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좌편향 사관으로 미디어의 주목을 받고 있는 한국사 교과서를 보면서 자연히 역사교사들의 한일관계에 대한 시각에 생각이 미치게 된다. 아마도 역사교사들의 역사관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도 한일관계를 바라보는 시선일 것이다.
역사교사들, 입으론 ‘일본은 친구’ 머리로는 ‘반일프레임’
표면적으로는, 한국의 많은 역사교사들은 한일관계를 평화와 미래지향의 동반자적 관계로 사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 중엔 한중일의 동아시아사에 관심을 갖고 활동해온 이들이 적지 않다. 고등학교 교육과정에 동아시아사라는 교과목의 존재 역시 그러한 방증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실상을 들여다보면, 여전히 한국의 역사교사들은 ‘반일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 예로 한국의 역사교사들이 얘기하는 일본과의 소통은 일본의 좌익 지식인 및 교육자들과의 소통이거나, 혹은 일본의 우익을 제외한 나머지 일본인들와의 소통만을 의미한다. 오늘날 우파 성향의 내각이 이끄는 일본이라는 사회의 일반적인 시민 집단과의 진정한 소통과는 거리가 먼 셈이다.
일본 좌익 데려와 다같이 아베 욕하는 게 ‘한일 소통’?
작년 11월 초 ‘2019 역사인식과 동아시아 평화포럼’에 참가했던 기억이 난다. 행사는 강남역 근처의 호화로운 컨벤션센터에서 개최됐고, 주최 측은 중국이나 일본에서 온 해외 참석자들에게 호텔급 숙소와 고급 식사를 제공했다. 한국 측 주최기관으로는 좌파 성향 교육감이 이끄는 서울시교육청을 필두로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참여연대평화군축센터, 전국역사교사모임 등 성향이 비슷비슷한 단체들로 구성됐다.
중국과 일본의 참가자들을 면면을 보면, 중국은 대학 교수들, 일본은 시민단체 대표들이 주로 참가했다. 중국은 잘 모르겠으나, 일본 참가 단체들은 대부분 좌익 성향이었다. 컨퍼런스에서 일본 측 연사들의 발제 내용이나 토론 내용이 이를 잘 보여주었는데, 한참 토론을 듣고 있다 보면 나중엔 이 사람들이 한중일 평화포럼에 와 있는건지 아베 신조 총리 반대 정치집회에 나와 있는건지 분간이 가기 힘든 지경이었다.
물론 그러한 일본 측 참가자들의 아베 성토를 한국 주최 측 참가자들은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오히려 중국 측 대학교수들은 그러한 일본인 시민운동가들의 주장 중 강력한 비핵화 논조에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하며, 이상주의적인 측면보다는 현실을 직시할 필요성을 강조하는 아이러니한 풍경을 선사했다. 한마디로 그 포럼은 기괴한 이해관계의 일치점이 만나서 연출된 동북아 사회주의의 경연장을 보는 듯 했다.
‘반일 민족주의’ 프레임 속 대화상대는 일본 내 좌익 뿐
일면, 한국의 역사교육자들이 일본의 좌익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자 하는 모습은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하다. 한국의 (자각하지는 못하고 있으나) 강성한 민족주의에 화답할 수 있는 집단은 일본에서는 단연 (한국 언론이 흔히 ’양심세력‘이라고 칭하는) 좌파 지식인들일 것이다.
위안부 기사로 법적 논쟁까지 초래한 아사히신문을 비롯해 마이니치신문, 도쿄신문 같은 일본의 기성 언론 기관들 중엔 노골적으로 친북, 친중 성향을 보이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이는 전혀 놀랍지 않은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자신들이 왜 아직 ‘우파 언론으로 매도’당해야 하는지 못내 아쉬워하는 듯해 보이는 한국의 조중동 뿐만 아니라, 어느 나라나 언론은 우파보다는 좌파적 시각에 더 호의적이다. 중립적인 국영방송으로 유명한 영국의 BBC도 실제 리포터들의 취재 기사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다분히 좌파적 시각을 띠는 경우가 많다.
이런 현실을 감안하면, 한국인들의 사회를 바라보는 ‘좌파적 착시 현상(특히 일본에 대한 인식)’이 여느 나라에서 그렇듯 지금껏 언론에 의해 확대 강화되어왔다는 점은 그다지 놀랍지 않다. 한국의 포털사이트는 집단주의화, 좌경화된 한국사회의 거울과도 같다. 그런 포털사이트에 올라오는 일본 관련 국내 매체의 기사들은 상당수가 일본 내 좌익의 시각과 주장을 반영한 신문의 기사를 인용하며 마치 일본 사회전반이 그러한 것처럼 왜곡 보도하고 있다.
