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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일에 김원봉 추켜세운 대통령...한국군의 정체성 ‘자유·반공’ 지우기

문재인 정권의 한국군 정체성 지우기는 이미 오래전 치밀하게 진행

북한군 창설의 주역이자 6.25 남침의 주범인 김원봉을 추켜세운 문재인 대통령의 현충일 추념사는 갑자기 나온 말실수가 아니다. 문재인 정권은 집권하자마자 자유와 반공을 바탕으로 하는 우리 국군의 정체성을 재정립하는 작업을 바닥에서부터 치밀하게 진행해왔다. 이와 관련 미디어워치가 2019년 1월 31일자로 보도했던 기사 ‘[이승만TV 반일 종족주의] “한국군 정체성은 자유와 반공...중국화했던 광복군은 북한군 창설 주역”’를 재공개한다. -편집자 주. 



 “국군의 정체성은 반일이 아니라 반공이다. 한국군의 정통성을 광복군 창설과 공산당 계열 의열단에서 찾는 것은 대한민국의 자유와 인권을 지켜냈던 국군 용사들의 희생을 훼손하는 일이다.”


서울대 경제연구소 정안기 객원연구원(전 고려대 경제학과 연구교수)은 최근 국군의 뿌리를 광복군에서 찾으려는 좌파 세력들의 시도와 관련해 광복군 출신자들은 대한민국 국군이 아니라 북한군 창설의 주역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지적하고 나섰다.

 

정 연구원은 28일 [‘이승만TV' 위기 한국의 근원 반일 종족주의 시리즈 20 - 대한민국 창군그 불편한 진실]강의를 통해 최근 대한민국 국군의 정체성과 정통성을 광복군에서 찾고자하는 논의들이 무성하다면서 문제의식을 강하게 드러냈다. 


좌파 문재인정권에서는 국군의 뿌리를 광복군에서 찾으려는 움직임이 매우 활발하다. 정안기 연구원은 그러나 광복군은 사실상 북한군에 다수가 편입되었으며 6.25 발발 이후에도 한국군 내 상당수 광복군 출신이 북한군으로 갔다고 주장했다. 국군의 정체성은 6.25 발발 이후 자유민주주의 최전선에서 공산주의에 맞서 피를 흘린 국군의 순국선열들에게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진=국방TV 캡처.
▲ 좌파 문재인정권에서는 국군의 뿌리를 광복군에서 찾으려는 움직임이 매우 활발하다. 정안기 연구원은 그러나 광복군은 사실상 북한군에 다수가 편입되었으며 6.25 발발 이후에도 한국군 내 상당수 광복군 출신이 북한군으로 갔다고 주장했다. 국군의 정체성은 6.25 발발 이후 자유민주주의 최전선에서 공산주의에 맞서 피를 흘린 국군의 순국선열들에게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진=국방TV 캡처.



실제 한겨레신문과 같은 좌파 매체들은 수년 전부터 광복군과 의열단 등이 국군의 뿌리라는 기사를 꾸준히 내보내고 있다. 최근엔 국방부가 국방백서에서 ‘북한은 우리의 적’으로 규정한 주적 표현을 삭제했다. 군 내 안보강연이나 각종 행사에서조차 이제는 반공보다는 반일을 강조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친북행보를 보이는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후 문화계에서도 일제시대를 그린 반일종족주의 코드의 영화나 뮤지컬들이 쏟아지고 있다. 


(관련기사: “신흥무관학교가 대한민국 국군의 뿌리”육군 '독립군과 광복군에서 뿌리 찾기' 나섰다“대한민국 국군의 뿌리는 임정 정규군인 광복군”"북한은 적" 삭제한 2018 국방백서 발간[국방뉴스]17.12.12 "국군의 뿌리는 광복군"


국군의 정체성은 반일이 아니라 반공이다. 사진=인천상륙작전 포스터.
▲ 국군의 정체성은 반일이 아니라 반공이다. 사진=인천상륙작전 포스터.



