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빡 잊고 그냥 넘어갈 뻔했다. 신동엽의 인터뷰를. 헤럴드경제의 서병기 대중문화 전문기자가 진행한 인터뷰에는 평범한 국민들의 답답한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줄 청량한 답변내용이 담겨있다. 바로 이거. “최근 강남 청담동에서 대학로 근처로 이사했다.”
평이한 질문과 무난한 응답이 오고간 밋밋한 인터뷰였다. 말미에 이르러 아주 강력한 임팩트를 발휘했다. 아이를 또 가질 계획이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신동엽은 둘을 더 낳을 작정이라고 답했다. 그리고 이왕이면 활기찬 분위기의 가정을 꾸리고 싶다면서 얼마 전 강북으로 보금자리를 옮겼음을 밝힌 것이다. 신동엽 본인이 강북문화에 대한 향수를 아직 갖고 있다며.
칭찬할 일이 참으로 드문 세상이다. 대한민국서 출세깨나 했다는 부류에 관해서는 더더욱 그렇다. 우리국민이 본디 칭찬에 인색한 편은 아니었다. 허나 나라 돌아가는 꼬락서니를 보시라. 겨도 아닌 똥 묻은 개가 피똥 묻은 개들을 욕하는 형국이다. 칭찬할 일은 드물고 욕할 거리만 널렸으니 애꿎은 국민들의 인성마저 덩달아 피폐해진다. 이런 아비규환 한가운데서 신동엽은 정말 어려운 결단을 내리고, 그걸 곧장 실천에 옮겼다. 강남대탈출을.
강남중의 강남으로 손꼽히는 청담동 거주는 현재의 한국사회에서 제일가는 특권 중의 하나다. 서울대 학벌과 거의 동급이다. 서울대와 강남은 동일한 몸통에서 돋아난 두 개의 머리인지 모른다. 강남에 살아야 서울대 들어가기가 수월하고, 서울대 간판을 발판으로 돈을 많이 벌어야만 강남에 주택을 소유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신동엽의 강남탈출은 서울대학교 졸업생이 대학졸업장을 북북 찢어버리고 지금부터 고졸로 살겠다고 선포한 것과 마찬가지다.
강남문제의 근원은 천문학적 부동산가격에 있지 않다. 유달리 집값이 비싼 동네는 세계 어디에든 있게 마련이다. 사태의 본질은 정치와 경제는 물론이고 교육과 언론, 심지어 예능과 체육까지 모든 부문의 파워엘리트들이 특정지역에 그들만의 폐쇄적 공동체를 이루고 떼를 지어 서식하는 현실이다. 미국이 비록 개판 5분 직전의 막장국가일지언정 조지 부시와 빌 게이츠와 노암 촘스키와 오프라 윈프리와 마이클 조던과 패리스 힐튼이 동네 이웃사촌으로 옹기종기 모여 살지는 않는다. 강남이 단지 부자동네의 위상에만 그쳤다면 강남을 축으로 나라 전체가 소용돌이치는 회오리구조는 형성되지 않았으리라.
목표를 작지만 명확히 설정할 필요가 있다. 강남을 고즈넉한 부자동네로 되돌려놓는 과제에 반강남구도의 무게중심을 두면 어떨까? 강남의 권력이 오로지 돈의 권력에 한정되게끔. 의회권력, 사법권력, 문화권력, 언론권력, 교육권력 등의 비금전적 권력들을 원래의 위치로 복귀시키자는 뜻이다. 한데 이게 말처럼 쉽지는 않다. 설상가상으로 정부정책은 어차피 잡히지도 않을 강남땅값을 억제하는 데 맞춰져 있다. 이젠 땅값 대신 사람을 잡자. 아주 정교하고 선별적으로. 강남아파트 부녀회 제재하는 따위의 소모적 작업을 지양하고, 강북 혹은 지방을 징검다리로 삼아 강남으로 이주한 유명인과 명망가들의 강남 엑소더스(Exodus)를 유도하자는 거다.
돈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금력과 나머지 권력을 분리하자는 제안은 언뜻 황당무계한 백일몽으로 비쳐질 수가 있다. 그러나 돈의 힘보다 센 게 대중의 힘이다. 대중의 힘에 가장 취약한 존재가 스타라 불리는 인사들이다. 강남에 100억 짜리 빌딩 올렸다고 좋아하던 고소영이 탈세의혹에서 비롯된 차가운 여론으로 결국 망가져버린 사례를 기억하자. 으리으리한 강남빌딩도 시중의 따가운 눈총에서 그녀를 보호하지 못했다.
