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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비의료와 소송전을 벌인 '사이먼 싱(Simon Singh)'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로 유명한 사이먼 싱이 카이로프랙틱과 투쟁에 나섰던 사연


※ 본 콘텐츠는 '과학중심의학연구원(http://www.i-sbm.org)'이 제공하는 공익콘텐츠입니다. 이번 글은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에 대한 다큐멘타리와 해설서로 유명한 영국의 과학작가 사이먼 싱(Simon Singh)에 대한 인물소개와, 그의 사이비의료와의 소송전에 대한 해설과 관련 영문 위키피디어 항목을 합쳐서 번역한 것입니다. 영국에서 사이먼 싱이 사이비의료와 벌인 소송전은 최근 한국에서도 진행되고 있는, 충북대 병원 한정호 교수와 단국대 최원철 부총장 사이의 한방항암제 넥시아를 둘러싼 논쟁 및 소송과 관련해서도 큰 시사점을 주고 있기에 특별판 형식으로 소개해봅니다. 과학중심의학연구원 황의원 원장과 정신건강과 전문의인 athina님(필명)이 공동으로 번역했으며,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의역을 다소 취했습니다. (2014년 12월 23일판 번역)





‘사이먼 레나 싱(Simon Lehna Singh)’은 1964년 1월 1일에 태어났다. 그는 대영제국훈장(Member of Order of the British Empire)을 받았으며, 수학 및 과학 관련 주제에 대해 전문성을 갖춘 인도계 영국인 작가다. ( 홈페이지 : http://simonsingh.net )

그의 대표 저서로는, 미국에서 ‘페르마의 마지막 수수께끼 :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수학문제를 풀기 위한 대서사(Fermat's Enigma : The Epic Quest to Solve the World's Greatest Mathematical Problem)‘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Fermat's Last Theorem)’가 있다.

그의 다른 저서로는 암호 작성술 및 그 역사를 다룬 ‘코드북(The Code Book)’, 빅뱅이론과 우주의 기원을 다룬 ‘빅뱅(Big Bang)’, 그리고 에드짜르트 에른스트(Edzard Ernst) 박사와 같이 쓴 보완 및 대체의학 문제를 다룬 '치료냐 사기냐? 심판대에 선 대체의학(Trick or Treatment? Alternative Medicine on Trial)', 최근에 출간된 ‘심슨 가족에 숨겨진 수학의 비밀(The Simpsons and Their Mathematical Secrets)‘이 있다. ’심슨 가족에 숨겨진 수학의 비밀‘은 인기 애니메이션들인 ’심슨 가족(The Simpsons)‘과 ’퓨처라마(Futurama)‘에 숨어있는 수학적 이론과 정리를 다룬 책이다.

(편집자주 : 사이먼 싱의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심슨 가족에 숨겨진 수학의 비밀’은 한국에도 동명의 제목으로 출판됐다. '코드북‘도 ’사이먼 싱의 암호의 과학‘으로 ’빅뱅‘ 역시 ’우주의 기원 빅뱅‘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됐지만, '치료냐 사기냐? 심판대에 선 대체의학’은 아직 번역 출간되지 않았다.)
 



사이먼 싱은 그밖에도 자신의 저서와 관련된 TV 다큐멘터리들을 제작하기도 했으며, 영국국립과학기술예술재단(The National Endowment for Science, Technology and the Arts, 약칭 NESTA, http://www.nesta.org.uk )의 이사이기도 하다. 그는 또한 학부생 교육사절 제도(Undergraduate Ambassadors Scheme, 번역자주 : 영국의 고교생들이 과학, 기술, 공학, 수학 관련 전공을 선택하는 것을 장려하기위해 대학 학부생들을 고교 교육 현장에 참여시키는 프로그램)를 공동으로 만들하기도 하였다.

2008년, 사이먼 싱은 영국의 시사지인 '가디언(Guardian)'지에 기고한 칼럼을 통해 대체요법인 카이로프랙틱 시술자들의 모임인 ‘브리티쉬 카이로프랙틱 협회(British Chiropractic Association)’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결국은 협회측의 패배로 끝나버린 명예훼손(libel) 소송을 당했다.

