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민 후보의 성폭언과 관련, 민주통합당은 2004년 8월의 당시 한나라당 의원들의 풍자극 '환생경제'에서 나온 욕설을 대비시키고 있다. 그러나 풍자극에서 나온 욕설과, 시사방송에서 나온 성폭언은 전혀 다르다. 또한 그 당시 노무현 정권의 청와대에서는 박근혜 대표의 누드 패러디 사진을 홈페이지에 올려 홍보수석이 사과하는 사태를 벌인 직후였다.
또한 환생경제는 그 이후 전문 배우들이 직접 출연하여 대학로에서 재공연하기도 했다. 일회성 욕설이 아니라 엄연한 작품이라는 것이다. 필자는 브레이크뉴스 편집장 시절, '환생경제'와 '박근혜 대표 누드 패러디' 사진을 비교 분석한 칼럼을 게재한 바 있다. 당시 상황을 전하기 위해 그대로 재개재한다.
또 한놈 나온다.
국회의원 나온다.
곱사같이 굽은 허리, 조조같이 가는 실눈,
가래끓는 목소리로 응승거리며 나온다
털투성이 몽둥이에 혁명공양 휘휘감고
혁명공약 모자쓰고 혁명공약 배지차고
가래를 퉤퉤, 골프채 번쩍, 깃발같이 높이들고 대갈일성, 쪽 째진 배암샛바닥에
구호가 와그르르
"시(詩)를 쓰되 좀스럽게 쓰지 말고 똑 이렇게 쓰럇다"로 시작하는 시인 김지하의 <오적> 중 일부이다. <오적>은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 등 나라를 망치는 오적을 마음껏 비판하고 조롱하는 내용이다. 한국의 마당놀이식 풍자와 해학이 돋보이는 이 <오적>은 결국 필화사건으로 번지며 김지하는 구속되었다.
한국의 판소리와 마당놀이 원전은 교과서에서 읽은 것과는 달리, 정치적으로나 성적으로 매우 직설적으로 세태를 풍자한다. <오적>은 이러한 전통을 이어나간 것이고, 훗날 정치풍자시의 원전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이런 <오적>의 풍자정신은 인터넷을 통해 패러디로 대중화되고 있고, 참여정부 이후에는 조금씩 조금씩 공중파 방송의 코미디물에서도 이를 수용하고 있다.
지난 28일 한나라당 의원들이 만든 '극단 여의도'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을 풍자하는 연극을 한나라당 연찬회에서 선보였다. 그 내용 중 노대통령을 빗대어 욕설과 성적 비하 표현이 들어있어 여당에서는 연거푸 비난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문제가 되는 표현은 이런 것들이다.
번영회장 "안녕하세요."
노가리 "자식 새끼가 죽었는데 안녕은 무슨 안녕!"
부녀회장 "인사를 해도 욕을 하는 뭐 이런 개×놈이 다 있어."
노가리 "이쯤 가면 막 가자는 거지요."
부녀회장 "사내로 태어났으면 불×값을 해야지. 육××놈. 죽일 놈 같으니라고."
노가리 "나도 다 사정이 있어요. 경제 죽고 나니 가슴이 싸릿싸릿 하오. 근데 내 탓이 아니고 순전히 집터가 안 좋아서 그런 거 아니요. 명당이라면 집안 꼴이 이런가. 그런데 마누라는 (이사를) 기를 쓰고 반대하니. 부창부수라고 하는데 복장 터지요."
(장면이 바뀌어 친구들이 근애를 위로하며)
번영회장 "근애야, 이혼해."
부녀회장 "그래 이혼하고 위자료로 그거나 떼달라 그래, 그 거시기."
번영회장 "그 놈은 거시기 달고 다닐 자격도 없는 놈이야."
열린우리당과 청와대 쪽에서는 충격을 받았다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맹렬히 한나라당을 비난하고 있는 반면, 한나라당 쪽에서는 '단순히 연극일 뿐이니 과민반응 보이지 말라'는 입장이다.
이 사건은 얼마 전 박근혜 대표 패러디물 청와대 홈피 게시와 비교되면서 점점 더 논란이 커지고 있다. 자기들의 대표를 포스터로 패러디한 것에는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던 한나라당이 막상 자신들의 연극에서는 직접 대통령에 욕설을 퍼부었다는 논리이다.
특히 대표적인 친 정권 언론인 오마이뉴스의 정운현 편집국장도 이러한 논리의 연장선에서 한나라당을 비판하고 있다.
"지난 7월 중순 한 네티즌이 만든 박근혜 대표 패러디물이 청와대 사이트에 올랐을 때 한나라당은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며 야단법석을 떨었다. 청와대의 야당탄압이자 여성(박근혜 대표)을 성적으로 비하했다고 주장했다. 그 일로 결국 청와대 홍보수석이 공개사과하고 국무총리가 국회에서 사과했다.
