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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근거”중심의학이 아니라 “과학”중심의학인가?

의학을 더더욱 과학적으로 만드는 개념


본 콘텐츠는 '과학중심의학연구원(http://www.i-sbm.org)'이 제공하는 공익콘텐츠입니다. 이 글은 원 저자인 폴 인그래함(Paul Ingraham)의 허락을 받고 올리는 글(Why “Science”-Based Instead of “Evidence”-Based?)입니다. 폴은 인터넷 전업작가인 관계로 엄격한 저작권 조건을 지켜줄 것을 전제로 이 글의 번역 소개를 허락해주었습니다. 따라서 국내에선 이 글은 이곳 외에 다른 곳에 퍼가는 것은 절대적으로 금지라는 것을 알립니다(법적인 문제가 야기될 수 있습니다). 외부에 이 글을 굳이 소개하겠다면 반드시 링크로 소개해주셔야 합니다. 김현우 과학중심의학연구원 학술특보와 황의원 과학중심의학연구원 원장이 같이 번역했습니다.(2012년 5월 30일 기준 번역)





2009년 7월, 나는 라스베가스에서 열렸던 '과학중심의학(Science-Based Medicine, SBM)' 컨퍼런스에 참석했다. 나는 거기에 어떤 식으로든 기여를 하고 싶었고 그래서 그 컨퍼런스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하게 됐다. 당시 나는 새로운 것들을 많이 배웠고 큰 감명을 받았다. 그 이후로 나는 ‘사이언스베이스드메디슨 블로그’( http://www.sciencebasedmedicine.org )의 자원봉사 편집인이 되었다.

Science-Based Medicine, 즉 ‘과학중심의학(SBM)’은 비록 ‘근거중심의학(EBM)’의 익숙한 개념을 대체하는 것은 아니지만, 근거중심의학의 연장선상에서 이 개념이 그간 무시해왔던 중요한 측면을 강조하고 있는 새로운 개념이다. 이 짧은 비평에서 나는 과학중심의학과 근거중심의학, 두 개념의 차이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근거중심의학(EBM)에 대한 간략한 스케치

무엇이 치료법으로서 효과가 있는가? 효과가 있다면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사실 우리 인류의 역사는 인간의 '직관(intuition)‘과 또 개별 의사, 환자의 경험같은 것들은 어떤 치료법이 정말로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 판단하는데 있어선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반복해서 보여주었다.

물론 ’과학(Science)‘이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 개념에 기반한 신중한 검증을 통과하지 않고서 어떤 약이나 치료법이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 알아낼 방법이 없다. 우리의 ’과학‘을 위하여 건배하자! 아닌게 아니라 ’과학‘은 최근 백년 동안 있었던 그 모든 중요한 의학적 성취의 중심에 있었다.

근거중심의학(Evidence-Based Medicine, EBM)은 1990년대에 그 개념이 정립되었지만, 사실 시작은 더 이전에 있었다. 


"근거중심의학은 ‘과학적 방법론’으로 얻어진 현존하는 최고의 임상 근거를 의학에서의 의사 결정에 이용하고자 한다. 이는 각 치료법과 진단법이 가지고 있는 위험한 정도와 그 근거의 타당성, 그리고 혹시 치료가 어렵거나 불가능한 경우에서도 그런 진단이 가지고 있는 위험한 정도와 근거의 타당성을 평가하고자 하는 것이다." (Evidence-based medicine. Wikipedia.com. )


왜 과학중심의학인가? 이미 근거중심의학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우리의 의학이 ‘근거(Evidence)'보다도 ‘과학(Science)’을 더 강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은, 예일대학교 신경의학과 교수인 스티븐 노벨라(Steven Novella)와 유명한 의학 전문 블로거이자 종양외과학자인 데이비드 고스키(David Gorski)가 2008년초에 다른 의사들과 함께 공개적으로 주장한 것이다.