광복군은 장제스 군대의 일부 무늬만 군대’ 상황에서 종전”

 

정 연구원은 “(최근국군 내부에서조차 국군의 뿌리를 김원봉이 이끌었던 의열단이라고 홍보하고 있다고 한다며 오늘날 국군의 정체성을 합법적이고 조직적인 반공국가의 물리력이라고 정의한다면 이상의 내용들은 타당성을 갖는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1940년 9월 중국에서 창설된 임시정부 예하 광복군 사령부에 대해 중국정부의 전면적인 지원과 협력없이는 본격적인 활동이 불가능했다며 계급과 복장은 물론이고 명령과 조직체계마저도 중국군화해야 했다고 설명했다이어 급료도 중국 정부가 지급했다며 결국 광복군은 장개석(장제스군대의 일부였고무늬만 군대에 불과한 상황에서 종전을 맞이했다고 전했다.


한국군은 6.25 전쟁을 거치며 반공 군대로 완전히 새롭게 태어났다. 사진=포화속으로 스틸컷.
▲ 한국군은 6.25 전쟁을 거치며 반공 군대로 완전히 새롭게 태어났다. 사진=포화속으로 스틸컷.



“의열단 김원봉은 북한군 최고간부로 남침...6.25 발발하자 광복군 출신 북한군에 투항


이어 광복군 출신자들은 제대로 된 군사교육은 물론이고 실전경험도 전무했던 빈껍데기 군인이었다며 특히 의열단 단장이었던 김원봉은 해방 이후 월북에서 북한군 남침에 기여했던 북한군 최고위 간부였다고 지적했다


또 광복군과 의열단의 적은 일본군이었지만한국군의 적은 북한군이었다며 창군기 광복군 경력자들의 활동은 해방 공간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대응하는 정치공학의 산물이었다고 비판했다.

 

정 연구원은 한국군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광복군 창설과 공산당 계열의 의열단에서 찾고자 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자유와 인권을 지켜냈던 국군 용사들의 희생과 헌신을 폄하하고 훼손하는 일이라고 날을 세웠다.

 

그러면서 창군기 국군에서 활동했던 광복군 경력자들은 한국전쟁 발발과 함께 곧바로 북한군에 투항하는 행태를 보였다며 광복군 출신자들은 대한민국 국군이 아니라 북한군 창설의 주역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 정안기 연구원은 광복군 사령부에 대해 “중국정부의 전면적인 지원과 협력없이는 본격적인 활동이 불가능했다”며 “계급과 복장은 물론이고 명령과 조직체계마저도 중국군화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사진은 '이승만TV' 캡처.
▲ 정안기 연구원은 광복군 사령부에 대해 “중국정부의 전면적인 지원과 협력없이는 본격적인 활동이 불가능했다”며 “계급과 복장은 물론이고 명령과 조직체계마저도 중국군화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사진은 '이승만TV' 캡처.


“한국군6.25전쟁 거치며 반공군대로 탈바꿈

 

정안기 연구원은 한국전쟁 이후의 국군에서 정체성과 정통성을 찾아야한다고 시사했다그는 한국전쟁 이전의 국군 상황에 대해 “1948년 11월 대한민국 정부가 비록 국군조직법을 공포해서 국군 창설을 선포했지만독자적인 작전권 행사는 1949년 6월 이후였다고 설명했다.

 

또한 국군은 한국전쟁 이전까지 주로 미군이 남긴 무기와 장비로 무장했다며 더욱이 수뇌부의 군사 경력도 식민지기 일본군 혹은 만주군에서 대위~소령군 출신이었기 때문에 연대급 이상 부대를 지휘할 만한 능력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정 연구원은 “1981년까지 미 8군 사령관 특별고문으로 활동했던 짐 하우스만에 따르면, 1950년 한국전쟁 개전 당시까지도 한국은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구별이 불분명한 사회였다며 한국 사회는 물론이고 국군 내부에서조차도 반공 개념이 정립되지 못한 상황에서 한국전쟁을 맞았다고 말했다.


6.25 당시 작전을 논의 중인 백선엽 장군의 모습. 사진=위키백과
▲ 6.25 당시 작전을 논의 중인 백선엽 장군의 모습. 사진=위키백과


 

그는 “1950년 한국전쟁 발발 당시까지도 국군은 정체성이 불분명한 군대였지만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한국군은 북한군이라는 분명한 주적개념의 정립과 함께 징병제를 실시해 조직적인 군사동원이 가능하게 됐다며 “1950년 8월부터 1953년 6월까지 10개 사단이 신설됐고 병력규모도 70만명에 달하게 됐다고 전했다.

