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칼럼은, 일본의 유력 시사잡지 ‘겟칸세이론(月刊
正論)’ 2020년 7월호에 게재된,
모라로지 연구소(モラロジー研究所) 교수이자 레이타쿠(麗澤) 대학 객원교수인 니시오카 쓰토무(西岡力)의 기고문 ‘[‘특집’ 조선반도 정보보고] 내분 시작된 한국・위안부 운동([「特集」朝鮮半島情報報告] 内ゲバ始まった韓国・慰安婦運動)’(원제)을, ‘겟칸세이론’ 측의 허락을 얻어 완역게재한 것이다. ‘겟칸세이론’ 인터넷 홈페이지(web正論,
http://seiron-sankei.com)는 현재 모종의 이유로 한국에서는 접속이 차단되어 있다(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접속 차단을 한 적이 없다고 알려왔다
). 하지만, 최근 새단장한
‘세이론’ 종합 홈페이지(the正論,
https://www.the-seiron.com)는
접속이 가능하므로 온라인의 세이론 콘텐츠를 이쪽을 통해서 살펴보기 바란다.(번역 : 황철수)
[정정]
김병헌 국사교과서연구소장이 최근 이용수 씨의 위안부 증언들을 1차 자료를 중심으로 다시 검토한 결과 과거 미디어워치의 이용수 검증 보도에서 일부 오류가 있었음을 알려왔습니다. 김 소장의 지적은 다음과 같으며, 미디어워치는 이 지적을 전적으로 수용하고 이에 정정하는 바입니다.
(1) 이용수 씨의 위안부 관련 증언이 미디어워치의 지적처럼 1993년부터 최근까지 이십여 차례에 걸쳐 연도, 나이, 경위, 기간 등에 일관성이 없이 오락가락했던 것은 사실이다. 다만, 미디어워치가 연합뉴스 등의 관련 보도를 인용하여 증언 내용이 달라졌다고 지적한 '2007년 미국 의회 증언'과 '2018년 프랑스 의회 증언'은, 원 증언 내용을 확인해본 결과 기본적으로 같은 취지의 것이 맞는 것으로 보인다. 두 증언에는 공히 “강제연행 현장에 군인이 있었다”, “등에 칼이 찔려 끌려갔다”는 ‘1993년 최초 증언’에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강제연행 증언이 담겨 있는데, 이는 최근에 갑자기 등장한 내용은 아니고 실제로는 (2007년, 2018년이 되어서가 아니라) 이미 2000년을 전후로 하여서 등장한 내용으로 여겨진다. 이 씨의 ‘1993년 최초 증언’이 2000년대 들어서 국내외로 갑자기 과격한 강제연행 증언으로 바뀌고, 결국 2007년 미 의회에서까지 그렇게 바꾸어 증언한 경위를 추궁하는 것이 이용수 위안부 증언 변천 문제의 핵심이다. 이 씨가 ‘1993년 최초 증언’을 계속해서 부정하고 최초 증언집은 더 이상 팔면 안 된다고 최근 기자회견에서 강조했음도 유심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2) 미디어워치가 한겨레를 보도 등을 인용해 이용수 씨가 2016년 12월, 박유하 교수 결심 공판에서 한 증언은 미디어워치의 소개와는 달리 공식적인 '법정증언'이 아니었다. 이 씨가 당시 증언대에서 여러 이야기를 했었지만, 이 씨는 일단 당시에 증언선서를 한 바가 없었다. 법적으로는 단순히 재판 방청인의 의견진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으로 보인다. 박유하 교수의 관련 1심 기록을 직접 확인한 결과로도 이용수 씨가 법정증인으로 채택된 내역은 전혀 확인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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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조선반도 정보보고] 내분 시작된 한국・위안부 운동
([「特集」朝鮮半島情報報告] 内ゲバ始まった韓国・慰安婦運動)
5월 9일, 위안부 이용수 씨가 30년간 반일운동을 함께 해온 정대협(현재 정의연으로 개칭), 그리고 전 이사장으로서 4월 총선에서 여당의 비례후보 상위로 당선된 윤미향 씨를 강하게 공격하고 나섰다.
