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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시오카 쓰토무 “김정일, 제6공화국 설립을 보고 선거를 통한 적화 가능하다 판단”

탄핵 정국 이후 “박근혜 ‘린치’, 국민 여론에 대한 북한의 뿌리 깊은 공작의 결과”

일본인 한반도문제 전문가가 한국 근현대사 여론 형성에 북한 정권이 오랫동안 조직적으로 개입한 역사를 설명한 영상이 다시 주목 받고 있다. 

지한파이며 일본의 대표적인 한반도 전문가인 니시오카 쓰토무(西岡力) 일본 레이타쿠(麗沢)대학 객원교수가 ‘박정희 전 대통령 탄신 100주년 기념 포럼’에 발표자로 참석했다. 해당 포럼은 지난 2017년 11월 13일 세이브코리아 파운데이션(Save Korea Foundation) 주최로 미국 LA의 한 호텔에서 개최한 포럼이다.

니시오카 교수는 먼저 “(탄핵 정국 이후) 박근혜 대통령이 ‘린치에 가까운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을 언급하며  안타까움과 우려를 표시했다. 이어 그는 이러한 한국 내 과격한 움직임에 국민들이 동조하는 것을 언급했고 “이는 국민 여론에 대한 북한의 뿌리 깊은 공작의 결과”라고 설명했다. 



니시오카 교수는 “과거 김정일이 제 6공화국(1987년 성립된 현행 정부 체제) 성립을 보며 선거를 통한 대남적화가 가능하다 판단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러한 김정일의 교시를 따르는 당시 한국의 종북 세력은 표현의 자유가 본격적을 보장되기 시작한 민주화된 사회에서 ‘민주주의 민족통일 전국연합’과 같은 단체, ‘해방전후사의 인식’과 같은 서적 등을 통해 전방위로 한국 국민들에게 종북 논리를 주입시키기 시작했다.

니시오카 교수는 “이러한 움직임으로 인해 한국 현대사를 친일매국노와 외세의 개입으로 인해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는 왜곡된 역사관이 퍼지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형성된 대표적인 화두가 바로 국내의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친일매국노라는 평가라고 니시오카 교수는 말했다. 한국 좌익 역사관의 주장 중 핵심이 박정희를 영웅으로 보느냐 친일파로 보느냐라는 것. 

니시오카 교수는 박정희에 대한 일본의 평가는 한국의 평가와 다르다고 지적했다. 일본에서의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반공 자유민주주의자, 개도국의 발전 모델을 만든 대통령, 일본의 많은 양보를 이끌어낸 한일 국교정상화를 이룬 영웅적 인물이라는 것이다.

니시오카 교수는 일제시대에 태어난 박정희 대통령의 일생을 설명하며 그가 일제로부터 배운 것을 한국을 위해 썼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박정희가 정말 친일파라면, 일본을 칭찬하거나 일본에 좋은 일을 했어야 했는데 박정희는 그렇지 않았다”며 친일파 의혹을 일축했다. 그는 일제시대때 익힌 지식, 일본 육사에서 배운 것을 모두 대한민국을 위해 쓴 사람이라는 것.

니시오카 교수는 “한국은 이러한 자학적 역사관을 극복할 필요가 있다”는 말로 발표를 마쳤다.  

이하 니시오카 교수의 발표 전문.



 니시오카 쓰토무, ‘박정희 전 대통령 탄신 100주년 기념 포럼’에서의 발표 녹취 전문 



[사회자] 일본에서 오신 니시오카 쓰토무 교수님, 이 분은 사실 상당히 친한파이십니다. 한국말도 상당히 유창하게 하시고, 또 한국에서 유학하신 경험도 있고, 한국에서 일한 경험도 있습니다. 현재는 동경 기독교 대학교 교수님이시고, 또 납북자, 일본인들이 북한에 납북된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요코타 메구미인가 하는, 네. 메구미. 유명한데, 납북자 송환 협회장으로 계십니다. 자 그럼 우리 니시오카 교수님,


[니시오카 쓰토무] 안녕하십니까. 저는 니시오카 쓰토무라고 합니다. 앉아서 이야기 하겠습니다. 이렇게 좋은 자리에 저를 초청해 주셔서 정말 대단히 감사합니다. 저는 1977년에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이죠,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처음으로 한국에 유학을 갔습니다. 계속해서 한국과 인연을 이어왔습니다. 그런 입장에서, 탄핵정변과 박정희, 제목은 좀 바뀌었습니다. 박정희가 탄핵정변이라 되어 버렸는데, 먼저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이 된 것에 대한 것을 얘기하고, 그 다음에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드리겠습니다. 