당시 이 소송으로 ‘브리티쉬 카이로프랙틱 협회’에 대한 대중들의 "분노의 역습(furious backlash)"이 거세지면서, 5백여명 이상의 카이로프랙틱 시술사들이 자신들의 허위과장 의료광고와 관련해 시민들의 공식적인 항의를 당하는 일이 일어났다. 권위있는 학술지인 '네이처 메디슨(Nature Medicine)'지도 주목한 사이먼 싱의 소송사건은, 그가 광범위한 지지를 받게되는 계기가 되었고 이는 또한 영국의 명예훼손 관련 법률 개정에 대한 여론을 고무케하는 일이 되기도 했다.

(편집자주 : 영국에서 명예훼손은 ‘형사’는 없고 ‘민사’만 있다. 단, 영국의 명예훼손법은 특이하게도 ‘소송을 거는 이’(원고)가 아닌 ‘소송을 당한 이’(피고)가 ‘소송을 거는 이’에게 명예훼손을 하지 않았다는 입증을 법정에서 해야 한다. 이에 권력자 등에 대한 비판이 제한되는 등 ‘표현의 자유’에 대한 위축 논란이 강하게 일었다. 영국의 이러한 명예훼손법은 사이먼 싱의 법정투쟁 이후 2013년에 대대적인 개정이 이뤄졌다.)

2010년 4월 1일에 사이먼 싱은 영국 명예훼손법의 법리 중 하나인 ‘공정 논평의 항변(the defence of fair comment)’에 근거한 권리를 주장하며 항소했다. 2010년 4월 15일에 ‘브리티쉬 카이로프랙틱 협회’가 공식적으로 소를 취하하면서 사건은 종결됐다.

어린 시절

사이먼 싱의 부모는 1950년에 인도 펀자브(Punjab) 지방에서 영국으로 이민을 왔다. 싱은 3형제 중 막내였으며, 첫째인 톰 싱(Tom Singh)은 'UK 뉴 룩(UK New Look)' 상점 체인의 설립자이다. 싱은 웰링턴(Wellington)에서 자랐으며 웰링턴 고교(Wellington School)를 나와 런던제국대학(Imperial College London)에 입학했다. 그곳에서 그는 물리학을 공부했다.

사이먼 싱은 학생회에 가입해 활발히 활동했으며, 왕립과학유니언(Royal College of Science Union)의 회장이 되기도 했다. 이후 그는 캠브리지 대학교의 이마뉴엘 컬리지(Emmanuel College)에서 입자물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제네바에 위치한 유럽 공동 원자핵 연구소(Conseil Europeen pour la Recherche Nucleaire)에서도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경력

1983년에 사이먼 싱은 물리학자로서 유럽원자핵공동연구소(CERN)에서 고에너지 물리학 실험인 UA2 실험에 참여했다. 그는 인도의 독립 소년 기숙학교인 둔 스쿨(Doon School)에서 과학을 가르치기도 했다.

사이먼 싱은 1990년에 BBC방송의 ’과학과 기사들’ 부서(Science and Features Department)에 합류해 프로듀서 및 디렉터로 근무하며 ‘내일의 세계와 지평(Tomorrow's World and Horizon)’과 같은 프로그램들을 제작했다.

이를 계기로 사이먼 싱은 심리학자인 리차드 와이즈먼(Richard Wiseman)을 소개받았다. 와이즈먼의 추천으로 싱은 ‘내일의 세계와 지평’에서 영혼과 소통한다는 ‘영매’에 대한 정치인들의 거짓말 및 그리고 특정인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아닌지에 대해 대중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다룬 편을 제작하기도 했다.

(편집자주 : 리처드 와이즈먼(Richard Wiseman)은 영국 허트포드셔(Hertfordshire) 대학교의 심리학 교수다. 프로 마술사 경력을 갖고 있는데다가, ‘과학적 회의주의’의 관점에서 미신, 행운, 지적사기 등 주류심리학계에서 다루지 않는 독특한 주제를 연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국내에도 그의 책 중 ‘괴짜심리학 ’, ‘미스터리 심리학’, ‘잭팟심리학’, ‘왜 나는 눈앞의 고릴라를 못보았을까, ’59초‘가 번역되어 소개된 바 있다.)

