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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희재, 탄핵 전후해서 반노(反盧) 총대 멘 계기 밝혀

7월 15일경 출간 예정 ‘변희재의 청춘투쟁’ 내용 일부 공개


세간에서 변희재 한국인터넷미디어협회 회장에 대해 잘못 알려진 내용 중 하나는 그가 좌파였다가 우파로 전향했다는 지적이다. 최근 변 회장에 대한 왜곡성 기사를 쓴 주간경향 원희복 기자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 바 있다.

“변희재는 김대중 정권에서 <인물과 사상>이라는 열렬한 친 DJ 매체에서 활동했고, 노무현 정권에서도 역시 <서프라이즈>라는 친노 매체에서 활동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 들어 <미디어워치>라는 보수 매체로 ‘전향’했고, 지금 박근혜 정권에선 종북몰이에 앞장서고 있다”

이 같은 왜곡된 인식과 유언비어야말로 변 회장이 자신의 자전적 에세이인 ‘청춘투쟁’을 집필하게 된 결정적 계기다. 변 회장은 이 기사에 대해 “‘너무 이른 나이에 자전적 책을 쓴게 아닌가’라는 고민을 하는 순간, 주간경향의 원희복 기자의 인터뷰 기사를 보며, “역시 출판하길 잘했다”는 확신을 가졌다“고 밝혔다.

실제로 변 회장이 이번에 출간하는 책에는 그가 대학 시절부터 좌익 운동권 세력과 사투를 벌였으며, 90년대 중반부터 서울대학교에서 세력을 넓혀 나가던 페미니스트들과 대립각을 세웠다는 내용도 담겨져 있다.

이와 함께 독자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대목은 변 회장이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을 전후해서 ‘반노(反盧)’의 깃발을 들게 된 계기다. 변 회장은 여기에 대해 책의 상당한 분량을 할애했다.

2003년 열린우리당 창당 계기로 친노세력과 대립각 시작

변 회장은 2003년 하반기부터 민주당(현재 새민련) 내 친노세력들이 추진한 민주당 분당 및 열린우리당 창당 계획에 대해 큰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친노세력의 민주당 분당 획책이 정당민주주의를 정면으로 위배하고 있단 점을 확실히 인식하게 됐다”고 밝혔다,

변 회장은 “노무현은 민주당 후보로서 대통령에 당선됐다. 국민들은 노무현 후보가 여당인 민주당과 함께 국정을 이끌어간단 전제에서 표를 준 것”이라며 “그렇게 당선돼놓고 정권을 잡자마자 당을 깨고 신당을 차린다면, 그건 국민사기극이 된다. 그럴 거였다면 대선 전에 신당을 차려 그 당 소속으로 표를 받았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책에서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이는 너무나 명백한 정당민주주의 논리였기 때문에, 민주당 계열은 물론 친노세력에 편입된 논객과 교수들도 대놓고 분당을 지지하진 못했다. 물론 서영석, 공희준 등 서프라이즈 논객들은 돌격대 역할을 했다. 또한 지금도 대표적 친노 논객으로 활동하는 정치평론가 유창선, 당시 경기대 교수이자 현재 방송통신위원으로 활동 중인 김재홍 등도 민주당 분당을 조장하는 나팔수로 뛰었다. 그러다 결국 2003년 11월11일 빼빼로 데이에 열린우리당은 창당한다. 문제는 이때부터였다.

대다수 민주당 성향 및 친노 성향 논객들은 민주당 분당을 반대했다. 그렇게 논리적으로 창당되지 말았어야 할 열린우리당이 창당됐다면, 모두들 민주당 지지 성향으로 남았어야 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막상 열린우리당이 창당되자 이를 그토록 반대하던 논객과 교수들 대다수가 열린우리당 지지로 돌아섰다.