이 씨는 “수요집회는 참석한 학생들에게 상처만 가르치므로 더 이상 참석하지 않겠다” “모금한 돈을 위안부 할머니들한테 쓴 적이 없다” “윤 씨는 국회의원을 하면 안 된다”고 기자회견에서 말했다.
이에 따라 한국 언론들은 일제히 정대협의 회계의혹, 그리고 윤 씨와 그 가족에 대한 의혹을 연일 보도하고 있다. 위안부 할머니들을 앞세워 모금활동을 해온 정대협이 모금한 돈의 대부분을 위안부가 아니라 자신들의 인건비와 활동비로 사용해왔다는 것이다.
2015년 12월말, 위안부에 관한 일한(日韓) 협정이 체결되었다. 정대협은 여기에 반대하고 대대적인 모금활동을 했다. 그 결과로 2016년부터 19년까지 4년간, 49억 원(일본엔 약 4억 2800만엔)이 모였다.
그런데, 그중에서 일본이 출자한 재단에서의 위로금을 거부한 전(前)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전달된 것은 9억 원 뿐이었고, 나머지 40억 원 중에서 18억 원은 다른 용도로 사용되었으며, 나머지 22억 원은 저축을 했다.
즉, 모금한 돈 중에서 옛 위안부들에게 전달된 것은 20%뿐이고, 40%는 인건비를 포함한 다른 용도로 사용된 것이다. 게다가 위안부가 차례차례로 사망하는 속에서 40%의 돈은 사용되지 않고 저축했다는 것.
또, 사망한 옛 위안부인 김복동 씨의 장례식에서는 2억 2726만 원의 조위금(弔慰金)이 윤 씨의 개인 은행계좌로 모여졌지만, 장례에 사용된 것은 1억원에 불과하며, 나머지 약 1억 3000 만 원은 유언도 공개하지 않은 채 “고인의 뜻”이라고 칭하면서 자신들의 동료인 반미친북 단체에 지원금으로 배부됐다.
또한 동료 자녀들의 장학금으로도 지급된 것이 밝혀졌으며 위안부를 위해서는 전혀 사용되지 않았던 실태가 밝혀졌다. 이 지원금은 11개 친북반미단체에 각 200만 원, 총 2200만원에 이르렀다.
배포할 곳의 선정은 윤미향 씨 등이 마음대로 뽑은 것이다. 그 내역을 보면 한국으로 망명한, 중국에서 운영되고 있는 ‘북조선 식당’의 여직원을 북조선에 돌려보내는 운동을 하는 단체, 그리고 미군기지와 한국군기지 반대운동 단체는 물론, 북조선의 간첩 등 혐의로 수감된 죄수의 가족단체, 북조선에 트랙터를 보내는 단체 등등이 줄지어 있다. 그러나 정작 위안부 문제에 관한 단체 등은 하나도 없었다.
한편, 장학금은 2000만 원. 정대협 이사의 자녀를 포함한 좌파 운동 단체의 활동가 자제 수십 명에 각 200만 원이 지급되고 있었다.
심지어 2012년에는 현대중공업재단의 기부금을 받아서 위안부 할머니들의 ‘치유의 집’으로 서울 근교 경기도 안성시에 주택을 샀는데 시세의 3배나 되는 고가로 좌파 활동가 동료에게서 구매한 것이었다. 이는 비자금 조성을 위해 의도적으로 고가로 매매를 한 혐의로 형사고발됐다.
거기에는 전(前) 위안부는 아무도 거주하지 않았으며 1년에 몇 번 방문하는 것 뿐이었다. 윤미향 씨의 아버지가 관리인으로 살면서 급여를 받았고 정대협이 자신들의 휴양시설로 사용하고 있었다.