보통 일본인은 한국에 무관심...과거 거세된 ‘낭만적 사고’ 그쳐
그렇다면 좌익과 우익을 모두 포함하는 보통의 일본인들은 한일교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그다지 관심이 없다’가 정답일 것이다. 물론 일반인들에게 물어보면 당연히 교류를 긍정적으로 바라본다고 호의적으로 대답하겠지만, 그것은 객관적 지식이나 사실관계의 이해에 바탕을 둔 관심이 아닌, 낭만적 시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가령, 일본인들의 낭만적 시각은 1920년대 다이쇼 시기의 자유민주주의가 가져다준 사회적 부흥과 취향의 자유 속에 내지인과 조선인이 차별의 벽을 조금씩 넘어가던 좋았던 그 추억에 고정되어 있을 뿐이다. 그 추억 속에는 다이쇼시대 이전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과 이후의 대동아 총력전의 어두운 시기는 거세되어 있다. 한국식으로 비유하면 피천득의 ‘인연’ 속 낭만적 정서에 고정돼 있는 것이다.
게다가 6.25 이후 냉전 시기에 한국과 일본은 모두 미국에 의해 재편된 동북아 정치 틀 속에서 공조(共助)하는 시늉만 했을 뿐이다. 그러면서 두 나라는 주로 기업 혹은 개인간 경제적 교류를 했을 뿐이다. 반면, 사회적으로 보통의 일본인이 한국인에 대해 진지하게 벽을 넘어서서 ‘한국 사회의 특징이 무엇인가’, ‘한국과 일본의 역사는 어떻게 흘러왔나’ 등의 문제를 사색할 기회는 없었다. 이는 마치 한국인에게 베트남 사회의 특징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한국과 베트남의 역사는 어떻게 흘러왔나 등을 질문했을 때 한국인의 반응과 유사할 것이다.
현대 일본인에게 ‘민족주의’는 낡고 지루한 단어일 뿐
당연하게도 현재 일본인은 한국인처럼 그렇게 민족주의적이지 않다. 적어도 한국에서처럼 사회적으로 민족주의적 역사의식을 요구받는 경우는 드물다. 예전에 개인주의와 집단주의에 대한 책을 내고 나서 누군가에게 ‘일본인과 한국인 중 누가 더 개인주의적이라고 생각하는가’를 질문 받았던 기억이 난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이렇다. 인간은 전략적인 동물이다. 자신의 생존과 안전이 보장받지 못하는 부패하고 불안정한 사회에서는 감정적 지능을 발휘해 지지자나 조력자를 찾아 나서는 집단주의적 전략이 더 성공적일 것이고, 경쟁의 룰이 정착된 예측 가능한 안정된 사회에서는 이성적 지능을 개발시켜 자기 자신의 능력과 가치를 높여나가는 개인주의적 전략을 쓰게 된다. 결론적으로 더 시장 친화적인 사회, 더 선진적인 사회에서 사람들은 더 개인주의적인 인간이 될 확률이 높다.
1930년대 일본 사회의 비현실적 집단주의도 그런 시각에서 설명해볼 수 있다. 당시 사회적 내막을 살펴보면 일본의 귀족 정신을 계승한 사무라이 가문 출신 군부지도자들은 점차 농민 출신 장교들로 대체되었다. 이들 농민 출신 장교들의 집단주의적 정치성향이 경제공황 이후 일본 대중의 중우적 요구와 맞물려 극단으로 치달았고, 그것이 비현실적 집단주의로 나타났다고 본다.
마찬가지로, 반시장자본주의가 그 정신적 근간이었던 1920년대 독일의 치기어린 국가사회주의 독일노동자당(Nazi)도 패전 후의 암울한 사회적 정서 속 집단주의 전략을 통해 성장했다. 2016년 대한민국의 이른바 ‘촛불혁명’ 역시 ‘헬조선’이라는 프레임에 짓눌린 젊은이들의 자기파괴적 집단주의 정서가 있었기에 가능한 측면이 있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현대 일본 사회에서 ‘민족주의’나 ‘민주화’ 같은 비실용적 집단주의 담론이 인기가 없는 사실은 오히려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계몽의 대상은 한국인이다
한국의 역사교사들이 과거(주로 20세기)의 기억을 또다시 꺼내들고, 현대 일본인들을 향해 ‘역사의식(주로 죄의식)’이 부족하다며 계몽할 일은 결코 아니다. 우선 바뀌어야 할 것은 어쩌면 우리 자신일지 모른다.
쉽사리 집단주의적 사고를 한국인이, 개인주의적 사고를 하는 일본인과 진정으로 소통하려면 우리 안의 반일민족주의, 즉 집단주의적 자기중심적 독선을 우선 이겨내야만 실현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그저 일본 좌파 지식인과 만나서 함께 아베 욕하는 것으로 ‘한-일 소통을 했다’며 끝낼 일이 아니다.
일본과의 진정한 소통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한국 사회가 시장(market)과 자본(capital)의 진면목을 더 경험하고, 보다 현실적인 좌표 속에서 자기 위치를 객관적으로 직시하는 날이 와야만 그것은 가능할 것이기에.
숭의여고 역사교사 배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