"근거중심의학(EBM)은 의학에 있어서 정말 중요하고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켰음에도, 한계가 있다. 우리 블로그의 맥락에서 얘기해본다면, 근거중심의학의 문제는 임상시험에 너무 주안점을 둔 나머지 ‘과학적 개연성(scientific plausibility)‘을 무시한다는 것이다. ’임상시험의 결과’(근거중심의학의 정의에 따르면 순수한 "근거(evidence)")에 주안점을 둔다는 것은 물론 중요한 일이지만, 근거중심의학의 개념하에서는 잘 정립된 자연과학적 체계의 바깥에 있는 치료법, 또는 ’과학적 개연성‘이 매우 적게 존재하거나 아예 없는 치료법에 대해선 제대로 대처를 하지 못한다는 맹점이 있다." (Announcing the Science-Based Medicine Blog, ScienceBasedMedicine.org contributors. )


"근거중심의학은 도그마로 점철되었던 지금까지의 의학 개념을 뛰어넘는 새로운 개념이기는 하지만, 이 개념은 우리의 의학을 가장 효과적으로 만드는 일에는 궁극적으로 실패하고 말았다. 현재 근거중심의학의 상황을 보면, 다른 모든 근거보다도 임상시험을 통한 근거를 훨씬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으며, 기초과학에 기반한 반드시 고려해야될 사항들을 무시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근거중심의학은 결국 질적으로 가장 떨어지는 증례 보고서보다 근거의 수준을 더 낮은 단계로 떨어뜨리고 있다. 이러한 맹점은 바로 일련의 사이비의학같은 것들이 상아탑에서의 진짜 의학 행세는 물론, 소위 ‘근거중심의학’ 행세까지 기꺼이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Hard science" and medical school, Dr. David Gorski)


납치당한 근거중심의학! 돌팔이들이 근거중심의학을 이용하는 방법

근거중심의학(EBM)은 그 정의상 ‘근거만' 판단하는 것으로 자신의 범위를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근거중심의학을 맹신하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근거의 유무를 실험하는 것에만 있다. 만약 어떤 치료법이 어쨌거나 효과라는게 있기는 하다면, 그것은 과학적 검증을 아주 쉽게 통과할 것이다. 효과가 전혀 없다면, 그렇지 않을 것이다.

얼핏 들으면 이것은 좋은 생각같다. 그리고 과학자들과 의사들은 이미 당연하게 그런 검증을 통과한 결과들을 갖고 있지 않은가? 물론이다. 대부분의 경우 그들의 치료법은 제대로된 근거를 갖고 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사실 별 문제가 되지 않고 내가 지적하려는 것도 그런 문제는 아니다.

이 근거중심의학이란 개념은 그들보다 정직치 않은 사람들이 없다면야 문제없이 잘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사이비의료라는 것은 분명 존재한다. 돌팔이들은 그저 단순하게 자신들의 치료법도 좌우간 임상적 근거가 있다고 주장을 하거나, 또는 “(효과 유무를 완전히 확정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후속 연구가 더 필요하다”는 식의 말로 포장을 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근거중심의학’같은 우아한 단어도 끌어들일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만약 전문가들이 대체의료 또는 사이비의료에 대해 비판하는 의견을 내 놓으면, 그것은 ‘논란’이 되어버린다. 사실 이것은 만들어진 ‘논란’이라고 할 수 있다.[1]

([1] : 이것은 정보화시대의 특별한 현상이다. 우리 시대는 그 어떤 것도 ‘논란’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다. 당신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미친 짓을 한 뒤 그것을 널리 공개해보라. 지탄과 항의를 받게 된다면, 거기에 대한 당신의 입장도 공평하게 밝힐 기회를 달라고 요구하라. 놀랍게도 그 요구는 수용될 것이고 바로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논란’이라고 불리는 것들의 거개 실체다. 이것은 이른바 ‘정치적으로 올바른척 하기(political correctness)’의 아름다운 유산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논란이 벌어지면 결국 엉터리 치료법을 선전해대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치료법이 과연 자연과학에서는 아주 근본적이라고 할 수 있는 물리법칙, 화학법칙과 같은 것들과 과연 연계가 되고 부합은 되는지와 같은 불편한 질문들을 회피해버릴 수 있게 된다. 안타깝고도 묘하게도 근거중심의학의 개념은 형편없이 질적으로 떨어지는 연구들에게도 ‘공평한 경쟁의 장’을 제공해 주었다. 이른바 ‘근거’라는 것은 정말 지겹도록(ad nauseam) 잘못 인용되고 잘못 전해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근거의 질과 가치에 대한 논쟁은 어차피 수년간 질질 끌 수 있는 것이며, 아이러니하게도 근거중심의학 하에서의 이러한 논쟁은 “애초부터 그러한 치료법은 연구할 가치도 없었으며, 후속 연구도 그저 시간낭비일 뿐”이라는 지극히 정당한 비판으로부터 돌팔이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할 뿐이다.
 