윤미향 씨와 사무국 직원들이 때때로 숙박으로 방문했던 것뿐만이 아니라 외부에 숙박시설로도 대출되기도 했었다. 이 씨가 윤 씨에 대한 비판 기자회견을 열었던 다음날 이 주택은 구입가격의 반값으로 경매되었다.
이상의 내용이 한국 주류 언론이 마침내 폭로를 시작한 정대협과 윤 씨의 위선이지만, 그래도 이것들은 전모의 일부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이들은 인권운동가들이 아니라 북조선에 의한 통일을 지향하는 종북 활동가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신의 정치활동을 위해 위안부 문제를 이용하여 경제적 지위를 누려온 것이다.
한국 보수를 대표하는 언론인이자 전 한국경제신문의 주필(정규재)은 자신이 주재하는 인터넷TV ‘펜앤드마이크(ペンアンドマイク)’ 5월 15일 방송에서 뒤에서도 언급할 황의원(黄意元) 기자와 대담하면서 위안부 문제의 본질을 바로 이렇게 정리했다.
“정대협은 위안부에 관한 허상으로써 한국 국민들로 하여금 일본에 대한 적대감을 형성시켜 대한민국을 반미, 반일, 친중으로 끌고 가려는 정치적 동력”이 되어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여기서 이것을 중지해야 한다.
성노예설 뒷받침 역할(性奴隷説裏づけ役)
하지만, 윤미향 씨와 정대협을 비판하는 이용수 씨에게도 죄가 있다. 이 씨는 30년 동안 윤 씨 등과 공모하여 위안부 강제연행, 성노예설 등 허구를 조성해온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윤미향 씨 등이 일본 비판을 전개한다고 해도 위안부 할머니가 옆에 서있지 않으면 그 주장은 힘을 가질 수 없다.
그런데, 위안부 중에서는 정대협의 이러한 정치우선주의 노선에 반발하고서 함께 활동해오지 않았던 사람도 많다.
1995년,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정권하에서 설립된 ‘아시아여성기금’에 대해 정대협은 강경하게 반대했다. 정대협은 옛 위안부 할머니들이 이 기금에서 지급된 위로금(사죄금)을 받는 것을 강력히 방해했다.
한국 정부에 등록된 옛 위안부 236명 중, 보상금을 받은 것은 61명. 이 당시 이미 위안부 중에서 1/4이 정대협에서 이탈한 셈이다.
2015년 일한 양국정부에 의한, 위안부와 관련하여 체결된 일한협정에서도 정대협은 옛 위안부와 사전상담이 없었다는 것을 이유로 무효를 외쳤다.
그러나, 합의 당시 생존했던 위안부 47명 중, 약 80%에 해당하는 36명이 일본이 출자한 재단에서 돈을 받았다. 당시 이용수 씨는 윤 씨 등과 함께 일본 규탄을 계속하면서 일본의 돈을 받지 않았던 소수 위안부였다.
2007년 2월 미국 의회 증언, 2018년 3월 프랑스 의회 증언 등 활발한 국제활동을 해온 이 씨는 윤 씨 등과 함께 이를 전개해왔다.
문재인 대통령의 2012년 대선 때부터 선거 응원을 해왔고 ‘박근혜 탄핵 시위’ ‘THAAD 배치반대운동’에 참여해왔다.
2017년, 트럼프 대통령 방한 시에는, 옛 위안부 중에서도 혼자만 만찬회에 초대되어 트럼프 대통령과 포옹하는 퍼포먼스도 선보였다.
“거짓말 할머니”(「嘘つきおばあさん」)
그러나, 2018년 경부터 윤미향 씨 등은 이용수 씨를 운동의 전면에 내세우지 않게 되었다.
