 생존자 46명의 위안부 중, 일본 정부가 출연한 10억 엔을 기초로 한 현금지급을 34명이 받아들였는데도  '전쟁과 여성 인권 박물관'에는 이에 대해서 한마디도 소개되어 있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산케이는 윤미향 씨의 문제점을 계속 짚었다. 산케이는 “윤미향 씨는 정대협의 회보에서, 일본 정부가 한국과의 약속을 이행한 사실은 언급하지 않고,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의 올바른 해결을 통해서, 피해자의 명예와 인권을 회복시킨다’며 호소하고 있다”며 윤 씨의 편향된 인식을 꼬집었다.

산케이는 '전쟁과 여성 인권 박물관' 매점에서 팔리는 일본어 책자 ‘‘평화의 소녀상’은 왜 앉아 있는가(‘平和の少女像’はなぜ座り続けるのか)’의 내용 중에, 일본 주오(中央)대 교수, 요시미 요시아키(吉見義明)의 발언을 인용한 것도 있음을 꼬집었다.

“‘소녀상’이라고 하는 것은 재발방지를 위해서 만들어진 기념비입니다. 그것을 가해자 측이 철거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사실, 요시미 요시아키는 한국에서는 양심적 지식인으로 평가받지만 일본에서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왜곡 저술로 악명이 높은 인사 중 하나다.  요시미 요시아키는 자신의 위안부 관련 저작을 날조라고 지적한 이와 소송전까지 갔지만 결국 패소했던 전력도 있다.


(관련기사 : 위안부 연구 선구자 日 요시미 교수, 명예훼손 소송 1심 패소(종합))


일본 총영사관 앞에 설치된 위안부 동상, ‘지킴이’의 배후는 과연 누구인가


산케이는 이어서 부산의 일본 총영사관 앞에 설치된 위안부 동상 문제에 대해서도 다뤘다.


산케이는 “위안부 동상 앞에는 ‘지킴이’로 불리는 젊은 학생들이 있어서 청소 등을 하고 있었다”며 “활동에 대해 잘 아는 한국의 관계자에 따르면 학생들은 정기모임을 열고 위안부문제 등에 관한 ‘교육’을 받고 있다고 했다”고 전했다.

 

산케이는 곧이어 그 ‘교육’이 어떤 교육인지를 3·1독립운동기념일 당시 집회에서 발표된 성명 내용을 확인한 한국의 관계자를 통해 알게됐다고 한다. 산케이는 “총영사관 인근 공원에는 학생들 약 1,000명이 모여 한일 합의 파기와 함께 한일 안보 분야의 정보 공유를 가능하게 하는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GSOMIA)폐기, 남북통일을 호소했다”며 모두 한일 이간을 노리는 북한의 의도에 따른 주장이다”라고 보도했다.


산케이는 전 한국 정부 당국자의 증언도 소개하며 위안부 운동과 관련 북한 개입 의혹을 뒷받침 했다. 이 전 당국자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남북교류 명목아래 친북 비정부조직(NGO)등에게 돈이 흘러들어가게 됐다”면서 “북한의 그림자가 비치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이명박·박근혜 두 정권도 그 흐름을 막지 못했다”고 위기감을 표현했다.

“‘팩트’로 반박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거짓 역사의 창작은 계속된다”

산케이는 마지막으로 한국 고등학교에서도 번지고 있는 위안부 동상 건립 움직임도 조명했다.

산케이는 “서울 이화여고의 역사 동아리가 지난해 한일합의에 대한 항의를 담아 작은 위안부 동상의 설치를 타교에게 제안했다”며 “이에 호응한 각지 고등학교의 학생회가 모금을 하는 등, 위안부 동상이 속속 세워지고 있는 실정이다. 100개 고교 설치가 당면 목표다”고 전했다. 

산케이는 “위안부 동상이 설치된 고등학교는 1월 시점에서 적어도 30곳을 넘어 이달 4일에도 한국 북서부 인천 신송고교에서 높이 40㎝의 위안부 동상이 공개되었다”며 “한국 신문 한겨레에 따르면 신송고교에서는, 학생들이 3월에 설치를 결정하고 모금을 시작했는데, 2일 만에 목표액 55만원을 달성했다. 앞으로 추가로 모금되는 돈은 정대협에 기부할 것이라고 한다”며 여기에도 정대협의 이름이 등장하고 있음을 짚었다.

산케이는 “한국 국정 역사 교과서에도 위안부에 관하여 ‘패전에 의해 도망하는 일본군에 의해 위안부가 집단 살해되기도 했다’라는 근거 없는 기술이 등장했다”며 “‘팩트’로 반박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거짓 역사의 창작은 계속된다”고 우려를 표명하며 기사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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