의도치 않았던 결과

근거중심의학의 가장 전형적이면서 우스꽝스럽고 또 결코 의도치 않았던 결과란, 아주 사악하다고 밖에 할 수 없는 치료법을 합법성의 경계선상에 있는 듯 여겨지게한다는 것이다. 또 그것은 완전히 황당하기 짝이 없는 치료법이, 아직은 그 효과가 완전히 검증되지않았을뿐인 다른 좀 더 믿을만한 과학적 치료법과 비슷해 보이게 한다.

내가 고안한 가상의 '안구를 뾰족한 것으로 찌르는 치료법(sharp-stick-in-the-eye therapy)'을 한번 예로 들어보자. 이 치료법을 옹호하는 돌팔이들은 근거중심의학을 이용하여 얼마든지 관련 연구 논문 말미에다가 "시각장애인(blindness)의 ‘안구를 뾰족한 것으로 찌르는 치료법’은 그 효과의 유무를 판단하기에 아직 충분한 근거가 없기 때문에 최종 결론을 내리기위해서는 추가적인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는 식으로 말할 수 있다. 이런 진술은 수학적으로 엄밀하게 따진다면 꼭 틀린 말은 아니지만, 실제로는 완전 헛소리임을 독자들은 충분히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편집자주 : 폴 인그래함의 '안구를 뾰족한 것으로 찌르는 치료법(sharp-stick-in-the-eye therapy)은 ‘침술(acupucnture)’을 패로디한 것이다.)

허나 놀랍게도 이러한 넌센스를 저명한 근거중심의학 학술지들인 ‘코크란 연합(The Cochrane Collaboration, http://www.cochrane.org )’이나 ‘내츄럴스탠다드(The Natural Standard, http://naturalstandard.com )‘에서도 우리는 얼마든지 찾아 볼 수 있다. 이러한 학술지들은 ’지금까지 지지하는 근거가 하나도 없었던 치료법‘, 특히 ’앞으로 미래에도 분명 지지할만한 근거가 나오지않을 것이라고 여겨지는 치료법‘에 대해 정기적으로, 어안이 벙벙할 정도로 무비판적인 진술을 해오고 있는 것이다.

뻔히 상식을 벗어난 치료법을 두고 “최종 결론을 내리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는 식으로 얼버무리는 “유사의학적 혼돈(quasi-scientific obfuscation)“은, 충격적일 정도로 이상한 치료법들을 외려 합법적이고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게 만들고 있으며 그런 치료법들을 마치 ‘에너자이저 백만돌이(Energizer bunny)‘처럼 지속되게 만든다.


물론 물리치료와 지압요법같은 것이 우리의 신체에 별다른 해를 끼치지는 않지만, 우리는 실제로 그보다 나쁜 짓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우리는 신화를 퍼뜨리면서, 유사 의학적 혼돈 속에서 타인의 신체를 통해 우리의 존재의 당위성을 확보한다. (John Ware, Physical Therapist, comment in an EBM vs. SBM debate)


과학의 등장


그렇다면 ‘과학중심의학(Science-Based Medicine)’은 ‘안구를 뾰족한 것으로 찌르는 치료법(sharp-sticks-in-the eye)‘과 같은 것에 대해 과연 뭐라고 할까?

간단하다. “그것은 그저 미친 짓일뿐입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따위 뚱딴지같은 치료법을 연구하는데 혈세를 낭비하지 마십시오.”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런 치료법에 대한 연구말고 엄청난 자금과 큰 노력을 필요로 하는 정말 좋은 연구들이 많이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한마디로 ‘과학중심의학’의 개념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태도인, “뻔한 헛소리를 연구하는 일 따위에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지 마십시오!”와 같은 단호함이 담겨있는 것이다.

상식을 초월하는 주장을 정당화하고자 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상식을 초월한 근거부터 제시해야한다. 개연성부터가 이미 없는 근거란 칼 세이건(Carl Sagan)과 같은 훌륭한 과학적 회의주의자들을 무덤에서 돌아눕게 만들 것이다. ‘과학중심의학’은 보건의학적 문제에 있어서, 기초과학에 기반한 근거를 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한다 주장한다. 또 지금까지 어마어마하게 축적되어온 인체의 작용에 대한 믿을만한 과학적인 지식들에 더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주장한다.[2]