그것은 같은 해 4월에 한국의 용기있는 언론인인 황의원 기자가 그녀의 증언을 자세히 조사하고서 그녀의 증언은 믿을 수 없다는 내용의 장문의 기사, “‘종북’ 문재인을 위한 ‘거짓말 할머니’, 일본군 위안부 이용수(『従北』文在寅のための『嘘つきおばあさん』、日本軍慰安婦李容珠)”를 인터넷뉴스 ‘미디어워치’에 쓴 시기와 겹친다.
황 기자는 2014년도에도 윤미향 씨를 비롯한 정대협 간부들이 북조선과 밀접한 활동가라는 고발 기사를 썼다. 그는 위안부 문제 그 자체를 다루는 것은 “그때(2014년)는 아직 무서웠었다”고 술회하고 있다.
실제로 2016년도에 정대협과 윤 씨가 형사와 민사로 명예훼손이라고 소송을 제기했었지만, 황 기자는 올해 2월, 결국 양쪽 모두에게 승소했다.
황 기자는 정대협과 재판을 계속하는 가운데 2018년도에 위안부 문제 자체가 허구라는 내용의 이용수 씨에 대한 기사를 썼다.
황 기자는 이 씨가 1993년도부터 다양한 곳에서 행한 증언 20 여개를 모아서, 1) 위안부가 된 경위, 2) 시기, 3) 나이, 4) 위안소로 끌고 간 주체, 5) 위안부 생활을 한 기간을 비교하고, 그것이 전부 다른 엉터리 증언이라고 고발했다.
“(이용수 씨의 증언은) 앞뒤가 맞는 것이 하나도 없고, 내용이 모두 다릅니다. 기간만 해도 ‘1944년에 끌려갔다’고 하면서 ‘3년간 위안부 생활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한국은 1945년 8월에 식민지에서 해방됐으므로 이는 말이 안 됩니다.
그러자 이 씨는 1944년을 다시 1942년으로 바꿔 말하고, 또다시 1944년으로 바꿔 말하면서 이번에는 기간이 ‘8개월’이라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씨는 2007년 2월에 미국 의회에서 증언했고 2018년 3월에는 프랑스 의회에서 증언했습니다. 그런데, 양국 의회에서의 증언이 다릅니다.
미국 의회에서는 ‘1944년에 끌려갔고 3년 동안 위안부를 했다’고 말했습니다. 이 증언 자체도 앞서 지적한 모순을 내포하고 있는데, 이때는 누가 데려갔는지, 주체를 전혀 밝히지 않았습니다. 그냥 ‘끌려갔다’고 밖에 말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프랑스 의회에서는 ‘일본군이 등에 칼을 찔러 납치했다’고 말했습니다.
1993년 당시 첫 증언은 “빨간 원피스와 가죽구두에 유혹되어 일본인을 따라갔다”였습니다. 처음에는 일본군에 의한 강제연행이 아니었는데, 점차 발언내용이 과격해지고, 프랑스 의회에서는 완전히 일본군 강제연행이라고 단정을 했습니다.
본인이 자백하지 않는 한 거짓을 완전히 증명은 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도저히 이 씨의 이야기는 믿을 수가 없습니다.
위안부 증언은 물증이 없습니다. 제3자 증언도 없습니다. 오직 본인의 증언 밖에 없는데 그렇다면 본인 증언의 일관성 정도라도 있어야 하는데, 이 씨의 증언은 일관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 씨에 대해 가짜 위안부 의혹을 제기했던 것입니다.”
- 전출(前出) ‘펜앤드마이크’ 5월 15일 -
황 기자는 당시에 이용수 씨에 대한 기사를 정대협과 윤 씨에게 송부하고서 답변을 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정대협에서 보내온 회답문서는 “정대협의 명예를 훼손하지 말라”였다.
이 씨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이 없었다. 정대협은 이 씨의 명예를 보호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하지 않았다.