와이즈먼의 강연 중 일부에 참여한 후, 싱은 해당 쇼를 함께 제작하기로 했으며 그렇게 해서 ‘과학극장(Theatre of Science)’이라는 프로그램이 탄생했다. 이 프로그램은 일반인들이 흥미를 느낄 수 있는 방법으로 과학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사이먼 싱은 와이즈먼이 자신에게 미친 영향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원래 그때까지의 내 저술은 순수 과학에 대한 것이었다. 하지만 와이즈먼은 초자연적 현상, 사이비와 같은 것들을 논파하려는 강한 의지가 있었었고 나도 자연스레 그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 우리 둘 다 초능력, 영매, 사이비과학같은 것을 경멸한다.”


사이먼 싱은 1996년에 세계에서 가장 악명높은 수학 문제를 다룬 다큐멘타리인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Fermat's Last Theorem)’로 영국아카데미상(British Academy of Film and Television Arts, 약칭 BAFTA)을 수상했다. 이 다큐멘터리는 중년의 수학자인 앤드류 와일즈(Andrew Wiles)가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하는 데 있어서 근본적인 문제점을 어떻게 해결하는지를 끝내 알아낸 장면을 회상하며 감격에 젖는 오프닝으로 유명했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다큐멘터리는 97년 10월에 BBC 호라이즌 시리즈에서 최초로 방송됐다. 미국에서도 노바 시리즈의 일부로 방송됐는데 ‘증명(The Proof)’이라는 타이틀을 달았으며, 에미상(Emmy Award)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이 유명한 수학 문제에 얽힌 이야기들 또한 싱이 쓴 첫 번째 저서인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의 주제였다.

1997년에 그는 두 번째 저서 '코드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 책은 암호 및 암호 해독의 역사를 다룬 책이었다. 암호의 과학에 대한 설명과 암호해독학이 준 영향에 대한 묘사에 그치지 않고, 싱은 이 책을 통해 오늘날 암호해독학이 과거 그 어느때보다도 더 중요해졌다고 밝히고 있다.

'코드북'은 이어서 TV 전파도 탔다. 그는 '채널4(Channel 4)'의 5부작 시리즈인 ‘비밀의 과학(The Science of Secrecy)’을 제작했다. 시리즈는 ‘메리 여왕(Mary, Queen of Scots)‘의 운명을 봉인한 암호에서부터, 1차대전의 양상을 바꾼 ‘치머만 전보(Zimmermann Telegram)’ 등의 이야기를 담았다. 또한 19세기의 위대한 천재 두명이 어떻게 이집트 상형문자들을 해독했으며 현대 인터넷 공간에서 최신 암호화 기법이 어떻게 프라이버시를 지켜줄 수 있는지도 담았다.

과학작가로서의 활동에 대해 사이먼 싱은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Imperial College London)’ 대학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물리학 박사과정을 끝낸 후, 나는 내가 전공분야에서 특출나게 뛰어나지는 않았고 노벨상을 탈 정도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사실 어린 시절에 나는 축구선수가 되고 싶었고, 이후엔 해설자가 되기를 원했다. 만약 내가 물리학자가 될 수 없었다면 물리학에 대한 책을 쓰고 싶었다.”


2004년 10월에 싱은 우주의 역사를 다룬 '빅뱅(Big Bang)'라는 제목의 저서를 출판했다. 그 책은 ‘흩어진 조각을 맞추는 사람들(the people who put the pieces together, 번역자주 : 과학자를 비유한 구문으로 생각됨)’의 놀라운 이야기를 그의 전매특허 스타일로 묘사한 책이다.



사이먼 싱은 2003년에는 영국 왕실로부터 교육과 과학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과학, 기술, 공학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영제국훈장을 받았다. 이어 같은 해에 러프버러 대학교(Loughborough University)에서 명예문학박사학위를 받았고, 2005년에는 사우스햄턴 대학교(Southampton University)에서 수학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그는 ’추가적인 다섯 숫자(A Further Five Numbers)’(BBC Radio 4, 2005)라는 프로그램을 포함해 TV 및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주로 활동하고 있다.

