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대 대학원 문화화학과 최석만 교수가 24일 오후 2시 국회 제1세미나실에서4차 산업혁명 시대 핵심기술과 대응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토론회에서주제 강연을 했다. 이 자리에는 김경진 의원과 한국기술이전사업화학회 회장인 박종순 교수, 전자조달연구원 박왕근 대표, 한국디지털융합산업진흥협회 김재환 회장, 한국창업대학교설립위원회 위원장(총장내정자) 등이 참석했다. 본 세미나에서는 최석만 교수는 4차 산업혁명에 관하여 설명하면서 핵심기술인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분석을 쉽고 자세히 설명하였으며, 대응방안으로는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영향을 미치는 교육과 경제적인 먹거리 산업을 언급했다. 최석만 교수는 ‘4차 산업혁명 핵심기술과 대응전략’에 관한 주제발제를 하면서20여년간 연구한 인공지능 알고리즘인 NEAT(NeuroEvolution of Augmenting Topologies)와 빅데이터에 관해 논했다. 또한 "4차 산업혁명시대를 위해서는 우리가 준비해야 하는 부분이 너무 많을 뿐만 아니라 미래에 대한 예측을 어떻게 해야 할 지 막연하다고 하였다. 그렇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 경쟁에서 선진국 중에서 최하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교육과 미래산업의 먹거리에 주목해야 한다
- 1995년 11월 27일, 대한민국 사법은 진실과 원칙을 지키는 수호자가 아니라 정권의 시녀(侍女)로 전락한다. 11월 24일 김영삼이 전두환과 노태우를 법정에 세우기 위해 5.18 특별법을 수용하고자 한 3일 후였다. 내란죄에 대한 공소시효를 무력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드디어 공소시효를 무시하고 소급입법을 금(禁)한, 이른바 민주주의를 짓밟는 민주화 세력의 역설이 시작된 것이다. 이에 전두환 노태우 변호인단은 사퇴하기에 이른다. 이는 이미 재판의 결론을 내려놓은 정치재판이자 기교재판이었고, 그 어떤 변론도 소용이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사법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소위 민주화라는 언어로 국민을 속이던 사이비(似而非) 민주주의자들에 의해서 대한민국의 사법은 조롱과 멸시의 대상이 되었고, 나라는 마침내 IMF 비극 속으로 들어간다. - 전두환 대통령에 대한 법정세우기는 김영삼의 증오와 모종의 음모에서 출발한다. 김영삼 역시 역대 대통령들처럼 비자금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아니었다. 그리고 전두환 노태우에 이르는 구(舊) 정권의 도움을 받아 대통령이 된 사람이었다. 그러나 김영삼은 그의 통치기간 혹은 죽을 때까지 전두환을 ‘전직대통령’이라는
전두환 대통령의 호(號)는 일해(日海)이다. ‘해 뜨는 바다’라는 뜻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 호를 알고는 있으나, 설마 이 호를 탄허스님이 지어준지는 모른다. 잘 알려진 바대로 탄허스님은 민족의 영광을 예언한 우리 시대의 큰스님이셨다. 아마 불자(佛者)치고 탄허스님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법정스님도 백담사에 있는 전두환 대통령을 자주 찾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만큼 많은 스님들이 전두환 대통령의 백담사행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지켜보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큰스님들치고 전두환을 찾지 않은 스님은 드물었다고 본다. 전두환은 노태우에게 모든 것을 걸었다. 그리하여 군에 남아 있고자 하였던 노태우를 예편시켜 정무장관을 시킨 것부터 88서울올림픽, 86아시안게임 조직위원장, 민정당 총재까지 후계자로서의 모든 수업을 마치게 하였다. 그리고 대통령 당선 후에는 통치자금까지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노태우는 전두환을 배신한다. 당시 전두환을 제외한 많은 언론인들과 측근들은 노태우를 신뢰하지 않았다. 그 중에서도 김정렬은 전두환에게 이런 질문을 하였다. “노태우를 잘 아십니까?” 전두환은 ‘그렇다’고 하였다. 1년 후 88년 봄, 김정렬은 다시 묻는다