이 씨가 기자회견을 열었던 배경에 대해 정대협과도 가까운 좌파계의 한겨레신문에 “정의연의 내부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의 말이 보도되었다.
“일본과 보수진영 등에서 이용수 할머니에 대해 ‘가짜 피해자’라는 등의 공격이 있었는데 이 할머니가 공개적인 자리에서 ‘시키는 대로 증언을 해왔는데 왜 나를 보호해주지 않냐’고 정의연에 서운함을 토로한 적도 있다”
마각을 드러낸 정대협에 의한 허상(馬脚現した挺対協による虚像)
지난해 7월에는 이영훈 전 교수의 ‘반일종족주의’가 출판되어 위안부는 ‘성노예’가 아니라 군이 관리하는 공창이었다는 실증적인 연구성과가 한국사회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또 12월부터는 매주, 정대협의 일본대사관 앞 수요집회 바로 옆에서 수요집회 중단과 위안부 동상철거를 요구하는 대항집회가 열리고 있다. 이 대항집회에서는 학자, 언론인, 변호사, 좌파 운동가나 여러 여성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 집회에서는 정대협이 1993년에 출판한 위안부 증언집을 낭독하면서, “최초로 나선 김학순 씨는 실은 부모에게 기생으로 팔린 사람이다. 문옥주 씨도 위안소에서 저금을 하고 고향 가족에게 당시 물가로 집을 5채를 살 수 있는 거액의 송금을 했다. 이용수 씨는 93년에는 빨간 원피스와 가죽구두에 유혹되어 일본인을 따라갔다고 증언하고 있다” 등 모순을 지적하는 연설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용수 씨가 정대협 비판에 나선 큰 이유는, 자신의 증언에 대해서 일본 뿐만이 아니라 한국에서도 거짓이 아니냐는 의문과 비판이 고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대협과 윤미향 씨가 자신을 지켜주지 않는다는 불만이 있었기 때문이다.
즉, 그동안 일본과 한국에서 누적되어 왔던 위안부 문제의 허위를 폭로하는 노력이, 마침내 전(前) 위안부의 정대협 비판이라는 사건을 만들어낸 것이다.
윤미향 씨를 이번 국회의원 선거에서 비례 명단 상위에 올려 당선시킨 여당 측은 “위안부 운동을 비방하는 세력은 친일파”라고 정색하고 있다.
인터넷상에는 “정대협을 비판하는 사람은 ‘토착왜구’다”라는 구호가 적힌 위안부 동상 포스터가 나돌고 있다.
6월 호의 졸고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한국에서는 ‘친일발언 처벌법’을 만들라는 전체주의적인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다.
진실이 이길지, 거짓의 강요가 이길지, 한국 자유민주주의의 위기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김정은 사망 정보는 중국에서(金正恩死亡情報は中国から)
이번 원고는 여기서 화제를 바꿔보도록 하겠다.
얼마전, 북조선의 최고 지도자인 김정은의 동정을 20일째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가 5월 2일에 북조선 공식매체가 전날 1일에 순천비료공장 준공식에 김정은이 참석했다는 보도를 하면서 사진, 동영상을 흘리고 그래서 겨우 동정을 알았던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사망설 등 다양한 견해가 나왔고 나도 김정은 이변설에 대해 언급해왔다.
현 단계에서 내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그리고 현재 북조선 정세가 일본의 최우선 과제인 납북자 구출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에 대해서 쓰고자 한다.
나는 그간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김정은은 “4월 12일 경에 심장발작이 일어났고, 원산에서 북조선의 의사가 심장 수술을 했다”고 말해왔다.
이 설에 대해서는 나는 지금도 그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내가 처음 들었던 정보는 “수술은 성공했고 회복되고 있기 때문에 이제 그 모습을 보일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4월의 다섯째 주에 들어가서 “회복했지만 두 번째 발작이 일어났고, 그래서 나올 수 없다”는 추가정보를 입수했다.
