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가 동남아시아(아세안) 지역 내의 새로운 대안 세력으로 부상하며, 사실상의 중국 견제를 위한 거침없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동남아시아가 직면한 새로운 국제 정치 환경에서 호주의 역할 기대
AFR 은 사설 서두에서 “말콤 턴불(Malcolm Turnbull) 호주 총리가 지난 17일 이틀간 아세안-호주 특별정상회의를 호주 시드니에서 개최한 것만으로도 이미 많은 외교적 성과를 이뤘다”고 밝혔다.
최근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자국중심주의로 인한 미국의 영향력 감소와 시진핑의 장기집권 헌법개정으로 인한 중국의 영향력 강화가 이뤄졌다. AFR 은 이에 호주에게 있어서는 아세안을 중심축으로 역내에서 안정과 번영을 확충할 새로운 기회가 왔다고 진단했다.
AFR 에 따르면 호주는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상생 협력을 주도할 좋은 위치를 선점했다. 중국의 부상으로 인해 호주가 그 동안 많은 경제적인 혜택을 누렸으며, 동시에 공정한 규범을 바탕으로 하는 무역 관행과 지역 안보도 지향해왔기 때문이다.
AFR 은 “(중국의 부상에 따른) 현재와 같이 역내 패권 긴장 고조 국면에서, 호주가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공동 지도력을 행사를 통해 역내 많은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AFR 은 “마치 한국과 일본은 북쪽에서, 인도는 서쪽에서 공정한 ‘규범 질서(rule-based)’를 실현하듯이, 아세안은 호주와의 협력을 통해서 동남아시아 지역 역학 구도에서 공정한 규범 질서도 재편 되는 초석을 담당해야 할 것이다(With Japan (and South Korea) to the north and India to the west, ASEAN should become a foundation stone of a rules-based regional order)”라면서 아세안에도 같은 주문을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자유 무역’과 ‘항해의 자유’라는 아세안-호주의 공통 어젠다
아세안-호주 특별정상회의는 이런 방향성에 첫 발을 내딛는 회담이었다. AFR 은 “대 테러와 ‘항해의 자유’와 같은 안보 이슈 및 무역에 관한 일반론적인 합의를 포괄하는 공동 인프라 투자에 관한 많은 합의점도 도출됐다”라며 금번 특별정상회의의 구체적인 성과도 적시했다.
사실, 그 동안 아세안은 지리적 인접 국가들로 구성된 국제기구 특성상, 안보 혹은 무역 등의 공통된 목표 및 가치를 구현하는 역할에는 소극적이었다. 하지만 금번 아세안-호주 특별정상회의를 계기로 향후에는 아세안 회원국들이 공통된 목표와 가치에 천천히 전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AFR 은 기대감을 피력했다.
AFR 은 아세안의 향후 발전 방안에 대해서도 전략적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AFR 은 “아세안 회원국 대부분은 브루나이와 같은 왕정 체제부터 총통 체제의 싱가폴, 세계에서 가장 큰 이슬람 민주 국가인 인도네시아까지 정치체제부터가 다양하다”라고 적시한 후, “이에 현실적으로 아세안 국가들은 ‘자유 무역(free trade)’과 ‘항해의 자유(freedom of the seas)’와 같은 공통의 현실적 어젠다에 먼저 집중하고 향후 협력 증진할 사안을 점진적으로 확장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즉, 아세안 회원국들이 체제와 문화의 다름을 인정하는 선에서, 환경 및 노동 기준, 민주제도 및 종교의 자유 같은 논쟁적인 의제는 최대한 후순위로 배려하고 동시에, 공통의 어젠다를 기반으로 얼마든지 다자 협력을 발전적으로 증진시킬 수 있다고 AFR 은 강조했다.
아세안 역내 질서를 재편하려는 중국의 패권적 움직임
AFR 은 역내 패권 갈등이라는 아세안의 부정적인 면도 지적했다. 미국이 ‘미국 우선주의(American First)’를 내세우며 역내 글로벌 경제 규범 체제에 대한 투자에 소극적인 틈을 타서 중국이 각종 영향력 공작으로 치고 들어오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역내 영향력 확대의 구체적인 사례로서 AFR 은 필리핀이 이번 아세안-호주 특별정상회의에 불참한 것을 지적했다. 중국이 일대일로를 통해서 아세안 역내 질서를 재편하는 움직임이 강화되고 있다는 것.
AFR 은 “호주가 ‘글로벌 규범(rule-based)’을 따르는 것에 반해서, 중국은 ‘국가 주도의 경제 체제(state-directed scheme)’를 통해서 주변국에게 영향력을 행사한다”면서 “이는 아세안 구심체를 해체하려는 시도(China is trying to peel off ASEAN members)”라고 지적했다.
AFR 은 중국의 비정상적인 영향력 확대에 대한 대응책으로 역내 공동 인프라 투자를 꼽았다. 사실, 금번 아세안-호주 특별정상회의는 아세안 국가들과 호주의 역내 공동 인프라 투자를 통한 상생 협력을 위한 첫 시험 무대였다고도 AFR 은 전했다.
AFR 은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을 대응하기 위한 조치로써, 호주는 향후 15년 동안 260억 달러를 역내에 투자할 계획이다”라면서 “호주의 공동 인프라 투자 계획에는 미국과 일본, 인도의 참여도 기대 할 수 있다(This could chime with plans from the US, India and Japan)”고 전망했다.
