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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피디아 일본어판 번역] ‘사쿠라이 요시코(櫻井よしこ)’

한일 상호 이해를 위한 ‘위키피디아 일본어판(ウィキペディア 日本語版)’ 번역 프로젝트 (18)



※ 본 콘텐츠는 ‘위키피디아 일본어판(ウィキペディア 日本語版)’에 게재된, ‘사쿠라이 요시코(櫻井 よしこ)’ 항목을 번역한 것이다(기준일자 2020년 2월 29일판, 번역 : 박아름).

일본 위키는 한국에서는 우편향으로 알려져 있지만 일본에서는 여느 나라에서의 위키에 대한 평가가 다 그렇듯 좌편향이라고도 지적받고 있다. 따라서 ‘개념’이나 ‘사건’에 대한 항목이 아닌, 자유·보수 성향 쪽의 ‘인물’과 ‘조직’에 대한 항목과 관련해서는 위키 특유의 정파성도 감안해서 내용을 독해해주기 바란다.


또한, 월간조선에서도 2008년도에 사쿠라이 요시코의 기고문 ‘[특별기고] 중국의 南進전략 최종 목표는 ‘한반도 전체 지배’‘을 게재했으며, 미래한국에서도 2016년도에 사쿠라이 요시코의 인터뷰 “정상국가 일본이 한국 안보에 도움”을 게재한 바 있다. 참고하기 바란다.





사쿠라이 요시코(櫻井よしこ, 1945년 10월 26일-)는 저널리스트이자 인터넷 방송 뉴스캐스터다. 동시에 국가기본문제연구소(国家基本問題研究所) 이사장, 겐론테레비(言論テレビ) 주식회사 회장(대표권은 없음),  ‘21세기의 일본과 헌법(21世紀の日本と憲法)’ 유식자회의(有識者会議) 대표, ‘아름다운 일본의 헌법을 만드는 국민의 모임(美しい日本の憲法をつくる国民の会)’ 공동대표도 맡고 있다. 본명 한자는 사쿠라이 요시코(櫻井良子). 이전에는 櫻井良子 로 활동했지만 1994년 4월부터 櫻井よしこ 로 표기를 변경했다. 



사쿠라이 요시코(櫻井よしこ)




탄생(生誕): 사쿠라이 요시코(櫻井良子, さくらい よしこ) 1945년 10월 26일(현 74세),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연방 하노이 (현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 하노이)에서 출생

국적(国籍): 일본

교육(教育): 하와이대학 마노아캠퍼스 역사학부 졸업

직업(職業): 저널리스트, 뉴스캐스터

대표경력(代表経歴): ‘NNN 오늘의 사건(NNNきょうの出来事)’ 메인 캐스터, ‘신보도 프레미아 A(新報道プレミアA』)’ 코멘테이터

직책(肩書き): 국가기본문제연구소 이사장, ‘21세기의 일본과 헌법’ 유식자간담회 대표, ‘아름다운 일본의 헌법을 만드는 국민의 모임’ 공동대표, 겐론테레비 회장

공식홈페이지: http://yoshiko-sakurai.jp/



목차

1 경력
   1.1 출생
   1.2 저널리스트, 언론활동
   1.3 미디어 출연

2 인물, 발언
   2.1 역사인식
   2.2 세계
   2.3 저널리즘
   2.4 황실
   2.5 국적법 개정, 외국인 참정권
   2.6 선택적 부부별성 제도
   2.7 원자력발전
   2.8 오키나와 기지 문제
   2.9 기타

3 비판

4 강연회 중지 사건

5. 저서
   5.1 단저
   5.2 공편저

   5.3 번역 

 



1 경력(経歴)

1.1 출생(生い立ち)

베트남민주공화국 하노이의 야전병원에서 일본인 부모 사이에 태어났다. 패전 후, 오이타(大分) 현 나카쓰(中津) 시에 살았던 어머니(오지야 시(小千谷市) 출신)의 고향에 가까운 니가타(新潟) 현 나가오카(長岡) 시로 이사했다.

니가타 현립 나가오카 고등학교 졸업 후, 하와이대학 마노아 역사학부 졸업.

1.2 저널리스트, 언론활동(ジャーナリスト・言論活動)

영문신문 ‘크리스찬 사이언스 모니터(The Christian Science Monitor, クリスチャン・サイエンス・モニター)’ 도쿄지국 등을 거쳐 1980년 5월~1996년 3월까지 닛폰테레비(日本テレビ) ‘NNN 오늘의 사건(NNNきょうの出来事)’ 메인 캐스터를 맡았다. 1993년 일본여성방송자 간담회상(日本女性放送者懇談会賞) 수상, 

1995년, ‘약해 AIDS 사건(薬害エイズ事件)’을 다룬 ‘에이즈범죄, 혈우병환자의 비극(エイズ犯罪 血友病患者の悲劇)’을 집필하여 제26회 ‘오야 소이치 논픽션상(大宅壮一ノンフィクション賞)’을 수상했다. 다만 ‘약해 AIDS 사건’으로 사쿠라이의 추궁을 받은 의사인 아베 다케시(安部英)가 무죄판결을 받았고 사쿠라이는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제기당했다. (후술)


‘21세기의 일본과 헌법 유식자 간담회(「21世紀の日本と憲法」有識者懇談会)’(민간헌법 임시행정조사회) 대표. 2007년 12월, 국가기본문제연구소(国家基本問題研究所)를 설립하여 초기 이사장으로 취임. 2012년 10월 인터넷방송 ‘겐론테레비 : 사쿠라 LIVE(言論テレビ:櫻LIVE)’를 시작했다. 