 

특히 “1951년 휴전 협정 개시 이후한국군의 아버지로 회자되는 제임스 벤 플릿 장군(8군사령관)이 중심이 돼 한국군 증강 정책을 실시했다며 이런 과정을 거쳐 공세능력을 구비한 정규군으로 탈바꿈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한국군의 수뇌부는 물론 고급 지휘관까지도 미국 군사학교 유학을 통해 효율적인 군사력 운용과 지휘능력을 구비하게 됐다며 한국군은 한국전쟁을 거치며 국민의 군대이자 북한군을 주적으로 하는 오늘날의 반공군대로 탈바꿈했다고 재차 강조했다.


▲ 정안기 연구원은 “한국군은 한국전쟁을 거치며 국민의 군대이자 북한군을 주적으로 하는 오늘날의 반공군대로 탈바꿈했다”고 강조했다. 사진은 '이승만TV' 캡처.
▲ 정안기 연구원은 “한국군은 한국전쟁을 거치며 국민의 군대이자 북한군을 주적으로 하는 오늘날의 반공군대로 탈바꿈했다”고 강조했다. 사진은 '이승만TV' 캡처.


일본 유산미국 지원 토대로 창설발전… 부끄러워할 것 아니다

 

정안기 연구원은 한국군 창설을 주도했던 육군 장교들에 대해서 강의를 이어나갔다그는 미군정기건국기한국전쟁기 한국군 장교는 군사영어학교조선경비사관학교육군사관학교현지임관육군종합학교육군보병학교 등을 통해 33036명이 배출됐다며 “1946년 1월 14일 군사영어학교생 60명을 대상으로한 미군식 군사교육의 개시는 국군 창설의 첫 걸음이었다고 전했다.

 

정 연구원은 군사영어학교 출신 110명의 장교단은 1950~60년대 국군의 수뇌부를 형성했다며 군사영어학교생들의 출신은 일본군 87만주군 21기타 2명으로군사영어학교는 육군대장 8명을 시작으로 총 78명의 장성급을 배출했다고 밝혔다.

 

그는 “1946~1953년까지 국군창설을 주도했던 한국군 수뇌부는 대부분 일본군과 만주군 경력을 갖는 군사영어학교 출신자들이었다며 육군특별지원병 이등병으로 일본군에 입대했던 경력자들도 1943년부터 1953년까지 군사영어학교를 비롯한 여러 정규 군사학교를 거쳐 한국군 장교로 임관했다고 말했다.


영화 포화속으로의 한 장면 사진=네이버영화 스틸컷.
▲ 영화 포화속으로의 한 장면 사진=네이버영화 스틸컷.


 

이어 “1950년부터 1953년까지 다양한 병과에 걸쳐 총 4935명이 현지 임관(하사관급 병사를 장교로 임관시키는 제도)했는데현지 임관자들은 낙동강 방어전과 북진작전고지탈환전에서 발군의 군사적 역량을 발휘했다고 말했다더불어 일본군 출신 군사 경력자들에 대해선 일본군 복무를 통해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군사지식풍부한 실전경험을 쌓았고한국전쟁은 이들의 군사적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역사적 무대였다고 설명했다.


정안기 연구원은 대한민국은 한국전쟁을 거치며 일본군 경력의 인적 유산을 계승하고 미군의 군사기술을 학습하면서충성심과 애국심으로 충만한 대한민국 군대를 창설할 수 있었다며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이는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그는 일본의 유산과 미국 지원이 있었다하더라도 한국군의 창설과 발전은 한국인의 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결론 내렸다.


순국선열이 묻혀 있는 국립서울현충원 전경. 사진=국가보훈처.
▲ 순국선열이 묻혀 있는 국립서울현충원 전경. 사진=국가보훈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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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TV 반일 종족주의] 조선인 징병, 조선사회가 먼저 요청해 시행되자 환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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