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성향의 인문학자 도정일 경희대 명예교수가 오랜 세월 석박사 학위를 사칭해왔다는 의혹을 두고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도 교수가 미국 하와이대에서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던 것과 달리 실제로는 이 대학에서 박사는 물론 석사 학위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져서다. 이 같은 사실은 지난 해 말경 인터넷매체 뉴스토마토의 단독보도로 알려지면서, 도 교수를 둘러싼 학위논란이 본격화되는 모양새다.
뉴스토마토에 따르면, 도 교수는 지난 1983년 3월 경희대 영문과 교수로 부임해 2006년 2월 정년퇴임했다. 도 교수는 1983년 경희대에 임용된 이후 줄곧 하와이대에서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왔지만,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의 학위 확인 기관인 NSC(National Student Clearinghouse)에 따르면 도 교수는 1975년 9월부터 1985년 12월까지 하와이대에 적을 두기는 했지만 석사와 박사 중 아무 학위도 받지 못했다. 경희대에 임용된 1983년3월 이후 2년 9개월 간, 박사논문을 쓰기 시작한 1981년 이후 4년 이상의 기간 동안 학위를 취득하지 못한 채 졸업연한을 채웠다.
또한, 경희대의 여러 공식 자료에는 도 교수가 영문학으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고 기재돼 있지만 전공학과도 영문학이 아닌 미국학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도 교수는 "석박사 통합과정을 들었고 논문을 써 1984년 여름방학 때 논문이 최종 통과되긴 했지만 졸업신청을 못한 것"이라면서 "박사학위 과정을 수료하고 학위논문을 제출하자면 1)석박사 과목이수 완료 및 소정 학점 취득, 2)박사종합시험 통과 단계를 거쳐야 하고, 이 두 단계를 거치면 '학위논문 제외 전 과정 수료'를 뜻하는 'ABD'(All But Dissertation) 증서가 나오는데, 나는 이를 넘어 최종 단계까지 이수한 경우"라고 해명했다고 뉴스토마토는 전했다.
도 교수는 또한 '결국 석사학위도 취득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뉴스토마토 측 지적에 "박사논문을 통과시켰다는 것은 박사과정 최종 단계까지 끝냈다는 의미이며, 이 단계 속에는 석사과정 수료가 자동적으로 포함되어 있다"고 해명했다.
아울러 그는 그간 미국학이 아닌 영문학 전공으로 알려진 데 대해서도 "전공은 미국학이고 세부전공은 미국문학과 미국문명인데 영문과에 들어오다보니까 직원들이 그냥 영문학 전공으로 기재하면서 생겨난 논란"이라며 "불가항력적으로 그런 혼란이 좀 생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뉴스토마토 측은 "스스로 영문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고 한 적은 없다"는 게 도 교수의 입장인 셈이라고 덧붙였다.
도 교수 학력 위조 논란이 확산되면서 진상조사에 들어간 경희대 측은 “문제없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경희대 측은 최근 도 교수의 석박사 학위 논란을 다룬 미디어펜과의 통화에서 “1983년 임용 당시 도정일 교수 외에도 학사 졸업 경력만으로 교수로 채용된 이들이 다수 있었다”면서 “당시 도 교수를 학사 졸업 경력으로 뽑았었고 올해 초 감사보고서에서도 이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또한 “도 교수가 임용 당시 학교에 제출한 자필 이력서에는 ‘박사학위 논문을 썼다’고만 적혀있다”고 덧붙였다. 즉, 경희대도 도 교수가 학사 학위 소지자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당시에도 분명히 인지하고 채용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도 교수와 경희대 양 측의 주장이 사실이라고 해도 도덕적 비판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도 교수가 그간 얻은 사회적 명성과 인지도는 수십 년 동안 미국 대학의 영문학 박사학위자라는 권위를 바탕으로 얻은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기 때문이다. 경희대 역시 자사 출신의 사회적 유명 인사 학력에 관한 사실을 알고도 사실상 묵인해왔다는 지적이 불가피해 보인다.
도 교수는 "스스로 영문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고 한 적은 없다"고 밝혔지만, 자신이 학위를 받지 않은 사실을 알고도 묵인하거나 박사학위자로 사칭해왔다면 또 다른 논란을 부를 수도 있다.
실제로 도 교수가 지난 2006년 2월 문화일보와 한 인터뷰에는 “도 교수는 지난 65년 경희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미국 하와이대에서 영문학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돼 있다.
2014년 7월 중앙일보에 기고한 <생각이란 건 해본 일이 없다니> 글에는 약력으로 하와이대 영문학박사라고 표기돼 있다. 이는 도 교수가 박사학위자로 사칭했거나 의도적으로 묵인해왔다는 의혹을 부르는 대목이다.
도정일 교수 박사 학위 논란과 관련 여러 의혹을 적극적으로 제기해오고 있는 경희대 영문과 한학성 교수는 지난 2일 자신의 블로그에 도 교수 학위논란과 관련해 학교 측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한 교수는 “도교수님 학위와 관련한 문제의 요체는 있지도 않은 하와이대 석박사 학위를 있는 것처럼 거짓말을 해 온 데에 있다.”며 “그러면서 정의를 이야기하고, 우리 사회에 만연한 속임수 문화를 개탄하며, 우리 사회의 정의 없음을 꾸짖어 온 데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 거짓말과 위선에 대한 진지한 고백과 반성이 있어야 할 자리에, 당시에는 박사학위 없이도 교수가 될 수 있었다거나, 박사학위를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식의 변명을 늘어놓는 것은 사실을 호도하는 것일 뿐 아니라, 자신이 행한 거짓과 위선에 대한 부끄러움이나 반성의 의사가 전혀 없음을 드러내는 것일 뿐”이라고 강하게 질타했다.
도정일 교수는 지난 2014년 8월 28일자 한겨레신문 <[특별기고] 세월호와 맹자> 칼럼에서 “세월호 유족들은 ‘이’(利)를 따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의’(義-진상 밝히는 일)를 말하고 있다.”며 세월호 진실규명을 강조한 바 있다. 도 교수가 자신에게 제기된 박사학위 사칭 의혹에 대해 정확한 사실을 밝혀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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