2014년 10월 ‘아름다운 일본의 헌법을 만드는 국민의 모임(美しい日本の憲法をつくる国民の会)’을 결성, 이어서 2015년 8월에 ‘평화안전법제의 조기성립을 요구하는 국민포럼’(平和安全法制の早期成立を求める国民フォーラム)을 결성했다. 

2015년 3월말, 일본청년회의소(日本青年会議所)에서 ‘글로벌리더 육성학원(グローバルリーダー育成塾)’을 창설하여 원장으로 취임. ‘영주외국인의 지방참정권에 반대하는 국민포럼(永住外国人地方参政権に反対する国民フォーラム)’ 발기인, ‘부부별성에 반대하고 가족의 끈을 지키는 국민위원회(夫婦別姓に反対し家族の絆を守る国民委員会)’의 대변인이기도 하다.

1.3 미디어 출연(メディア出演)

‘호도 2001(報道2001)’(후지TV), ‘선데이 프로젝트(サンデープロジェクト)’ (TV아사히) 등의 토론 프로그램에 비정기적으로 출연. ‘신호도 프레미아 A(新報道プレミアA)’(후지TV, 간사이TV)에서 정규 코멘테이터로 출연했다. 

2019년 공개된 위안부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주전장(主戦場)’에도 출연했다.


2 인물, 발언(人物・発言)

2.1 역사인식(歴史認識)

- ‘역사사실위원회(歴史事実委員会)’의 위원으로서 ‘워싱턴포스트’ 2007년 6월 14일호에 ‘미국 하원 121호 결의안’(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사죄를 요구하는 2007 년 미국 하원 결의안)의 전면철회를 요구하고, 위안부동원에 일본정부 및 구 일본군의 조직적, 계획적 강제연행은 없었다고 주장하는 의견광고 ‘THE FACTS’를 게재했다. 121호 결의는 추후에 채택되었다.

- 2007년에는 ‘난징사건(南京事件)’을 역사적 사실에 의거하지 않은 정치적 창작이라고 주장한 영화 ‘난징의 진실(南京の真実)’ 찬동자로 이름을 올렸다.*

[* 편집자주 : 중국에서는 ‘난징대학살(南京大屠殺)’로 부르는 사건을 일본은 ‘난징사건(南京事件)’이라고 공식적으로 칭하고 있다(일본 외무성 홈페이지 ‘역사문제Q&A’). 사건의 성격을 학살로 한 가지로 단정해서 규정하진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한국이 5.18 에 대해서, 바라보는 관점과 입장에 따라서 ‘광주학살’, ‘광주항쟁’, ‘광주민주화운동’, ‘광주폭동’ 다양하게 호칭하고 중립적 관점에서 흔히들 ‘광주사태’라고도 호칭하는 것과 비슷하다. 실제로 일본 학계에서는 난징의 민간인들에 대해서 일본군이 조직적·계획적인 학살이 있었는지, 또 당시 난징에서 여러 경위로 생긴 사망자가 중국이 주장하는 것처럼 정말로 수십만 명 규모였는지, 등에 대해서 회의적 입장을 개진하는 학자들이 많다. 사쿠라이 요시코도 이 문제로는 회의파에 속한다.]

- ‘오키나와 전투 집단자결(沖縄戦における集団自決)’ 문제와 관련된 ‘오에 겐자부로·이와나미쇼텐 오키나와 전투 재판(大江健三郎・岩波書店沖縄戦裁判)’*에 관한 오사카고등재판소의 판결(2008년 10월 31일)에 대하여, 판결문에서 “오에 씨의 기술은 진실성 증명이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자료에서 양(両) 대장(隊長)에 의한 직접적 자결명령은 진실성이 흔들린다” “각 기술 및 전제사실이 진실이 아니므로, 명백해졌다고까지 말할 수 없다”라고 하면서도 소송을 기각한 데 대하여, “심각한 논리모순”, “세상에 통용되지 않은 왜곡된 이치”, “진실을 파악하려는 노력을 충분히 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 편집자주 : 태평양전쟁 당시 오키나와 전투 과정에 있었던 130여 명 주민들의 집단자결 사건과 관련, 1970년도에 발간된 오에 겐자부로의 저서 ‘오키나와노트(沖繩ノ-ト)’(이와나미쇼텐 출판)는 일본군에 의한 자결의 강제가 있었다는 서술을 담았다. 이에 전 일본군 지휘관 및 유족이 명예훼손 소송을 걸었으나 원고 측이 최종 패소했다. 그러나 재판에서 ‘강제’ 여부에 대해서 진실성이 증명되었다고 결론이 나지는 않았으며 사실 여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일고 있다.]

-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新しい歴史教科書をつくる会)의 시판 교과서 ‘일본인의 역사교과서(日本人の歴史教科書)’(2009년 5월 발매)에 기고했다. 또 2008년 3월 29일, ‘만드는 모임, ‘오키나와 문제’ 긴급 심포지엄(つくる会『沖縄問題』緊急シンポジウム)’에 강연자, 패널리스트로 출석했다.

2.2 세계(世界)

- 2007년 ‘나가사키 시장 사살사건(長崎市長射殺事件)’으로 살해된 이토 잇쵸(伊藤一長) 나가사키 시장의 반미(反米), 반핵(反核) 평화지향에 대하여서는, “나가사키 시장으로서 핵병기를 투하한 미국을 비판하는 심정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이해를 표명했다.

- 중국공산당에 대해서는 그 체제와 소수민족 탄압, 환경문제 및 가짜제품 범람 등의 관점에서 엄격한(비판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저서 ‘이형의 대국, 중국(異形の大国 中国)’ 머릿글에는 “이웃에 중국이라는 나라가 존재하는 것은 하늘이 일본에 내린 영원한 간난(艱難)”이라고 쓰여있다. 또한 기타 야스토시(北康利)와의 대담에서 “중국은 일본과 사이좋게 지낼 의도가 없다. 친하게 지낼 생각이 없는 국가와 사이좋게 지내자는 것은 비굴하다”고 발언했다.