돈은 빼앗지 못해도 명예를 포함한 다른 형태의 권력은 뺐을 수 있다. 강북과 지방의 서민들한테 서민이미지를 팔아 출세한 다음, 강남으로 내뺀 연예계와 문화계 족속들부터 시범적으로 응징하자. 선거에서 후보의 자질을 판단할 때도 소속정당과 공약에 현혹되지 말고, 실제 거주지에 유의하라. 강남에 집이 있는 후보자들은 모조리 낙선시키는 거다. 또한 강남거리를 배경으로 촬영된 연속극들은 시청거부운동의 대상으로 선정하고. 명성과 권위의 후광을 박탈당한 강남은 미국의 비버리힐즈 같은 단순한 부자동네 지위로 강등될 것이다. 비버리힐즈의 집값이 아무리 높아도 거기 주민들이 미국사회의 흐름을 좌지우지 못하는 이유는 그곳이 엘도라도 이상의 의미는 지니지 못하는 데에 연유한다.
기업인과 사업가가 되겠다는 사람들이 강남에 가는 것을 말릴 수는 없다. 아니, 말려서도 안 된다. 하지만 공무원을, 판검사를, 언론인을, 문화예술인을, 인기연예인을 지망하는 인간들조차 강남을 향해 몰려가는 그릇된 법칙만큼은 반드시 깨뜨려야 옳다. 신동엽의 경우에서 입증됐듯이 개그맨이, 특히 유능한 연예MC에 더하여 빵빵한 연예기획사 대표까지 겸한 인물이 분위기 살아있는 동네에 사는 건 당연한 노릇이다. 코미디는 가난하고 광범위한 서민계급에 기대어 꽃피는 장르다. 한국에선 돈 좀 만지는 희극인들은 죄다 강남에 산다. 서민대중의 민심과 괴리된 익살과 해학이 건전한 비판의식을 상실하고 영양가 없는 말장난에 머무는 현상은 필연적 귀결이다.
신동엽을 겨냥한 여러 악평에도 불구하고 국민원로는 그를 진심으로 존경한다. 그는 자기가 몸담은 분야의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 자연인으로서의 개인적 기득권을 과감히 포기했다. 생각해보시라. 고가의 외제차 타고 온 VIP 손님들만 득시글거리는 압구정동 고급카페에서 값비싼 프랑스 와인 홀짝이는 코미디언이 변두리 허름한 선술집에서 돼지갈비 안주로 소주잔 기울이는 민중의 정서와 감수성을 어떻게 이해하겠는가? 인기 유지하려면 인터넷 뒤져 네티즌들 아이디어나 베낄 수밖에.
강남 사는 정치인이 정치를 말아먹고, 강남 사는 공무원이 관료조직을 말아먹고, 강남 사는 선수와 감독이 스포츠를 말아먹고, 강남 사는 영화기획자가 충무로를 말아먹는다. 한국의 정치와 공직과 스포츠와 영화는 그들이 강남에서 살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경제적 도구에 불과한 탓이다. 강남에서의 생활이 다양한 소재발굴을 가로막고, 소박하고 재기발랄한 강북문화가 재충전에 도움을 준다고 결정하자마자 주저 없이 강북으로 이사한 신동엽이야말로 장인정신에 불타는 진정한 프로라 하겠다.
강남입성에 성공한 유수의 강북인들에게 묻는 바이다. 당신에게 강남은 수단인가 목적인가? 과거에 당신을 키웠으며 오늘날 당신이 종사하고 있는 영역이 당신의 강남거주를 보장하는 도우미 역할에 지나지 않는다면, 당장 해당 분야를 은퇴한 후에 그동안 모아놓은 재산으로 재테크에 전념해라. 재테크를 질책하지는 않을 터이니. 당신을 스타로, 명사로, 부자로 성장시킨 직종을 더는 인질로 억류하지 말라는 충고다. 주소지와 전문성 사이에서 기꺼이 후자를 선택한 신동엽을 본받으라는 말씀이다. 이미 오래 전 강남으로 이사한 주제에 여전히 강북 또순이 흉내를 내는 김미화와 최진실부터 먼저 반성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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