사이먼 싱은 2005년에 영국의 유명 가수인 케이티 멜루아(Katie Melua)의 노래 "9백만개의 자전거(Nine Million Bicycles)"가, 관측된 우주의 크기와 관련 부정확한 내용의 가사를 담았다고 지적하면서 주목을 받기도 했다. 싱은 멜루아에게 우주의 나이는 사실 137억광년이고 우주는 팽창하고 있으며 또 관측가능한 우주의 반지름이 465억광년이라는 내용의 수정된 (과학적) 가사를 제안했다. BBC 라디오 4의 한 프로그램에서 멜루아와 사이먼 싱을 함께 초청했고, 이날 멜루아는 싱이 썼던 예의 농담조(tongue-in-cheek) 가사 버전의 노래를 녹음하기도 했다.

2006년에 그는 웨스트잉글랜드 대학교(University of the West of England)에서 명예디자인박사학위를 받았다. 이는 그가 “대중들의 과학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키고, 특히 고교에서 과학, 공학, 수학을 홍보하는 데 공을 세웠으며 고등교육와 중등교육 사이에 훌륭한 연계고리를 만들어준 데 따른 것”이었다. 이는 또한 2008년에 영국물리학연구소(Institute of Physics)에서 켈빈 메달(Kelvin Medal)을 수여받는 것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일반 대중들에게 물리학을 잘 설명해준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2008년 7월에는 런던 대학교(University of London)의 로얄 홀로웨이(Royal Holloway) 에서 명예과학박사학위를 받았다. 2011년 7월에는 켄트대학교(University of Kent)에서 또 명예과학박사학위를 받았으며, 2012년에는 과학 교육, 정보 제공 및 학문 자유에 공헌한 바를 인정받아 성 앤드류스(St Andrews) 대학교로부터 명예이학박사(Honorary Degree of Doctor of Science) 학위를 수여받았다.

사이먼 싱은 2006년에 영국의 과학계몽 자선재단인 ‘센스어바웃사이언스(Sense About Science)’의 의뢰를 받아, 대체요법 중 하나인 동종요법(Homeopathy)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다. 싱이 진행한 한 조사에서 어떤 학생이 10명의 동종요법사(homeopath)들에게 말라리아 예방을 위한 대안적 치료법이 될 수 있느냐고 질문했다. 그들 10명 모두 동종요법을 대안적 치료법으로 제시했다. 이 조사 결과는 BBC 에도 보도됐다. (편집자주 : 동종요법은 사실상 맹물을 약으로 속여서 파는 것으로, 당연히 그 어떤 질환에도 치료효과가 증명된 것이 없다.)
 



그는 ‘과학과 공학에 대한 캠패인’(Campaign for Science and Engineering, http://sciencecampaign.org.uk) 자문 위원회의 멤버이다. 릴라바티상(Lilavati Award, 번역자주 : 4년에 한번씩 열리는 국제 수학자 회의에서 수여하는, 수학의 대중적 이해 증진에 기여한 이에게 주는 상)의 첫 수상자이며, 2011년 2월에는 영미권의 가장 큰 과학적 회의주의자들 단체인 ‘회의주의적 탐구 위원회’(Committee for Skeptical Inquiry, http://www.csicop.org)의 펠로우로 선정되었다.

카이로프랙틱 소송 및 반격

2008년 4월 19일에 영국의 시사지인 ‘가디언(Guardina)’은 사이먼 싱의 기사 ‘척추에 숨겨진 함정을 조심하라(Beware the Spinal Trap)’를 게재했다. 이 기사는 카이로프랙틱 시술에 대한 비판 내용이 담겨있었으며, ‘브리티쉬 카이로프랙틱 협회(British Chiropractic Association)’로부터 소송을 당한 계기가 됐다. 사건이 터지고서 ‘가디언’은 사이먼 싱을 기꺼이 지지하고 법률자문 관련 비용을 댔으며 심지어 사이먼 싱이 동의할 경우 카이로프랙틱 협회와의 합의비용까지 대신 내어주기로 하였다.

이 기사의 내용은 사이먼 싱과 에드짜르트 에른스트(Edzard Ernst)가 공동으로 낸 책인 ‘사기인가 치료인가? 심판대에 선 대체의학’의 주제이기도 했으며, “귓병(ear infections), 영아 산통(infant colic)과 같은 문제들을 다루는데 있어” 아무 효험이 없는 카이프랙틱 시술에 대한 다양한 비판적 주장을 담고 있었다.