2.3 저널리즘(ジャーナリズム)

- 신봉하는 뉴스 프로 사회자는 로버트 던컨 맥닐(Robert Duncan McNeil, ロバート・ダンカン・マクニール)이다.



2.4 황실(皇室)

- 황실에는 ‘2660년, 125대의 역사가 있다“고 믿고 있다(진무천황즉위기원(神武天皇即位紀元)). 황실전범(皇室典範, 황위계승(皇位継承)) 개정 문제에 대해서는 구 황족황적복귀파(旧皇族皇籍復帰派)이며, 여계천황(女系天皇) 용인에 대해서는 절대반대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히사히토 친왕(悠仁親王) 탄생 이전에는 “남계여자(男系女子)인 아이코 내친왕(愛子内親王)을 황위에 앉히고, 대를 이어가는 동안에 구 황족을 황적에 복귀시켜서 그 후에 방계계승(傍系継承)을 진행하면서 황실의 남계계승(男系継承) 전통을 지켜야한다”고 주장했다. 참고로 제국헌법시대에도 한 번 이탈(신적강하(臣籍降下))시킨 황족의 복귀는 인정되지 않았다.

- 쇼와천황(昭和天皇)이 야스쿠니신사를 참배 안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 “미키 다케오(三木武夫) 수상의 사적참배 발언이* 원인이며 A급 전범 합사문제와 전혀 상관이 없다”고 오랫동안 주장해왔다. 

[* 편집자주 : 1975년도에 일본 미키 다케오 수상은 역대 일본 수상 중 최초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하지만 미키 수상은 자신의 참배는 사적인 것이라고 밝혔고, 이에 공용차도 쓰지 않았으며 참배시 봉납(奉納)하는 공물료(供物料, 다마구시(玉串))도 사비로 냈다.]

2006년 7월에 쇼와천왕이 야스쿠니신사의 A급 전범 합사에 불쾌감을 나타냈다는 메모(도미타 메모(富田メモ))가 발견된 건에 관해서는 메모의 신빙성을 의심하고 있으며,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면서 그 메모로 인해 공인의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영향이 나타나는 것을 우려했다. 그 후에도 신빙성에 대한 의심을 버리지 않고 도미타 메모에 관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日本経済新聞)에 공개를 요구하는 주장을 하였으며, 수상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지지하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 과거 황태자비 마사코(雅子, 현 황후)에 대하여서 “(일본이 아닌) 서구적 감각을 갖고 있다”고 하는 등 황실을 이끌어가는 자로서의 적성을 우려하는 의견을 표명한 적이 있다.

- 여성천황의 탄생이 남계천황제 하에서도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여계천황의 실현에 대해서는 “아이코 님(愛子様)께서 스즈키라는 남성과 결혼했다고 가정하고, 남녀에 상관없이 자녀가 태어나면 제1자녀가 즉위하고 여계천황 제1호가 된다. 그 시점에서 천황가문의 절반이 스즈키 천황이 된다”고 발언했다.



2.5 국적법 개정, 외국인 참정권(国籍法改正・外国人参政権)

- 외국인 참정권 부여법안을 ‘망국의 첫걸음’이라고 반대하고 있으며 이 문제와 관련하여 민주당 산하 ‘재일한국인을 비롯한 영주외국인 주민의 법적지위 향상을 추진하는 의원연맹(在日韓国人をはじめとする永住外国人住民の法的地位向上を推進する議員連盟)’이 주최하는 학습회에 초대받았는데, 참정권을 얻기 위해서는 귀화를 시켜야 하며, 특별영주자의 역사적 경위를 고려하여 국적취득의 조건을 간소화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참가한 의원들이 “지극히 공감했다”(렌호(蓮舫)), “대략적으로 내 인식과 동일하다”(마키 요시오(牧義夫))라고 공감한 반면에,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는 “(내가 재일한국인의 입장이라면) 선거권을 얻고 싶으면 국적을 버리라는 말을 들었다면 용서할 수 없다”라고 반론했다. 사쿠라이 요시코는 한 시간 정도 열변을 토했지만 의원연맹 측은 “의견은 잘 알겠습니다. 그래도 외국인 참정권 부여는 추진하겠습니다”라고 마무리했다.

- 2008년 12월 8일에 개정된 국적법에 관해서는 일본의 위기이자 국회가 사법에 대하여 맹목적으로 추종하고 있으며, 정치인들의 태만으로 인해 타국의 실패사례를 따라가고 있다고 혹평했다.

2.6 선택적 부부별성 제도(選択的夫婦別姓制度)

- ‘선택적 부부별성 제도(選択的夫婦別姓制度)’에 대하여 “선택적 부부별성 제도의 도입법안 원천으로 되돌아가면 그런 사고방식은 전후 점령정책 하에서 진행된 철저한 이에세이도(家制度)*의 파괴에 다다르게 된다”라고 반대하고 있다.

[* 편집자주 : 이에세이도(家制度)는 메이지 시대에 제정된 민법에서 규정된 가족 제도다. 호주(戸主)를 중심으로 그와 가까운 친족관계가 있는 사람들을 한 집에 속하게 하면서 호주에게 가족의 통솔권한을 부여했다. 에도 시대 사무라이 계급의 가부장적 제도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고 한다.]

