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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에 침술이 효과가 있다고?

이미 결론이 정해졌던 결점투성이 실험. 해당 연구의 질 때문에 우울증이 올 지경이다!


본 콘텐츠는 '과학중심의학연구원(http://www.i-sbm.org)'이 제공하는 공익콘텐츠입니다. 이번 글은 영국의 저명한 EBM 대체의학 전문가인 에드짜르트 에른스트(Edzard Ernst)의 글 'Acupuncture for depression? The quality of the research is enough to make me depressed!'를 번역한 것입니다. 과학중심의학연구원 서범석 특보가 번역했습니다. 서범석 과학중심의학연구원 홍보특보가 번역하였으며, 황의원 과학중심의학연구원 원장이 편집하였습니다




필자는 이전의 다른 글에서, 침술 옹호론자들이 "자신들이 행하는 치료가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다른 평행 우주에서의 침술 연구(parallel universe of acupuncture research)’라는 것을 통해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제자리에서 계속 맴돌고 있다"고 비판했던 바 있다.

침술 연구자들이 ‘다른 평행 우주에서의 침술 연구'를 수행하는 방식은 상당히 단순하다. ‘효과가 없다’는 결론은 절대 나지 않을 법한 방식으로 사전에 따로 설계해 놓은 임상시험을 수행하는 것이다.

최근 '침술의 효과를 입증하는 중요한 진전'이랍시고 언론 보도자료 등을 통해 떠들썩하게 선전된 신종 연구 결과가 바로 그런 '적절하고 훌륭한 사례'가 될 것이다. ( Acupuncture and Counselling for Depression in Primary Care: A Randomised Controlled Trial )

논문 저자들에 따르면, 해당 신종 연구의 목적은 우울증을 계속 겪고 있는 환자들에 대한 1차 진료시 ‘침술치료 대 통상치료’, ‘상담치료 대 통상치료’의 효과를 비교 평가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뭐 근사하게 들리긴 한다. 하지만 여기 중요한 문제가 있다.

해당 임상시험에서는 우울증을 앓고 있는 755명의 환자들을 다음 세 부류 – 1) 침술치료, 2) 상담치료, 3) ‘통상치료 단독(usual care alone)’ - 중 하나에 무작위로 배정했다. 주된 분석 결과는 3개월 차의 ‘Patient Health Questionnaire (PHQ-9)’ 점수 평균의 차이 그리고 후속 분석된 12개월 이후의 ‘Patient Health Questionnaire (PHQ-9)’ 점수 평균의 차이였다.

분석은 치료 목적으로 행해졌다. ‘PHQ-9’ 데이터는 3개월차 환자 614명과 12개월차 환자 572명을 상대로 이용될 수 있었다. 환자들은 평균 10차례의 침술치료와 9차례의 상담치료를 받았다. 통상치료를 받은 환자들과 비교했을 경우, 침술치료와 상담치료를 받은 3개월 차와 12개월 차 환자들의 경우 ‘PHQ-9’ 우울증 평균 수치에서 통계상 상당한 감소가 발생했다.

이런 결과를 바탕으로 저자들은 2가지 처치(침술치료와 상담치료) 모두 ‘통상치료 단독(usual care alone)’으로 치료했을 때와 비교하여 3개월 차에 특히 우울증이 감소한 것과 관련이 깊다는 결론을 내렸다.

체계적 문헌고찰을 통한 검증

침술로 우울증 치료가 가능하다고? 그게 사실일까?

내가 열렬한 침술 옹호자들과 공동으로 실시한, 근거중심의학적인 ‘체계적 문헌고찰(systematic review)’의 결과를 보면, 매뉴얼대로 행한 침술 치료가 짝퉁 침술 치료(플라시보 침술 치료)보다 나은 것인지에 관한 근거들에 어떤 일관성이라는게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The effectiveness of acupuncture for depression - a systematic review of randomised controlled trials')

그렇기 때문에, 나로서는 (우울증에 대한 침술 효과를 지지하는 듯한) 저 신종 연구에 대해서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이 연구를 아주 세밀하게 살펴본다면 실제로는 연구 저자들이 ‘침술치료 대 통상치료’, ‘상담치료 대 통상치료’를 평가한 것이 전혀 아니며 침술치료, 상담치료, 통상치료를 서로 비교한 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통상치료) 단독’ 따위의 단어를 구사하는 걸 보면 우리는 논문 저자들이 쓴 글에 오해의 소지가 상당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심지어 연구 방법론 부분을 보더라도 해당 실험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알 수 없을 지경이다.

내 말이 믿기 어렵다고? 어떤 치료가 해당 연구에서 행해졌는지를 그대로 기술한 글의 일부가 바로 여기 있다.

