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 19일 청담동 술자리 당일 첼리스트가 용인에서 강남까지 44분 만에 이동했다는 경찰 포렌식 분석 결과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으로 확인됐다. 첼리스트 휴대폰에서 추출된 1200개 내비게이션 파일을 전수 분석한 결과, 일부 구간에서 시속 588km라는 불가능한 속도로 이동해야만 44분 도착이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KTX 최고 속도(시속 305km)의 거의 두 배에 달하는 속도다.
지난 28일 이미키 항소심 재판부에 제출된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경찰이 2022년 12월 1일 작성한 수사 보고서의 근거가 된 내비게이션 파일에는 조작 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됐다. 경찰은 이 파일을 근거로 첼리스트가 19시 13분 용인 집을 출발해 19시 57분 논현동 청호골프 연습장에 도착했다고 결론 내렸다. 하지만 실제 해당 경로로 이동하면 최소 2시간 17분이 소요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1200개 파일 전수 조사로 밝혀진 조작 흔적
지난해 9월 검찰 기소 이후 확보한 2만여 페이지 수사 기록 중 첼리스트 휴대폰에서 추출된 내비게이션 파일 1200개를 전수 분석한 결과가 이번에 공개됐다. 파일은 시간 순서대로 정리되지 않고 무작위로 배치돼 있었다. 시간 순으로 재정렬한 결과, 7월 19일 19시 13분부터 19시 57분까지 생성된 파일들이 확인됐다.
파일 분석 과정에서 여러 의문점이 드러났다. 추출된 내비게이션 오디오 파일 이름은 대부분 'Kimgisa'로 시작했다. 이는 2015년 카카오에 인수된 김기사 앱의 파일명으로 추정된다. 김기사는 카카오 인수 후 서비스가 종료됐다. 첼리스트는 2021년에야 운전면허를 취득했다. 2015년 이전 앱을 설치했을 가능성이 낮다는 의미다. 더 결정적인 것은 음성 파일은 김기사 앱 형식이지만, 화면 이미지 파일 5개는 모두 T맵으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두 개의 내비게이션을 동시에 켜고 가는 경우도 있지만, 이 경우 김기사 화면 파일도 함께 생성돼야 한다.
광주시청 경유, 통상 경로서 완전히 이탈
내비게이션 음성 파일에는 대부분 지명이 삭제돼 있었다. 1200개 파일 중 지명이 나오는 것은 단 두 곳, 경기도 광주시청과 여수대로IC뿐이었다. 19시 25분경 생성된 파일에서 "광주시청 방면"이라는 안내음이 확인됐다. 광주시청은 용인에서 강남 논현동으로 가는 통상 경로에서 크게 벗어난 곳이다.
카카오맵으로 최적 경로를 검색하면 광주시청을 거치지 않고 53분이 소요된다. 광주시청을 경유지로 추가하면 1시간 21분이 걸린다. 경찰 수사 결과대로라면 첼리스트는 최적 경로보다 더 먼 광주시청을 거쳐 오히려 9분이나 빨리 도착한 셈이다. 화면 이미지 파일 중 첫 번째 파일(19시 23분)은 "서울 성남 방향"으로 가라고 안내하는데, 이는 광주시청 반대 방향이다. 이후 어떻게든 광주시청을 지나야 19시 25분 음성 파일의 "광주시청" 안내음을 설명할 수 있다.
시속 588km,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이동
가장 결정적인 조작 증거는 구간별 이동 속도다. 내비게이션 파일에 기록된 시간과 화면 이미지 파일에 표시된 지점을 토대로 계산하면, 일부 구간에서 상식을 벗어난 속도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용인 집에서 장지동 갈림길까지 13.4km 구간은 10분 만에 통과해 시속 80.4km였다. 이 정도는 과속을 하면 가능할 수 있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장지동에서 광주시청까지 5.1km를 2분 만에 통과했다. 시속 153km다. 광주시청에서 여수대로IC까지 14.9km는 8분, 시속 111.8km다. 여수대로IC에서 내곡동까지 27.3km를 7분 만에 달렸다. 시속 234km로, 이는 KTX 평균 속도에 해당한다.
가장 충격적인 구간은 구룡터널 부근 두 곳이다. 내곡동에서 개포동 지점까지 6.1km를 1분 만에 통과했다. 시속 366km로, 우리나라가 자체 제작한 KTX의 최고 속도다. 더 놀라운 것은 개포동 지점에서 경부고속도로 양재IC까지 9.8km 구간이다. 이 구간 역시 1분 만에 통과했다. 시속 588km다. 이는 유턴 구간까지 포함된 시내 도로에서 나온 수치다.
법원도 재고에 들어가, 선고 12월 12일로 연기
지난 28일 이미키 항소심 재판부에 분석 보고서가 제출됐다. 이미키는 청담동 술자리가 자신의 카페에서 열렸다는 보도로 명예훼손을 당했다며 강진구 기자 등을 상대로 3억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1심에서 패소한 이미키가 항소했고, 이달 31일 선고 예정이었다.
재판부는 보고서 제출 다음 날인 29일 기일연기 명령을 내렸다. 선고일은 12월 12일로 미뤄졌다. 두 달 가까이 연기된 것이다. 재판부가 제출된 분석 보고서를 검토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재판부는 한동훈 민사소송 1심 판결을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그대로 인용하겠다는 심증을 내비친 바 있다.
한동훈 1심 재판부는 첼리스트의 증언과 경찰 포렌식 결과를 근거로 청담동 술자리 보도가 허위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번 분석으로 경찰 포렌식 결과의 신뢰성 자체가 무너졌다. 첼리스트 휴대폰에서 추출된 내비게이션 파일이 조작됐거나 외부에서 파일이 심어졌을 가능성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첼리스트 측 변호인 이제일 변호사는 방송 직전 "첼리스트가 내비게이션 파일을 조작하거나 압수 직전 휴대폰에 외부 파일을 심은 적이 없다"며 "허위 사실을 유포하는 경우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는 경고 문자를 보냈다. 강진구 기자는 이에 대해 누가 파일을 심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첼리스트 휴대폰에 오염된 디지털 파일이 들어간 것은 명백하다고 반박했다. 썸네일을 지울 생각도 없다고 밝혔다.
뉴탐사는 31일 오전 9시 40분 국회 소통관에서 김문수 의원 주최로 디지털 증거 조작 관련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내일 방송에서는 압수수색 직전 첼리스트 휴대폰에 외부에서 파일을 심은 흔적에 대한 추가 보도가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