2.7 원자력발전(原子力発電)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사고 후인 2011년 7월 14일, 산케이신문사 주최의 제256회 전국종단 ‘세이론(正論)’ 가고시마(鹿児島) 강연회에서 강연하여 “핵을 만드는 기술은 외교적 힘과 연결된다. 원자력발전 기술은 군사 면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고 주장하여 “원자력 발전소를 기피할 것이 아니라 두 번 다시 사고를 일으키지 않도록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012년 12월 8일, 후쿠시마(福島) 현 고오리야마(県郡) 시에 있었던 후쿠시마 현 후타바(県双) 군 8개 지역의 의원연수회에서 강연하고 “연간 1밀리시베르트의 제염기준(除染基準)은, 고리재생(古里再生)을 위해 완화해야 한다”, “방사선에 대하여 폭넓은 의견이 있지만 정치인은 사실을 바라봐야 한다. 인류가 방사선에 대해 갖고 있는 과학적 사실은 히로시마, 나가사키, 체르노빌의 역학데이터밖에 없다. 유엔과학위원회나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는 100밀리시베르트 이하의 영향에 의미가 없다고 결론내렸다”, “과학적 근거가 없는 연간 1밀리시베르트라는 제염기준으로 대량의 토사를 쌓고 스스로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내고 있다. 어른들은 연간 20밀리시베르트, 아동은 10밀리시베르트까지 문제가 없다고 국가적 책임으로 말해야 한다. 지역 의원들이 주민들과 함께 이 문제로 당황해서는 안 된다”고 발언했다.

2.8 오키나와 기지 문제(沖縄基地問題)

2014년 11월 9일, 오키나와(沖縄) 현 지사 선거 중 오키나와 현 도미구스쿠(見城) 시에서 개최된 강연회에서 “중국의 위협에 대하여 싫든 좋든 최전선에 서도록 강요당하고 있는 오키나와를 ‘강력한 요새’로 만들어야 한다”, “중국에 침략당하지 않도록 ‘사키모리(防人, 병사)’가 되어 일본을 다시 한 번 부흥시켜야 한다”며 오키나와 현 주민들이 병사가 되기 바란다는 발언을 했다.

2.9 기타(その他)

-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를 ‘친중파’로 간주하고 2007년의 자유민주당 총재선거에서 후쿠다가 선출되자 “일본의 국익에 손해가 되는 비쮸(媚中, 중국 아첨) 외교가 시작된다”면서 정권 발족 전부터 우려를 표명했다.

- 다모가미 도시오(田母神 俊雄) 항공막료장(航空幕僚長, 일본의 공군참모총장)에 대한 경질 문제에 대하여 ‘문민통제, 곡해된 일본의 해석(文民統制、曲解された日本の解釈)’(슈칸신쵸 2008년 12월 11일호), ‘아무도 모르고 있는 문민통제(誰もわかっていない文民統制)’(WiLL 2009년 2월호) 등의 기사를 통해서, 이전에 ‘문민통제’를 키워드로 다모가미를 비판했던 아사히신문, 그리고 ‘정부견해’에 복종시키려고 했던 일본정부를 비판했다. 사쿠라이 요시코는 선거로 선출된 히틀러도 문민통제를 통해 군부를 지배했다고 할 수 있는데, 자위관을 무라야마 담화를 비롯한 정부견해에 복종시켜서 정부가 자위관의 사상 및 행동을 통제하는 것은 올바른 자세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 오스트레일리아 출신 기자와 결혼했으나 3년 만에 이혼했다.

- 2009년 4월, 슈칸신쵸를 통해 이산화탄소 삭감에 예산을 투입하는 것은 일본국비예산의 낭비라는 일부 연구자의 주장을 소개하면서 “이산화탄소는 온난화의 원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게 합리적이다”라는 취지의 견해를 밝혔다. 

- 일본경제를 재건하고 중국의 패권확대를 저지하기 위해서는 TPP 참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 공모죄(共謀罪) 정책, 주민기본대장 네트워크시스템(住民基本台帳ネットワークシステム) 정책, 주민표 코드(住民票コード) 정책에 반대하고 있으며 ‘국민공통번호제에 반대하는 모임(国民共通番号制に反対する会)’에서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이 모임에는 사이토 다카오(斎藤貴男), 사타카 마코토(佐高信)도 참가하고 있었다.



- 아사히신문의 보도 자세에 대하여 늘 비판적이지만 그 한편으로 ‘적보대 사건(赤報隊事件)’*에 대해서는 “언론에는 어디까지나 언론으로 응해야하는데 비열한 협박이나 가족에 대한 공격은 결코 용서할 수 없다”며 ‘적보대’를 규탄했다. 그와 동시에 “언론의 자유야말로 민주주의국가 일본의 근본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고 주장했다.

[* 편집자주 : 1987년부터 1990년에 걸쳐 ‘적보대(赤報隊)’를 자칭하는 범인이 일으킨 우익에 의한 백색 테러 사건이다. 아사히신문의 도쿄 본사, 나고야 본사, 시즈오카 지국 등에 총격 및 폭파 미수 사건이 일었고, 아사히신문 한신(阪神) 지국 습격 사건에서는 기자 2명이 죽기도 했다. 아직까지 범인이 특정되거나 체포되지 않았고 2003년에는 결국 모든 사건이 공소시효가 종료됐다.]