당신은 현대의 카이로프랙틱 시술사들이 허리통증 문제를 다루는 일에만 전념하고 있다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제 현실을 보면 그들은 여전히 매우 황당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이들중 일부는 자신들이 모든 질병을 다 치료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이보다 더 온건한 카이로프랙틱 시술사들조차 (자신들의 시술이 갖고 있는 효능에 대해) 주제넘은 생각에 빠져있다. ‘브리티쉬 카이로프랙틱 협회’는 뚜렷한 근거도 없이 자기 협회 회원들이 산통(colic), 불면증, 귀 감염 등에 시달리는 어린아이들을 치료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협회는 소위 카이로프랙틱 전문가라는 사람들을 대변하는 핵심으로, 사이비 치료를 즐거이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


법정 다툼


2009년 5월, 영국 왕립법원(Royal Courts of Justice)의 이디(Eady) 판사는 예비심리(preliminary hearing)을 통해, 사이먼 싱이 쓴 기사 내용 중에서 “사이비 치료를 즐거이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happily promotes bogus treatments)”라는 구절은 개인적 의견이나 은유를 넘어서 어떤 뚜렷한 사실을 전한 것으로, 현재 쟁점이 되고 있는 문제인 ‘브리티쉬 카이로프랙틱 협회’가 어린이들의 질병을 다루는 데 있어서 자신들의 시술과 관련 거짓된 홍보를 하고 있다고 하는 문제와 관련해, (입증되지않은) 단정적 의미를 담은 것으로 볼 수 있다며 피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사이먼 싱은 그 구절에 그같은 의미를 담을 의도가 있다는 것을 부정했다.

사이먼 싱은 패소 후 판결에 항소했다. 재판에 졌을 경우 입게될 재정적 부담을 더 증가시킨 것이다. 2009년 10월에 법원은 이 항소를 승인했다.

2010년 2월, 왕립 법원의 판사 3명이 배석하여 판결 전 심리(pre-trial hearing)가 열렸다. 2010년 4월에 왕립 법원은 사이먼 싱의 항소을 받아들여 “고등법원(high court, 번역자주 : 영국에서는 1심 법원)에서의 판결 접근은 그릇되었다”고 판결했다. 항소심 법정은 1심 판결을 뒤집어 사이먼 싱의 카이로프랙틱 관련 언급들은 사실을 확언한 것이며, 또한 법리적으로 ‘공정 논평의 항변’으로서 면책될 수 있다고 판결하였다. 이어 ‘브리티쉬 카이로프랙틱 협회’는 이 판결 직후 상고를 포기했으며, 법정다툼은 종결됐다.
 



법정 밖에서

이디 판사의 예비심(preliminary ruling, 번역자주 : 영국에서 1심을 부르는 명칭으로 추측됨)이 항소심(appeal court)에서 뒤집어지기 전에, 전문가들은 이 판결이 대체의학에 대한 비판을 위축시키는, ‘겁주기 효과(chilling effect)’로 작용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네이처(Nature)’지도 해당 사건을 논하는 편집인 논평을 통해 ‘브리티쉬 카이로프랙틱 협회’가 유럽연합헌법의 인권조항(european Convention on Human Rights)으로서 명시된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Editorial, 'Unjust burdens of proof', Nature 459, 751 (11 June 2009) | doi:10.1038/459751a; Published online 10 June 2009.)

‘월스트리트저널(Wallstreet Journal)’ 유럽판도 해당 재판을 거론하며 영국의 명예훼손법이 ‘언론의 자유를 위축시킨 사례(chills free speech)’라고 비판하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Salil Tripathi. Britain Chills Free Speech. The Wall Street Journal Europe, 4 June 2009)


결과적으로 미국 하원은 영국의 명예훼손 판결이 미국에서 강제력을 가질 수 없도록 하는 법안을 고려 중에 있다. 사이먼 싱이 영국 명예훼손법의 마지막 희생자일 것 같지는 않다. 과학적, 정치적 논쟁에 소송으로 재갈을 물리려는 시도는 서구 문명의 진보를 가능케한 바로 그 원칙들을 무너트리는 시도인 것이다. “과학의 목적은, 무한한 지혜로 통하는 문을 여는 것이 아니라 실은 무한한 오류들에 대해 엄격한 제한을 두려는 것이다.”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갈릴레오의 생애’에서 쓴 구절이다. 영국 정치인들이 현재의 영국 명예훼손법을 개정하여, 오류가 아닌 지혜가 승리하도록 도와야 할 시점이다.


