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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동주’의 반일날조 역사왜곡 ... 후쿠오카 감옥에서 1800명이 살해됐다?

하늘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기를 바란 시인을 그린 영화에서조차 발견되는 반일날조

지난 2016년에 개봉한 이준익 감독의 ‘동주’는 윤동주 시인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다. 이 영화에서 윤동주 시인은 후쿠오카(福岡県) 교도소에서 의문의 주사를 맞은 뒤 얼마 후 피를 토하며 사망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윤동주 시인의 사인(死因) 문제는 그렇다치고, ‘동주’에서 특히 시비가 될 수 있는 대목은 영화 말미에 나오는 ‘후쿠오카 감옥에선 알 수 없는 주사를 맞고 1800여 명이 사망했다’는 내용의 자막이다. 이는 마치 당시 악랄한 일제가 수감자들을 상대로 생체실험이라도 감행해 수많은 사람들을 살해한 것처럼 여겨지게 만드는 장치가 아닐 수 없다.



1800여 명이라는 숫자는 과연 얼마나 신빙성이 있을까. 각종 수치 날조로 점철된 문재인 대통령의 3.1절 기념사 문제를 지적해 화제를 모은 바 있는 일본 붓쿄(佛教) 대학 역사학과 이승엽 교수가 이번에는 영화 ‘동주’의 수치 날조 문제를 지적하고 나섰다. (관련기사 : 문재인 3.1절 기념사… 역사전문가들, "북한 날조 자료 인용했나”)

한국 근현대사가 전공인 이 교수는 3월 29일에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당시 일본의 형무소 관련 통계를 모은 자료인 ‘행형통계연보(行刑統計年報)’를 인용해 후쿠오카 교도소 수형자 1800명 사망설의 비합리성을 학문적으로 조목조목 반박했다.  

이날 이승엽 교수는 “(일본) 사법성에서 매년 간행하는 ‘행형통계연보’는 내지(內地, 일본 열도)의 형무관계의 각종 통계를 집성한 것인데, 아쉽게도 윤동주가 후쿠오카에 수감되어 있던 1944년 언저리의 부분은 발품을 좀 팔지 않으면 볼 수 없는 관계로, 일단 국회도서관 디지털 라이브러리에서 볼 수 있는 가장 늦은 시기의 통계인 1939년판을 찾아보았다”고 전했다. 

이 교수는 ‘행형통계연보’ 1939년도 형무소별 재감인원 자료를 제시하며 “1939년말 현재 후쿠오카 형무소에는 1397명이 수감되어 있으며, 각 지소를 전부 포함해도 2000명이 조금 넘는 숫자이다”고 밝혔다. 여기서 2000명이 조금 넘는 숫자라는 것은 물론 조선인 수감자 뿐만이 아니라, 그보다 수십배 많을 수 밖에 없는 일본인 수감자를 포함한 숫자다.

이 교수는 이어 “1940년대 들어 대대적인 확장이 이루어져, 재감자가 몇 배, 몇 십배 늘지 않은 이상, 후쿠오카 형무소의 수용인원을 기준으로 볼 때 ‘생체실험으로 1800명 사망’이란 건 성립하기 어려운 이야기라는 걸 알 수 있다”고 분석했다. 병합정책으로 인해 당시 조선인도 사실상 일제 신민으로 간주된 상황이었는데, 조선인은 말할 것도 없고 아예 내지 일본인까지 모조리 살해해야 가능한 숫자가 바로 1800명이라는 것.



이 교수는 해당 자료를 통해 1939년 일본 내 형무소의 총 조선인 수감자가 1391명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그는 “내지(일본 열도)의 형무소 전체 수감자 26,651명 중, 조선인은 남녀 합쳐서 1,391명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당시 일본 형무소 전체에서 일본인 총 수감자가 조선인 총 수감자의 19배에 달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교수는 그러면서 “태평양전쟁시기에 조선인 도항자수의 증가와 그에 수반한 범죄의 증가, 치안유지법 등 사상사건의 증가 등으로 숫자가 크게 늘었을 수 있겠지만, 이 시기의 1,400여명을 기준으로 생각해 볼 때, 1944년 일본 전국(내지 전체)의 조선인 수감자를 달달 긁어모아야 1800명이라는 숫자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고 강조했다.