- 2014년 4월 13일, 불교계 신종교인 신생불교교단(新生佛教教団)의 개교 60주년 기념대회에서 ‘지금 왜 헌법 개정이 필요한가?’라는 제목의 강연을 했는데 “일본인의 가치관에 맞는 헌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일본의 외교에 대하여 2002년 이후의 북조선, 한국, 중국에 대한 일본외교는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외무관료 주도의 외교가 문제의 근본원인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북조선과 납치문제 관련, 외교 교섭에 대한 미국 테오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의 발언, “외교는 큰 곤봉을 한 손에 쥐고서 목소리는 부드럽게 하는 것”(곤봉외교)을 인용하면서 힘(강한 압력 및 제재)의 뒷받침이 없는 선의나 타협으로 국익을 지킬 수 없다는 인식을 표명하고 외무성의 유화적 교섭에 부정적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 이케다 요시타카(池田佳隆)가 2006년, 정계에 진출하기 전에 간행한 ‘자랑스러운 국가 일본, 이 나라에 태어나서 정말 좋았다(誇り高き国 日本 この国に生まれて本当に良かった)’(다이아몬드사(ダイヤモンド社))의 종이 띠에는 사쿠라이에 의한 ‘절찬(絶賛)’이라는 문구가 새겨졌다.

- 2019년 6월 26일, 쓰카다 이치로(塚田一郎)를 응원하기 위해 니가타(新潟) 시로 갔는데 사쿠라이는 아베 신조 수상의 전화를 받았으며, 아베 수상의 “쓰카다 군을 어떻게 좀 도와주세요. 착실한 사람인데 지금 정말 낙심하고 있습니다. 격려해주시면 좋겠습니다”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밝혔다. 사쿠라이 요시코는 또한 쓰카다가 북조선에 의한 납치피해자 요코다 메구미(横田めぐみ)와 같은 중학교를 다닌 1년 선배로 참의원 의원이 되기 전부터 납치문제 해결을 위해 활동해왔다고 소개하면서“훌륭한 정치인”이라고 치켜세웠다. 하지만 2019년 7월 21일, 제25회 참의원 통상 선거에서 쓰카다는 낙선했다.


3 비판(批判)

- 1996년, ‘약해 에이즈사건(害エイズ事件)’에 대한 사쿠라이 요시코의 기술을 문제 삼아 의사인 아베 다케시(安部英), 마이니치신문 등이 명예훼손으로 사쿠라이에게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은 1심 기각, 2심에서는 역전하여 손해배상을 명하는 판결이 나왔지만 아베 다카시에 대한 무죄 판결이 나온 후, 2005년 6월에 최고재판소에서는 재역전, 소송이 기각되어 원고인 아베 다카시의 패소가 확정했다. 다만 최고재판소의 판결 이유는 “진실이라고 믿을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는 것으로, 사쿠라이의 기술을 확실한 진실이라고 인정한 것은 아니다. 아베 다카시의 변호인단은 사쿠라이의 취재방법이 날조에 가깝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쿠라이 요시코는 이 재판 직전부터 본명이 아닌 히라가나 이름을 펜네임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 2005년 10월, 요코하마(横浜) 시 교육위원회 주최 교사들을 위한 연수회에서 후쿠시마 미즈호(福島瑞穂) 변호사의 위안부 문제에 대한 자세를 비판했다. 후쿠시마 미즈호에 따르면, 후쿠시마는 사쿠라이로부터 “후쿠시마 씨에게 정말 미안한 일입니다. 이 강연 중에 무심코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하여 후쿠시마 씨도 좀 더 공부하면 어떨까요?’라고 말해버렸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라는 내용의 사죄를 받았다고 한다. 다만 이 연수회에서 사쿠라이 요시코는 “종군위안부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는데, 그 후 강연이 예정되고 있었던 주최자에 대하여 어느 인권단체들의 항의운동이 일어나자 주최자가 강연 취소를 발표했다. 요미우리신문은 사설(2008년 2월 3일)에서 언론의 자유가 방해된 사례로 이 사건을 인용했다. 후쿠시마는 사쿠라이와 그런 대화(종군위안부 부정 관련)는 없었다며 강연록을 보고 진심으로 놀랐다고 잡지 ‘쓰크루(創, 창)’, 1997년 4월호에서 밝혔다.

- 1997년 천식환자의 사망은 β2 자극제인 페노테롤(fenoterol)의 심장에 대한 부작용이 원인이며 이는 ‘약해 에이즈 사건’에 이어 또다른 약해(薬害)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사쿠라이는 분게이슌주(文藝春秋) 1997년 6월호에 ‘천식환자가 연달아 죽어간다(喘息患者がつぎつぎに死んでゆく)’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하고, 그와 동시에 스스로 앵커를 맡은 ‘NNN 오늘의 사건’에서도 이 문제를 보도했다. 또한 분게이슌주 1997년 9월 특별호에서 ‘NHK가 속인 ’천식약해’(NHKがごまかした『喘息薬害』)’라는 기사를 썼다.

- 이케다 노부오(池田信夫)는 “일종의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으로서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데, 그 내용은 거짓”이라고 평가하면서 사쿠라이 요시코가 주민기본대장 네트워크와 관련, ‘국민공통번호제를 반대하는 모임’ 대표로 활동하는데 대해 “시스템의 내용도 모르면서 히스테릭하게 소란을 피워 좌익 잔당이 이를 이용하여 ‘감시 사회’ 반대운동을 시작했다”고 하는 등 사쿠라이 요시코에 대한 비판을 자신의 블로그에 자주 올렸다.

- 2015년 9월 28일, 27일의 ‘NHK 일요토론(日曜討論)’에서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 대표 등에 대한 사쿠라이의 발언에 사실오인이 있었다며 발언 철회와 사과를 요구하는 비난이 일어났다. 사쿠라이는 프로그램 중에서 오카다 가쓰야가 외상(外相)으로 있던 시절에 집단적 자위권이 필요하다고 발언한 것이 180도 시각이 바뀌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오카다는 외상으로 있던 시절에 그런 발언을 하지 않았다. 사쿠라이는 30일, 그 발언은 오카다가 야당 간사장(幹事長) 시대의 것이라는 반론을 발표했으나 민주당은 그런 사실이 없다면서 재차 발언 철회와 사과를 요구하는 재질문장을 송부했다. 그에 대해 사쿠라이는 “재차 답변할 필요는 없다”는 답변을 민주당 앞으로 보냈다.


