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를 만난 것은 아마 2005년 12월 쯤인 것으로 기억한다.
목포 mbc근처 한 식당에서 유난히도 눈이 많이 내리던 날 그는 광주에서 목포까지 차를 운전하고 찾아온 나와 후배기자인 <데일리안> 김현 기자를 따뜻하게 맞이해 주었다.
그리고 그날 우리는 호남에서 애국우파 언론 깃치를 세운다는 기념으로 술에 취한 채 목포의 한 노래방에서 밤늦게 까지 대한민국 만세를 부르며 힘껏 노래를 불렀다.
아마도 이게 정재학 선생님의 첫 만남에서 멋진 추억으로 기억된다. 당시 전교조와 힘든 전투를 벌이던 정 선생님에겐 우군이 생겼던 셈이다.
나 역시 호남에서 우파언론의 깃치를 내걸던 시점에서 정재학 선생님과의 만남을 혁명적인 날로 기억한다.
그뒤 나와 그는 동지가 됐다.
호남에서 애국우파언론이 탄생된다는게 얼마나 역사적인 일인가?
그 날은 유난히 눈이 많이 왔다. 순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워낙 많은 눈이 쏟아져 전남 장흥에서 할수 없이 차를 세우고 찜질방에서 투숙을 한 게 엊그제 같다.
그 뒤 정 선생님은 수백편의 글을 통해 대한민국이 가야 할 길을 제시했다.특히 '전교조의 정체' 라는 글을 무려 80차례에 걸쳐 데일리안에 게재, 전교조의 실체에 대해 적나라하게 고발했다.
그 와중에 그는 전교조와 민노당으로부터 수차례 고발을 당했다.
나중에는 민통당 박지원 의원의 반역행위와 관련 글을 게재한 탓에 박 의원 측으로부터도 고발을 당하기도 했다. 그 와중에 그는 엄청난 심적고통을 당했다.
괴롭기도 했을 것이다. 분했을 것이다.서러워서 눈물도 많이 흘렀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는 한번도 내 앞에서 눈물을 보인 적이 없었다.
그는 이 척박한 호남땅에서 그런 고통을 감내하면서 그는 여지껏 글과 시로 이 모든 걸 댤래왔기 때문이다.
때론 과격했지만 어머님의 자애스러움이 넘쳐나는 서정적인 글로 그는 그 모든 걸 달랬다.
때론 그들에 대해 과감히 회초리를 휘둘렀지만 나중엔 그들 스스로의 잘못됨을 촉구하며 참회의 글을 써왔다.
때론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져버린 그들의 노선을 질타하면서도 그들도 대한민국 국민이기에 진정 올곧게 가기를 희망하며 글을 써왔다.
때론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회초리로 후려쳤지만 그들 역시 대한민국 국민이기에 사랑과 눈물로 그들을 감싸며 글을 써왔다.
그는 우리 시대의 진정한 선생님 이었다.
그가 종북좌파를 향해 때린 매는 알고보니 선생님이 제자가 진정으로 잘 되라고 때린 ‘사랑의 매’였던 것이었다.
그는 우리시대의 선생님이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진정한 선생님이자 한편으론 우리시대의 진정한 전사(戰士)였다.
그런 우리의 선생님이 교사 신분으로 대한민국과 박근혜를 위한다는 기사를 썼다하여 최근 전라남도 선관위에 의해 검찰에 고발당했다.
아마도 지난 17일 선관위가 sns 사건의 당사자로 지목된 윤 모 목사에 대해 검찰고발 사건과 관련해 선관위 노조의 좌파성을 지적한 글에 대한 보복성으로 추측된다.
대한민국이 잘못된 길을 간 것에 대해 현직교사가 '사랑의 매' 를 들었다하여 선관위가 정치적중립의무를 위반했다하여 처벌을 하겠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이 위기에 처해있을때, 그 어느 누구도 그 위기에 대해 숨죽이고 있을 때 호남에서 온몸으로 피눈물을 토하며 글을 써가며, 10년 동안 대한민국을 위해 사랑의 회초리를 든 정재학 선생님.
그런 그에게 대한민국의 그 어느 누가 처벌하겠다는 것인가?
이 척박한 호남땅에서 피눈물을 쏟아가며 글을 써 온 우리 정재학 선생님에 대해 대한민국의 어느 누가 과연 처벌의 잣대를 들이 댈 수 있단 말인가?
누가 누구를 감히 처벌하겠다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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