제가 요지를 준비했습니다. 일본에서는 박근혜 정부 붕괴와 문재인 정부 수립을 보고, 일한관계, 한일관계가 걱정스럽다, 그런 이야기들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저는 무엇보다, 한국에 반공자유민주주의체제가 약화되지 않겠나, 한미동맹이 무너지지 않겠나 하는 그런 걱정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한국의 사고에 대해서 국민정서법, 그러니까 정서에 따라서 사고 판단을 한다, 그런 평가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만, 그것은 표면적인 평가라고 저는 봅니다. 


왜 박근혜 대통령이, 법과 증거를 기초로 두지 않는, 일반적인 린치에 가까운 일을 당하고 있는가, 그 이유는 대다수의 한국 국민들이 그것을 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죄송스런 말씀이지만. 그러면 왜 그 여론을 만든 것이 그 여론을 누가 만든 것인가, 그 여론을 만든 정체가 뭔가, 그것을 알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북한의 공작이 있습니다. 


1987년, 친북좌파가 주도하는 데모에 의해서 대통령 직접선거제가 시행됐죠. 그게 지금의 제 6공화국이지만, 그걸 보고 김정일은 선거를 통한 남조선 혁명이 가능하다, 그렇게 판단하고, 새로운 대남공작 지침을 세웠어요. 거기에 기초를 두고, 1991년, 한국의 반정부 운동 단체가 총결집해서 전국연합이라는 단체를 만들었습니다. 민주주의 민족통일 전국연합입니다. 그들이 외세의 간섭을 배격해 참된 민주정부를 수립해서 자주적 민족통일을 완성한다, 이러한 목표를 세웠습니다. 북한의 목표 그대롭니다. 


자주란 단어가 들어있으면, 북한입니다. 북한의 중점입니다. 북한 쪽에서는 남한을 식민지로 봅니다. 그러니까 북한이 이해하는 혁명은 2단계입니다. 첫 번째 혁명은 식민지로 부터의 해방, 두 번째는 사회주의 혁명, 그래서 자주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으면 그건 반미입니다. 미국으로부터의 해방, 그래서 자주다.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외세의 간섭 배격해야 된다는 것이 미국입니다. 미국의 간섭을 보면, 참된 민주정부, 그게 반미여야 되는 겁니다. 반미여야지 참된 민주정부. 그리고 자주적 민족통일. 우리민족끼리죠. 그렇게 하겠다고 91년에 방침을 세웠습니다. 


그러고 나서 10년 후에, 2001년 9월에 충청북도에 군자산이라는 산이 있습니다. 군자산. 거기서 당권파들이 다 집합했습니다. 군자산에서 회의를 했어요. 그래가지고 방침을 세웠습니다. 혁명 방침이죠. 광범위한 조직 활동으로 민족민주정당을 건설하고, 10년 내로 좌쪽 민주정부와 연방제 조국을 건설한다. 광범위한 대중적 조직 활동으로 민족민주정당을 건설하고, 혁명정당이죠. 그리고 10년 이내에, 2001년부터 10년 이니까 조금 늦었죠, 그런 방향으로 자주적 민주정부, 지금 정부가 반미 정부입니다. 그러니까 정당이라는 것이 통합진보당이, 그걸로 만들었고, 결과적으로 지금 자주적 민주정부를 만들었습니다. 


그럼 남아있는 것이 연방제 통일조국을 건설한다, 이러한 방침을 2001년 9월에 전국 당권파들이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이른바 군자산의 약속입니다. 그대로 갔습니다. 그 전국연합이 해체되어서, 진보연대라는 조직을 만들었습니다. 그 진보연대가, 촛불시위의 주도세력이었습니다. 민노총과, 각지 지도계층이, 민노총도 참가하는 단체고. 그러니까 똑같은 거예요. 


근데 그런, 아주 위험한, 과격한 단체가 왜, 대다수의 한국 국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가. 그것에 대해서 생각해봐야될 문제입니다. 저는 그 비결이 역사관이라고 봅니다. 반한 자학 역사관. 한국을 부정하는 역사관. 아까 그게 문 박사님께서 설명해주셨습니다만, 한국 현대사를 부정하는 역사관이 지금 확산되고 있습니다. 