4 강연회 중지 사건(講演会中止事件)

1997년, 사쿠라이 요시코가 이전에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강제연행은 없었다고 발언한 것을 이유로 가나가와 인권센터(神奈川人権センター, 히다카 로쿠(日高六郎) 이사장)으로부터 항의를 받고 강연회가 중단되는 사건이 있었다.

이에 대해 당시 일본문예가협회(日本文芸家協会, 에토 쥰(江藤淳理) 이사장)은 언론의 자유에 대한 침해를 우려하는 성명을 발표했지만, 인권센터 측은 사쿠라이 요시코의 발언은 역사의 왜곡이며 ‘차별언동(差別言論)’이라고 반박했다.

가나가와 인권센터는 사쿠라이의 발언의 장이 되었던 요코하마 시 교육위원회 측에도 강사의 선택을 반성해야한다고 하는 신청을 냈고, 교육위원회는 사쿠라이의 강연이 시 교육위원회의 기본 방침과는 다른 역사 인식으로 전개되면서, 앞으로는 ‘반차별(反差別)’의 관점에서 강사의 선정에 노력하겠다고 답변했다. 요코하마 시 교육위원회는 교장회 등을 통해 역사 인식의 주지(周知) 철저를 도모할 방침이라 밝혔다.

또한 이와는 별도로, 사쿠라이가 심사 위원을 맡고 있는 요코하마변호사회(横浜弁護士会)에서 ‘인권상’' 수상자가 수상을 거부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요미우리신문은 가나가와인권센터의 행동을 ‘언론봉쇄’라고 비판했다.


5 저서(著書)

5.1 단저(単著)

- ‘약간 문제있다! Tokyo 국제보도(ちょっと問題! Tokyo国際報道)’ (고단샤(講談社), 1985년 12월)

- ‘‘정치’란 누구의 것인가? 헤매는 일본정치의 핵심으로 다가가다(政治」は誰のものか 迷走する日本の政治の核心に迫る)‘(PHP연구소(PHP研究所 ), 1993년 1월)

- ‘사쿠라이 요시코가 취재한다(櫻井よしこが取材する)’ (다이아몬드샤(ダイヤモンド社), 1994년 6월)

- ‘에이즈범죄 혈우병환자의 비극(エイズ犯罪血友病患者の悲劇)’ (주오고론샤(中央公論社 ), 1994년 8월), 후에 문고

- ‘자나 깨나(寝ても醒めても)’ (세카이분카샤(世界文化社), 1994년 12월)

- ‘직언! 일본이여, 평온하여라(直言! 日本よ、のびやかなれ)’ (세카이분카샤, 1996년 12월)

- ‘북조선, 북동아시아의 긴장(北朝鮮 北東アジアの緊張)’(다이아몬드샤, 1999년 9월)

- ‘약해 에이즈, 끝나지 않은 비극(薬害エイズ 終わらない悲劇)’(다이아몬드샤, 1999년 9월)

- ‘아베선생님, 환자의 목숨을 소홀히 여겼지요?(安部先生、患者の命を蔑ろにしましたね)’(주오코론신샤, 1999년 10월)

- ‘헌법이란 무엇인가(憲法とはなにか)’(쇼우갓칸(小学館), 2000년 5월)

- ‘어른들의 실패, 이 나라는 어디로 향하는가?(大人たちの失敗 この国はどこへ行くのだろう?)’(PHP연구소, 2000년 12월), 이후에 문고(文庫)로 나옴

- ‘미주 일본의 원점(迷走日本の原点)’(신쵸샤, 2001년 4월), 이후에 문고로 나옴

- ‘일본의 블랙홀, 특수법인을 없애라(日本のブラックホール特殊法人を潰せ)’(신쵸샤(新潮社), 2001년 8월), ‘특수법인개혁의 속임수, 관료들의 단물(特殊法人改革のまやかし 官僚たちの甘い汁)’ 문고

- ‘일본의 형태, 데이터로 읽는다. 매일 뉴스를 재미있게 이해한다(日本のかたち データで読み解く 毎日のニュースが面白いほどよくわかる)’ (소보쿠샤(素朴社), 2001년 10월)

- ‘약해 에이즈 ‘무죄판결’, 왜 그런가요?(薬害エイズ「無罪判決」、どうしてですか?)‘ (주코신쇼 라쿠레(中公新書ラクレ), 2001년 12월)

- ‘GHQ가 작성한 정보조작서 ‘진상은 이렇다’의 속박을 푼다. 전후 일본인의 역사관은 이렇게 왜곡되었다(GHQ作成の情報操作書「眞相箱」の呪縛を解く 戦後日本人の歴史観はこうして歪められた)‘ (쇼가쿠칸 분코(小学館文庫), 2002년 8월)

- ‘일본이 범한 7가지 대죄(日本が犯した七つの大罪)’ (신쵸샤, 2003년 3월)

- ‘교육이 만드는 미래, 변하기 시작한 현장에서의 제언(教育が拓く未来 変わり始めた現場からの提言(権力の道化))’ (PHP연구소, 2004년 4월)

- ‘권력의 도화(権力の道化)’(신쵸샤, 2004년 5월/ PHP연구소, 2009년 12월)

- ‘개혁의 허상, 배신의 도로공단 민영화(改革の虚像 裏切りの道路公団民営化)’(신쵸분코(新潮文庫), 2006년 11월)

- ‘무슨 일이 있어도 괜찮아(何があっても大丈夫)’ (신초샤, 2005년 2월)
 
- ‘세상은 의외로 과학적(世の中意外に科学的)’ (슈에이샤(集英社 ), 2005년 3월)

