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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칸하나다] 반일 편향 미디어가 사랑하는 ‘표현의 자유’

“아이치 트리엔날레 ‘표현의 부자유전’ 전시물은 ‘표현의 자유’를 인질로 한, 일본과 일본인에 대한 혐오 표현”



※ 본 칼럼은, 일본의 유력 시사잡지 ‘게칸하나다(月刊Hanada)’의 인터넷판인 ‘하나다프러스(Hanadaプラス)’에 2019년 11월 27일자로 게재된 ‘반일 편향 미디어가 사랑하는 ‘표현의 자유’(偏向メディアが愛する「表現の自由」)’를 ‘게칸하나다’ 측의 허락을 얻어 완역게재한 것이다. (번역 : 황호민)



 

[필자소개] 필자인 야마오카 테슈(山岡鉄秀)는 정보전략분석가이자 Australia-Japan Community Network(AJCN) Inc. 대표이며 공익 재단법인 모라로지(モラロジー) 연구소 연구원이다. 1965년 도쿄 출생. 일본 주오(中央) 대학교 졸업 후, 호주 시드니 대학 대학원, 뉴사우스웨일즈 대학 대학원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2014년 호주 스트라스필드(ストラスフィールド, Strathfield) 시에서, 중국계와 한국계의 반일 단체가 추진하는 위안부 동상 설치 계획과 조우했었다. 이에 아이가 있는 어머니들과 함께 현지 일본계를 이끌고 AJCN를 결성했다. “지역 사회의 평화와 화합의 중요성”을 호소하고 비일본계 주민의 지지도 얻어, 압도적 열세를 만회했다. 결국 2015년 8월, 스트라스필드 시에서의 “위안부 동상 설치” 저지에 성공했다. 저서에 유엔의 사기와 아사히 신문 등 영어 선전전의 함정(陥穽)을 추궁한 ‘일본, 이제는 사과 하지마!(日本よ、もう謝るな!)’(아스카신샤(飛鳥新社))가 있다.    



일본과 일본인에 대한 증오(日本国と日本人へのヘイト)

비난이 쇄도했던 ‘아이치 트리엔날레(あいちトリエンナーレ)’와 ‘히로시마 트리엔날레(ひろしまトリエンナーレ)’의 프리(プレ, Pre) 사업. 

그리고 멀리 오스트리아에서 진행되고 있는 일본-오스트리아 우호 150주년 기념 전시 사업인 ‘재팬 언리미티드(Japan Unlimited)’.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거기서 전시된 여러 작품들이 ‘표현의 자유’를 인질로 한 일본과 일본인에 대한 혐오 표현이라고 느꼈다.

쇼와 천황의 사진을 버너로 불태우고 재를 짓밟는 영상 등, 그것은 증오에 뿌리내린 폭력에 불과하며 눈꼽만치의 예술성도 찾을 수가 없다. 한편, 실행위원회와 작가들, 그리고 그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표현의 자유가 위협받고 있다”는 주장을 계속했다.

그들은 비록 사람들을 불쾌하게 하거나 상처를 줄 수 있는 작품이고 하더라도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보호받고 존중받아야 한다고 강변했다.

또, 언론은 오직 위안부 동상 문제만을 다루면서, 정말로 사람들을 격분시켰던 천황 폐하에 대한 모독 문제는 다루려고 하지 않았던 것 뿐 만이 아니라, 극히 일부의 위협적인 항의만을 일부러 강조하면서 마치 언론의 자유가 폭력적인 압박에 노출되어 있는 것과 같은 인상조작을 반복했다.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문제가 아니다( 「表現の自由」を巡る問題ではない)

그러나 이번 문제는 결코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문제가 아니다. 무엇이 예술로 인정되고 인정이 안 되는가에 관한 논의도 아니다. 