그 역사관에 대해서 서울대학교 이영훈 교수가 이렇게 썼습니다. 읽어보겠습니다. 과거 130년의 근현대사를 오욕의 역사로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보석을 닮은 아름다운 문화를 가진 이 씨 조선왕조가 강도인 일본의 침입을 받았다. 그것 이후는 민족의 반역자인 친일파들이 활개를 친 시대였다. 일본에서의 해방은 또 하나의 점령군인 미국이 들어온 사건이었다. 그러자 친일파는 친미사대주의로 그 모습을 바꾸었다. 민족의 분단도, 비극의 조선전쟁도, 이것들 반역자들의 탓이었다. 그 이후의 이승만 정권도, 또 박정희 정권도 그들이 지배한 반역의 역사이었다. 경제개발을 했다고 한들, 긴요한 마음을 잃어버렸다. 역사에 있어서 이렇게 정의는 떠났다. 기회주의가 기세를 얻은 불의의 역사였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영훈 교수가 경고하는 좌익사관입니다. 그럼 그 좌익 사관이 언제부터 한국사회에 발생했는가. 1970년대 말부터 80년대, 해방전후사의 인식 이라는 책을 아십니까? 해방전후사의 인식이라는 책이 1권부터 6권까지 나왔습니다. 다 합해서 백만 부가 나갔습니다.  80년대 학생운동 했던 사람들 거의 대부분 그 책을 읽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도 변호사가 되고 나서 그 책을 읽었고 감동받았다 이러는데, 그 책 1권에 권두 논문을 송건호 씨가 썼습니다. 아까 이영훈 교수가 지적한 역사관 그대로를 해방전후사의 인식에서 송건호 씨가 썼습니다. 8.15는 주어진 타율적 산물이었다고 하는 점에서, 우리민족의 운명이 강대국에 의해 얼마나 일방적으로 요리되어, 혹사되어, 모욕되어, 그러한 틈을 이용해서 친일파 사대주의자들이 권세를 얻어서 애국자를 짓밟고, 일신의 영달 때문에 분단의 영구화를 획책하고, 민족의 비극을 가중시켰는지를 규명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 책을 썼던 목적입니다. 


또 지금도 자족일 수 없는 민족은 반드시 사조직의 권세가 초래되어 민족윤리와 민족양식을 타락시켜, 민족의 내분을 격화시켜, 빈부의 격차를 확대시켜서 부패와 독재를, 민중은 고난의 깊음 속에 놓이게 된다. 민족의 참된 자주성. 여기서 자주라는 단어가 나와요. 자주라는 단어가 나오면 경계해야 됩니다(웃음). 민족의 참된 자주성을 공고히 하고 민족의 주체, 주체라는 단어가 나와요. 주체로서 역사에 참여하는 것이 필요하고, 정말로 이러한 요건 아래에서만 민주주의 여기서 자주가 민주주의라고 합니다. 반미가 민주주의, 그런 의미예요. 그게 1979년에 발간된 논문입니다. 


386 세대라는 사람들 있지 않습니까? 80년대 대학에서 학생운동 했다는 사람들은 지금 다 청와대에 들어가 있어요. 그 사람들의 역사관이 해방전후사의 인식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김정일의 정치 공작의 작품이었다. 이러한 것이 제 주장입니다. 그러니까 전 일본 사람의 입장에서, 외국 사람의 입장에서 한 국가가, 저는 70년대 한국에 왔으니까, 그때는 반공주의가 아주 강했습니다. 제가 반공 민주주의를 한국에서 배웠습니다.


그런데 한 국가가 무너지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 그게 역사관이 무너지면 국가가 무너진다, 하는 살아있는 실험을 보는 듯한 느낌입니다. 그런 면에서, 김정일의 정치공작을 가볍게 보면 안됩니다. 


그런데 그 남한 좌익의 핵심은 박정희 대통령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어떤 분이냐, 영웅으로 보느냐, 친일파로 보느냐. 근데 지금 혁명세력들은 박정희 대통령을 매국노, 친일파로 보고 있습니다. 이번에 탄핵사태 때 데모를 많이, 데모 현장에 저도 가봤는데, 거기서 부른 노래가 있어요. ‘이게 나라냐’ 라는 노래입니다. 윤민석이라는 유명한 주사파 가수가 만든 노래예요. 