과학계몽 관련 자선재단인 ‘센스어바웃사이언스(Sense About Science, http://www.senseaboutscience.org)’도 시민들이 이 사건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하기 위한 캠페인을 진행했다. 센스어바웃사이언스는 성명을 발표하고, “근거에 기반한 과학적 논쟁에 영국의 명예훼손법이 끼어들 자리는 없다(Keep libel laws out of science)”는 제목으로 온라인상의 호소를 시작하였다. 이 호소에 2만명이 서명으로 동참하였다.


이 명예훼손 소송 사건이 널리 알려지자마자 하루만에 적어도 500명 이상의 카이로프랙틱 시술자들에 대해 공식적인 항의 서한이 발송되는, 대중들의 “분노의 역습(furious backlash)”이 일어났다.

외부로 유출된, 카이로프랙틱 시술사들 협회 중 하나인 ‘맥티머니 카이로프랙틱 협회(McTimoney Chiropractic Association)’가 협회 회원들에게 보낸 메시지에 따르면, 협회는 카이로프랙틱 시술의 부작용으로서 두통이나 복통이 일어나는 것과 관련 환자들의 항의를 유발할 수 있을만한 내용의 광고 전단지는 제거하고, 새 환자나 전화 문의자들을 극히 조심하여 상대할 것을 주문하였다. 또한 협회에서는 회원들에게 “홈페이지가 있다면 지금 당장 폐쇄할 것”과 “마지막으로, 이 문제에 대해 절대 다른 사람들과 토론하지 말 것, 특히 환자들과 토론하지 말것”을 주문하였다.

한 카이로프랙틱 시술사는 언론을 통해 “‘(브리티쉬 카이로프랙틱 협회가) 사이먼 싱에게 소송을 제기한 것은 지금까지의 그 어떤 ‘스트라이샌드 효과(streisand effect, 번역자주 : 어떤 사실을 감추거나 숨기려다가 그것이 오히려 더 퍼져나가는 상황. 영화배우 바브라 스트라이샌드가 자기 저택이 촬영된 사진을 사생활 침해를 이유로 삭제할 것을 요구했지만 그 때문에 오히려 대중의 관심이 커져 해당 사진이 인터넷에서 더 널리 퍼졌던 사건에서 유래한다.)’보다도 더 안 좋은 상황을 만들어냈으며, 카이로프랙틱 시술사들은 그 상황을 알지만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언급한 것이 인용되었다.
 



대중들이 ‘브리티쉬 카이로프랙틱 협회’에 과학적 논쟁에 참가할 것을 요구하자, ‘브리티쉬 카이로프랙틱 협회’는 29개의 참고 문헌에 의해 뒷받침되는, 카이로프랙틱 시술을 옹호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관련해 ‘가디언’은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Martin Robbins. Furious backlash from Simon Singh libel case puts chiropractors on ropes. The Guardian, 1 March 2010)


‘브리티쉬 카이로프랙틱 협회’의 성명과 참고 문헌들은 발표되자마자 하루만에 블로거들에 의해 어마어마한 비판의 난자를 당했으며, 이는 후에 영국의 가장 권위있는 의학학술지 중 하나인 ‘브리티쉬메디컬저널(British Medical Journal)’을 통해 더 치명적으로 탄핵를 당했다. ‘브리티쉬 카이로프랙틱 협회’가 성명에서 제시한 참고문헌 중 10개는 카이로프랙틱 치료와 관련이 없었으며, 몇 개는 아예 본격적인 연구가 포함되어 있지도 않은 것들이었다. 나머지는 그야말로 조악한 실험 몇 가지의 모음에 불과했다. 더 심각한 것은 이 성명에서 ‘브리티쉬 카이로프랙틱 협회’는 카이로프랙틱을 비롯 수많은 대체의학 치료의 효과를 부정하고 있는 ‘코크란 연합’ 고찰논문(Cochrane Review)의 결과를 생뚱맞게도 효과가 있다는 식, 전혀 정반대로 소개했다는 점이다.


