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헌 · 국사교과서연구소 소장]
2020년인 내년부터 사용할 중·고 역사교과서의 검정 심사가 완료되고 일선 학교에 전시본이 배포됐다. 지난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과 동시에 박근혜 정부에서 추진한 국정 역사교과서를 폐기하고 다시 편찬한 교과서가 이제 교사들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몇 년 동안 아이들 역사 관련 교과서를 연구해온 필자도 고등학교 8종 교과서를 입수해 그동안 문제를 제기했던 부분을 위주로 살폈다. 그 결과 역사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경험한다는 취지에서 추진된 검정 교과서여서인지 그야말로 ‘중구난방(衆口難防)’이다. 그 중 심각한 오류와 왜곡, 그리고 교과서별 상이한 서술을 위주로 정리하고자 한다.
먼저 필자가 지난 2018학년도 수능 한국사에서 출제 오류로 이의를 제기했던 1920년대 산미증식계획 관련 서술이다. 현재 사용 중인 고등학교 교과서의 산미증식계획 서술의 치명적 오류는 엉터리 통계 자료와 서술이다. 이에 대해 필자는 모든 출판사에 잘못된 통계자료를 수정하고 서술 오류를 바로잡을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왔으나 집필자로부터 어떠한 답변도 받지 못했다. 그런데 내년부터 사용할 새 교과서 중 일부에서 그동안의 오류가 수정되었음을 확인했다. 아래 표는 새 교과서에 실린 산미 증식 계획 시기 조선의 연간 쌀 생산량을 나타내고 있다.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동아출판 교과서의 10년 치 생산량은 정확한 통계 자료다. 비상교육, 지학사, 천재교육도 올바른 수치를 제시하기는 했으나 홀수 연도를 생략함으로써 생산량 추이를 왜곡할 수 있는 소지를 그대로 남겨뒀다. 반면 이번에 새롭게 검정 심사를 통과한 해냄에듀와 씨마스는 현행 교과서의 오류를 그대로 답습한 엉터리다. 또, 그동안 엉터리 자료를 실었던 금성출판사와 미래엔은 시비 거리를 차단하자는 의도인지는 알 수 없으나 자료를 제시하지 않았다.
이를 정리하면 쌀 생산량과 관련해 8종 교과서 중 4종은 올바른 통계 자료, 2종은 엉터리, 나머지 2종은 아예 통계 자료가 없다. 결국 8종 중의 한 권만으로 공부하는 아이들은 쌀 생산량을 배우는 아이와 배우지 않는 아이, 배우더라도 올바른 것을 배우는 아이와 엉터리를 배우는 아이로 갈리게 된다. 2014학년도와 2016학년도에 쌀 생산량 통계 자료가 수능에 출제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앞으로도 출제 가능성은 충분하다. 당연히 엉터리 자료와 자료 미수록 교과서로 공부하는 학생들은 불리할 수밖에 없다.
다음은 쌀 생산량과 같은 그래프에 표시된 대일본 쌀 이출량(移出量) 통계 자료다.
이 통계자료도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비상교육을 포함하는 3개 출판사와 해냄에듀 및 씨마스의 통계 수치가 다르다. 그리고 동아출판을 포함한 3개 교과서는 이출량 자료를 아예 싣지 않았다. 마찬가지 또래 아이들이 배우는 경우와 못 배우는 경우, 배우더라도 서로 다른 내용을 배우게 된다. 용어도 ‘이출량’이라고 정확하게 쓴 비상교육 외에 공식적 무역 용어에도 없는 반출량(지학, 천재)과 유출량(씨마스, 해냄)으로 표시하여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 이러한 용어의 혼란은 본문 서술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국권상실기 조선의 무역 용어는 오늘날과 다소 달랐다. 당시 조선의 유의미한 수출 상품은 쌀이며 수출 대상국은 일본이었다. 일본의 식민지였던 조선은 일본과의 무역에서 이출(移出)과 이입(移入)을, 그 외 국가에서는 수출(輸出)과 수입(輸入)을 썼다. 수입과 이입의 차이는 관세 유무다. 당시 일본과의 쌀 무역에서는 관세가 없었기 때문에 이출과 이입을 사용해 여타 국가와 구분했다. 다음으로 국내의 도(道)와 도 사이 거래에서는 대부분 반출(搬出)을 사용했다. 즉, 이 도에서 저 도로 보낼 때 ‘타도 반출’이라 하여 수이출(輸移出)과 구분했던 것이다.
