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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문제에 대하여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은 위험한 발상


한의사에게 현대의료기기 사용을 허가하는 한의약법안이 논란이 되고 있다. 의사가 아닌 한의사에게 현대의료기기를 사용토록 하는 일이 과연 어떤 문제가 있길래 이토록 논란이 되는 것인지 짚어보자.

먼저 음양오행과 경혈경락 이론을 바탕으로 진단하고 치료하는 한의사에게 현대의료기기가 도대체 왜 필요한가 하는 문제다. 현대의료기기란 한의학적 개념과는 전혀 무관한 현대과학, 현대의학의 이론에 기반해 만들어진 기기이다. 그런데도 그런 현대의료기기를 사용해서 한의사들은 과연 무엇을 얻겠다는 것일까?

요즘 사람들은 “기가 허하고, 폐가 습하고” 따위의 한의사식 뜬구름 잡는 표현을 신뢰하지 않는다. 방송에 출연한 한의사들도 한의학적 표현 보다는 과학용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의사인지 한의사인지 자막의 소개를 읽지 않으면 알 수 없을 정도다. 한의사의 의사 흉내내기가 도를 넘은 작금의 상황에서, 결국 현대의료기기는 바로 그런 한의사의 행태에 날개를 달아주는 결과를 낳을 공산이 크다는게 많은 이들의 우려다.

한의사의 의사 흉내내기가 제대로라면 적어도 환자에게는 다행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현실은 그럴 수가 없다는 것이 문제다. 현대의학 이론으로는 말도 안되는 일들이 한의학 이론으로는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에,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는 사용은 그럴듯한 퍼포먼스가 되어 환자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보자. 의사들은 초음파 사진만 보고서는 청소년의 성장이 멈추었는지 계속되고 있는지 판별하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런데도 일부 한의사들은 그게 가능하다고 한다. 실제로 일부 한의원에서 초음파 사진을 찍어 성장 여부를 진단하는 척 하며 700만원이나 하는 한약 복용을 유도했던 사건이 있었다. 이는 TV조선 <강용석의 두려운 진실>에도 방송되었던 촌극이다.

일부 한의사들의 이러한 사이비의료 행위와는 별개로, 한의사도 어차피 법적으로는 의료인인만큼 치료쪽의 현대의료기기라면 모를까 진단쪽의 현대의료기기 정도는 사용토록 하는 일이 환자에게 별로 해가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는지 모르겠다. 그것은 오해다. 사실은 진단쪽의 현대의료기기도 한의사같은 비전문가들에게 오남용 되었을 때는 크나큰 위험이 수반될 수 있다.

예컨대, 2012년 <란셋(Lancet)>에 발표된 보고를 보자. 이는 대표적인 진단 현대의료기기인 CT 촬영이 어린이에게서 뇌암과 백혈병 위험을 증가시킨다는 내용이다. 진단 현대의료기기를 사용하는 일 자체에도 이렇게 큰 위험이 수반되기 때문에 의사는 진단의 위험성과 필요성을 평가해 반드시 필요한 경우에만 신중하게 현대의료기기를 사용하도록 오랫동안 철저하고 가혹한 훈련을 받도록 되어 있다.

현대의료기기의 사용 자체도 위험을 수반하지만 보다 더 큰 위험은 저러한 현대의료기기를 사용하고도 발생하는 오진이다. 의사들은 특정 질환에 대한 진단을 자신이 내릴 수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고 필요한 경우에는 해당 전문의에게 진단을 맡긴다. 그러나 전문성이 전혀 없거나, 무엇보다도 현대의학을 한의학적으로 이해하고 공부한 한의사들이 마구잡이로 현대의료기기를 사용하면 잘못된 진단으로 엉뚱한 치료를 하거나 심각한 질환을 놓치고 지나칠 위험이 매우 커진다.

예컨대, 한의학적인 질환의 개념을 배운 한의사로서는 현대의학 이론에 기반한 진단 현대의료기기가 찾아낸 종양을 보고도 그냥 놓쳐버릴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정황을 모르는 환자는 자신이 믿을 을만한 과학적 현대의료기기인 초음파 진단을 받았기 때문에 해당 부위에 암이 있을 리가 없다고 판단할 수 있다. 이는 결국 제대로 된 진단을 받을 기회를 놓치는 결과로 이어지며 건강 정도가 아니라 생명에 치명적인 위협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사실 진단과 관련한 의사의 전문성은 단순히 보수교육같은 것으로 따라갈 수 있는 그런 수준이 아니다. 기간만으로도 이론과 임상을 합쳐 6~12년을 요구할 정도다. 교육과정에서 100% 현대의학만을 배우는 간호사나 물리치료사도 의사와 같은 전문성은 쌓을 수가 없기에 독립적인 진단은 할 수 없다. 그런데 현대의학도 아닌 한의학을 전공으로 했던 사람에게 의사처럼 현대의료기기를 사용케하고 또 의사처럼 진단을 할 수 있게 하는 일이 과연 합리적이고 환자에게 이익일까?

김필건 한의사협회 회장은 지난 3월 27일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한의사 자격증 없이 침이나 뜸 치료를 하는 행위를 지적하며 제한해야 할 필요성을 다음과 같이 역설했다.


“(일부 실력을 가진 사람이 있다 해도) 한둘의 예외를 인정하기 시작하면 반드시 사기꾼이 득세하기 때문입니다. 실력도 없는 이들이 한의사, 의사, 변호사를 자처하고 나섰을 때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에게 돌아옵니다. 더구나 제도권 밖에 있는 이들은 견제를 받지 않아요. 본인의 능력을 직시해서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의 경계를 설정할 줄 알아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하는 겁니다.”


김 회장은 자신의 발언이 곧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는 점을 모르는 것 같다.

한의사들에게 예외적으로 현대의료기기 사용을 허용해주면 그것을 빌미로 한의사들이 의사의 영역에 침범하게 되고 김 회장의 주장처럼 의료사기꾼이 득세하게 되어있다. 또한 고의적인 의료사기가 아니라도, 현대의학과는 전혀 무관한 전문성을 가진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은 필연적으로 환자에게 피해를 끼치게 되어있다. 공인중개사에게 형사소송법, 민사소송법 몇줄만 외우게 하면 변호사의 영역인 송사에까지 관여할 수 있게 허용해준다고 생각해보자. 우리는 빚어질 사회 문제를 충분히 예측해볼 수 있다.

애초 실력이 없고 실력을 갖출 수도 없는 한의사가 의사를 자처하며 의료기기를 사용했을때 그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의 몫으로 돌아간다. 한의사들은 스스로의 능력과 전공을 직시해서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의 경계를 설정할 줄 알고, 현대 의료기기 사용에 욕심을 내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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