당시 강준만 교수와 가톨릭대 교수로 재직 중이던 현 정치평론가 김만흠을 제외하곤 좌파진영 논객과 교수 전원이 다 열린우리당에 줄을 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왜 그랬을까? 당연히 권력 때문이었다. 출범한 지 1년도 안된 새 정권에서 기획한 열린우리당 측에 줄서 있어야 기관장까진 아니더라도 정부부처 위원 자리라도 얻을 수 있다. 반면 분당을 반대하는 민주당 측에 서있다간 보수세력보다 더한 탄압을 받을 상황이었다“

2003년 11월에 열린우리당이 창당된 후, 열린우리당은 노무현 당시 대통령을 앞세워서 ‘민주당 죽이기’에 앞장선다. 그는 2003년 12월24일 청와대 인사들과의 오찬에서 “한나라당을 하나의 세력으로 하고,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을 축으로 하는 구도로 가게 될 것”이라고 내년 총선을 전망하면서 “내년 총선에서 민주당을 찍는 것은 한나라당을 도와주는 것으로 인식될 것”이라 발언, 당시 민주당을 자극했다.

이에 중앙선관위는 노 대통령의 발언이 선거법을 심각하게 위반한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으나 노 대통령은 선관위의 지적을 묵살한 채 계속 ‘민주당을 찍지 말라’는 메시지를 유권자들에게 던졌다. 결국 민주당은 선거법을 위반한 노 대통령에 대해 탄핵소추를 추진하게 됐고, 한나라당(현재 새누리당)도 이에 뒤늦게 동조한다.

2004년 3월 11일에 노 대통령의 탄핵이 국회에서 가결됐지만, 탄핵 역풍은 예상했던 것 보다 더 강했다. 친노좌익 세력은 KBS-MBC 등 공영방송의 선정적 보도에 힘입어서 노 대통령에 대한 동정 여론을 확산시키는 데 성공했다. 결국 열린우리당은 탄핵 역풍을 타고 2004년 4월 총선에서 152석을 확보하는 승리를 거뒀다.

열린우리당 총선 압승 직후부터 탄핵 정당했다는 확신 굳혀

이후 변 회장은 탄핵이 정당했다는 확신을 더욱 굳히게 된다. 다음은 그의 책 일부분을 발췌한 것이다.

“ 나는 열린우리당의 총선 압승 이후에야 탄핵은 정당했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탄핵안은 2004년 3월9일 상정됐다. 탄핵의 대표적 사유는 “민주당 찍으면 한나라당 돕는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개입 발언과 측근비리, 경제파탄 등이었다. 이중에서 핵심은 역시 정치개입이었다.

탄핵안이 상정됐을 때만 해도, 이를 주도한 민주당과 한나라당 정치인은 물론 각 언론사 정치부 기자들 역시 진짜로 탄핵안이 가결되리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민주당은 물론 한나라당 내에서도 탄핵역풍을 우려하는 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사건은 개인적으로 안티조선 시절부터 함께 한 좌파언론운동세력과 정치적 결별을 하게 된 중대한 분기점이었다. 최소한 조선일보 개혁을 요구하는 세력이라면 조선일보보다는 더 진실에 충실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탄핵사건을 거치면서, 안티조선 운동을 빌미삼아 조선일보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수준의 거짓선동을 이어가고, 언론의 논리와 윤리를 팔아먹는 세력이란 점을 점차 인식하게 됐다.

이러한 인식 하에 2006년 3월부터 조선일보 고정 칼럼니스트로 참여, 안티조선세력과도 완전히 선을 긋게 된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사건은 거대 포털사이트와의 싸움과 더불어 좌파진영을 떠나게 되는 결정적 계기였던 것이다“

변희재 대표의 40년 삶이 담긴 자전적 에세이 <변희재의 청춘투쟁>은 7월초에 출간되며, 현재 저자 싸인본을 예약판매 중이다. 가격은 15,000원이며, 예약을 희망하는 독자들은 기업은행 500-028828-01-018 (예금주 : (주)수컷미디어)로 입금한 후 sookutbook@gmail.com로 메일을 보내서 예금 입금자 성함, 싸인을 받을 분 성함, 주소 및 연락처를 남기면 된다. 이메일 사용이 곤란한 분들은 02-720-8828로 전화 예매도 가능하다.

이문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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