가사를 보십시오. 노란색 부분은, 다카기 마사오, 박정희 대통령의 창씨개명 된 이름입니다. 박근혜가 박정희 영혼을 불러가지고, 굿을 해서, 그대로 소용이 없다, 그런 뜻인데, 최순실이 무당이다, 그것도 거짓말이지만, 여기 있는 내용 전부가 거짓말이지만, 그걸 민주화운동이라 해서 젊은 사람들이 줄곧 불렀어요. 2절 보십시오. 3절이네요, 조선일보도 용서하지 않겠다고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조선일보가, 어느 편이었습니까? 다 알겁니다. 그런데 조선일보가 이 노래를 정치적 내용이 없었다, 그렇게 썼어요. 사회부 기자가. 너무 몰라요, 윤민석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 보도하는 매체는 조갑제닷컴밖에 없었습니다. 


근데 그 윤민석씨의 머리에도 역시 자학사관이 있습니다. 자학사관을 갖고 있으니까 박정희 대통령이 영웅이 아니라 친일파이다. 그렇게 평가가 내려지는 겁니다. 


같이 윤민석 씨가 2003년 노무현 탄핵사태 때 만들었다는 노래 내용입니다. 역시 박정희가 나옵니다. 1절에 박정희라는 내용이 나오죠. 그러니까 일본놈의 충성스러운 앞잡이였다. 그런데 동상 걸린 손가락, 춥다는 이야기죠? 그러니까 만주에서 항일운동 했다는 사람은 동상이 걸리고, 그러니까 박정희는 친일파고 김일성이는 영웅이다, 이러한 노래입니다. 3절 보면 친일파가 친미가 됐다, 그렇게 되어있지 않습니까? 매국노, 그게 여의도에 있다. 그러니까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핵심입니다. 


그래서 제가 후반에 일본에서 있었을 때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평가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진짜 친일파라면, 일본에서 우리 편이다, 칭찬을 해야 되잖아요. 그래서 제가 일본 사람 입장에서 일본 국내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어떻게 평가 받고 있는가를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은 반공 자유민주주의자다, 우리의 쪽이 박정희 대통령 쪽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영웅이라는 쪽은 박정희 대통령이 공산주의와 싸웠기 때문에 영웅이다, 일본에 보수진영은 그렇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60년대 70년대에는 그런 면에선 박정희 대통령이 앞서 있었어요, 일본이 좀 별로였습니다. 그래서 일본 정부는 북한하고도 손을 잡으려는 양다리 외교를 했죠. 문세광 사건 때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려고 했던 배후에 조총련이 있었는데, 조총련에 인권이 있다고 해도, 일본경찰이 수사를 하지 않았었습니다. 그때 박정희 대통령 때의 반일은 일본이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면서도, 왜 반공사업을 하지 않느냐, 이런 반일이었습니다. 100% 이유가 있는 반일이었어요. 저는 찬성합니다. 일본사람이지만. 


그리고 두 번째 평가는 개발도상국으로서의 발전모델을 만들었다. 기러기 모델이라는 것을 이야기 했죠. 제가 대학원 시절 배웠던 스승이 와타나베 토시오 교수인데요, 와타나베 토시오 교수가 처음으로 박정희 대통령의 수출지향 공업화 전략이 성공했다, 그래서 아시아가, 일본,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폴, 전쟁국이 따라가고 있고, 그 이후에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가 따라가고 있고, 아시아는 기러기 모델로 경제발전 한다. 그랬더니 중국 공산당의 등소평이가, 80년대는 아직 한국과 교류할 수 없어서, 우리 와타나베 교수님을 북경에 초청해서 박정희 연구를 했어요. 


그리고 세 번째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한일 국교정상화를 했다. 한국 쪽 입장에서 보면 그때 일본 쪽 사죄가 모자란 것이라든지 배상 액수가 많지 않다던지 문제가 있지만 일본도 일본 나름 주장이 있습니다. 외교라는 것이 49:51로 타협해야 되는 거거든요. 근데 그때 일본의 외화 보유고가 18억불이었어요. 18억불이었습니다. 근데 5억불 경제협력을 했습니다, 한국에 대해서. 그래서 한꺼번에 내지 못해서 십 년 분할로 냈습니다. 그리고 나서 박정희 대통령은 국교 정상화 되기 전에는 화해적인 언행 많이 하셨어요. 외교니까. 끝나고 나서는 역사문제를 외교 테이블에 가져오지 않으셨습니다. 그것도 일본 쪽에선 평가 받을만한 일이예요. 근대 국가는, 전쟁 처리, 식민지 처리는 조약으로 하는 겁니다. 하면 내정불간섭입니다. 


