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목숨을 결정짓는 기술에 두 가지가 있다. 의술와 무기다.
먼 옛날 인류는 돌을 무기로 사용했고 청동과 철을 거쳐 현대에는 과학의 발전에 힘입어 목적에 맞는 최적의 재료를 합성해 무기의 원료로 사용하고 있다.
재료뿐만 아니라 종류와 방식도 발달했다. 맨손으로 돌을 던지던 인류는 기다란 줄에 가죽이나 천으로 돌을 감싸 휘둘러 던지는 투석구를 만들어 훨씬 더 강한 힘을 실었다. 활과 화살, 창, 검, 방패, 갑옷 등의 개인병기가 이제는 총, 수류탄, 방탄조끼 등 과학의 산물로 완전히 변모하게 되었다.
무기의 우열은 눈앞에 뻔히 보이지만, 의술은 인간 본성에 내재된 직관의 오류와 위약효과로 인해 과학적 방법으로 설계된 검증을 통하지 않고서는 어떤 방법이 효과적인 치료인지 알 수가 없다.
사이비의료를 행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치료한 사람들 중 많은 수가 효과를 봤다고 주장하고, 일반 사람들은 누가 어떤 치료를 받고 병이 나았다는 경험담을 가장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것들은 치료 효과를 전혀 뒷받침하지 못한다.
과학자들은 치료를 받은 사람과 치료를 받지 않은 사람을 비교하는 일은 효과를 판단하는데 무의미한 것으로 여긴다. 실제로는 아무런 효과가 없어도 ‘치료를 시도했다는 사실’만으로 진통효과 등 일부 효과가 발생하거나 효과가 없어도 있다고 착각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천식 발작을 일으킨 환자에게 가짜약을 주면 관적인 호흡 검사에서는 아무 변화가 없음에도 환자는 상태가 호전됐다고 느낀다.
고대중국의학과 그 아류인 한국의 한의학과 일본의 캄포, 인도의 아유르베다, 고대이집트의학, 마야의학, 고대브라질의학, 아프리카 남부의 무티(사람을 약재로 사용하기 때문에 현대에도 사람을 죽이는 일이 벌어진다.)를 비롯해 세계 각지에서 행해졌던 전통의학과 주술적 의료행위 등 과거에는 지역마다 질병에 대한 철학과 처치가 서로 달랐다. 하지만 현재는 인류의 가장 강력한 진리탐구체계인 과학의 덕으로 의술의 우열과 진위를 가릴 수 있게 되면서 과학을 기반으로 한 현대의학으로 통일되었다.
역설적이게도 현대의학이 발전하기 전이었다면 진작 죽었을 수많은 사람들을 살려놓으면서 만성질환을 가진 채 살아가는 사람이 많아졌다. 현대의학으로 치료할 수 있는 병들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져 안중에서 사라지고 고칠 수 없는 난치병들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기에 의학의 발전은 언제나 불만족스러울 수밖에 없다.
객관적으로는 보건에 대한 과학적 지식과 현대의학이 인류의 건강을 지키는 독단적인 위치를 차지했음에도 자연과 인체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고대인들의 의료행위에서 혹시 모를 희망을 거는 사람들로 인해 대체의학이 고개를 들고 있다.
거기에 더해 우리나라에서는 ‘우리 민족 고유의 유산’을 맹목적으로 칭송하려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어서 ‘한의학의 세계화’ 따위를 위해 막대한 예산을 투자하고 있다. 외국에서도 한의학이 조명 받는 것처럼 보도해 국민 여론을 호도하고 있지만 엄밀히 말해 그들이 연구하는 것은 중국전통의학인 중의학이다. 한의학도 중의학의 아류이니 한의학이라고 전하는 것이 꼭 틀리다고만은 할 수 없겠다.
그렇다고 중의학이 서양에서 특별히 조명을 받는 것도 아니다. 요가, 태극권, 명상, 아유르베다 등 별의별 잡다한 것들과 비슷한 선상에서 혹시 쓸 만한 것이 있는지 들춰보자는 수준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우리 고유의 것”에 대한 집착 때문인지 “이제마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사상의학 연구에 천억원을 지원하고 있다.