([2] : “과학자들도 늘 틀리곤 했어!”, 이것은 으레 튀어나오곤 하는 과학에 대한 통속적 비판이지만, 이러한 비판은 사실은 과학이 밝혀낸,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지식들 중 상당수는 앞으로 틀릴 일이 전혀 없다는 진리를 간과하고 있다. 가령, 지구는 정말로 둥근 것이다! : 나는 당신이 “과학은 틀렸어! 지구는 사실 정육면체야!”라고 주장할 일은 절대 없을 거라고 확신한다. 이와 유사하게, 현재 우리가 알고있는 의학적 지식의 태반이 바뀌거나 하는 일은 앞으로도 불가능하다 - 이건 정말 믿어도 된다. 물론 아직 풀리지 않은 인체의 수수께끼들이 많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이미 확고하게 정립된 의학적 지식들과는 완전 180도 배치되는 지식과 관계된 이상한 연구들에 당신의 세금이 쓰여도 좋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러한 근거중심의학과 과학중심의학의 차이를 두고서 단지 사소한 것을 갖고 따지는 것으로 볼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 우리 문명사회의 관심과 혈세는 엉터리 치료법에 대한 연구말고도 정말 좋은 일에 사용하기에도 모자라다는 것을 명심하자. 아이러니컬하게도, 근거중심의학은 그야말로 상식을 초월한(extraordinary) 주장을, 상식적인(ordinary) 근거야 말할 것도 없고 아예 아무런 근거 없이도 기꺼이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결국 우리는 ‘과학중심적인(Science-Based)’ 시각이 필요하다.


"아마도 근거중심의학의 창시자들은 근거중심의학의 개념이 경이로울 정도로 타당치 못한 근거를 가지고 있는 보완대체의학류와 같은 가설들을 정당화하는데 이 개념이 사용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정말 조금이라도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근거중심의학의 창시자들이 애초 갖고 있었던 생각은, 어떤 가설이 임상연구단계까지 도달했다면 그것은 이미 임상 전 단계의 근거(즉, 기초과학적 근거)가 충분히 뒷받침되어있으며 그 효용성까지 지지될 수 있다는 것이다." (Answering a criticism of science-based medicine, Dr. David Gorski)


충돌은 없다


오해하지 말아야할 것은, 과학중심의학(SBM)과 근거중심의학(EBM)은 서로 경쟁관계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과학중심의학은 누구처럼 근거중심의학을 납치할 생각이 없다. 과학중심의학은 단지 근거중심의학이 방치하거나 무시했던 면들을 보완하고 또 중요한 몇가지를 더 강조하고자 할뿐이다.

이렇게 새로운 개념과 용어를 만드는 것이 과연 좋은 방법이었을까? 과학중심의학이 혹시 근거중심의학의 기반을 약화시키지는 않을까? 노벨라와 고스키가 그냥 더 나은 근거중심의학을 위한 논거를 펴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그럴 수도 있다. 허나 나는 이런 논점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고, 솔직히 말하면 이런 논점이 그리 중요한지를 모르겠다. 하여간 내 생각에서는 적어도 노벨라와 고스키는 더 나은 근거중심의학을 위한 논지를 펼치고 있다.


"우리는 근거중심의학과 싸우자는 것이 결코 아니며, 근거중심의학과 과학중심의학이 상호배타적인 관계에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사실 근거중심의학은 과학중심의학의 부분집합이다. 왜냐하면 근거중심의학은 자체적으로 아직 불완전한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근거중심의학이 모든 근거들을 제대로 검증하여 자신의 이름에 합당한 대우를 받는 시대가 오길 갈망하고 있다. 그런 시대가 도래했을때, 과학중심의학과 근거중심의학은 서로 구분이 되지 않을 것이다." (Jacqueline: EBM ought to be Synonymous with SBM, Dr. Kimball Atwood)



폴 인그라햄(Paul Ingraham) 자기 소개(BIO)

학위와 경력 사항 : 저는 과학 저널리스트이며 10년간 마사지 세라피스트(Massage Therapist)로 일했습니다. 보건 과학(Health Sciences)쪽 학위를 받기까지 아직 두 개의 수업이 남아 있으며, ‘사이언스베이스드메디슨 블로그( http://www.sciencebasedmedicine.org )’에서 편집인 일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치료과학(therapy science)을 공부하는데 많은 세월을 보냈으며, 관련한 제 성과는 전 세계의 독자들 및 전문가들과의 수천번에 걸친 대화와 토론을 통해 현격하게 개선되었습니다. 저는 전업으로 이 웹사이트를 관리하고 있으며, e북을 통해 (보건과학 분야의) 상세한 지침서들도 판매하고 있습니다. 추가 정보를 위해서는 ‘Who Am I to Say?( https://www.painscience.com/about-paul-ingraham.php )’를 참조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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