또, 중국 내에서 다양한 루트로 “수술실패” “의식불명” “재기불능” “뇌사” “식물인간” 등의 정보가 흘러나왔다.
4월 30일에는 대만 입법원(국회)에서 대만국가안전국장인 치우궈청(邱國正) 씨가 “김정은은 몸이 좋지 않은 상태다” “북조선 내부에서 지도자(김정은)에 뭔가 있었을 때의 비상계획이 준비되어 있다”며, “이제까지 나온 정보를 근거로 하는 것이며, 내 개인적인 의견이 아니다” “정보원을 보호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답할 수는 없다”고 답변했다.
중태 정보는 결과적으로 정확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흘린 것이 아닌가 의심된다. 거의 같은 방향인 정보가 일제히 흘렀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자기 정보원의 정보들을 YouTube 방송 등으로 발신하는 여러 탈북자 전문가와 탈북자 출신 국회의원 당선자들이 중태설, 사망설을 발신한 것도 역시 4월 다섯째 주다. 중국 정보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한편, 로이터와 아사히(朝日)가 중국발로, 중국인 의사가 방북했다고 썼다. 북조선 내부에서 전해진 정보로는 절대로 중국인 의사를 입국시키지 않았다,
중국에 김정은의 건강 상태를 알리면 안 된다는 강한 지시가 재중북조선외교관이나 북조선 내의 중국과 접촉하는 일을 하는 부문에 하달이 되었다, 또한 북조선의 국가보위성은 중국에 정보를 전하고자 하는 북조선내 친중파 색출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고 한다.
반면, 한국 정부는 일관되게 김정은은 건강하고 정상적인 업무를 하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알고 있지만 말할 수 없다” “좋은 상태임을 희망한다” 등의 이야기만 했고, 알고 있는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
일본 정부는 일단 겉으로는 아무 코멘트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도쿄신문(東京新聞)에 따르면, 일본 정부 고관은 김정은의 경호부대가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피난을 하였고 피난장소에서 의료시술을 받았다, 이렇게 파악하고 있었다.
"수술→회복"의 근거(「手術→回復」の根拠)
5월 2일이 되어 김정은의 사진과 동영상이 공개되고 “뇌사” “의식불명” “사망” 등의 판단은 틀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수술을 하고 회복을 한 것인지, 아니면 어떠한 수술도 하지 않았던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두 견해가 존재한다.
5월 3일, 한국 청와대 고위 간부는 “수술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현 단계에서는 “김정은은 수술을 했다, 그러나 회복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내가 김정은은 수술을 했지만 회복했던 것이라고 지금도 생각하는 근거는 두 가지다.
첫째, 동생 김여정의 지위가 상승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올해에 김정은은 자신의 건강에 대해서 불안감을 갖고서 후계자로 김여정을 상정하여 그녀의 지위를 높이는 작업을 진행해왔다.
이번에도 김정은이 등장한 5월 1일 준공식에서 김여정의 지위가 더욱 높아졌을 것이다.
주석단, 단상에 7명이 있었다. 김정은을 중심으로 좌측이 서열 제2위, 그 다음이 우측으로 제3위라는 서열이다.
그날은 서열 2위가 정치국 상무위원 박봉주(朴奉珠), 3위가 정치국 위원으로 총리 김재룡(金才龍)인데, 이 두 사람은 현재 북조선의 경제 부문을 지휘하는 최고 간부로 비료공장 준공식에 당연히 나올 사람들이었다. 왼쪽 두 번째 서열 4위 위치에 김여정이 있었다.
그녀는 지금 정치국 위원 후보이다. 참석자에는 정치국 위원이 2명, 박태성이 5위, 김덕순 6위로, 김여정이 정치국 위원보다 상위에 있는 것이다. 파격 중의 파격 취급이라고 해도 좋고, 이제까지 없었던 일이다.
이 주석단의 4위라는 서열에는 나름의 의미가 있다.
