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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동상에서 보는 김정일 데자뷰

감정에 살고 감정에 죽는 북한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일본대사관 앞에 위안부 소녀 동상을 세운지 반년이 넘었다. 설치 당시부터 이 동상은 많은 화제를 뿌렸다. 구청에서 허가를 받지 않은 구조물인데도 구청은‘국민감정’을 이유로 사실상 설치를 묵인했고, 이후 한일관계에 잡음이 생길 때마다 집회와 항의의 장소로 자리 잡았다. 많은 정치인들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그곳에 모습을 드러내‘인증’이라도 하듯 사진을 찍었고, 언론은 이를 칭송하듯 그런 사진들로 지면을 채웠다.

이후 일본의 우익인사가 그 앞에서‘독도는 일본의 영토’란 푯말을 들고 사진을 찍으면서 한국의 감정을 폭발시킨 상황을 계기로 그 자리는 한국인들의 분노와 한(恨), 그리고 슬픔과 눈물을 나타내는‘감성(感性)’의 장소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최근 뉴스를 보면 그 동상을 대하는 한국 언론의 태도는‘보도’가 아닌‘드라마’중계를 연상케 한다. 비가 오는 날 동상 옆에 서서 우산을 들고 서 있는 경찰관 사진을 내보내며 애국자, 훌륭한 사람이라고 박수를 보내는 보도도 그 중 하나다.

경찰관은 범죄를 단속하고 예방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이지 동상에 우산을 씌워주고 목도리를 채워주고 발싸개를 해주는 것을 업무로 하는 사람이 아니다. 분명 과잉반응이자 이성과 규율보다 감성과 감정을 우선시 하는‘오버’라고 할 수 있다.

동상은 비를 맞아서는 안 되는가? 그렇다면 이순신 장군이나 세종대왕을 존경하고 아끼는 경찰관이 근무시간 중에 세종로의 세종대왕 동상 위에 올라가 우산을 씌워주고, 군인이었던 이순신 장군 동상에는 군용 판초우의를 씌우는 것도 허용해주며 박수를 보내야 하는가?

우상(偶像)이 현실로 들어오는 위험

자신이 좋아하는 동상, 인물, 연예인, 정치가를 아끼고 소중히 하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위해 동상을 세우거나 사진을 꾸며놓는 것 역시 나쁜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런 동상이나 사진이 현실의 인물을 대체(代替)할 수는 없다. 동상은 동상이고, 인물은 인물인 것이다. 동상을 인물과 동일시하는 것은 종교의 영역에서나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예를 들어 2002년 부산 아시안 게임 때 화제가 됐던 북한 미녀응원단을 생각해보자. 그때 북한응원단은 한국에 걸려있는 김정일 초상화가 비에 젖는다며 버스에서 뛰어내려와 울음을 터뜨리고 그 초상화를 몸으로 감싸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들 입장에선 초상화를 소중히 하는 것이 본인들의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겠지만, 그 모습을 TV에서 본 우리 국민들은 큰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국민들 눈에 김정일은 북한응원단의‘지도자’가 아니라‘성인(聖人)’이나‘종교지도자’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사진이 젖는다고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는 그 광기어린 모습은 외부사람들 눈에는 분명 어색하며 비정상적인 것이겠지만 북한응원단에게는 당연한 것이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김정일과 초상화는‘현실’이 아닌‘종교’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다만 본인들만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남과 북의 미묘한‘공통점’

동상(銅像)이나 초상화를 인간과 동일시하는 모습은 북한뿐만 아니라, 한국사회에서도 그렇게 낯선 모습만은 아니다. 이승만 대통령 동상에 빨간 페인트칠을 하는 것이나, 김백일 장군 동상을 쇠사슬로 휘감아 버리는 모습 등 동상을 마치‘사람’처럼 감정표출의 대상으로 삼는 모습을 많이 보여 왔기 때문이다. 역시 같은‘민족’이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

또한 위안부 동상을 설치한 정대협과 김정일 초상화를 붙들고 울부짖던 북한응원단 사이에도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김정일에 대한 마음’이다. 정대협은 2011년 김정일이 사망했을 때 북한에 보낸 조문에서“김정일 국방위원장의‘서거’ ” “급작스러운‘비보’ ” “깊은‘애도’ ”등 표현을 사용하며 한국사회의 일반적 반응과는 다른 독특한 행보를 보여줬다.

물론 한국사회에도 장례식에 참가하거나 조의를 표한 사람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일반시민들 모습은 기쁨도 슬픔도 아닌, 다소 불안을 포함한 덤덤한 모습이었기에 중립을 지켜야 할 시민단체인 정대협이 김정일 사망에 대해 보여준 반응은 다소 어색한 모습이었다.

소녀 동상이 비 맞는 것이 안타까워 우산을 씌워주고, 추운 것이 안타까워 목도리를 해주는 것이 칭송을 받아야 할 행위라면, 차라리 유리관 속에 넣어놓고 냉난방 시설을 해주는 것은 어떤가? 유리관을 설치해 추위와 비바람을 피하게 하는 것은 분명히 할 수 있는 일인데도 굳이 노출된 외부에 설치해 놓고, 비가 올 때마다 가슴 아파하는 것은 동화 속의 청개구리나 하는 일이다. 유리관 속에서 편히 쉬게 한다면 동상이 비에 젖는다고 안타까워 할 일도 없고, 춥지는 않을까 하고 노심초사할 일도 없지 않은가.

단 한국이 아닌‘외부’의 사람들은 그런 유리관 속 동상을 보고, 방부 처리된 후 비도 추위도 없는 유리관 속에서 영원불멸의 잠을 자는 레닌이나 김일성을 떠올릴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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