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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행산업 건전발전 종합계획’ 공청회장은 ‘사감위 성토대회장’


카지노, 경마, 경륜, 경정 등 사행산업의 건전한 발전방향을 도모하는 ‘사행산업 건전발전 종합계획’의 공청회가 열렸으나 정책수립의 근거가 되는 연구자료의 신뢰성 문제가 제기되는 등 많은 문제점이 드러나 전면적인 재검토가 불가피하게 됐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이하 사감위)가 19일(화) 송파구 광고문화회관에서 개최한 ‘사행산업 건전발전 종합계획 공청회’는 토론이 시작되기도 전에 관련단체에서 온 방청객들이 “그 간 종합계획이 의견 수렴 없이 독단적으로 진행되었다”며 거세게 항의했다. 사감위는 당초 공청회를 개최하지 않고 워크숍으로 여론수렴절차를 갈음하려 했으나 관련단체들이 강하게 반발하자 뒤늦게 부랴부랴 공청회 일정을 잡아 빈축을 산 바 있다.

최영찬 사감위 제도개선 분과위원장의 발제로 시작된 토론회는 시종 사감위 종합계획의 문제점을 성토하는 자리가 됐다. 특히 두 번째 발표자인 김양례 체육과학연구원 박사는 종합계획 수립의 근거가 되었던 자료들이 도저히 신뢰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밝혀 파문을 일으켰다.

김 박사는 “사감위가 국내 사행산업 규모를 부풀리기 위해 통계를 자의적으로 조작하고 해석했다”며 그 사례로 OECD 국가의 사행산업 규모를 산출할 때 가장 규모가 큰 일본을 제외한 점을 예로 들었다. 또한 OECD 국가의 사행산업 매출액은 '03~'04년 자료를 사용하면서 국내 수치는 2007년 기준으로 작성해 비교하는 등 자료와 추정방법이 모순과 오류투성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사감위는 사행산업의 총량을 설정하는 기준으로 순매출액 기준을 사용했는데, 이는 순매출액 기준을 사용할 경우 고객 환급률이 낮은 우리나라의 사행산업 규모가 외국에 비해 부풀려지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김 박사는 이 밖에도 국내에 없다는 이유로 OECD국가에서 시행하는 게이밍머신의 매출액을 누락시키면서 일본과 한국에만 존재하는 경륜과 경정은 포함하는 등 일관성 없는 기준을 적용해 연구결과가 심각하게 왜곡되었다고 주장했다. 김 박사는 발표의 끝머리에 “정책을 수립할 때는 수립의 근거가 되는 자료의 출처를 명확하게 밝혀야 하는 법인데 사감위는 종합계획이 진행되는 동안 단 한 번도 데이터를 공개한 적이 없다”며 정책수립의 기초 자료를 공개하지 않은 사감위의 밀실행정을 비판했다.

김종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도 “종합계획의 가장 큰 문제는 근거자료의 신뢰성이 없다는 것”이라며 사감위가 사행성의 기준으로 삼은 ‘도박유병률’의 개념이 명확하지 않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외국에서는 도박중독률을 산정할 때 문제성 도박자의 비율을 기준으로 삼는데 사감위는 중위험도박자까지 포함시켜 수치를 9.6%로 끌어올렸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이런 왜곡된 수치로는 국민들의 동의를 얻기 힘들다”며 사행산업 관련 조사연구를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다시 해줄 것을 요청했다.

도박유병률 조작의혹에 대해 결정적인 쐐기를 박은 사람은 도박중독의 전문가인 임상심리학자 김한우 씨였다. 김 씨는 도박유병률 9.6%는 명백한 오류이며 정확한 수치는 2.3%라고 밝혔다. 그는 사감위의 연구용역을 수행한 문화관광정책연구원은 도박중독 분야와 무관한 문광부 산하의 기관이며 연구에 참여한 인력들도 도박중독전문가들이 아니라고 말했다. 또한 문화관광정책연구원에서 사용한 CPGI라는 측정도구는 신뢰할 수 없기 때문에 국가정책 수립의 근거로 사용해서는 안 되는 데도 불구하고 버젓이 사용되었다며 더 우수한 측정방법을 포기하고 CPGI를 선택한 이유를 설명하라고 요구했다. 김 씨는 마지막으로 사감위가 반복된 요청에도 자료 공개를 극구 거부하고 있다며 문화관광정책연구원의 도박중독 실태조사 연구, 퍼플 인사이트의 종합계획 수립 연구, 기타 사감위가 발주한 모든 연구 용역 결과에 대한 완전 공개를 촉구했다. 그는 자료의 공개검증이 없이는 종합계획이 정당성을 획득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 날 공청회에서는 사감위 조직의 중립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 동안 사행산업 규제정책을 지지해온 ‘도박산업규제 및 개선을 위한 전국네트워크’의 이진오 집행위원장은 발언의 서두에서 “종합계획 발표를 앞두고 문광부가 사무처 직원들을 대거 보직변경 시켜버렸다”며 분개했다. 그는 사감위가 국무총리 산하기구로서 중립적인 입장에서 정책을 추진해야 하는데 문광부 직원들이 좌지우지하고 있어 사감위 정책이 신뢰성을 잃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김양례 박사뿐 아니라 자신도 자료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며 사감위가 겉으로는 시민단체의 주장에 동조하는 것 같지만 실질적으로는 사무처 직원들의 소속부처인 문광부를 위해 은밀하게 일하는 조직임을 밝혔다.