토석채취장에서 발생하는 사고의 절반 이상은 사망 사고인 것으로 밝혀졌다. 토석채취장이 죽음을 부르는 참극의 장소가 됐다는 지적이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간사인 황주홍 의원(고흥·보성·장흥·강진)이 산림청으로부터 제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7년 8월까지 토석채취장에서 일어난 안전사고는 총 21건으로 이중 사망자는 11명, 중상자 3명, 경상자 3명으로 집계됐다. 토사유출에 의한 사면붕괴 2건, 환경오염 사고도 2건이 발생했다. 특히 사망 사고가 증가 추세라는 점이 더 문제다. 토석채취장 안전사고 사망자수는 2013년 0명, 2014년 1명, 2015년 2명, 2016년 7명, 2017. 8월 1명으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중상자수는 2013년 2명, 2015년 1명 이후에 발생하지 않고 있다. 즉, 한번 사고가 나면 곧바로 사망으로 직결되는 대형 사고가 증가 추세여서 심각하다. 사망 사고 원인은 대부분 부주의 및 안전시설 미설치에 따른 것으로 나타났다. 낙석사고, 추락, 매몰에 의한 사망 사고는 안전시설이 충분히 설치됐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차량전복, 운반트럭에 깔림, 벨트컨베이어에 협착, 발파 파편 가슴 가격, 천공
'2017 독도수호마라톤대회(대회장 유준상)'가 10월 14일(토) 아침 08시 30분 한강시민공원 뚝섬지구 수변무대에서 개최했다. 올해로 10회째인 독도수호마라톤대회는 나라사랑과 국민건강을 모토로 하는 애국캠페인으로서 독도가 한국 땅이라는 사실을 재확인시키고 독도에 대한 한국인의 사랑을 널리 알리고자 한국정보기술연구원과 (사)21세기경제사회연구원, (사)대한롤러스포츠연맹이 공동주최했다. 독도수호마라톤대회의 첫 번째 목적은 보다 많은 사람들의 참여를 유도하여 독도에 대한 한국인의 사랑을 널리 알리는 것이며, 두번째 목적은 국민건강증진을 통한 국력 향상이다. 특히, 2014년부터 사이버 영토 수호도 강조했던 독도수호마라톤대회에 차세대 정보보안 리더인 BoB 교육생 및 수료생,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관계자, 사이버 보안 리더와 화이트 해커, 국군사이버사령부 장병들이 대거 참가하여 사이버 세계 수호도 중요하다는 메시지도 전했다. 김규환 국회의원의 개회선언으로 시작한 이번 대회는 유준상 대회장이 인사말과 함께 내빈소개를 했다. 이주영 국회의원, 김규환 국회의원, 김경재 한국자유총연맹 총재, 박기정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부의장, 주봉노 (주)봉경건설 회장, 김형석 한신에너
‘가족 지원 목적’ 해명 궁색 해수부가 정권교체 이후에도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 가족동향보고를 지속하며 전 정권의 민간인 사찰 적폐를 답습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국민의당 정인화 의원(광양·곡성·구례)이 해양수산부로터 제출받은 ‘스텔라데이지호 사고 상황보고 자료’를 분석한 결과, 해수부에서 지난 9월 21일까지 총 126회에 걸쳐 실종자 수색·구조와 무관한 실종자 가족동향 보고가 이루어졌으며, 이런 가족 동향 보고는 정권교체 이후도 97회나 계속된 것으로 나타났다. 가족동향보고는 총 126회에 걸쳐 행해졌다. 구체적으로 박근혜 정권당시였던 4월 17일부터 5월 9일까지 총 29회의 보고가 있었고, 문재인 정권이 출범한 5월 10일 이후 9월 21일까지 총 97회 동향 보고가 이루어졌으며, 그 중 김영춘 장관이 취임한 6월 19일 이후에도 총 58회의 보고가 진행된 것으로 밝혀졌다. 가족동향은 사안별로 총 143건이 보고되었는데 그 내용의 대부분이 실종자의 수색·구조나 가족 지원과도 무관한 사항이었다. 구체적으로 집회 및 시위관련 사항이 89건으로 가장 많았고, 문재인 대통령(당시 후보) 등 면담관련 사항이 26건, 언론
