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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청년단 산하에 ‘백의사’ 라는 조직이 있었다, 염동균이란 분이 백의사의 대장이었는데, 이 분이 무서운 사람이었다. 장개석 정부에서 정보부장을 할 정도였다. 모택동 정부에서 눈을 빼낼 정도로 배짱이 두둑한 분이었다. 백의사의 행동대장이 백관옥이었는대 선친을 신민당 시절까지 수행했다.

해방정국 3년 동안 국제정세에 익숙한 이승만과 선친 조병옥, 장택상은 이미 공산화 된 북한의 사정이 여의치 않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남한 남한단독 정부라도 수립할려고 했다. 그런데 유독 백범 김구만이 반대했다.

김구는 아들 김신과 함께 평양에 가서 김일성을 만나 단독정부를 수립하지 못하도록 했다. 중국과 러시아가 이미 공산주의 국가가 되었고 북한도 공산주의 국가가 되었으니 남한도 하루아침에 공산주의 국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남한에 와서 남북 단일정부를 세우자고 주장한 것이다.

장덕수 <동아일보> 주필이 그 당시 살해당했다. 당시 소문으론 백범 조직에서 살해하지 않았냐는 풍문이 돌았다. 백범이 그 뒤 안대희에 살해당했다.

당시 남한 정국운 좌익들이 온통 들끓었다.

대구 폭동 역시 좌익들이 궐기한 대표적인 사건이다.

장택상 씨가 무장경찰 5-600명을 보내달라고 해서 대한청년단 1천여명과 진압차 대구를 내려가 진압하기도 했다.

전북 부안에도 좌익세력이 들끓었다. 대한청년단원 4명이 살해당할 정도였다. 대한청년단원이 부안에 내려가 용의자를 찾기 위해 부안을 뒤집어 놨을 정도였다.

언젠가 김일성 별장에 김일성이 화진포에 온다는 소식을 접하고 백의사들이 별장을 미리 갔다. 백관옥, 김관철, 조희찬 같은 무서운 사람들이 김일성이 별장을 찾아간 것이다. 그런데 김일성이 사전에 정보를 알고 안나타났다. 나중에 세파드 개만 10마리 죽였다고 들었다

그 당시에는 좌우익이 서로 테러하고 그런 분위기였다.

그런 와중에 하루는 서울 충신동 집에 미군 지프차가 3~4대 와서 무장한 미군들이 찾아와 선친을 연행해 갔다. 동빙고동 지하에서 고문을 당했다.당시 미군정 사령관인 하지가 주말휴가를 주론 일본에서 보냈는데 일본인들이 대한민국 우익세력들이 나쁘다는 일본서 애기를 접하고 우익인사를 진압하기 위해서 연행해 8천 볼트 전기로 고문을 가한 것이다.대한청년단 명단을 가져와라고 하며 선친에게 고문을 한 것이다. 당시 대한청년단은 전국 시군단위 지부까지 조직을 갖추었다. 당시 정동영 부친이 대한청년단 전북지부장을 지낼 정도였다.선친은 고문에도 불구하고 끝내 조직을 불지 않았다.

대한청년단 조직이 청년조직으론 제일 막강했다. 하지정부에서 선친에게 테러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좌익들이 당시 설쳐 되면 할수없이 테러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런 경고를 한 것이다.

그래서 장택상과 모의해 서대문 구치소에서 공산당 악질을 집어 넣으면 대한청년단 주먹이 센 사람을 같이 넣으면 서로 싸우다가 죽는 일도 비일비재 했다.

당시 조희찬 이란 분이 별명이 '상하이' 였는데, 1974년 당시 미국서 나올 당시 형무소 안에서 200명을 죽였다고 할 정도로 온갖 소문이 나돈 상황이었다.<4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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