이를 토대로 교과서 서술을 살펴보면 비상교육의 이출(移出)이 가장 정확한 표현이고 반출과 유출은 잘못된 용어라 할 수 있다. 특히 반출의 경우 거래 또는 계산을 마치지 않고 내 보낼 수 없었으므로 이출과 차이가 없으나, 그동안 ‘쌀 수탈’ 논란에서 비난과 공격에 시달리지 않으려는 잔꾀에서 나온 용어로 파악하고 있다. 좀 비겁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문제는 새 교과서에는 현행 일부 교과서에 남아있는 ‘수탈’이라는 용어가 사라졌다는 점이다. 그동안 필자는 식민지 시기이긴 하나 완전한 자유 시장 경제였던 당시에 조선인의 생명과도 같은 쌀을 일제가 강제로 빼앗아가는 ‘수탈’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수없이 주장했다. 그런 노력의 결과인지 아니면 교과서 편찬자들이 제정신을 차린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수탈’이란 용어가 사라졌다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 교과서에서 ‘수탈’이 사라진 마당에 지난 2018학년도 수능한국사 15번 문항을 다시 짚어보지 않을 수 없다.
2018학년도 수능한국사 15번 문항 지문에 나타난 ‘수탈 정책’은 산미 증식 계획을 이른다. 조선의 쌀 생산량을 증가시켜 일본의 쌀 부족 문제를 해결함과 동시에 조선인의 소득을 증가시키기 위해 추진 된 계획이 바로 산미 증식 계획이다. 이러한 계획을 수탈 정책이라 한다면 강제로 빼앗아가기 위한 정책을 세우는 경우도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와 함께 정답으로 제시한 ④번도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오답이다. 당시 조선의 식량은 대략 80%의 잡곡과 20%의 쌀로 구성됐다. 비록 쌀 수출로 20% 정도 차지하고 있는 쌀의 일부가 줄어든다고 하여 식량 사정이 악화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쌀을 수출한다는 것은 그에 대한 판매 대금을 얻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연히 쌀을 판매한 대금으로 더 많은 양의 값싼 잡곡을 사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식량 사정은 오히려 나아질 수 있다. 당시 농민들의 식량 사정 악화는 쌀 부족 때문이 아니라 한없이 빈약한 농가소득에 있었다. 너무나 가난하다 보니 값싼 잡곡조차 사먹을 형편이 못 되어 굶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던 것이다.
이에 대해 수능이 끝난 후 출제 오류 취지로 이의신청을 하였으나 교육과정평가원은 한 문항의 오류도 없는 완벽한 수능이라고 발표하며 필자의 이의신청을 묵살했다. 이후 국민신문고를 통해 ‘수탈’의 근거를 제시하라고 수십 차례에 걸쳐 문제를 제기하였으나 그때마다 돌아온 답은 교과서 서술과 학계의 통설을 따랐다는 복사 답변이었다. 하지만 현행 교과서에도 대부분 수출(반출 유출 포함)로 서술되어 있으며 민족문화대백과사전을 비롯한 대부분의 백과사전에도 “(산미증식계획) 10개년 계획이 1934년에 중단된 것은 조선미의 대일 수출 증대로 일본 농업이 위기에 부딪쳤기 때문”이라고 적고 있다. 결국, 출제자와 검토자는 산미증식계획을 제대로 몰랐음이 분명하며 이의 신청 검토위원은 알고도 묵살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필자의 문제제기에 거짓말로 일관했다.
사실 국권상실기 연구자들은 산미 증식 계획 시기 대일본 쌀 수출을 수탈이라고 주장하는 경우는 없다. 쌀 수출이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을 연구자들이 모를 리 없기 때문이다. ‘쌀 수탈’설이 널리 퍼진 데는 도종환 전 장관과 같은 역사 비전문가들의 거짓 선동이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 도종환 전 장관은 2015년 박근혜 정부에서 추진한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과정에서도 줄기차게 쌀 수탈설을 주장한 바 있다. 언젠가는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기대해본다.
아무튼, 2020년도부터 사용할 새 교과서에서 지금까지 일부 교과서에 남아 있던 ‘수탈’이란 용어가 완전히 사라짐으로써 2018학년도 수능 한국사 15번은 출제 오류임이 더욱 분명해졌다. 성기선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과 이준식 출제 위원장, 그리고 한국사 15번 문항 출제 관련자들은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