“향해의 자유 및 자유 공정 무역 질서는 반드시 지켜져야”
AFR 은 아세안-호주의 상생 발전을 위해서는 역내에 가장 큰 경제 규모를 갖고 있는 인도네시아의 역할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이번 아세안-호주 특별정상회의에서 자코 위두두(Joko Widodo)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호주의 잠재적인 아세안 회원국 참여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양자 자유 무역 협정을 기대한다”면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Trans-Pacific Partnership) 합류 역시 기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AFR 은 아세안 국가들이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음을 지적했다. 인도네시아를 포함한 대다수 아세안 회원국들이 TPP보다 자유 무역 기준을 충족 시키지 못하는 중국 주도의 ‘역내 포괄적 경제 동반자 협정(RCEP: 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도 동시에 지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AFR 은 “자코 위두두 대통령을 비롯해 아세안 회원국들의 리더들은 중국을 견제하는 인상을 주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Mr Joko and other ASEAN leaders are careful not to be seen to be seeking to contain China)면서 중국 패권 문제의 해결이 간단한 상황은 아님을 암시했다.
AFR 은 사설 말미에 “호주는 중국 견제를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국가 정책적으로 주변국들에게 국제 규범에 기반한 질서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면서 “중국이 남중국해 사태를 벌이며 한 세기가 넘는 해양법 전통을 위협하는 행태 또한 좌시할 수 없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AFR 은 아세안 회원국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AFR 은 “물론 호주-아세안 특별정상회의를 통해 남중국해에 해양 질서를 관철하는 것은 훌륭한 출발점이지만, 동시에 이를 통해 중국을 견제하는 인상을 줘서도 안 된다”고 주장했다.
AFR 은 “향해의 자유 및 자유 공정 무역 질서는 반드시 지켜져야 하며, 미국 역시도 주변국들에게 책임을 공유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Freedom of navigation and the right to trade is crucial to the region and must be protected as the previous dominant power, the US, looks to others to share the responsibility of leadership)”고 강조하며 사설을 마무리했다.
[기자수첩] 한국은 미국, 일본만이 아니라 호주와 아세안에도 주목해야
한국은 중국의 아시아 패권 문제와 관련하여 미국이나 일본의 대응만이 아니라 호주와 아세안 각 국가들의 대응도 눈여겨봐야 한다.
왜냐하면 중국의 아시아 패권 문제에서의 핵심이 바로 남중국해 문제이고, 이 남중국해 문제는 바로 호주와 아세안에게 사활적 이익 문제이기 때문이다.
호주와 아세안의 결속은 갈수록 깊어지는 모양새다. 가령, 2017년에 발간된 호주의 안보 백서에서는 아세안 국가 중에 하나인 베트남을 핵심적인 전략적 파트너로까지 지목하고 있다.
호주가 베트남을 왜 각별하게 여길까. 베트남이 중국의 남중국해 영해권 분쟁에서 가장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온 아세안 국가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베트남은 자국의 이익을 날로 침해하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 인도와 깊은 관계 개선을 모색해왔다. 베트남은 최근에는 역사적 숙적인 미국의 항공모함이 다낭 항구에 입항하는 것을 허용하기까지 했다. 이는 베트남 종전, 1975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호주 유력경제지 ‘오스트레일리아 파이낸셜 리뷰’(AFR)도 근래 호주와 베트남의 관계 증진은 중국 영향력 확대에 대한 전략적 재균형을 위한 지역연대 강화 행보의 신호탄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우리 한국의 입장에서는 굳이 남중국해 문제로 대표되는 중국의 아시아 패권 문제만이 아니라도 호주와 아세안이 공통으로 추구하는 국익이 한국이 추구하는 국익과도 통하는 면이 많다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금번 아세안-호주 특별정상회의 공동 선언문은 “북핵과 관련,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complete, verifiable, and irreversible denuclearization)를 통한 한반도 평화 정착을 지지한다(We reiterate our support for the complete, verifiable, and irreversible denuclearisation of the Korean Peninsula in a peaceful manner as well asinitiatives towards establishing peace in the Korean Peninsula)”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이 공동선언문에는 “모든 UN 회원국들과 북한은 유엔 결의안 이행, 준수 및 집행를 각 주체에게 강하게 촉구하는 동시에 아세안의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건설적인 기여를 기대한다(We strongly urge the DPRK to immediately and fully comply with its obligations under all relevant United Nations Security Council Resolutions (UNSCR) and call on all UN Member States to fully implement relevant UNSCRs. We also welcome ASEAN’s readiness to play a constructive role in contributing to peace and stability in the Korean peninsula)”는 내용도 담겨 있다.
즉 시진핑의 중국이 밝혀온, 사실상 주한미군 철수와 한국 식민 지배를 노리는 ‘쌍중단’이니 ‘쌍궤병행’이니 하는 황당한 입장과는 확연하게 다른 것이 바로 호주와 아세안의 북핵 관련 입장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포인트를 짚어주는 한국 언론을 도통 찾아보기가 어렵다는 것. 결국, 한국의 친중친북 주류 좌파 언론들의 기사만 읽어서는 세상 돌아가는 현실에 대한 이해는 늘 불완전할 수 밖에 없다.
한국이 추구하는 ‘동북아 균형자’라는 지위는 결코 공짜로 가질 수 있는 지위가 아니다. 한국의 차세대 지성들이 친중친북 주류 좌파 언론들의 검열을 뚫고 미국, 일본 등 주요 국가들 보수우파의 관점, 그리고 호주와 아세안의 관점도 널리 파악하는 실력을 갖추게 될 때, 한국의 외교적 위상도 더 커질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