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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권에만 머물러?" 주간경향의 왜곡 인터뷰

[변희재의난중칼럼4] 나는 좌익에서 우익으로 사상 전향한 바 없다

나이 41살에 불과한 내가 자전적 책인 ‘변희재의 청춘투쟁’을 출판하는데 부담이 있었다. 앞으로 50대. 60대, 70대의 삶을 살아가면서 내 판단과 주장이 어떻게 변할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 출판을 강행한 이유는 책 서문에서 내 삶에 대한 언론의 거짓조작 보도 탓으로 돌렸다. 검색하면 무려 9000여개가 잡히는 나에 관한 기사 중 절반 이상은 다 잘못된 사실에 근거한 내용들이다. 특히 내가 대학시절 좌익운동을 하다 전향했다는 부분이 가관이다.

그래도, ‘너무 이른 나이에 자전적 책을 쓴게 아닌가’라는 고민을 하는 순간, 주간경향의 원희복 기자의 인터뷰 기사를 보며, “역시 출판하길 잘했다”는 확신을 가졌다. 그냥 잘못 알려진 자료에만 의존한게 아니라 1시간 가량의 심층 인터뷰를 한 기사에서조차 왜곡, 음해 날조된 내용이 버젓이 실려있기 때문이다. 이런 고의적인 음해기사를 바로잡는 길은 책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 문제가 되는 내용 중 일부이다.

“ ■ 항상 여권에 머물러 있는 순발력

변희재는 언론에도 여야가 있다면 ‘여권’의 편에, 권력이라면 ‘권력자’의 편에 서 있다. 그것도 보수 제도권 언론보다 훨씬 극우적이고, 혹은 권력편이다. 사실 그는 김대중 정권에서 <인물과 사상>이라는 열렬한 친 DJ 매체에서 활동했고, 노무현 정권에서도 역시 <서프라이즈>라는 친노 매체에서 활동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 들어 <미디어워치>라는 보수 매체로 ‘전향’했고, 지금 박근혜 정권에선 종북몰이에 앞장서고 있다.

그렇다. 그는 항상 ‘여권’에 있었다. 젊은 언론사업가가 항상 여권에 있었다는 것도 연구대상이다. 이런 변신 역시 말과 짧은 글로 승부가 나는 TV와 인터넷 토론에서 갈고 닦은 순발력 덕분인지 모른다. 전체 맥락에 대한 이해를 스스로 거부하고 단편적 워딩으로 상대의 허점을 치고 들어가는 검투사적 능력 때문에 빠른 변신도 가능했을 것이다“
노무현 정권 임기 3개월 지나, 야당지 선언

이건 팩트가 아니다. 나는 군에서 제대한 97년부터 자유주의적 기준에서 민주당을 지지했다. 노무현은 그 민주당의 후보였기에 지지했으나, 집권 3개월 만에 민주당 분당을 조장한 이후부터, 친노세력을 비판하며, 웹진 시대소리를 창간 야당지를 선언했다. 5년 임기의 노무현 정권에서 여당지 딱 3개월에 야당지를 4년 9개월 한 것이다.

특히 노무현 정권은 이명박, 박근혜 정권과 달리 친 정권 매체와 논객에게는 감투와 협찬 광고룰 주며 철저히 챙기곤 했다. 그걸 뻔히 알면서, 정권 탄생의 일등공신 매체였던 서프라이즈를 포기하고 반 노무현 매체를 만든 게, 항상 여권에 머물러 있는 순발력이라며 거짓 기사를 작성한 것이다.

현재 박근혜 정권도 3년 6개월 남았다. 문창극 총리 사태 이후, 애국진영 전체가 박근혜 정권으로부터 돌아서고 있고, 현재 수컷닷컴이나 미디어워치도 야당지로 논조가 바뀌어가고 있다. 나는 인터뷰 도중 애국진영의 박근혜 정권에 대한 심각한 민심 이반 상황을 설명했다. 이것도 항상 여당에 머물러 있는 순발력이란 말인가.