이 문제는 실은 정부가 공인하거나 공적 지원을 결정할 때 인정 기준에 따라 제대로 심사를 했는가에 관한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즉, ‘듀 데리젠스(Due diligence, 이하 ‘듀데리’로 표현. 위험 회피를 위해서 가이드라인이 지켜지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을 말한다)의 문제인 것이다. 그것을 잘못 해석하고서 표현의 자유 등의 논의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아이다 마코토(会田誠)라는 작가는 도쿄예술대학(東京藝術大学)을 졸업한 사람으로서, 물론 뛰어난 기량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로서는 아이다 씨의 작품이 예술로 여겨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솔직히 보면 정말 기분이 나빠진다. 그의 작품이 정치적으로 편향이 있다기보다는, 어두운 성적도착이 있다고 느껴지고 그래서 무심코 눈을 피하게 된다.

아이다 씨도 다른 사람을 불쾌하게 만드는 것을 무릅쓰고 제작한다고 말했다. 거대한 바퀴벌레와 인간 여성의 성교를 찍은 사진을 비롯해, 이건 어떻게 말로 설명할 생각조차 못하겠다.

2008년, 비행운으로 히로시마 상공에 ‘피카(ピカッ)’ 문자를 그려 화제가 된 아티스트 집단인 ‘침폼(Chim↑Pom)’도 필자의 감성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하겠다.

그들이 ‘표현의 부자유전’과 ‘재팬 언리미티드(Japan Unlimited)’에 출품된 ‘기합 100 연발(気合い100連発, 지진 후 잔해 속에서 피해를 입은 젊은이들과 원진(円陣)을 짜고, 애드립으로 외치기를 하는 비디오 작품. 작품 마지막에 “피폭 최고” “방사능이 나오고 있어” “좀 더 쐬고 싶어요”라고 외치다가 비판을 받았다)’이라는 작품은, 후쿠시마를 비롯한 피해 지역을 모독하고 있다는 비난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예술인지 여부를 따지는 것은 척박한 논의(芸術か否かは不毛な議論)

애시당초, 부적절하다고 간주되지 않았다면 표현의 부자유전에 포함됐을 리도 없다.

그 외 그들의 작품을 검색해봤지만, 여성 멤버가 분홍색 구토물을 계속 토하는 영상이나, 미즈노라는 한 남성 멤버가 방범 카메라가 있는 방에서 21일간 야생 까마귀, 쥐와 생활하고서, 10일 후에는 죽은 까마귀를 먹고, 박제로 만들어 조문했다는 기록 등, 여기에 쓰고 있는 것만으로도 구역질이 난다.

이 작품들을 예술로 간주하는 것은, 나는 못한다. 그러나 “무슨 소리를 하는가, 훌륭한 예술의 한 분야다, 상도 받았다! 네가 그 가치를 모르는 것 뿐이다!”고 반박하는 사람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본 사안에서 무엇이 예술인지 여부, 그 논의를 하는 것은 척박하다.

규칙을 지키는 것이 기본!( ルールを守るのが基本!)

이 문제는 앞서 언급했듯이 어디까지나 듀데리의 문제인 것이다. 정부가 공인하거나, 자금을 지원하는 경우에는 대상이 예술이든 무엇이든 반드시 선발 기준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매번, 대상이 선발 기준에 부합하고 있는지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으면 안된다.

일반 국민들로부터 비판이 분출하고 결국 일본 정부가 공인을 취소했던 ‘재팬 언리미티드(Japan Unlimited)’에 관해서는 오스트리아 주재 일본 대사관 홈페이지에 이렇게 적혀 있다.

4 승인 요건

주년사업(周年事業)의 대상이 되는 사업은 다음과 같습니다.

⑴ 오스트리아 국내에서 개최되는 것. 일본에서 개최되는 사업의 신청처는 재일 오스트리아 대사관.

⑵ 개최시기가 2019년인 것. 2018년 하순과 2020년 상순에 개최되는 것에 대해서는, 예외로 대상이 될 수 있음.

