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지사지(易地思之)’의 영어식 표현인 ‘다른 이의 신발도 신어보라(put yourself in someone’s shoes)’는 상대 입장에 서 보는 일의 감정적 어려움까지도 헤아리고 있는 표현이다. 실로, 발 크기도 발 모양도 다른 이의 신발을 신어 보는 일은 그만큼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신간 ‘징용공 문제, 일본의 역사인식을 말한다’(원저 : ‘조선인 전시 노동의 실태(朝鮮人戦時労働の実態)’)는 한일 양국 과거사에 대한 일본인의 역사인식이 한국인의 역사인식과 얼마나, 어떻게 다른지를 있는 그대로,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책이다. 저자들은 “식민지기”, 우리 한국인은 통상 “일제강점기”로 호칭하는 시기도 버젓이 “일본 통치 시대”라고 호칭하고 있을 정도인데, 대개의 독자라면 여기서부터 불편감에 이 책을 그만 놓아버리게 될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달리 보면 이 책은 그만큼 일본인의 정말 솔직한 생각과 입장이 담겨 있는 책이다. 이에 한일 과거사 갈등의 내막을 들여다보기 위해 이참에 일본 측의 신발도 한 번 신어보겠다는 각오의 독자라면 이 책보다 더 안성맞춤인 책은 없을 것이다.
부제인 ‘일본은 왜 한국 대법원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는가’가 밝히고 있듯, 이 책의 주요 주제는 바로 2018년 10월 한국 대법원 전원합의체 ‘징용’ 판결에 대한 비판이다. 우리 대법원은 예의 판결에서 태평양전쟁기에 이뤄진 세 가지 형태의 조선인 전시 동원(‘모집’, ‘관 알선’, ‘징용’)을 “일본의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인 불법행위와 식민지 지배와 직결된 불법행위”라고 규정했다. 이 판결에 대해 역사학자와 법률가로 구성된 저자들은 각자의 전공인 역사학과 법해석 측면에서, 또 당연히 일본인의 입장에서, 단호하게 반대하고 부정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저자들은 한국 대법원 판결을 ‘조선인 강제연행 프로파간다’의 산물로 본다. ‘조선인 강제연행 프로파간다’란 1960년대 일본의 조총련계와 친북좌파 지식인들이 고안해 설파하기 시작한 것으로, 태평양전쟁기에 일본으로 건너간 조선인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강제연행’이 되어서 ‘강제노동’에 시달렸다고 규정하는 정치 선전이다. 이것이 언제부턴가 한국으로 건너와 ‘징용’ 과거사의 통설이 되었지만 저자들에 따르면 이는 한국 측의 중대한 오해이고 착각이다.
저자들은 여러 실증 사료들을 통해 ‘강제연행’이 명백히 거짓이라고 지적한다. 1939년부터 전시 동원 기간 6년 동안에만 조선에서 무려 240만 명이 일자리를 찾아 일본으로 건너갔는데, 실은 이 중에서 무려 75%, 180만 명이 전시 동원과 전혀 무관한 순수 자발적 이주자였다는 것이다. 나머지 25%, 60만 명의 전시 동원조차도 ‘모집’과 ‘관 알선’의 경우 일본 측은 오히려 ‘을’의 입장이었다고도 해석할 수 있는 사료가 많다. 그나마 일본의 공권력이 분명히 작동했다고 할 수 있는 ‘징용’은 1944년 9월부터 일본 패전까지 불과 몇 달 시행되지도 못했다. 이도 폭력적 동원이 아니라 오늘날 한국의 병역과 마찬가지로 영장 등 합법적 절차에 따라 이뤄진 일임은 물론이다.