그러나 이번 연극이 물의를 빚자 한나라당은 대변인 성명을 통해 '연극은 연극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럼 '박근혜 패러디'는 패러디일 뿐 아닌가? 특히 남성(노무현 대통령)은 성적으로 비하해도 별문제가 없다는 얘긴가? 그런데 박근혜 대표는 이 연극에 대해 "프로를 방불케하는 연기였다"고 호평했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정운현 국장의 논리는 오히려 바람직한 정치풍자의 방향에 대해서 혼란만 더해주고 있다. 왜냐하면 오마이뉴스는 박근혜 패러디 사건 때 전적으로 청와대 편을 들고 나섰기 때문이다. 당시 오마이뉴스는 고태진이라는 서민논객의 입을 빌어 "한나라당 당원들이 만드는 홈페이지에 대통령 비하하는 내용도 있는데 뭘 그 정도 가지고 대통령의 사과까지 요구하는가?"라는 논리로 청와대를 비호했다. 그랬던 오마이뉴스가 청와대와 한나라당의 입장이 바뀌었다고 한나라당에 대국민사과를 요구하고, 국회에는 윤리특위까지 거론하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패러디가 별 것 아니면, 이번 것도 별 것 아니어야 하지 않은가? 정운현 국장이 위와 같은 글을 쓰려면 박근혜 패러디 사건 때 청와대를 강력히 비판했어야 한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청와대를 옹호했고, 사고 친 당사자가 청와대로 복귀하는데도 아무런 비판도 하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왜 이렇게 갑자기 정치풍자에 대해 게거품을 물고 나서는가?
박근혜 패러디 문제의 본질은 청와대 편집이다
오마이뉴스의 정운현 국장의 이번 글은 기본적으로 풍자예술에 대한 수준 이하의 이해도를 드러내고 있다. 더구나 "'이놈' '저놈' 같은 말을 더러 입에 담는 몇몇 남성의원들은 또 그렇다고 치자. 더욱 가관인 것은 여성의원들이다. '개×놈'에 이어 '불×값' '거시기 달고 다닐 자격도 없는 놈' 등 남성 성기를 지칭한 말들을 별 거리낌 없이 내뱉는 걸 보고는 그저 입이 다물어진다."라는 문장 속에는 그야말로 여성비하적인 사고까지 엿보인다. 남성의원들이 욕하는 건 들어줄만한데 여성의원들이 그러면 못 들어주겠다는 말 아닌가?
이런 수준의 사고를 하고 있으니 박근혜 패러디의 본질을 간파할 리가 없다. 박근혜 패러디의 문제는 패러디를 창작한 사람에게 있지 않다. 인터넷 네티즌들의 패러디 창출 문화는 그 누구도 통제하려 해선 안 된다. 심지어 박근혜 대표의 옷을 모조리 벗겨놔도 창작자 개인의 자유를 존중해줘야 한다. 박대표는 그 정도의 모독은 감수해야하는 실세 권력자이자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맥락으로 한나라당 당원들이 만든 사이트에서 노대통령을 개구리로 묘사한 패러디물을 만들어 게시한 것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패러디물을 청와대 직원이 편집해서 클릭수가 높은 곳에 배치했다면 전혀 이야기가 달라진다. 청와대는 헌법에 명시된 대한민국 최고의 권력기관 대통령 직속에 있다. 청와대는 국민 전체의 의사를 수렴해야 하는 것이지, 대통령을 비판하는 세력을 공격하는 역할을 하는 곳이 아니다. 그건 여당이 하면 된다. 이런 청와대에서 야당의 대표를 풍자하는 패러디물을 게시하였으니, 그 담당자가 징계를 받는 것은 당연하고, 대통령의 사과의 필요성까지도 논란이 되었던 것이다.
반면 이번 한나라당 의원들의 연극은 당파성을 내세우는 정당의 정치연극이다. 대한민국 국민 전체를 대변해야 하는 청와대와 달리 한나라당 의원들은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국민들의 논리와 정서를 대변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렇다면 이들의 연극 또한 이러한 정치적 목적을 위해 기획되었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그리고 그 표현수단으로서 판소리, 마당놀이, 혹은 김지하의 <오적>, 인터넷 패러디물 등 한국의 전통적인 풍자 문화를 빌어왔다.
여당과 오마이뉴스의 "현직 대통령을 두고 '육시럴 놈'이라니. 세상이 아무리 좋아졌다고 해도 이건 지나치다. 풍자도 아니고 해학도 아니다."라는 주장은 그들만의 주관적 판단일 뿐이다. 권력을 상대로 하는 당파적인 연극에서 '육시럴 놈'이라던지 '거시기도 달 자격 없는 놈' 정도의 흔히 볼 수 있는 마당놀이식 표현은 크게 문제될 일은 아니다.
