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대통령 주치의로 10.26, 12.12 등 역사적 사건의 중심에 선 목격자이기도 했던 자유언론인협회 양영태 회장이 21일 5공 실세였던 허화평 전 의원에 대한 소감을 밝혔다. MBN 뉴스투데이 ‘그때 그 사람’ 코너를 통해서다.
양 회장은 허화평 전 의원에 대해 “허화평 수석(마지막 공직이 정무수석, 이하 통일)은 제5공화국 출범을 총괄 기획한 감독”이라며 “12.12 당시 중요한 역할을 했고, 그 다음부터는 시대가 요구한 전체적인 로드맵을 짠 분”이라고 평가했다.
양 회장은 당시 허 전 의원이 5공 실세로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는 일부 세간의 평가를 ‘잘못된 평가’라고 지적했다.
양 회장은 “허화평 수석은 나는 새도 떨어뜨릴 정도였지만, 실제로는 나는 새를 떨어뜨리지 않았다”면서 “그는 군인이자 사상가였으며, 또 자유민주주의 신봉자였다”고 평가했다.
이어 “나는 대학출신으로 당시 군사문화에 다소 비판적인 시각으로 봐왔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 분을 접하면서 허 수석(육사 17기)이 상당히 민주적인 사고를 가지신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며 “예를 들어 5공화국이 출범하면서 두발자유화나 통금시간해제, 과외금지와 같은 조치를 취한 것도 전부 허화평 수석의 판단에서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저는 이 부분에서 강조하고 싶은 건 허화평 당시 수석은 권력을 좌지우지하면서 무소불위로 남용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라며 “예를 들어, 허 수석은 ‘장영자 사건(이철희·장영자 부부 어음사기 사건)’ 때 이규광씨(전두환 전 대통령부인 이순자씨의 삼촌)를 구속시켰다. 그 뒤에 말들이 무성히 많았지만, 모든 것을 사회정의 구현에 맞게 처리한다는 원칙적 가치를 부여했던 분이었다”라고 평가했다.
“허화평 수석은 개혁적 군인이자 사상가, 정치가로 돌이켜보면 가장 아까운 인재였다”
정의사회 구현 등 나름대로 5공화국에서 발전적 역할을 하는 데 노력하던 과정에서 허 전 의원이 돌연 미국행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도 양 회장은 개인적인 분석과 평가를 내놨다.
그는 “허 수석은 권력투쟁을 하다가 미국에 간 것이 아니었다”며 “이 부분은 제가 잘 안다. 허 수석이 미국에 가기 전, 전두환 전 대통령이 치료 때문에 저를 청와대 의무실로 불렀다. 그때 전 전 대통령이 말씀하시길, ‘미국의 경우는 케네디 대통령이 동생 로버트 케네디를 법무장관 시켜도 말이 없는데, 경환이(전두환 전 대통령 동생)를 사무총장(새마을운동 중앙본부 사무총장) 시켰다고 이렇게 말들이 많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허화평씨에 영향이 있겠구나’ 가슴이 움찔하고 불길한 추측이 들었다. 그래서 청와대를 나와 허 수석에게 전화를 해 잠깐 보면서 얘기했더니 이미 모든 걸 다 알고 감지하고 결심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권력투쟁을 한 게 아니다”라고 재차 강조한 뒤 “그냥 담담하게 걸어 나와서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미국 해리티지 재단으로 갔다. 통상 정치인이 그곳을 간다고 한다면 놀러가거나 은신처로 삼아 가거나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있었는데 허 수석은 수석연구원으로 가서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연구, 한미관계, 국제관계 등 5년간 폭넓게 연구 활동을 해서 미국 사회에서도 명성이 자자했었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허 수석은 정도를 걸었고, 일도 그렇게 했다. 딱 부러지게 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아무래도 권력의 추라는 게 있으니까 스스로 물러났던 것”이라며 당시 미묘한 상황을 설명하면서 “허 수석은 개혁적 군인이자 사상가였고, 정치가였으며 당시 시대를 아우르는 덕목이 있었던 분으로 지금 돌이켜도 가장 아까운 분이었다는 생각을 한다”는 소감도 덧붙였다.
양 회장은 이와 더불어 5공화국에 대한 개인적 평가도 밝혔다. 그는 “5공화국 창건은 그 시대의 역사적 흐름으로 봐서 필연적이었다는 생각을 한다”면서 12.12 당시 전두환 합동수사본부의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수사와 체포를 둘러싼 에피소드들도 들려줬다.
그와 같은 일련의 사건들을 돌아보면서 양 회장은 “역사 흐름에 따라 탄생한 것일 뿐 계획된 사건은 아니었다”고 평가했다.
마지막으로 양 회장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후계자로 노태우 전 대통령이 아닌 허화평 전 의원을 선택했더라면 어땠을까 라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했다.
“그 당시 전부들 후계자는 허화평 수석으로 알고 있었다. 정치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었던 사람들은 누구나 허화평 수석이 후계자가 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특징이 항상 전두환 전 대통령의 보살핌을 받아 커왔다는 점이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전 대통령은 보안사령관도 노 전 대통령에게 맡기고 갔고, 그 당시 청와대 경호실 작전차장보도 물려 줬다. 대통령 자리까지 물려주고 간 격인데, 결국 백담사까지 가게 된 아이러니를 보면서 요즘 생각에 ‘그 때 전 대통령이 허화평 비서실장을 대통령으로 지명했더라면 그런 일이 없었을텐데’ 라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서철민 기자 rapter73@empas.com
ⓒ 미디어워치 & mediawatch.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