허신욱 복권위원회 사무처장도 “사감위를 국무총리실 산하에 둔 것은 각 부처의 이해관계에 휘둘리지 말고 공정하게 일을 추진하기 위해서인데 사무처 직원들은 문광부 직원들로 채워져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무총리실 직원 위주로 사감위 조직을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감위가 열악한 지방재정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무리하게 일을 추진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박동균 경기도 세정담당사무관은 “지가 상승으로 도로 1km를 닦는데 136억원이 든다”며 “향후 700km의 도로를 만들어야 하는데 이 재원을 어디서 조달할지 막막하다”고 지방재정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박 사무관은 종합계획에는 지방재정 감소폭에 대한 대안 제시가 전혀 없다면서 확실한 세원을 발굴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중요한 지방세원을 파괴하는 것은 신중하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박인호 부산경제살리기시민연대 상임의장은 더욱 강경한 어조로 “사감위 종합계획은 지방을 죽이는 일”이라며 63개 부산시민단체를 대표하여 사감위 종합계획을 절대 수용할 수 없음을 밝히고 나아가 사감위 조직의 폐지까지 주장했다.

김종국 마사회 사업전략팀장은 사행산업 건전발전 종합계획이 ‘한국판 금주법’이라고 주장해 눈길을 모았다. 그는 1920년대 청교도 등을 중심으로 금주운동이 일어나 금주법이 제정되었으나 청교도들의 이상과는 달리 미국전역이 술을 밀조·밀수·밀매하는 갱들의 천국이 되었다며 사감위의 비현실적인 규제정책이 예상 밖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음을 경고했다. 실제로 사행산업 전문가들은 합법산업에 대한 과잉규제가 결국 불법도박의 급속한 팽창을 불러올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토론자들은 사행산업 건전발전 종합계획이 산업에 대한 규제안만 잔뜩 들어있을 뿐 정작 중요한 중독자 구제와 불법도박에 대한 대처는 미흡하다는 지적을 했다. 전영민 을지대 중독재활복지학과 교수는 “종합계획에는 중독자와 가족들의 구제방안이 빠져 있다”며 정부가 주도적으로 중독자 재활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주마다 40개가 넘는 상담센터가 있는 미국과 전국에 상담센터가 5군데 밖에 없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비교하며 중독자 구제보다 규제에 총력을 기울이는 종합계획은 정책의 초점이 잘못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이동기 국민대 법학과 교수는 “현행 사감위법은 불법도박에 대한 규제 및 단속 근거가 미약하다”며 사감위법 자체가 불법도박 보다는 합법산업 규제에 초점이 맞춰져 종합계획이 불법도박 보다는 합법산업을 집중적으로 규제하고 축소하는 쪽으로 잘못 추진되었다고 밝혔다. 그는 사행산업 종합계획과 관련된 모든 논란의 출발점은 법적·제도적 모순에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사감위법 개정을 통해 불법도박 단속의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5시간이 넘게 계속된 공청회를 마치고 김성진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 위원장은 “오늘 공청회를 통해 종합계획의 많은 문제점이 드러난 만큼 졸속으로 통과시키지 않고 충분한 재검토를 거치겠다”고 약속했다.

당초 사행산업 건전발전 종합계획의 발표일자는 9월 2일(화)로 잡혀 있었으나 공청회 결과 종합계획안이 연구 단계부터 자료가 왜곡되는 등 총체적으로 부실한 것으로 나타나 종합계획의 전면적인 수정이 불가피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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