그런데 일본 국내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부정하는 세력은 그걸 잘 알거든요. 아사히 신문, 그리고 이와나미 서점, 이와나미에서 세계(세카이)라는 공산잡지가 있어요. 그게 과거에는 아주 권위있는 잡지였습니다. 그게 세계라는 잡지에 야스에라는 편집장에 평양에 갔어요. 김일성을 만났습니다. 김일성이가, 야스에 편집장을 보고, 세계라는 잡지는 북한에 대해서, 조국에 대해서는 많이 써주고 있는데, 남쪽에도 애국자가 있다. 남쪽 애국자에 대해서도 좀 써주시오. 라고 했습니다. 김일성이가 소개해준 애국자가 김대중 씨 였습니다. 


그래서 세계라는 잡지가 박정희는 나쁜 사람이다, 독재자가 되고, 박정희와 싸우는 김대중은 영웅이다, 그런 논조로 썼죠. 그래서 일본 국내에선 박정희는 독재자고, 민주주의를 압박하고 있다. 그건 반공 사상이 없는 사람들의 평이예요. 그렇게 정리하면, 박정희는 일본 편이다, 일본을 위해서 뭘 해줬다, 이런 결말은 없습니다.


친일이라면, 한국이 독립된 후에도, 일본 간첩을 해야죠. 일본 이익을 위해서 이렇게 해줘야 친일이죠. 어디서 배웠다는 것은, 사람이 어느 나라에 충성심을 갖고 있는가하고 관계가 없습니다. 미국에서 공부하면 미국 앞잡이가 됩니까? 근데 박정희 대통령이 일제 시대때 공부를 했죠. 일본 육사, 육군 사관학교에서도 공부를 했습니다. 그 뿐이죠. 거기서 배웠던 군사지식을 대한민국을 위해서 썼으면 애국자죠. 


이승만 대통령도 같은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1954년에 이승만 대통령이 성명을 냈었습니다. 식민지 시대에 고관을 했던 사람이라도 건국 사업에 참가해서 공적을 올렸으면 그 사람은 벌써 친일파가 아니다. 식민지 시대에 친일파 활동을 하지 않았던 사람도 내심 일본 다시 오는 것을 기다리는 친일파. 그러니까 독립된 후에 가지고 있는 지식을 어느 나라에게 바쳤는가, 이런 평가를 해야 한다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북한의 평가는 이러한 것이 아닙니다. 성분이라고 해서, 아버지가 뭘 했나, 할아버지가 뭘 했나, 그런 평가를 합니다. 그것은 공산주의자들의 사상 방식입니다. 어디서 배웠나, 그게 아니예요. 그런 평가를 하면 안됩니다. 


그런 면에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서 아쉬웠던 점은, 아버지가 애국자다, 일본 교육을 받았는데 거기서 배웠던 걸 대한민국을 위해 바쳤다, 그게 애국이다. 이러한 말을 해버리면 그게 이승만 박사가 54년도에 성명을 냈다, 그걸 모르시냐. 이런 역사논쟁을 해야 했는데, 그걸 안했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것 아닙니까? 


마지막에 와서 알게되셔서 국정 교과서를 만들어야 되겠다, 역사관이 핵심이다, 하셨죠.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자마자 뭘 했습니까? 아직 교육부 장관 임명하기 전에, 국정 교과서 폐지를 했습니다. 그 사람들은 알아요. 역사 교육이 핵심이라는 것을. 


그러니까 자학사관하고 싸워야 됩니다. 그게 문 박사님도 친일이다 아니다 그런 논란에 휘말렸었습니다만, 그 친일이라는, 친일이라는 것은 일본의 편에 서서, 일본 간첩(웃음) 그런 사람이 어딨습니까? 오히려 일본 사람들은, 일본에 반공주의자들은, 한국의 애국자들을 존경합니다. 애국을 하지 않는 사람은 앞잡이로 욕은 하되 존경하지 않습니다. 그런 면에서 너무 역사관이 김정일의 공작에 침략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범주 안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평가 해야되고, 지금 돌아가는 것도 봐야된다는 것이 제 주장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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