바로 아직 김정일이 살아있던 2010년 10월 10일 군사 퍼레이드의 주석 단상에서 김정일의 좌측 두 번째 위치에 김정은이 있었던 것이다.
그 위치는 김정은이 공식적으로 후계자로 주석단상에 오른 최초의 위치였는데, 그 때의 후계자 서열이 4위였다. 이번 김여정 4위에 그런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파격적인 대우를 한 배경에 김정은이 심장 발작으로 수술을 함으로써 자신의 건강에 더 자신이 없어지고 후계자로 김여정의 지위를 굳힐 필요성을 느끼고 4위 지위에 올린 것이 아닐까, 나는 그렇게 짐작하고 있다.
“수술 등은 없었다” “건강에 이상이 없다”는 것을 국내외에 보여줄 뿐이라면 김여정 서열의 파격적인 상승은 설명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수술이 있었다는 설을 지원하는 근거이다.
둘째, 수술이 있었다는 설의 근거는, 그동안 김정은이 정상적으로 업무를 수행하지 않았던 증거가 있다는 것이다.
데일리NK(デイリーNK) 4월 29일자는 다음과 같은 보도를 했다.
북조선에서는 매주 수요일 또는 목요일에 평양의 중앙당이 “김정은의 방침”이라는 것을 각 지방 당위원회에 하달한다. 그런데 거기에 이상한 점이 있었다.
4월 두 번째 주는 정상적이었다. 9일에는 열개 항목의 “...해야 합니다”라는 형태의 구체적인 지시가 있었다. 보통, 한 번에 일곱 개에서 열 개 정도 항목의 방침이 하달된다고 한다.
구어 형식으로 예를 들어 “요즘 젊은이들이 남조선 영화 등을 보고 있다. 젊은이들을 사상교육을 통해 바로 잡아야 한다.”(모월 모일, 김정은 동지의 말씀)과 같은 형태이다. 그런데, 이번에 셋째 주와 넷째 주에 이런 방침 하달 자체가 없었다.
비정상적인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다섯째 주 4월 29일 수요일에 방침이 하달되었지만, 단 세 개 항목 밖에 없었고, 그것도 날짜가 없는 조목별로 이런 지시를 했다.
“평양종합병원 관련 지원 강조”
“군민일체 조직운동의 활성화”
“농업 부문의 적기 씨부리기”
김정은이 죽지 않았더라도 어떤 이유건 업무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말씀”을 마음대로 날조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무난한 과거의 “말씀”을 가지고 온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하면 모순없이 이 사태를 설명할 수 있다.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고 보아야 할 근거이다.
김정은이 정상적으로 업무를 하지 않았다고 시사하는 정보가 또 하나 있다.
4월 셋째 주쯤부터 중국의 북조선 대사관, 총영사관의 업무가 정지되고 외교관과 국가보위부의 감시요원들이 전원 자택 대기 상태가 됐다. 외부와의 접촉도 금지됐다.
본국의 지시가 없기 때문에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집에 있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상과 갈은 이유로 나는 현 단계에서도 “4월 12일경 김정은이 심장발작을 일으켜 수술을 받고 요양하고 있었지만, 회복하고 5월 1일에 비료공장 준공식에 나왔다”는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판단하고 있다.
납북자의 소재 정보를(拉致被害者の所在情報を)
바로 이상의 상황이 일본인 납치 문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마지막으로 다루도록 하겠다.
거듭 주장해 왔지만 강한 압력을 동반한 대화로 납북피해자를 되찾겠다는 아베 정권의 전략에 있어 현 상황은 유리하다고 할 수 있다.
김정은의 건강에 문제가 있어 여성인 김여정을 후계자로 하지 않을 수 밖에 없게 된 것은, 정권의 약화로 이어질 것이고, 그만큼 압력의 효과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미 상당한, 제재의 효과가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다만, 현재 코로나 상황 속에서는 비밀 협상을 하려고 해도 서로 특사를 보내거나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좀처럼 새로운 움직임은 없다.
