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좌충 군과 우돌 군에게...한 주간 잘들 지냈는가? 지난 시간에 이 세상을 지배하던 두 가지 사관에 대하여 공부를 하였어. 오늘은 이들 두 가지 사관이 오늘날의 세상을 더 이상 지배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와 그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여 보겠네.자네들이 보기에 오늘날 세상의 주요 이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20세기까지만 하더라도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었지. 공산주의가 멸망한 이후, 자본주의의 세상이 되나보다 하였어. 그러나 오늘날을 자본주의의 세상이라 할 수 있을까? 그렇게 보기가 쉽지 않아. 그 이유는, 서구식 자본주의가 인류에게 완벽한 해결책을 가져다주지는 못하고 있기 때문이야. 이로 인하여, 수정된 사회주의화의 망령들이 휩쓸고 지나간 나라들도 많이 있지.자본주의가 인류에게 완벽한 해결책을 주지 못하는 하나의 근본 이유는 역시 소득 재분배의 문제야.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원활하게 돌아가면, 부유한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이 생겨나게 마련인데, 이들 사이에는 명확한 불평등이 존재하게 돼. 불평등은 곧 불행을 낳고, 불행은 불만을 낳으며, 불만 속에 사회 갈등이 발생하게 돼. 따라서 사회 갈등을 획책하는 세력들은 사회 속에 존재하는
친애하는 좌충 군과 우돌 군에게...좌충 군과 우돌 군, 지난 시간에는 이 세상을 바라보는 가치관에 절대적 영향력을 미치는 역사관에 대하여 배웠어. 오늘은 오늘날의 세상을 뒤덮고 있는 두 가지의 역사관을 집중 조명할 거야. 지난 시간에 여러 가지 역사관의 하나로 배웠었던 기독교사관과 유물사관이 바로 그것이야. 물론 최근 들어 두 가지 사조는 뚜렷한 퇴조의 경향을 보이고 있어. 리처드 도킨스 등에 의하여, 과학의 발전을 중심으로 한 무신론적 가치관이 일어나면서, 기독교적 가치관은 많은 의심을 받고 있어. 공산주의는 “공산주의 실험은 끝났다.”는 말이 회자될 정도로, 20세기 말 완전히 붕괴하였고, 지금은 자신이 공산주의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거의 찾기 힘들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을 지배하는 다양한 역사관들이 이 두 가지 사조로부터 파생 혹은 강한 영향을 받았음을 반박하기는 힘들지.특히 우리나라는 “한집 건너 교회”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여전히 강력한 기독교 세력이 존재하는 나라야. 기독교인 수가 요즘 줄어드는 추세라고는 해도, 천주교까지 합치면 여전히 막강해. 그뿐이야? 휴전선 너머에는 같은 핏줄을 나눈 사람들이 여전히 공산주의 체제를 수호하는 세력을
사랑하는 좌충 군과 우돌 군에게...좌충 군, 우돌 군, 오늘부터 공부를 시작하여 보지. 오늘은 역사관에 대하여 공부할 거야. 공산주의에 대한 설명으로 들어가기 위한 전초단계이니까 한번 들어봐.먼저 하나의 질문을 던져볼게. 역사란 무엇일까? 한 마디로 설명하기 쉽지 않을 거야. 보통 연대기표 같은 것들을 많이 떠올리지? 몇 년도에 무슨 사건이 일어났다는 식의 단순 서술적 암기자료들 말이야. 우리 중고등학교 때 외우느라 골치들 많이 썩어 봤잖아? 그럼 질문을 하나 더 던져볼게. 그 연대표에 나와 있는 사실들이 모두 팩트일까? 이 질문은 즉, “역사란 “팩트”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일까.”라는 것이야. 이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No”야.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말을 E. H. Carr가 했지. 그 이야기는 역사라는 것은 결국 과거에 발생한 객관적 팩트에 대한 현재 역사가의 주관적 해석이라는 말이야. 즉, 역사에는 반드시 바라보는 관점, 역사관이 존재한다는 것이야. 역사가의 역사관에 따라 주관적으로 “해석된” 부분이 바로 우리가 지켜보는 역사라는 말이지.역사관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해볼게. 개인적인 측면으로 본다면, 역사관을 어떻게 가지느냐에
※ 이 글은 운동권, 시민단체 활동 등 다양한 경험을 한 필자가 나라의 현실과 미래, 우리나라의 사상지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후, 이를 가상의 386세대 인물을 설정해서 풀어쓴 편지 형식의 글입니다. 나의 사랑하는 후배 ‘좌충’ 군과 ‘우돌’ 군에게...안녕. 좌충 군과 우돌 군, 나는 자네들보다 연배는 20년 이상 위지만, 좋은 세상을 만들어 보자는 열정만은 자네들 못지않은 자네들의 대학 선배 ‘삼팔육’이라고 하네. 내 이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나는 속칭 386세대의 일원이야. 내 나이 48세, 87학번, 68년생이니까, 386세대(이십여년전 언론이 우리가 30대일때 붙인 호칭인데, 이제 40대가 되었으니 우릴 486세대라고도 부르지)의 끝물을 타고 나왔다고 할 수 있지. 내가 대학교를 다니던 중에 국내적으로는 대규모 민주화 항쟁이 있었고, 그로 인한 6.29선언과 평화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졌었어. 대외적으로는, 88올림픽이 있었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고, 공산권의 민주화 붐이 일면서 세상이 격동하였던 시기이기도 하지.이런 늙다리 선배가 왜 자네들에게 편지를 쓰기 위하여 펜을 들었는지 아나? 자네들 세대의 고민을 공유하고 싶고, 보탬을 주고 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