이후 새로운 보고서에서, ‘제너럴 카이로프랙틱 위원회(General Chiropractic Council, 번역자주 : 또다른 영국의 카이로프랙틱 시술자들 조직. 영국에는 카이로프랙틱 시술자들의 조직이 여러 개 있다.)’는 ‘브리티쉬 카이로프랙틱 협회’가 카이로프랙틱에 관해 하고 있는 주장 - 바로 사이먼 싱에 대한 명예훼손 소송의 핵심과 연관된 - 과는 거리를 두었다. ‘가디언’은 바로 앞의 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제너럴 카이로프랙틱 위원회’에서 카이로프랙틱 치료는 영아 산통(갑작스런 복통), 야뇨증, 귀 감염, 천식 등에 효과가 있다는 근거가 없다고 결론내린 것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사이먼 싱이 ‘사이비(bogus)’라고 주장하여 소송당한 바로 그 부분이기 때문이다.


법정 밖에서 : 추가

‘브리티쉬 카이로프랙틱 협회’의 명예훼손 소송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사이먼 싱은 일시불로 수만 파운드의 비용을 감당해야 했었다. 그러나 이 재판은 명예훼손 법안을 개정하는 여론을 확산시키는 기폭제가 되어서, 2010년에 영국 내 모든 주요 정당들이 이 법안을 개정하는 공약을 내놓는 계기가 됐다.
 



2013년 4월 25일에 ‘명예훼손법 2013년 개정법률(Defamation Act 2013)’이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승인을 받아 공식 법률이 됐다. 이 법률은 ‘표현의 자유와 명예의 보호 사이의 균형(responsible publication on matters of public interest)’을 확보하기 위해 개정됐다고 밝히고 있다.

개정된 법률 하에서, ‘원고(plaintiff)’는 재판부가 사건을 인용하기 전에 먼저 자신이 명예훼손으로 인해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는 것을 입증해야만 한다. 이 법률은 웹사이트 운영자들에 대해서도 ‘공공의 이익에 관한 사안에서의 책임 있는 출판(responsible publication on matters of public interest)’이라는 의무를 부과하면서, 동시에 ‘진실 되고 정직한 의견(truth and honest opinion)’에 대해서는 명문화된 보호를 추가했다.

사이먼 싱의 저서

Singh, Simon (1997). Fermat's Last Theorem. Fourth Estate. ISBN 1-85702-669-1. 한국어판 제목 :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Singh, Simon (1998). Fermat's Enigma: The Epic Quest to Solve the World's Greatest Mathematical Problem. Anchor. ISBN 0-385-49362-2. 한국어판 제목 :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Singh, Simon (2000). The Code Book: The Science of Secrecy from Ancient Egypt to Quantum Cryptography. Anchor. ISBN 0-385-49532-3. 한국어판 제목 : ‘사이먼 싱의 암호의 과학’

Singh, Simon (2005). Big Bang: The Origin of the Universe. Fourth Estate. ISBN 0-00-716220-0. 한국어판 제목 : ‘우주의 기원 빅뱅’

Singh, Simon; Ernst, Edzard (2008). Trick or Treatment? Alternative Medicine on Trial. Transworld. ISBN 978-0593061299.

Singh, Simon (2013). The Simpsons and Their Mathematical Secrets. Bloomsbury. ISBN 1-620-40277-7 한국어판 제목 : 심슨 가족에 숨겨진 수학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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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명예훼손법에 대하여

영국법과 미국법은 명예훼손 문제를 기본적으로 ‘형사’가 아닌 ‘민사’로 다룬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하지만 두 나라의 법에 차이도 있다. 같은 ‘민사’라고 하더라도 영국은 미국과 비교하면 ‘표현의 자유’보다는 ‘명예의 보호’를 더 중요시하고 있다.