침술치료와 상담치료에 배정된 환자들은 보통 일주일 간격으로 12번의 치료를 제공받았다. 자격증 취득 후 최소 3년간의 활동 경험이 있는, ‘영국 침술 협회(British Acupuncture Council)’에 등록된 침술사들이 실험에 참여했다. 침술 치료 계획서는 실험에 참가한 침술사들과 협의한 끝에 고안되었고 후에 다듬어졌다. 표준화된 침술 이론의 틀 안에서라면 (환자별) 개별 치료법이 허용되었다.

상담치료는 ‘영국 상담 및 정신치료 협회(British Association for Counselling and Psychotherapy)’ 회원들 중 이미 공인을 받았거나 아니면 자격증 취득 후 감독관이 참관하는 400시간의 상담 시간을 모두 채워 곧 공인될 자격을 갖춘 이들이 실험에 참여하였다. 인본주의적 접근법을 사용한, 매뉴얼 화된 치료계획서는 ‘Skills for Health’용으로 개발된 개개인의 숙련도에 기반을 두었다. 치료자들은 치료 횟수 및 치료 시간, 제공된 치료, 부작용을 공식 기록지에 기록하였다. 국민의료보험(National Health Service)과 사적 보험을 통한 통상적인 치료가 필요에 따라 이용됐으며, 세 그룹의 모든 환자들을 모니터링 했다.

실제로 행해진 치료들의 정체

어떤 치료들이 실제로 행해졌는지는 오직 ‘결과표(results tables)’에서나 확인할 수 있었는데, 실제 행해진 치료라는 게 다음과 같다.

A) 침술치료 더하기 (약물치료 등의) 통상치료
B) 상담치료 더하기 통상치료
C) 통상치료

이건 정말이지 생각할 필요조차 없을 정도로 쉬운 문제인데, 만약 당신이 ‘A+B’를 ‘B’와 비교해 본다면, 전자가 후자에 비해 더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A’가 ‘허수’가 아니어야 하겠지만. ‘침술(A)’은 플라시보 효과가 상당히 강하기 때문에 ‘허수’가 될 수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이 실험은 실험 전부터 이미 결론이 이미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말이다. ( A trial design that generates only ''positive'' results.)

이렇게 생각할 필요조차 없을 정도로 쉬운 문제조차 대체의학에서는 실험을 통해 증명하려고 하기 때문에, 나는 예전에 침술 관련 실험들이 전부 이런 식으로 설계돼 있다는 사실을 ‘체계적 문헌고찰’ 기법의 연구를 통해 입증한 바 있다. 우리는 어떤 실험이 ‘A+B 대 B’ 식으로 설계되면 그 결과가 ‘거짓 양성(false positive)’의 방식으로 나오는 경향이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더 최악인 것은 예전에 내가 한 강연에서 이런 사실을 강의한 적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이것이 ‘생각할 필요조차 없을 정도로 쉬운 문제(no-brainer)’였다는 것을 그들이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둘러대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어떤 이들은 ‘항우울제’를 우울증 환자들에게 주지 않는 것은 비윤리적이므로 이 실험을 다른 식으로 고안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주장들도 잘 뜯어보면 전혀 설득력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저자들은 최소한 환자들에게 어떠어떠한 처치들이 행해졌는지에 대해서는 소상히 밝혔어야 했다. 심지어 초록(abstract)과 언론 보도 자료에서조차 이런 핵심적인 사항들이 빠졌다는 게 말이 되는가.

결과를 미리 정해놓은 연구를 위해서 환자들에게 협력을 요청하거나 연구 자금을 유용하는 것은 명백히 비윤리적이다. 그리고 연구 설계의 진정한 면모를 꼼수를 쓰듯 최종 보고서에만 몰래 숨겨놓는 것은 당연히 부정직한 행위다.

내가 보기에, 이 실험은 적어도 다음과 같은 5가지 질문에 답해야 할 것이다.

1) 대체 어떻게 이 연구가 명망이 드높기로 유명한 의학 저널의 ‘동료 심사(peer review)’ 과정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는가?

2) 해당 실험 계획서가 어떻게 윤리적 승인을 받을 수 있었는가?

3) 어떻게 연구 지원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는가?

4) 과학계는 정말로 이러한 사이비 연구에 농락당할 정도였는가?

5) 우울증에 관한 침술 연구를 읽고 나서 우울증에 걸리지 않으려면 내가 뭘 해야 좋을까?




역자 프로필 :

퇴몽사(退蒙士) 서범석

현재 모 고등학교에서 입학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사회기여활동으로서 과학중심의학연구원의 ‘홍보특별보좌관’도 겸임하고 있다. 경희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했으며, 성균관-조지타운 대학교 TESOL 과정을 수료했다. 20년 넘게 중증 아토피로 고생하며 여러 대체 의학을 접했지만, 그 허상에 눈을 뜬 후 사이비 의‧과학 속에 자리잡고 있는 ‘몽매주의’를 퇴치하는 번역 및 집필 작업에 뛰어들었다.

저서: Q&A TOEIC Voca, 외국어영역 CSI(기본), 외국어영역 CSI(유형), 외국어영역 CSI(장문독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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