다만 한나라당 의원들은 정권이나 여당과 대화와 타협을 해야하는 정치인인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연극이 바람직한 것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차라리 일반 연극인들이었다면 그 표현의 수위나 영역이 무한대로 자유로와야 하겠지만, 그들의 정체성은 어디까지 정치인이지 연극인은 아니지 않은가? 그들을 정치인으로 본다면, 그들의 대통령 비하 표현은 김지하의 <오적>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그들의 선배인 열린우리당의 김홍신 의원의 "공업용 미싱으로 김대중의 입을 박아버리겠다"는 정치공세와 닮아있다. 극단여의도가 연극이라는 장르만 빌어왔을 뿐이지 그들의 의사는 정확히 김홍신 의원의 DJ에 대한 적개심과 똑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한나라당 의원들의 연극에 대해서 대통령 숭배 사상으로 비판하려 들어선 곤란한 일이다. 오마이뉴스의 정운현 국장의 결론도 그래서 문제가 되는 것이다.
오마이뉴스가 박통 때 있었다면 '오적'을 어떻게 평가했을까?
"그러나 어찌됐건 국민적 논란이었던 탄핵 국면도 넘겼다. 또 미우나 고우나 우리손으로 뽑은 대통령이다. 대통령은 우리나라를 대표하고 국정의 최고책임자로서 위상을 가진다. 그러니 한나라당의 이런 행각도 굳이 따지자면 제 얼굴에 침뱉기 아닌가?"
그렇게 따지면 대통령 가지고 놀아제끼는 미국이나 서구의 개그맨들은 모조리 비판받아 마땅하단 말인가? 한나라당 의원들이 비판받을 지점은 대통령을 모독한 표현에 있는 것이 아니다. 최고책임자로서의 위상을 가진 대통령을 욕보인 것도 아니다. 자유민주국가에서라면 대통령이라는 공적기관에 대해서는 육시지랄보다 더 심한 표현이 들어간 비판도 허용해야 한다. 단지 여당과 상생의 정치를 통해 민생 살리기에 나서겠다는 한나라당 정치인들이, 뒤에서 이런 욕이나 하면서 어떻체 대화를 할 수 있겠냐는, 비타협적 정치적 행위에 대한 비판이 필요할 뿐이다. 즉 연극인으로서의 표현은 문제될 게 없지만 책임있는 정치인으로서는 정국을 경색으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문제가 되는 것이다.
정운현 국장은 예술인과 현실정치인의 위상의 차이 역시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저런 일로 노 대통령이 야당 등으로부터 좋은 점수를 받진 못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걸 '육시럴 놈'이라고 하면 주변의 동의를 받기 어렵다. 그럴 정도의 상황이라면 탄핵이라는 합법적인 방법으로 대통령 자리에서 끌어내리면 된다. 그 가능성을 우리는 얼마 전에 직접 확인했다."
정국장의 인식 수준은 마치 개그코너에서 외국인 노동자 블랑카의 입을 통해 한국문화를 풍자했다고 떼거지로 몰려들어온 중소기업인들과 똑같다. 연극에서 육시럴놈이라 그랬다고 차라리 대통령 탄핵을 하라는 무식한 발언을 하는 게 말이나 되는가? 어디까지나 연극은 연극이고 정치는 정치이다. 김홍신 의원이 연극 속에서 '공업용 미싱' 발언을 했다면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박근혜 패러디 문제와 이번 육시럴 연극 파문에서 분명히 짚어야 할 것은 정치인의 지위에서의 책임은 지되, 전체적인 정치적 풍자의 표현의 자유는 넓히는 일이다. 패러디물을 만든 네티즌은 잘못이 없지만, 홈피에 올린 청와대는 잘못이라는 점과 똑같이, 연극상에서 대통령을 빗대어 어떠한 욕설을 퍼붓든 그건 문제가 안 되지만, 그것을 한나라당 의원들이 했으니 그에 대한 정치적으로 책임을 져야 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정 대통령을 연극으로 비판하고 싶었으면, 연극인들에게 자리를 마련해주었어야지 왜 본인들이 연극 뒤에 숨어서 정치적 공세를 펼치냐는 말이다.
이 둘을 구분하지 못하고, 박근혜 패러디 사건 때는 '그럴 수 있지 않냐'는 논리를 펴다가, 자신들이 지지하는 대통령이 당하니까 갑자기 비분강개하며 '우리가 뽑은 대통령에게 이럴 수 있느냐'는 어용행각을 벌이는 한 언론의 행태,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극복해야하는 <오적>의 또 다른 모습이 아닐까?
과연 오마이뉴스가 박정희 시절에 만들어졌고, <오적>에서 박통을 비난하는 내용이 들어갔더라면 정운현 국장은 어떻게 대처했을까? 지금의 논리로 보자면 국가 원수를 모독한 김지하를 때려죽일 놈으로 몰아붙이고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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