- ‘고귀하고 강하고 아름다워라. 일본의 부활은 헌법 개정에서 시작된다(気高く、強く、美しくあれ 日本の復活は憲法改正からはじまる)’ (쇼가쿠칸, 2006년 8월 / PHP분코, 2015년 1월)

- ‘일본인의 미덕, 자랑스러운 일본인이 되자(日本人の美徳 誇りある日本人になろう)’ (다카라지마신쇼(宝島社新書), 2008년 2월)

- ‘이형의 대국, 중국 – 그들에게 마음을 주면 안 된다(異形の大国 中国―彼らに心を許してはならない)’ (신쵸샤, 2008년 4월), 이후에 문고판으로 나옴

- ‘메이지인의 모습(明治人の姿)’ (쇼가쿠칸101신쇼(小学館101新書), 2009년 4월)

- ‘일본인으로 태어나길 잘했다(日本人に生まれて良かった)’ (고쿠슛판(悟空出版), 2015년 2월)

- ‘일본의(日本の)’ 시리즈 (신쵸샤)
‘일본의 위기(日本の危機)>’(1998년 8월) 이후에 문고본으로 나옴
‘일본의 위기(日本の危機) 2’ (2000년 3월) 이후에 문고본으로 나옴
‘일본의 각오(日本の覚悟)’ (2011년 2월) 이후에 문고본으로 나옴
‘일본의 시련(日本の試練)’ (2012년 3월) 이후에 문고본으로 나옴
‘일본의 결단(日本の決断)’ (2013년 6월) 이후에 문고본으로 나옴
‘일본의 적(日本の敵)’ (2015년 3얼)
‘일본의 미래(日本の未来)’ (2016년 5월)
- ‘논쟁(論戦)’ 시리즈 (다이아몬드샤)
‘논쟁(論戦) 1994~1996’ (1996년 6월)
‘논쟁(論戦) 2’ (1998년 3월)
‘논쟁(論戦) 1999’ (1999년 3월)
‘논쟁(論戦) 2000’ (2000년 4월)
‘일본이여, 왜 안 움직이는가? - 논쟁 2001(日本よ、なぜ動かない―論戦2001)’ (2001년 4월)
‘변하는 것은 지금밖에 없다 – 논쟁 2002(変わるのは今しかない―論戦2002)’ (2002년 5월)
‘내일을 위한 길을 개척하라 – 논쟁 2003(明日への道を拓け―論戦2003)’ (2003년 5월)
‘이대로 망하지 말아라, 일본 – 논쟁 2004(このまま滅ぶな、日本―論戦2004)’ (2004년 7월)
‘나라를 팔아먹지 말라 – 논쟁 2005(国売りたもうことなかれ―論戦2005)’ (2005년 7월)
‘이 나라를 왜 사랑할 수 없는가? – 논쟁 2006(この国を、なぜ、愛せないのか―論戦2006)’ (2006년 5월)
‘일본어여, 강한 나라가 되라 - 논쟁 2007(日本よ、勁き国となれ―論戦2007)’ (2007년 7월)
‘지금이야말로 국익을 따져라 – 논쟁 2008(いまこそ国益を問え―論戦2008)’ (2008년 6월)
‘논쟁 2009 – 사쿠라이 요시코의 우국(論戦2009―櫻井よしこの憂国)’ (2009년 5월)
‘일본을 사랑하기 때문에 경종을 울린다 –논쟁 2010(日本を愛すればこそ、警鐘を鳴らす―論戦2010)’ (2010년 7월)
‘국난을 이겨내다 – 논쟁 2011(国難に克つ―論戦2011)’ (2011년 7월)
‘소생하라, 일본 – 논쟁 2012(甦れ、日本―論戦2012)’ (2012년 8월
‘사쿠라이 요시코의 일본 재흥 –논쟁 2013(櫻井よしこの日本再興―論戦2013)’ (2013년 8월)
‘일본국의 복권 – 논쟁 2014(日本国の復権―論戦2014)’ (2014년 7월)
‘전후 70년 국가의 기로 – 논쟁 2015(戦後七〇年 国家の岐路―論戦2015)’ (2015년 7월)
‘늠름한 국가로. 일본이여, 결단하라 – 논쟁 2016(凛たる国家へ 日本よ、決意せよ―論戦2016)’ (2016년 7월)
‘의지하지 말고 대비하라 – 논쟁 2017(頼るな、備えよ―論戦2017)’ (2017년 8월)
‘애국자들에게 – 논쟁 2018-2019(愛国者たちへ―論戦2018-2019)’ (2019년 4월)

5.2 공편저(共編著)

- (김양기(金両基)) ‘해협을 넘을 수 있는가 –일한역사논쟁-(海峡は越えられるか ―日韓歴史論争―)’ (주오코론샤, 1997년 7월), 이후에 문고본으로 나옴

- (금미령(金美齢)) ‘자립할 수 없는 일본 –용기가 있으면 인생을 개척할 수 있다-(自立できない国日本 ―勇気があれば人生は拓ける―)’(닛폰분게이샤(日本文芸社)), 1999) / 개제(改題) ‘여자는 현명하고 강해라!(女は賢く勁くあれ!)’ 왓쿠(ワック)

- ‘나, 육신은 유아가 되고 어머니를 그리워하다 –전사들이 남긴 편지-(吾、身は幼児となりて母を慕い ―戦士たちの遺した手紙―)’ (편(編)) (도호샤(同朋舎), 가도카와쇼텐(角川書店), 1999년 12월)

- (나카니시 데루마사(中西輝政) 대표 편(編), 고바야시 세쓰(小林節), 나카니시 데루마사(中西輝政), 하세가와 미치코(長谷川三千子),  후쿠다 가즈야(福田和也), 마쓰모토 겐이치(松本健一)와 공저 ‘헌법개정(憲法改正)’ (주오코론샤, 2000년 4월)

