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소개] 야마오카 데츠히데(山岡鉄秀)는 정보전략분석가이자, Australia-Japan Community Network Inc. (AJCN, 일-호 지역주민네트워크 주식회사) 대표이며 공익재단 모라로지(モラロジー) 연구소 연구원이다. 1965년 도쿄 출생. 일본 주오(中央)대 졸업 후, 호주 시드니대 대학원, 뉴사우스웨일즈대 대학원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2014년 호주 스트라스필드(ストラスフィールド, Strathfield) 시에서, 중국계와 한국계의 반일 단체가 추진하는 위안부 동상 설치 계획과 조우했었다. 이에 아이가 있는 어머니들과 함께 현지 일본계를 이끌고 AJCN를 결성했다. “지역 사회의 평화와 화합의 중요성”을 호소하고 비일본계 주민의 지지도 얻어, 압도적 열세를 만회했다. 결국 2015년 8월, 스트라스필드 시에서의 “위안부 동상 설치” 저지에 성공했다. 저서에 유엔의 사기와 아사히 신문 등 영어 선전전의 함정(陥穽)을 추궁한 ‘일본, 이제는 사과 하지마!(日本よ、もう謝るな!)’(아스카신샤(飛鳥新社))가 있다. |
거짓말쟁이 ⅤS 거짓말쟁이, 예상치 못한 ‘내분’ 발발(嘘つきⅤS嘘つき まさかの”内ゲバ”が勃発)
지난 4월 15일, 한국 총선에서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대표 윤미향 씨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비례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의 국회의원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정대협이라고 하면 일본에서도 아는 사람이 많다고 생각되는데, 한마디로 전 세계에 위안부 동상을 세우는 활동을 해온 단체다.
보도에 따르면 정대협은 2015년 일한위안부합의에 맞서서, 전(前) 위안부를 대상으로 독자적으로 복지사업을 위해 설립된 ‘정의기억재단'과 조직을 통합해 ’일본군 성노예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정의연)로 명칭을 변경하고 활동을 계속해오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번 총선 전에는 서울시로부터 받는 지원금을 두 단체의 대표로 중복 신청을 했던 것이 발각되고 소란을 일으켰다. 이 스캔들로 입후보를 철회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당선되어 버려서 이것으로 또 한국에서 반일활동에 기세가 붙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무려 윤미향 대표와 91세의 옛 위안부인 이용수 씨가 큰 싸움을 시작해버린 것이다. 이용수 씨라고 하면 전세계에서 정대협의 첨병으로 활약한 위안부다. 2017년 11월 트럼프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청와대에서 개최된 만찬회에 초대되었고 트럼프 대통령에 달라붙는 퍼포먼스를 기억하시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저는 피해자가 아니고, 제 친구가요(私は被害者ではなく、友達なのですが)
그 이용수 씨가 무엇 일이 있었는지 윤미향 대표를 맹공격했다.
“30년간 속을만큼 속았고, 이용당할만큼 당했다.”
“(일본대사관 앞 수요집회는) 증오와 상처만 가르친다. 후원금도 피해자를 위해 사용된 적이 없고, 어디에 사용되었는지 모른다.”
“(윤미향 씨의 당선은) 사욕을 채우기 위해 엉뚱한 곳에 간 것이다.”
“한일협정으로 일본이 10억 엔을 지불하기로 했던 것도 위안부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이에 대해 윤미향 전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자신이 얼마나 이용수 씨와 친했는지, 또 일한협정에서 일본 정부의 지불 문제에 대해서는 공유를 하고 있었다는 것, 또 입후보 문제도 이 씨로부터 지지를 받았다는 것, 등에 대한 내용을 쓰고 부드럽게 반격했다.
그런데 그 글에 의문스러운 내용이 있었다. 1992년 윤미향 전 대표가 처음으로 이용수 씨로부터 전화를 받았을 때를 회상하였는데, 이용수 씨가 모기소리만한 목소리로 떨면서 “저는 피해자가 아니고, 제 친구가요”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 내용은 한국의 조선일보 기사에도 실렸다.
