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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 해남에서 부치는 편지, '가을냄새'

<임장영 칼럼>"가을은 하늘이 익는 냄새로다"


봄날은 흙이 익는 냄새요. 가을은 하늘이 익는 냄새로다.

대지의 모정이 태양의 사랑으로 달여져 아름다운 냄새로 올라가는, 하늘의 향기, 노오란 가을 냄새는 세파에 찌들어 흘러가는 방랑객의 마음을 흔들어 댄다. 봄날 농부가의 장단소리가 들려 오는듯한 들판을 지나노니 추수를 앞둔 들녘에 이렇게도 알뜰한 수확이 눈앞이건만 웃음인지 한숨인지 분간하기 힘든 표정들이 나그네를 흘긴다.

고구마밭 지나 모과나무며 탱자나무 울타리가 천연기념물급인 마을로 들어서면 햇고구마 찌는 냄새가 가마솥 솥뚜껑 사이로 인심 좋게 피어올라 나그네의 시장한 오장육부를 유혹한다. 부뚜막을 쓸고 있을 것 같은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살되게 먹는 자식들을 생각하며 오진마음으로 꽉 차 있을 것 같은 어머니, 마포적삼에서 피어나오는 어머니의 땀 냄새가 내 코끝을 맴돈다. 한잎두닢 노오란 낙엽이 올리는 애잔한향기와 어울려섞인 모과 향이며 탱자향은 나그네를 고샅에 붙드는 구나.

이날까지 오만 사랑은 다 차지하던 백화는 어디가고 좋은날 눈길하나 받지 못하던 모과며 탱자는 아직도 숨듯이 조건없는 향기를 올려주고 있다. 세상 사람이 모과며 탱자로 산다면 이 땅에 공자며 맹자는 설곳이 없었지 않았을까.

한푼 있으면 열푼 있다하고, 한푼을 열푼으로 내 세우고, 열푼 채우기 위해 한푼 짜리를 빼앗고, 열푼 허물은 한푼까지 감추는 아우성속에도 죽을때가 되면 인생살이가 죄다 허무하다 하는 것을, 말없이 표없이 향기로운 모탱의냄새가 올라가는 서쪽 하늘에 때가되니 노을이 피어난다.

가을 황혼은 처절하게도 불그스레하다. 봄과 여름이 달군 온 세상의 찌꺼기들을품은 가을황혼은 만가지냄새를 안고 삭혀서 바닷물에 풀어 보낸다. 황혼과 바다가 만나는 수평선끝에는 이세상 살다간 사람들이 만나는 하늘이 있다.

만나서 정다운 이야기들이 가을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로 찾아와 우리에게 속삭인다. 밤 하늘을 쳐다보며 가슴을 펴고 그리운 냄새들을 느껴본다. 이세상과 나의 하늘에 날리며 남기고 갈 나의 냄새는 어떠해야 할까. 사람의 일생이 세상에 남기는 냄새 중에 가장 아름다운 냄새는 조건없이 사람사는 세상을 위해서 베풀고가는 냄새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런 점에서 세파에 오염된 종교지도자들의 뒷이야기가 늘 얕은 가슴을 때리곤 했었다. 인간의 평화를 빌어주는 종교의 향기가 얼마나 존경스러운가 그들이 오염된 냄새를 풍기게 되면 선을 지향하는 필부들이 설곳이 어디이며 낮은곳 어두운곳에서 모과와 탱자처럼 표없이 향기를 만들어내는 가난한 종교인들은 어디에 서야 되는지 이세상 살다가 먼저간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싶은 말이다.

세상에 올릴 나의 냄새는 나 혼자 그저 무난히 평화롭게 살아가는 멋 속에도 그 향기는 있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사계절을 살며 살아있음을 감사하는 일상을 유지한다. 그 가운데 대리만족처럼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활약하는 화제에 오르는 인물들을 존경하며 본받으며 수양의 기준으로 삼으며 살아간다. 방랑시인 김삿갓이 생각난다.

그는 철저하게 자기만의 정신건강을 위해서 살았던 사람이지만 후대의 사람들에게 정감있는 인물로 기억되는 사람이다. 그 이유라면 유교적 속죄의 본능을 불러일으킨 인물이었으며 가난한 사람들의 시각에서 고약한 강자들을 꾸짖어주는 통렬함을 유지 했다는 것 아니 었을까. 배 곯은 이들이 부지기수인 시대상황, 마을어귀, 산모퉁에서 피어오르는 가을냄새를 시심으로 짊어지고 걸었을 그를 연상하는 마음은 다음 대목에서 숙연해진다.

가을이 지나고 추운 겨울이 시작되는 초저녁 어느 부잣집 대문에서 하룻밤 유숙하기를 청하다 냉대받고서 개운하게 비웃는 말을 남기고 나서는 동구 밖에서 거지인 어린 형제가 뭣인가 급하게 먹고 있기에 봤더니 그 부잣집 구정물통에서 건져온 찌꺼기들을 먹고 있는 것이었다.

그가 혼자 중얼거린다. “내가 꾸짖던 이는 너희들에게 현실적인 구정물이라도 줄수 있구나 이 추운날 내가 너희에게 줄수 있는 것은 동정심의 말 뿐, 그가 날 꾸짖는 구나” 겨울로 가는 길목 이 가을냄새는 더 깊고 겸손한 향기를 일상의 목표로 공부 할 것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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