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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조오련의 아들 조성모 "대한해협 프로젝트 재추진할 것"

해남 송호해변서에서 굵은 팔뚝을 보여주고, 대한해협 프로젝트 제안하며 “이제 좋아졌다”


1952년 해남읍 학동에서 태어난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

중학교 1학년때 부모님의 심부름으로 가게된 제주도에서 우연히 목격한 수영대회를 지켜보면서 저 정도는 내가 더 잘한다고 생각하며 그때부터 수영에 대한 꿈을 키우게 되는 조오련.

결국 고1때 수영선수가 되겠다며 무작정 가출, 그리고 서울 생활.

1년을 막노동하던 그에게 주어진 기회는 전국수영대회였다.
그 나이에 일반부로 출전하여 각 종목에서 우승하며 혜성처럼 나타난 무명선수 조오련, 수영계는 깜짝 놀라게 되고...

1970년 양정고 2학년때 제6회 테헤란 아시안게임에서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조오련 선수는 400m에서 당당히 금메달. 그리고, 이어 1500m에서도 금메달, 그제서야 각 언론에서 주목하게 되고 국민들은 환호의 열광에 빠지게 된다.

1974년 고려대에 적을 둔 조오련은 제7회 방콕아시안게임에서도 400m, 1500m에서 2관왕, 2연속 2관왕이라는, ‘이시아의 물개’라는 칭호와 함께 금의환향.

1980년 54Km, 일본선수가 3-4Km를 남겨두고 실패했던 대한해협을 13시간56분에 걸쳐 성공, 그리고 국민들의 열광이 뒤따랐다.

1982년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있는 도버해협 38Km 횡단에 성공하며 세계적인 수영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2005년, 3부자 독도아리랑 프로젝트, 97Km의 울릉도와 독도를 18시간에 걸쳐 횡단 한다.
2008년 3.1운동 33인의 독립선언을 기리는 독도회항 33바퀴 성공.

그리나 2009년 대한해협 30주년 기념 대한해협 재도전을 앞두고 맹연습 중, 고향 해남에서 심장마비로 사망.



조오련, 그리고 그의 아들 전 국가대표 수영선수 조성모, 2004년 아시아신기록으로 부산아시안게임 1500m에서 은메달.

조오련의 아들로서는 부족한 것이었을까. 박태환에 물려준 국가대표 자리. 그리고 그대로 포기한 수영과 이어 맞이한 아버지의 죽음.

우울증에 시달리던 그가 나타난 건 모 방송프로그램이었다.

갑자기 튀어나온 말 “대한해협을 건너겠다” 조오련의 아들. 조성모는 그 약속을 지금 만들어가고 있다.

23일 해남서 열린 제2회 조오련배땅끝바다수영대회에서 만난 조성모는 굵은 팔뚝을 보여주며 “이제 좋아졌다”는 힘찬 말을 기자에게 들려줬다.

조성모 선수는 행사 중 긴급 발언을 통해 “이번 대회에서 10명의 우수선수를 선발해 내년 대한해협 프로젝트에 함께 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리고 또, “이 대회가 지역을 넘어 국가를 넘어 세계적인 대회가 될 수 있도록 저도 힘을 보태겠다”며 아버지 못지않은 불굴의 의지를 보여줬다.

우리는 희망을 보았다. 아버지 고 조오련 선수가 대한해협 30주년 기념으로 대한해협 횡단 재 도전에 나섰다 불의의 사망으로 마저하지 못했던 대한해협 횡단을 아들 조성모가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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