나는 90년대 중반과 2000년 초반을 서울대학교에 다니면서, 존 스튜어트 밀, 애덤스미스 등 자유주의 이론으로 운동권 전체와 홀로 싸움을 벌였다. 그 운동권 세력 다수가 언론, 학계에 진출해있다. 즉 그들은 내가 한결 같은 자유주의 노선을 걸어왔다는 점을 누구보다도 더 잘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좌익노선에서 전향한 것처럼 조작 보도를 반복하는 이유는 분명히 따로 있을 것이다. 원희복 기자의 기사 중 또 다른 일부이다.
“하지만 기성 언론에서 변희재는 ‘연구할 대상’이긴 하지만 ‘평가할 만한 인물’로 쳐주지 않는다. 언론사 시험에 계속 떨어진 비주류의 한(恨) 또는 ‘곤조’(근성·根性의 일본식 비속어)로 뭉친 반항아 정도로 생각한다”
나는 이 질문 자체에 놀랐다. 내가 언론사 시험에 계속 떨어져 비주류의 한풀이를 하고 있다고 그는 굳게 믿고 있다. 나는 대학교 2학년 시절 인터넷신문 대자보 창간에 참여했다. 이미 그 시절부터 대한민국 주류 언론은 세가 무너지고 있었고, 내 뜻을 펼칠 언론사가 존재하지 않는다 판단, 끊임없이 언론 창업에 도전해온 것이다. 당연히 10대 일간지, 3대 방송사 등 주류 언론사에 입사 지원한 바가 없다. 창업 실패의 과정에서 호구지책으로, 인터넷신문사 프레시안에 원서를 넣었다, 그냥 다시 창업에 도전하기 위해 잊어버린 게 전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향신문의 원로기자조차 내가 주류 언론사 입사 시험을 치고 떨어졌다고 굳게 믿고 있을 정도로, 저들은 거짓에 몸과 마음이 물들어 있다.

시장에 외면당하며 포털 기생매체로 전락하는 주류 언론에 몸담은게 그렇게 자랑스러운가

국민과 시장으로부터 철저히 외면받으며 포털의 기생매체로 전락한 주류 언론사 입사시험에 합격한 게, 그들은 그렇게 자랑스럽단 말인가. 나는 바로 대한민국 언론인들의 의식이 딱 이 수준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기에 자신있게 언론사 창업에 도전할 수 있었다.

이번 주간 경향 인터뷰 기사는 내가 왜 이른 나이에 책을 쓸 수밖에 없었는지 명확한 근거가 된다. 나는 내 책에서 확실하게 밝혔다.

첫째, 내가 사상이라는 것을 연구하고 내 사상의 기반을 인식하게 된 대학교 2학년 때 이후, 존 스튜어트밀, 애덤 스미스의 자유주의 노선을 바꾼 바가 없다. 최근 들어 북한 김정은 체제를 무너뜨리는 것이야말로 대한민국 국민의 자유를 가장 큰 폭으로 증진시킨다는 점에서 민족주의와 국가주의적 인식을 좀 더 깊이하고 있는 정도이다.

둘째, 내 대학시절, 그 어떤 애국인사보다도 더 처절하게 좌익운동권 세력과 맞서싸웠다. 그 당시는 대학 내의 우파조직도 없었기 때문에 오로지 홀로 싸워야 했다. 특히 좌익 페미니스트들과 성폭력 조작 사건을 놓고, 2년 간 목숨걸고 싸운 경력은 나 스스로 가장 자랑스러운 20대의 기억이다. 그때도 지금과 똑같이 온갖 거짓음해 조작과 싸워야 했고, 그때 갈고 닦은 실력으로 지금도 거짓세력과 전쟁 중이다.

셋째, 97년도에 내가 선택한 정당 민주당은 1955년도 신익희 국회의장, 조병옥 병무대장, 김성수 한민당 대표 등 대한민국 건국세력이 창당한 정당이다. 그 민주당은 산업화 세력인 박태준, 김종필의 자민련과 손을 잡고 김대중 정권 당시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공기업 민영화, 금융시장 개방 등 자유주의 경제정책을 추진했다. 그러므로 민주당의 정통성은 건국, 민주화, 개혁개방으로 정리된다.

그 민주당은 2000년 김대중, 김정일 회담 이후부터, 급격히 좌경화, 친노 386세력이 접수하면서, 정통성을 상실한다. 그 상징적 사건이 민주당 분당, 열린우리당 창당이고, 그 이후에 민주당이 사라지는 2007년까지 열린우리당의 친노세력과 맞서싸우며 지지자로서의 의무를 다했다.

넷째, 97년도부터 한나라당, 지금의 새누리당은 지지할 만한 애국적 가치를 지켜나가기에는 기회주의 습성에 너무나 깊이 물들었다고 봤고, 2012년 대선 이전까지, 단 한번도 한나라당, 새누리당에 투표한 바가 없다. 2007년 대선에서는 마지막 남은 민주당을 지지했으니 이명박 후보를 지지한 바도 없다. 이 판단은 정확했다고 자신하고, 앞으로도 새누리당을 지지할 일 없을 것이다.

다섯째, 대학 때부터 나의 꿈은 제대로 된 미디어 회사를 만드는 것이고, 15년 간 이 꿈을 조금씩 조금씩 실현해 가고 있다. 현재 애국진영은 애국신당 창당 논의를 시작하고 나 역시 힘을 보태겠지만, 제대로 된 정당도 제대로 된 언론사가 있어야 가능하다는 신념에 변화가 없다. KBS의 문창극 거짓날조 음해 사건으로 내 신념은 더욱 더 확고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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