지금 문재인 정부와 정치세력들은 개헌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말만 있을 뿐이지, 개헌의 목표와 의도가 무엇인지 밝히지 않고 있다. 따라서 찬반의 공방도 없고, 민의(民意)를 추출할 토론의 광장도 열리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 개헌이 대한민국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인지, 아니면 좌파정권의 연장을 노림인지에 대한 국민적 판단도 없게 되었다. 한마디로 과정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전두환은 비록 내각제에 대한 꿈을 접었지만 최선을 다해 9차 개헌을 했고, 그 헌법으로 문재인까지 무려 7기에 이르는 6공화국이 펼쳐지고 있다는 점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 된다. 만약 앞으로 있을 개헌이 전두환 대통령이 그토록 근심했던 4년 대통령 중임제로의 개헌이라면, 문제가 있다. 빚더미에 앉아 있는 우리나라가 연임(連任)을 위한 현 정부의 퍼주기식 표풀리즘 정책으로 나라가 거덜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지금 좌파정부가 시도하는 정책 대부분이, 무상급식부터 무상교복까지 대중을 향한 인기영합주의로 일관하고 있지 아니한가. 우리 대한민국은, 정치다운 정치가 필요할 때이다. 비록 정권을 놓는 한이 있더라고, 차기 집권에 실패하더라도 나라와 민족을 위해 올바른 정책을 펼칠 위대한 정치가 절실하
- 대통령 직선제를 골자로 한 6.29 선언은 전두환의 구상과 결단에 다른 소산(所産)이었다. 노태우는 자신이 한 일이라고 주장하나, 당시 통치구조상 전두환 재가없이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었다. 유명무실한 헌법위원회를 없애고 헌법재판소를 만든 것도 전두환 작품이었다. 6월 항쟁은 오직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했을 뿐이고, 이는 정말 잘못된 선택이었다. 전두환은 1986년 무역수지가 흑자로 전환하자, 그때에야 비로소 얼어붙은 정치를 해금시킨다. 경제에 자신이 생기자, 드디어 정치선진국으로의 길을 향해 물길을 튼 것이다. 1987년 6·29선언으로 여야 합의하에 개헌안이 의결되고, 87년 10월 27일 국민투표(찬성률 93.1%)로 확정, 29일 공포, 88년 2월 25일부터 시행된 제9차 개헌. 제6공화국의 헌법이 된 이 개헌안의 개헌 과정을 간추려 본다. 대통령 직선제 개헌은 1985년 2·12총선거를 통해 제도권 정당의 지형도가 새롭게 재편되고 야당과 재야운동단체들의 연합으로 반정부 세력의 규모와 내실이 강화되는데 있어 중요한 핵심 의제로 작동했다. 군사정권의 장기집권을 법적으로 보장가능하게 했던 제5공화국 헌법 개정의 문제는 2·12총선거 직후부터 야당과 민
포스코 광양제철소(소장 김학동)가 13일, 백운아트홀에서 개최한 ‘제9회 대한민국 대학국악제’를 성황리에 마쳤다. 대한민국 대학국악제는 광양제철소가 우리나라 전통음악인 국악의 대중화에 이바지하고, 젊은 국악인재를 발굴 및 육성하기 위해 마련한 전국 유일의 대학생 국악 경연대회다. 이날 열린 행사에서는 지난 8월 예선을 치룬 32개 팀 중 본선에 진출한 최종 8개 팀이 그동안 갈고 닦은 끼와 재능을 마음껏 펼쳤다. 재능있는 젊은 국악인들의 창의적이고 색다른 감각의 음악에 관객들은 큰 박수와 함께 환호로 답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날 대상은 ‘방자한콜라주’팀이 수상했다. 서울예술대 3명의 학생으로 구성된 이 팀은 씨름판에서 두사내가 천하장사 대결을 모티브로 삼아 해금과 통기타가 경합을 벌이는 장면을 음악으로 표현한 ‘천하장사’라는 곡을 선보이며 심사위원들의 가장 높은 점수를 획득했다. 금상은 ‘상자루’, 은상 ‘오뉴월’, ‘맹그림’, 동상은 ‘올담’, ’흥얼’ ‘변사또’, ‘조선블루스’ 팀이 각각 수상했다. 대상팀에게는 상금 1천만 원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 금상 1팀에게는 8백만 원, 은상 2팀은 각 5백만 원, 동상 4팀은 각 3백만 원의 상금이 주어졌다.