조금씩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는 측면에서는 분명 불리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납북자에 관한 확실한 정보를 확보하는 것이다. 확보한 정보는 구출을 위해서만 사용하는 것으로 엄격하게 관리되어야 한다.
일본 정부의 납치문제대책본부에는 정보담당부서가 있어서, 경찰, 외무성, 공안조사청 등의 북조선 정보 전문가가 모여서 열심히 정보수집 활동을 하고 있다.
이미 상당한 정보를 수집해두고 있다고 나는 확신한다. 사망했다는 피해자, 납치되지 않았다는 피해자가 언제까지 살아 있었다는 생존 정보는 실제로도 꽤 있다. 민간조직인 ‘구출회(救う会)’에도 그런 정보는 있다.
문제는 소재에 대한 정보다. 납치 피해자가 현재 어디에 있는지, 라는 정보다. 이것이 없으면 북조선에서 혼란 사태가 발생했을 때 구출을 할 수가 없다.
또한, 이것이 없다면, 아베 수상과 김정은의 담판이 실현되어도 거기서 또 김정은이 거짓말을 할 때에도 자신있게 반박하고 모든 피해자의 일괄 귀국을 요구할 수가 없다.
가족회•구출회는 정부에 모든 피해자의 즉시 일괄 귀국의 실현을 요구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모든 납치 피해자에는 다음 세 가지 카테고리가 있다.
첫째, 북조선이 일방적으로 사망했다고 통보하면서도 그 객관적 증거를 전혀 제출하지 못한 요코타 메구미(横田めぐみ) 씨 등 8명이다.
둘째, 북조선은 입국한 바 없다며 납치를 인정하지 않지만, 일본 정부가 각종 증거를 바탕으로 납치됐다고 인정하고 있는 소가 미요시(曽我ミヨシ) 씨 등 4명이다.
셋째, 납치 인정은 되지 않았지만, 아직 상당수 있다고 여겨지는 미인정 피해자이다.
북조선의 공작원은 관련해 일본과 협상을 하고 거액의 돈을 받고 싶어 하지만, 납치에 대해서는 되도록 인정을 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첫째 부류의 생존자에 대해서 사망했다고 거짓말을 하거나, 둘째 부류의 일본 정부 인정 피해자나 셋째의 미인정 피해자에 대해서는 그런 사람은 애초 북조선에 입국하지 않았다는 거짓말을 준비하고 있다.
그렇기에 납치 피해자가 몇 명이 있고 지금 어디에 있는가 하는 정보와 증거를 가능한 한 많이 확보하기를 기대한다.
그것이 바로 모든 납치 피해자의 일괄 귀국을 실현하기 위해 지금 필요한 작업이다.
[정정] 황의원 미디어워치 대표가 정규재 주필과의 펜앤초대석 방송 중, 김삼석 재심 판결 내용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일부 오류가 있어서 정정한다고 알려왔습니다. 방송에서 황 대표는 “김삼석이 국가기밀성이 있는 자료를 반국가단체에 넘긴 것까지도 사실이지만, 반국가단체의 구체적인 지령을 통해 이런 일을 했다는 것이 확고히 증명되지 않아 무죄가 됐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설명은 약간의 오류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김삼석이 재심에서 무죄를 받은 혐의 중 하나는 정확히는 ‘국가기밀 탐지•수집 혐의’입니다. 황 대표에 따르면, 재심 재판부도 김삼석이 탐지•수집을 했던 정보 중 일부가 국가기밀성이 인정된다고 하였습니다. 다만 반국가단체로부터 구체적인 지령을 받아서 이런 일을 했다는 것이 확고히 증명이 되지 않아 그래서 재심 재판부가 이 부분 무죄 판결을 내린 것입니다. 이것이 관련 정확한 진상이니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