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명예훼손 혐의, 류석춘 교수에 대한 기소는 학문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 류석춘 전 연세대 교수가 29일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서울서부지검 형사1부(부장 박현철)에 의해 불구속 기소됐다. 혐의는 류 전 교수가 지난해 9월 19일 연세대 사회학과 전공과목인 '발전사회학' 강의 중 50여명의 학생들에게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매춘에 종사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위안부가 된 것"이라고 발언했다는 게 주된 이유이다. 발언에 대한 정확한 팩트 체크를 위해 녹취록(질의응답 시간 중 여학생A 와의 토론) 중에서 “자발적으로 위안부가 된 것”과 관련된 부분을 보기로 하자.
녹취록에서는 류 전 교수가 매춘 진입 과정에 대해 “살기가 어려워서”라거나 “생활이 어려워서 그렇지 내가 원해서가 아니에요”라며 가난이 원인이라는 것을 재차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시종일관 과거와 현재를 연속선상에서 설명하고 있다. 여학생A가 “(지금은 그렇지만) 예전에 일제 치하에서 위안부로 일했던 모든 여성들이 다 그렇게 자발적으로 매춘여성으로서 직접 가서...”라고 재차 질문하자, 류 전 교수는 “지금 일하는 사람들은 자발적이에요? 자의반, 타의반이죠. 지금도 자의반 타의반이에요”라고 반문하며 답한다. 주지하다시피 일본은 1916년부터 2차 세계대전 종전 때까지 식민지 조선에 매춘 합법화 제도인 공창제(公娼制)를 이식·운영했다. 따라서 제국주의 일본은 본국과 조계지·식민지·점령지 등지에서 창기의 성 판매를 법적으로 허가하고, 작부 및 예기의 성 판매는 묵인하는 정책을 실시하였다. 이여성(李如星)이 조사한 ‘조선의 예기·창기 및 작부의 수’(‘내셔널리즘의 틈새에서’, 2012)에 의하면, 1910년 당시 조선총독부에 등록된 조선인 접객업부 수가 1762명(일본인 4942명)이었던 것이 1942년에는 총 1만4472명(일본인 7229명)으로 8배 이상 증가했다. 따라서 미등록 영업집을 포함하면 규모가 수 배에 달했을 터인데, ‘가난한’ 그녀들 중의 상당수가 전시를 맞아 돈을 벌기 위해 위안소가 있는 전장으로 일터를 옮겼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그리고 ‘취업사기’와 같은 불법이 횡행하였음을 당시 신문보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류 전 교수의 논리를 반박하려면 무엇보다 매춘의 원인이 ‘가난’이 아니었음을 입증해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 그간 발굴한 자료에 따르면 ‘부유한’ 출신의 조선 여성이 위안소에서 일한 경우는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는 1942년에 일본군이 장병들에게 지급한 콘돔의 수를 기준으로 산출한 조선인 위안부를 대략 3,500명으로 추산했는데, 이와 같은 매춘이라는 사회적 현상을 역사적 연속선상에서 보아야만 오늘날 성매매 종사 여성 수 약 27만 명(2013년 여성가족부 성매매 실태조사)의 실체를 분석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녹취록에서는 류 전 교수가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매춘에 종사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위안부가 된 것"이라고 발언했거나 암시한 부분이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특정한 바가 없으므로 명예훼손과 무관하다 하겠다. 또 다른 문제로는 수업 중 녹취를 들 수 있다. 강의 내용에 대해 어떤 혐의를 부여하기 위해 교실에서 녹취가 행해진다면 대학 뿐 아니라 각급 학교에서 선생님들의 입지는 존재하기 어려울 것이다. 특히 이번 사태와 같이 학문과 진리의 전당이라는 대학에서조차 그것도 ‘사회학과’ 수업시간에 녹취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에 우리는 경악을 금치 못한다. 자유로운 토론을 할 수 없는 대학은 지성의 장이 아닌 단지 생업학교에 불과하다. 우리는 지난 시기 역사의 토론 주제를 녹취를 통해 법정으로 가져간 데 대해 전체주의 국가의 망령인 비밀경찰 제도를 떠올린다. 류석춘 전 연세대 교수 사태는 반일과 친일의 문제를 넘어 ‘학문과 표현의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를 지켜낼 수 있는가 여부를 가늠하는 시험대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 땅의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하는 지식인과 시민들의 강고한 연대를 바란다. 2020.10.30. 반일동상진실규명공대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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