1900년 무렵 이제마(1837~1900)가 주창한 사상의학은 음양오행과 오장육부를 기본으로 하는 기존 한의학(중의학)과 달리 유교적 4원 구조를 바탕으로 장부를 다섯 가지가 아닌 네 가지로 나누고 사람들이 네 가지 체질로 구별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수천 년간 이어져 내려온 중의학의 기본을 우리의 자랑스런 이제마 선생께서 뒤엎고 진정한 ‘한의학’을 창시한 것이다. 그런데 사상의학이 옳거나 우월하다는 근거가 없기에 사상의학을 연구하는 이유는 단지 우리나라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위성추적장치를 이용한 정밀 타격, 엄청난 폭발력을 가진 핵무기, 음속의 몇 배로 상공을 가로지르는 전투기, 바다 속에서 은밀히 활동하는 잠수함 등 최신 무기가 전장을 지배하는 시대에 박물관에서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무기를 찾아 사용하겠다는 꼴이다.
이제마가 막연한 유교적 원리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을 때 로버트 코흐(Robert Koch, 1843~1910)는 특정 병원균이 특정 질병을 유발한다는 특정병인설을 주창하고 이를 증명하는 방법으로 ‘코흐의 공리’를 제시했다. 자신 또한 그 방법으로 몇 가지 질병과 원인균의 관계를 규명하고 결핵에 대한 연구로 노벨상을 수상했다.
1600년대 후반 ‘미생물학의 아버지‘인 안톤 반 뤼벤호크(Anton van Leeuwenhoek, 1632~1723)가 처음으로 현미경을 통해 미생물들을 관찰해 보고했지만 동서양을 막론하고 1850년대 이전까지는 미생물이 질병이 원인일 것이라는 생각조차 못 했다.
감염병 연구의 초석을 마련한 코흐로 인해 우리는 약을 통해 감염병을 치료할 뿐만 아니라 손을 깨끗이 씻고, 물을 끓여 마시고, 마스크를 쓰는 등의 감염병 예방 상식으로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 우리가 보기엔 너무 당연한 일이지만 1800년대 초반 서양의 의사들은 환자를 치료하거나 시체를 만지고서도 손을 씻지 않아 출산 시 산모가 산욕열로 사망하는 비율이 병원 밖에서 출산하는 경우보다 높았다.
아이작 뉴턴(Issac Newton, 1642~1727)은 '내가 만약 더 멀리 보았다면, 그것은 거인의 어깨에 섰기 때문입니다.“는 말로 자신의 업적에는 앞선 위인들이 쌓아놓은 지식이 밑바탕이 되었음을 겸손하게 이야기했다.
과학과 의학의 발전에 국경과 국적은 무의미하다. 과학이 이만큼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국경을 넘어 서로가 아이디어와 연구결과를 교환해가며 가장 위대한 아이디어들이 재창조되었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 언급된 코흐, 뤼벤호크, 뉴턴의 국적을 신경 쓰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결핵균을 코흐가 발견했지만 현재 우리가 결핵을 치료할 수 있는 이유가 독일 덕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박물관에서 현대전에 쓸 무기를 찾는 꼴과 같은 전통과 고유의 것에 대한 어리석은 집착을 하루빨리 내려놓아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의학발전에 기여해 국민건강과 경제와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는 길이다.
정부는 ‘이제마 프로젝트’로 근거없는 사상체질론의 네 가지 체질을 식별하고 적용하는 연구에 2006년부터 2015년까지 1천억원의 세금을 쏟아 부었다. 경험이 풍부한 한의사들도 한 사람을 두고 서로 다른 체질로 진단하는 마당에 연구비를 쓴다고 사상체질이 식별될 리 만무하다. 수 년 내에 개인별 게놈 프로젝트 비용이 100만 원대로 떨어지면서 각자가 전체 유전자를 확인해 건강정보를 세세히 얻을 수 있는 시기에 이보다 시대착오적인 발상이 또 있을까. 혈액형 별 성격 연구가 우리나라에서 탄생했다면 여기에도 수백억 예산을 들였을 지 모를 일이다.
정부는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제 2차 한의약발전육성계획'으로 한의학 연구에 1조원을 지원하고 있다. 정부는 또 최근 한의약 세계화를 통해 창조경제를 구현하겠다며 발 벗고 나섰다. 차라리 박물관에서 무기를 찾는 편이 예산낭비라도 적을 텐데. 한심함을 넘어 씁쓸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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