미국 명예훼손법과 비교, 영국 명예훼손법의 가장 두드러진 차이는 바로 ‘피고 거증책임(burden of proof on the defendant)’이다. 이는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원고’가 자기 명예가 어떻게 훼손되었다는 것인지 불법성을 입증해야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불법행위자로 지목된 ‘피고’가 자기 표현과 관련 적법성을 입증하지 못하는 한 법적책임을 져야 함을 의미한다. (2013년 이전까지에만 해당)

영국의 명예훼손법에서는 피고가 다음 세가지 면책 항변을 행사해서 이것이 받아들여질때에만 명예훼손 관련 법적 책임을 면할 수 있다.

1. 진실의 항변(defence of justification)

공표된 내용이 객관적으로 사실이다고 항변하는 것이다. 객관적 사실임을 항변해야하므로, 이 경우 피고인 공표자가 자기 주관적으로 사실로 오인하거나 또 선의로 이해될 측면이 있더라도 적법한 항변이 되지 않는다. 주장이 사실임을 얘기할 수 있는 합당한 근거를 반드시 대어야 한다. 물론, 이는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개인의 프라이버시 같은 것을 폭로한 경우에 쓸 수 있는 항변은 아니다.

2. 공정 논평의 항변(defence of fair comment)

공익사항에 관하여 하는 공정한 논평이다고 항변하는 것이다. 사실관계 문제보다는 의견관계 문제를 변호하는 항변으로, 피고측은 통상 공표된 주장이 ‘의견표명의 건’일때는 이 법리를, ‘사실언급의 건’일때는 ‘진실의 항변’의 법리로 항변을 하게 된다(구분이 모호한 경우도 많다고 한다). 당연히 공익적 목적이고 뭐고간에 허위사실 공표를 했을때는 ‘진실의 항변’ 법리도, 또 ‘공정한 논평의 항변’ 법리도 변호의 무기로 사용될 수 없다.

3. 특권의 항변(defence of previlege)

개인의 명예권보다 공공의 이익 또는 특정한 개인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것이 매우 정당한 경우임을 들어 항변하는 것이다. 특권의 항변에는 두가지가 있는데, 절대적 특권(absolute previlege)은 국회의원의 의회에서의 진술, 재판에서 증인의 진술, 공개된 재판절차에 대한 보도, 공무집행상의 발언 등등으로 이는 무조건적인 면책에 해당되고, 상대적 특권(qualified or conditioned previlege)은 공공집회에 대한 보도, 도의적 또는 사회적 의무에 따른 발표, 기업 또는 기관에서의 내부고발성 양심선언 등등으로 이는 공표에 특별한 악의가 없는한 조건부 면책에 해당된다.

* * *

영국의 명예훼손법이 원고에 유리했던 것은, 황색언론 등의 문제가 심각한 상황과 명예를 중요시해온 문화적 전통이라는 맥락에서 개인의 사생활 등이 지나치게 침해 당하는 것을 막는 안전장치로서의 나름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어쨌건 이는 기업이나 권력자나 거부가 소송 위협으로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억누르는데도 이용됐고, 또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하려고 원고들이 영국 땅을 밟는 "명예훼손법 관광(libel tourism)" 현상까지 빚는 등 부작용도 매우 컸었다.

영국은 사이먼 싱 소송사건 등 이후로 2013년에 ‘명예훼손법 2013년 개정법률(Defamation Act 2013)’을 만들어, 거증책임 등 기존의 명예훼손 관련 법률을 대대적으로 손을 봤다. 새로운 명예훼손법에서는 누군가에게 명예훼손이 일어났다는 입증의 책임을 피고가 아닌 원고가 지도록 했으며, 명예훼손으로 인한 구체적인 손해액수 등과 관련해서도 모두 원고가 증명, 소명하도록 했다.


참고문헌 :

- 신평, ‘헌법적 관점에서 본 새로운 명예훼손법’ (청림출판, 2004)
- 英 '명예훼손 천국' 오명 벗기 (연합뉴스 기사)
- 명예훼손 지옥 영국, 아이슬란드에 부러운 눈길 (블로그)
- English defamation law (WIKI)
- Defamation Act 2013 (UK Parliament)
- Defamation Act 2013 – What’s Changed? (The Student Law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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