- 미국 유학 중이던 장남 전재국은 부친 전두환 대통령에게 직선제 개헌을 진언한다. 내각제와 직선제 사이에서 고민하던 전두환은 결국 직선제로의 결심을 굳힌다. 그리고 6.29 선언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선택이었다.- 1. 의원내각제 전두환은 대통령제보다는 내각제를 선호한 사람이었다. 대통령제의 단점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던 그는 내각제를 선호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오늘 여러분에게 처음 말하지만, 나는 솔직히 대통령직을 수행하면서 두려운 때가 많았다. 대통령의 결심을 얻어내기 위해 다들 서류를 잔뜩 챙겨오는데, 결심을 해야 하는 것들이 하나같이 중요하기 짝이 없는 것들이었다. 바로 얼마 전에도 미국에서 무기를 사들이겠다는 재가서류가 올라왔는데, 도대체 제시된 그 가격이 비싼 것인지 싼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또 비싸면 비싼 만큼 국익에 어떤 도움이 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따라서 한국의 대통령 중심제는 아주 작은 일에서 국가의 생존과 관련되는 큰일까지 모든 것이 대통령 하나에 달렸다는 것이다. 따라서 수많은 문제들을 대통령 한 사람의 판단에 맡기는 것은 매우 두려운 일이고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전두환은 1986년 4월
단임이란 용어는 원래 정해진 임기를 다 마친 뒤에 다시 그 직위에 임용하지 않은다는 의미다. 전두환은 대통령이라는 권력의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나온, 대한민국 현대사에 기록된 최초의 대통령이다. 달라이 라마는 ‘욕심의 반대는 무욕(無慾)이 아니라 잠시 내게 머무름에 대한 만족이다’고 하였다. 전두환은 달라이 라마가 말한, 잠시 머무름에 만족한 행복한 위인(偉人)이었다. 지나친 욕망을 경계하는 것이 올바른 인간이다. 탐욕이 지나치면 패가망신한다는 것을 우리는 삶의 주변에서 너무 흔하게 보고 겪는다. 지나치게 모자라지도 않고 지나치게 넘치지 않게 산다는 것. 이것이 인간사 고통과 번민을 이겨내는 유일한 삶일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재물욕, 색욕, 식욕, 수면욕, 명예욕(권력욕) 다섯 가지 욕망을 오욕(五慾)이라고 칭하며 ‘차고 넘침’을 경계한다. 이러한 비록 욕심은 생존 본능에서 비롯되는 것이지만, 그러나 지나치게 탐하면 삼구(三垢)의 하나. 또는 삼독(三毒)의 하나로, 모두 몸을 망치는 독(毒)이 되는 것들이다. 따라서 먹고 싶고 자고 싶고 누리고 싶고 번식하고픈 욕망을 견디고 참는다는 것은 참으로 힘이 드는 일이기에 우리는 ‘탐하되 지나치지 않음’을 수양의
포스코 광양제철소(소장 김학동)가 28일, 직원들의 안전관리 역량과 안전 의식 고취를 위해 TBM(Tool Box Meeting) 우수사례 경진대회를 개최했다. TBM은 작업 시 작업자 전원이 모여 잠재위험 발생 요인에 대해 토론하며 발굴 및 해결하는 안전예방 활동이다. 작업장 내 위험요소를 사전에 제거하고, 직원들의 작업 시 집중력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백운아트홀에서 열린 이날 행사는 최근 작업 중 비정상 상황 발생 시 조치했던 우수사례를 발굴하여 전 직원과 공유하고, 향후 유사재해 발생을 예방하기 위해 마련됐다. 행사 취지 및 안전 슬로건 제창으로 시작된 이날 행사는 ㅿ작업중 TBM을 통한 잠재위험 발굴, 작업표준 준수 실시 등 조치 우수사례 공유 ㅿTBM과 지적확인의 중요성 관련 사외 전문가 특강 ㅿ포상 및 강평 ㅿ전 직원 안전다짐을 통해 현장 안전 위험에 대해 되돌아보고 TBM활동에 대한 실천의지를 확고히 했다. 특히 우수사례 발표는 제철소 부문별, 외주파트너사팀 등 총 10개 팀이 비정상 상황 발생 시 안전 조치 우수사례를 상황극으로도 연출해 직원들에게 잠재 위험에 대한 인지와 TBM활동의 중요성에 대해 큰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행사에는