이승엽 교수의 지적을 종합하면, 1800명이라는 숫자는 당시 일본이 전국 형무소에 있는 조선인 총 수감자를 모조리 살해했다고 주장해야 혹시 가능한 숫자다. 결국, 후쿠오카 형무소에 한정하건, 일본 형무소 전체로 확장하건 1800명이라는 숫자는 도저히 말이 되지 않는 숫자임을 알 수 있다.

이 교수는 “기왕에 이상한 숫자가 많아서 '업자'들을 귀찮게 하는 마당에(예를 들면, 한양대 박찬승 선생님이 지적하셨던 바, 과도하게 뻥을 친 ‘한국독립운동지혈사’의 3.1운동 사망자수 등), 새롭게 이상한 숫자를 만들어 내는 건 부탁이니 이제 좀 그만 뒀으면 좋겠다”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사실, ‘동주’는 윤동주 시인을 존경하는 이준익 감독이 특히 흑백촬영을 고집한데다가 일부러 상업 광고예산도 잡지 않았으며 굳이 스타 캐스팅도 피했을 만큼 실제 연출에서도 시종일관 이 감독의 진지함이 돋보이는 영화다. 

일제시대를 소재로 했을 경우, 감독의 순수한 예술혼을 불태운 영화에서조차 불필요한 반일괴담이 덧붙여져야 하는게 한국 영화의 현실이라면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편집자수첩] 윤동주 시인의 사인(死因)은?


윤동주 시인의 사인에 대해서는 생체실험에 의해 희생됐다는 설과 그렇지 않다는 설이 갈린다.


생체실험에 희생됐다는 설을 가장 지지하는 근거로서 많이 거론되는 것은 미국 국립도서관 문서에서 규슈(九州) 제국대학이 후쿠오카 형무소 재소자들을 상대로 바닷물을 수혈하는 생체실험을 했다는 증언이 1948년 일본 전범 재판 중 나온 바가 있다는 것이다.(관련기사 : "윤동주 日형무소에서 생체실험 당해")


문제는, 전범 재판에 증언으로 나오고 기록으로 남은 문제에 대해서 당시 미군이 별도 가타부타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런 증언이 있기는 했다는 것으로, 현재로서 단정할 수 있는 것은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생체실험를 한다는 설은 당시에도 이미 돌고 있었던 설이라는 것.


윤동주의 시를 일본어로 최초 완역해 일본에 소개한 바 있는 일본의 윤동주 전문가 이부키 고(伊吹鄕)는 후쿠오카 형무소에 근무했던 형무소장, 간수, 수형자들과의 면담을 해본 결과, 생체실험 이야기를 금시초문이라고 전한다. 이부키 고는 주사를 놓을 이유도 없고 주사를 놓았다는 자료도 나온 바가 없다면서 이를 와전된 소문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관련기사 : 동주 기리는 자리에 '의문의 주사 없었다'라니...)


반대로 이부키 고의 입장을 전한 오마이뉴스 이윤옥 기자는 “세상에 어느 강도가 사람을 죽이고 장부에 '이런 방법으로 아무개를 죽였다'고 기록할까”라고 되물으며 이부키 고의 입장을 반박하고 있다.


사실, 생체실험설은 증거를 떠나서 ‘전설’처럼 남은 저항시인인 윤동주의 사인으로는 너무 끔찍한 것이고 이에 고인에게는 모욕적인 것이기도 해서 가설적으로라도 쉽게 말할 수는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따라서 관련 입장이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 반드시 갈리는 것은 아니기도 하다. 


가령, 오마이뉴스 이윤옥 기자도 생체실험설이 맞다는 역단정도 역시 피하고 있음이 눈에 띈다. 반대로 생체실험설은 일본의 문학평론가가 고노 에이지(鴻農映二)가 1970년대에 최초로 제기해 최근까지도 고수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부키 고는 생체실험설을 반박하고 있는 것을 고려해봤을때 일본의 윤동주 전문가끼리 입장이 엇갈리고 있는 셈이다.


일단 후쿠오카 형무소 1800명 사망설은 숫자가 너무 터무니없어서 부정이 가능하다. 그러나 일본의 형무소에서 일련의 생체실험이 있었는지 여부, 윤동주 시인이 그 희생양이 됐는지 여부는 ‘사실 부존재 증명’이 갖는 근본적 한계로서 결국 현재로서는 단정을 할 수 없다는 것만이 유일하게 단정적으로 내놓을 수 있는 결론이다.

 




반일날조 문제를 비판하는 미디어워치의 관련기사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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