응? 그렇다면 이것은 이용수 씨는 원래 위안부가 아니었다는 의미일까? 중요한 포인트여서 나는 한국어 원문에 대해서 한국어를 할 줄 아는 기자로부터 확인까지 받았다. 확실히 그렇게 쓰여 있었던 것이다. 설마, 이용수 씨가 새삼 자신이 위안부가 아니었다고 그럴까?
이용수 씨라고 하면 증언 내용이 자주 바뀌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그 활동도 상당히 눈에 띈다.
발간된 자료에 따르면, 이용수 씨는 1928년 한국의 대구에서 태어났다. 1944년에 위안부로 대만에 연행되었으며 1947년까지 위안소에서 고문을 받았고 한다. 무려, 전쟁이 끝나고 나서도 2년간 위안부를 더 했고, 한편, 고문을 받았다는 것일까.
그 고문 문제인데, ‘신문 아카하타(新聞赤旗)’의 일요일판 2016년 12월 4일호에는, 이용수 씨 증언으로,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나는 16살 때, 일본군에 의해 대만에 연행되었습니다. 위안소 방에서 도망가려고 하는 나를 군인이 힘껏 걷어차고선 칼로 오른쪽 허벅지를 찔렀습니다. 내 양손에 전화선 같은 것을 감았습니다. 전기 고문을 당할 때, 나는 ‘엄마’라고 외치며 의식을 잃었습니다.”
위안부와 반일단체의 정체가 드러난 것?(元慰安婦と反日団体の正体が露わになった?)
이용수 씨의 활동 중에 특히 유명한 것은, 2007년 미 하원에서 통과된 ‘위안부 문제와 관련 대일 사과 요구 결의’(미 하원 121호 결의안)의 심의 석상에서, 미국 의원들 앞에서 한 시간 동안 울부짖으면서 증언을 한 것이다.
그 후에도 전세계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강연, 항의 활동, 위안부 동상 설치운동 등에 종사해왔고, 샌프란시스코 시에서 열린 위안부 동상 설치에 관한 공청회에도 등장했다.
공적 자료에 따르면, 이용수 씨는 1992년 전(前) 위안부로 나섰던 당초에는 “국민복을 입은 일본인 남자로부터 원피스와 가죽구두를 받아서 기쁘게 따라 갔다”고 증언했지만, 그 이후 “일본 군복을 입은 남자들에 의해 집에서 납치됐다”는 강제연행 스토리로 변천했다.
이용수 씨에게 묻고 싶다. 이것들이 전부 친구 이야기였다는 것인가? 설마, 아무리 그래로 새삼 그건 아니지 않나? 윤미향 전 대표는 왜 그런 내용을 Facebook에 쓴 것일까? 이용수 씨가 만약에 가짜 위안부라면 어차피윤미향 전 대표도 공범이라는 것이지만 말이다.
그 윤미향 전 대표도 그토록 반미를 주장하면서 딸을 미 국대학에 유학시킨다는 모순에 대해서 지적을 받고 비판을 받고 있다. 또한, 그녀의 남편과 여동생이 과거에 북한의 간첩 혐의로 체포되고 기소된 사건도 다시 지적되고 있는 모양이다.
결국, 반일단체의 정체가 드러난 것이 아닐까.
당초엔 “생활에 궁핍한 옛 위안부를 다 같이 지원하자”라는 식의 활동을 해야 했는데, 자신들을 완전한 피해자, 일본을 완전한 가해자로 규정하고 일본을 일방적으로 규탄하고, 문제해결을 방해하고, 이권구조를 유지하려고 하고, 그를 위해서 고령의 할머니들을 이용해왔다.
그 결과로 30년간 협력한 할머니와 싸우고 “속을만큼 속았고 이용됐다”고 비난을 받게 됐고 이에 “사실 이용수 씨는 위안부가 아니었다”고 폭로했던 것이 아닐까?
이것이 사실이라면 참 슬픈 일이다. 이런 위안부 문제로 인해서 그동안 많은 일본인들이 전 세계인들 앞에서 고통을 겪었고 깊은 상처를 받았다. 이용수 씨와 윤미향 전 대표는 이제 사실을 증언해 주었으면 한다. 전부가 거짓말이었다고, 그렇게 증언한다면 세계는 그 용기를 찬양할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때야말로 위안부 문제는 정말 불가역적으로 해결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