만약 전두환 전(前) 대통령이 아웅산 태러 즉시 북한과의 전쟁에 돌입하거나 복수를 선택했더라면, 대한민국 경제는 장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전두환은 보복보다는 경제를 선택한다. 필자(筆者)가 전두환의 위대함을 칭송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두환은 어떤 문제를 만나거나 난관에 부딪혔을 때, 상황을 피해 우회적으로 돌아가거나 회피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직선적인 사람이며, 어떤 험로(險路)를 만나더라도 주저 없이 그대로 돌파해버리는 무인(武人)다운 추진력을 갖춘 사람이었다. 경제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경제가 위기에 있음을 알자, 주저 없이 경제 돌파에 돌입(突入)하였다. 그것은 고지를 향해 온몸을 그대로 던져버리는 처절한 군인의 모습이었다. 몰려드는 잡다한 생각을 버리고, 오직 목표하는 한 점만을 바라보는 집중과 투지, 그리고 최선을 다하는 노력. 그리하여 전두환, 그는 최선을 다한 뒤 결과에 결코 후회하거나 자만하지 않는 대통령이었다. 전두환은 대통령직에 오르면서, 두 가지 목표를 세웠다. 그 첫째가 경제 발전이었다. 두 번째가 단임에 대한 약속을 실천하여 평화로운 정권 교체를 이루는 일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전두환은 경제라고는 봉급 봉투 한번
우리 정치사에서 전두환의 등장은 정말 운명적이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의 연속이었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께서 서거하고 난 뒤, 그 상황에서 가장 먼저 대처한 이가 전두환이었다. 보안사령관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은 범인 김재규를 체포하는 일이었다. 김재규 체포 후 박정희의 뒤를 이어 대통령직에 오른 최규하. 그러나 전두환은 최규하가 김재규가 범인임을 알면서도 무려 4시간이나 침묵을 지킨 점을 주목한다. 김재규와의 관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다. 이에 전두환은 신현확 전(前) 총리를 찾아가 대통령직 수행을 요청하였고, 이 제안을 신현확 씨는 거절한다. 결국 전두환을 비롯한 신군부는 스스로 정권을 잡기로 결심한다. 그것이 12월 12일에 있었던 12.12 사태이다. 전두환은 처음부터 정권을 잡고자 하지 않았다. 박정희 대통령 서거를 안 즉시 당시 영부인 직을 수행하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남긴 말또한 전두환의 뜻과 다르지 않았다. 박근혜가 남긴 말은 북한의 도발을 걱정한 ‘전방(前房)은요?“였다. 부친의 사망보다 국가 안보를 먼저 생각한 발언이었다. 전두환 역시 국내 혼란을 극복하고 북한의 도발과 침투를 막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해야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