당시 일본 현지에서 이뤄졌다는 ‘강제노동’도 역사적 사실로 믿기 어렵다. ‘모집’, ‘관 알선’은 물론, ‘징용’까지도 조선인 노동자는 일본인 노동자와 동일 기준의 고액 임금을 지급받았다. 민족차별 없이, 휴일은 물론, 기숙사, 병원, 목욕탕 등 여러 복리후생을 조선인도 똑같이 보장받았다. 조선인만을 대상으로 한, 마치 강제수용소를 방불케 하는 감금, 구타 등과 같은 사건은 존재하지 않았거나 과장·왜곡이다. 저자들은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를 오히려 지금껏 조선인 강제연행·강제노동설을 주장해온 일본인·한국인 학자들의 사료에서 찾아내고 있다. 애초 ‘조선인 강제연행 프로파간다’가 불순한 동기를 가진 양국 지식인들이 사료를 선별 조작하면서 시작되었던 것임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이 책의 또 다른 특장점은 그간 한국의 언론과 출판은 전혀 소개한 바가 없었던, 일본 권위 법률가들이 직접 집필한 한국 대법원 판결 비판 논문을 실었다는 것이다. 이에 우리 독자들은 한국 대법원 판결을 국제법 위반으로 규정하고 있는 일본 측 주류 법률가들의 입장이 어떤 법해석의 기반 위에 서 있는 것인지도 상세하게 살펴볼 수 있다.
태평양전쟁 이후 현재 동아시아 질서는 관련 국제법상 결정적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조약인 1951년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의 프레임 위에서 유지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은 일본과 연합국 간의 전쟁 수행 중에 발생한 각종 피해 문제를, 각국 국민 개개인의 상대국 정부와 개별 국민 상대로 한 법적 소송 행사로써 일일이 해결하지 않고, 정부간 협상으로써 각국 정부가 일괄하여 처리해 최종 매듭짓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1965년 한일기본조약도 결국 이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의 프레임 위에서 맺어진 것으로, 역시 일본 패전까지의 한일 과거사 갈등을 일괄하여 봉합시키는 것이 핵심이었던 조약이다.
문제는, 한국 대법원이 수십 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 뒤늦게 소급(遡及) 법률 적용을 통해 저 두 조약의 기본 바탕을 깨뜨리고 나섰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이른바 ‘식민지배 불법론’이라는 개념을 통해 식민지기 역사 그 자체를 불법으로 규정하고서, 과거 일본의 식민지 지배로 인해 당시 한반도에 살았던 이들이 겪었던 각종 정신적 피해를 오늘의 일본 기업 또는 일본 정부가 배상하여야 한다고 판결했다. 일국의 사법부가 어떤 문제를 불법으로 규정한다는 것은 단지 누구를 도덕적으로 꾸짖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특히 공권력으로써 문제를 반드시 시정하라는 명령이다. 양국 국교와 전후 질서를 정색하면서 부정했다고 할 이 판결이 향후 동아시아에서 한국 사법부발 ‘사라예보 사건’이 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실제로 이 책 저자들 중에 한 사람은 그 위기감을 다음과 같이 토로한다.
“한국 대법원 판결이 초래한 것은 단순한 역사인식 문제도 아니고 한국 국내 문제도 아닌, 아시아의 전후 국제 질서 총체에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문제다. 이는 분명히 아시아의 국제 질서 안정과 상호 협력 관계에 파괴적인 악영향을 주는 것이다. 또 그 결론에 이르는 논지는 사실인정이나 법리론 면에서 보더라도 도저히 정당하다고 하기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이 판결은 한국 사법의 ‘역사적 오점’이라고 해야 한다.”
경위와 명분을 떠나 우리 대법원 판결에 대해서 현재 동아시아 유일무이 우방 이웃 국가의 지식인들은 마치 무력 선전포고라도 들은 듯한 수준의 ‘위기감’을 호소하고 있다는 것, 그 사실만큼은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오해로 빚어진 일인가. 그렇다면 그것을 풀어낼 수 있는, 진짜 당사자들인 양국 국민 간의 전면적 소통이 필요한 상황이다. 양국 정치인들, 그들만의 합의와 협상 따위는 이제 더 이상 이 난항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엎친 데 덮친다. 오는 7월에는 조선인 ‘징용’ 현장으로 알려진 일본 나가타현 사도금산(佐渡金山)에 대해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절차가 이뤄질 예정으로, 한일관계는 또다시 과거사 문제로 거센 격랑에 휩싸일 전망이다.
불편하겠지만 한국인이 일본인의 신발도 잠시 신어봐야 하는 때가 있다면 그때가 바로 지금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