⑶ 문화, 인적 교류, 스포츠, 교육, 관광, 정치, 경제, 과학 등의 분야에서, 일본을 소개하는 것, 또는, 일본·오스트리아 양국의 상호 이해를 깊이 하고, 우호를 촉진하는 것.

⑷ 주최자가 사업의 일체 책임을 지는 것.

⑸ 다음에 해당하지 않는 것. 공서양속(公序良俗)에 반하거나, 또는, 오스트리아의 법률을 위반하는 사업. 일본과 오스트리아의 우호 관계를 해치는 사업. 영리를 목적으로 한 사업 또는 공익성이 부족한 사업. 특정의 주의·주장 또는 종교의 보급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무관용?(表現の自由を巡る不寛容?)

“공서양속(公序良俗)에 반하지 않는다” “특정의 주의·주장을 목적으로 하면 안된다” 등, 공적 사업이라면 지극히 당연한 승인 요건이다. 재팬 언리미티드(Japan Unlimited)’의 출품 작품은 완전히 이에 저촉하는 것이다.

그러나 외무성은 개별 작품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서 전체적으로 “일본·오스트리아 우호에 관련성이 없다”는 이유로 공인을 취소했다.

이에 대해서 ‘도쿄신문(東京新聞)’은 바로 11월 6일 석간에서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편협이 국외까지 파급한 셈(表現の自由を巡る不寛容が国外に波及した格好)”이라고 보도했다. 

관용도, 편협도 아니다. 표현의 자유와도 관계가 없다. 아이다 씨와 침폼의 출전을 방해하는 것도 아니다. 사업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에 공인(公認)을 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을 뿐이다.

아이다 씨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불만이 있다면 이 전시 기획을 한 이탈리아인 큐레이터에 말하라고 주장했지만 그것도 다른 이야기이다.

그 이탈리아인이 어떤 사상을 가지고, 어떤 기획을 하고, 그것이 우리의 눈에 아무리 불쾌하게 보여도 그것은 그야말로 사상 신조의 자유다. 문제는 그것이 아니다.




왜곡된 '표현의 자유'(曲解された「表現の自由」)

여기서 중요한 것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편협이 아니라 오스트리아 주재 일본 대사관이 사전에 ‘듀데리’를 게을리 했었다는 것이다. 물론, 사전에 취지 설명을 포함한 주최자의 신청이 이루어져서 작가의 목록도 전달되었을 것이다.

이 시점에서 “관련성이 낮기 때문에 승인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려야 했던 것이다.

11월 7일 일본 ‘허프포스트(Huffpost)’의 보도에 따르면, 오스트리아 주재 일본 대사관은 9월 개막식에 참가했다고 한다. 그 당시부터 대응하지 않았던 것은 무사안일이라고 비판을 받아도 변명 할 것이 없다.

이것은, NEC와 ANA 등 일본 기업에도 적용된다. 자신들이 공인하거나 후원하는 사업에 어떤 작품이 출전되는지를 정밀하게 조사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물며, 일본 정부와 자치체 등의 공적 기관이라면 더욱 그렇다. 로고를 빌려주는 것뿐이니까 적당히 하면 된다는 것은 결코 용납되지 않는다.

자신들이 설정한 승인 요건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되며 예술 작품이라고 칭하는 것에 이러쿵 저러쿵 말하고 검열 취급을 당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해서도 승인 요건은 누가 봐도 공정해야 한다.

그리고 일단 요건을 결정하면, 엄격히 이행하지 않으면 안된다. 원리 원칙을 소중히 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요령을 피우지 않은 것. 이것이 이 문제의 요점이며 내가 듀데리의 문제라고 단언하는 까닭이다.

아이다 씨에게도, 침폼에게도 표현의 자유는 있다. 그러나, 그것을 공인하는 것, 재정적 지원을 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그것을 혼동해서는 안된다.

그렇다 치더라도 매우 도발적이고 공격적인 작품을 전시하고 많은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들고서는 비판을 하면 ‘표현의 자유의 억압’이라고 떠드는 것은 비겁한 수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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