- (세토우치 자쿠초(瀬戸内寂聴)) ‘일본을 좋아하니까 –여자 2명의 울분발분-(ニッポンが好きだから ―女二人のうっぷん・はっぷん―)’ (야마토쇼보(大和書房),  2000년 12월) 이후에 신초분코(新潮文庫)로 출간

- (와다 히데키(和田秀樹)) ‘일본의 병 –정상국가가 되기 위한 처방전-(日本の病 ―正常な国への処方箋―)’ (PHP연구소, 2001년 6월)

- (미야가와 도시히코(宮川俊彦)) ‘이 나라의 숙제 –교육액상화를 멈추다-(この国の宿題 ―教育液状化を止める―)’ (왓쿠(ワック), 2001년 8월) 개제(改題) ‘유토리 교육이 일본을 망친다(ゆとり教育が日本を滅ぼす)’

- (다케나카 헤이조(竹中平蔵)) ‘일어나라! 이론 -‘강력한 국가’를 만드는 전략-(立ち上がれ!日本 ―「力強い国家」を創る戦略―)’ (PHP연구소 2001년 10월)

- (후지와라 가즈히로(藤原和博) 편(編), 가리야 다케히코(苅谷剛彦), 스즈키 간(鈴木寛)) ‘중학개조 –학교에서 무엇이 가능하며 무엇이 불가능한가?-(中学改造 ―“学校"には何ができて、何ができないのか―)’(쇼가쿠칸 2002년 7월)

- (이토 조이치(伊藤穰一), 시미즈 쓰토무(清水勉)) ‘‘주기(주민기본대장) 네트’란 무엇인가? -국민과 지자체를 위한 탈 ‘주기 네트워크’론-(「住基ネット」とは何か? ―国民と自治体のための脱「住基ネット」論―)‘(아카시쇼텐(明石書店), 2002년 9월)

- ‘당신의 개인정보가 위험하다! 개인정보 보호와 미디어규제(あなたの個人情報が危ない! プライバシー保護とメディア規制)’ (편저(編著)) (쇼가쿠칸분코(小学館文庫), 2002년 11월)

- ‘당신의 ‘개인정보’를 빼돌리다(あなたの「個人情報」が盗まれる)‘(편저(編著)) (쇼가쿠칸, 2003년 9월)

- (고보리 게이이치로(小堀桂一郎), 야기 히데쓰구(八木秀次)  ‘여계 천황론’의 대죄(「女系天皇論」の大罪)(PHP연구소, 2006년 2월)

- (도모히토 신노(寛仁親王)) ‘황실과 일본인 -‘현대사’의 속박을 풀어내다-(皇室と日本人 ―寛仁親王殿下お伺い申し上げます―)’ (편(編))(분게이슌주, 2006년 3월)

- ‘일본이여, ‘역사력’을 닦아라 – 미중 유화정책에 지지않는다-(日本よ、「歴史力」を磨け ―「現代史」の呪縛を解く―)’(편(編)) (분게이슌주, 2007년 9월)

- ‘나는 김정일과의 투쟁을 멈추지 않겠다 –미중의 유화정책에도 지지 않겠다-(私は金正日との闘いを止めない ―米中の宥和政策にも負けない―)’ (편(編)) (분게이슌주, 2008년 3월)

- ‘아시아의 시련 –티벳 해방은 이루어지는가-(アジアの試練 ―チベット解放は成るか―)’(편(編))(분게이슌주, 2008년 7월)

- (다쿠보 다다에(田久保忠衛)) ‘국가를 향한 자각 –현명하고 강한 일본으로-(国家への目醒め ―賢く勁き日本へ―)’(쇼가쿠칸, 2008년 12월)

- (오하라 야스오(大原康男), 모테기 사다스미(茂木貞純)) ‘황위 계승의 위기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皇位継承の危機いまだ去らず)’ (후소샤신쇼(扶桑社新書), 2009년 11월)

- (편집장(編集長)) ‘‘오자와 이치로’ 연구(「小沢一郎」研究)‘ (신초45(新潮45) 별지(別冊) 2010년 4월호) 

- (별지 세이론 편집부(別冊正論編集部)) ‘한 권 모두 사쿠라이 요시코 씨(一冊まるごと櫻井よしこさん。)’ (별지 세이론29(別冊正論29), 산케이신문사, 2017년 3월)

- (달라이 라마 14세(14th Dalai Lama., ダライ・ラマ14世), 롭상 상가이(Lobsang Sangay, ロブサン・センゲ)) ‘티벳 자유를 향한 투쟁 –달라이 라마 14세, 롭상 상가이 수상과의 대화-(チベット 自由への闘い ―ダライ・ラマ14世、ロブサン・センゲ首相との対話―)’ (PHP연구소, 2017년 12월)

- (하나다 가즈요시(花田紀凱)) ‘아사히 리스크 –폭주하는 보도 권력이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다-(朝日リスク ―暴走する報道権力が民主主義を壊す―)’ (산케이신문출판(産経新聞出版), 2018년 3월)

5.3 번역(翻訳)

- ‘라이사 고로바초프, 철도원의 딸에서 퍼스트 레이디로(ライサ・ゴルバチョフ 鉄道員の娘からファーストレディヘ)’ (우르다 유르겐스(ウルダ・ユルゲンス), 다이아몬드샤( ダイヤモンド社), 1991년 3월)

- ‘힐러리와 빌의 이야기(ヒラリーとビルの物語)’ (게일 시피ゲイル・シーヒー, 아스카신샤(飛鳥新社 ), 200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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