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7일 오전8시30분 현지 지도 차 여행 중 열차에서 사망하였다. 그가 사망한 지 이틀 만에 조선중앙통신이 보도 한 내용이다. 김정일의 죽음은 김(金)씨 왕조의 종말을 예고하며 남북한 관계의 변화를 기대케 한다.
김의 급사(急死)는 김씨 왕조가 63년만에 숨을 거두었음을 의미한다. 북한을 굶주림의 땅, 동토의 땅, 피바다의 땅, 거짓말의 땅, 남한 도발의 땅, 등으로 만든 독재자가 사라졌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김일성이 1948년 소련군 소령 계급장을 달로 요세프 스탈린의 괴뢰로 평양에 들어와 세워졌다. 그는 2년만에 6.25 기습남침을 자행하여 수백만명의 동족을 살상하였다. 그 후 그는 수많은 정적들을 처형하면서 1인 독재체제와 신격체제를 굳혀갔다.
그러나 김일성은 82세의 나이로 1994년 급사하였다. 그의 큰 아들 김정일이 대를 이어 권력을 부담없이 이어받았다. 김일성은 정일을 후계로 삼기 위해 1972년부터 제도적으로나 정치적으로 20여년간 준비해갔다. 김일성은 1980년대 중반부터 실권을 정일에게 맡겼다. 내가 1985년 남북적십자회담 한국측 대표로 회담차 평양에 갔을 때 북한측 대표들은 김정일이 90% 이상 권력을 행사한다고 전해주었음을 상기하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17일 김정일의 급사는 김일성 사망 당시의 사정과는 크게 다르다. 후계 체제가 아직 정착되지 않은 상태에서 김정일이 급사하였기 때문이다. 김일성은 자신이 그의 아버지와 같이 적어도 80대 초반까지는 살 수 있으리라고 예상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는 아들의 후계체제를 서둘지 않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김정일이 후계체제를 굳게 다져놓지 못한 채 죽었다는데서 김씨 왕조는 끝났다고 보아 무방하다. 김정일은 작년 9월 27세의 셋째 아들 김정은에게 인민군 대장 칭호를 주면서 후계자로 대내외에 띄우기 시작하였다. 이어 11월엔 김정일 다음 제2인자로 호칭되었다. 올 2월에는 김정은이 북한 최고 권력기구인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임명되었음이 확인되었다. 현지 지도에 김정일과 함께 나설 때는 김정일과 똑 같은 수달피 털모자를 썼다. 김정일의 후계임을 의도적으로 표출키위한 이미지 관리였다.
그러나 김정은은 후계자로 등장한 지 불과 1년여 만에 김정일이 급사함으로써 자신의 권력기반을 다질 기회를 갖지 못하였다. 그는 28세의 애숭이로 억세고 음흉한 권력암투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더욱 더 어려운 것은 북한 주민들이 김씨 왕조에 대한 불만과 분노로 가득차 있다는 점이다. 김정일 통치기간이던 1990년대 중반 북한에서는 수십만에서 수백만이 굶어 죽었고 지금도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다. 그밖에도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 세습제에 대한 반발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김정은의 이복 형으로서 중국 남부지역에 묵고있는 김정남도 동생의 “3대세습은 사회주의에 안 어울린다.”고 털어놓은바 있다.
앞으로 김씨 왕조 종언과 함께 북한의 권력은 어디로 갈 것인가 궁금치 않을 수 없다. 다섯 가지 시나리오(Scenario)를 가정해 볼 수 있다.
첫째, 김정은이 고모부인 장성택 로동당 행정부장 겸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을 비롯한 김정일 충성파에 엎혀 승계되는 것이다. 김정은이 권력 서열 2인자로 자리매김 되어왔다는데서 제2인자로서의 형식적 승계의 길을 밟는 것이다. 그러나 실권은 장성택을 비롯한 로동당*국가보위부*군부 등이 실권을 장악하면서 과도기 체제로 간다.
둘째, 집단지도체제로 가는 것이다. 김정은은 너무 어리다는데서 기존 권력 실세들의 지배를 받지않을 수 없다. 결국 김정은을 둘러싼 기존 권력실세들이 집단적으로 관리하는 집단지도체제가 그것이다. 소련의 요세프 스탈린이 급사한 뒤 집단지도체제로 몇 년 지속되었던 유형이 될 수 있다.
셋째, 군부가 쿠테타 형식으로 권력을 장악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군부가 로동당의 절대적 지배하에 길들여졌다는데서 권력 장악으로 나서기는 어렵다.
넷째, 북한 주민들의 반란에 의한 체제전복과 새로운 자유정부 수립을 상정할 수 있다. 1989년 루마니아 시민들의 폭동에 의한 니콜라이 차우셰스크 축출과 자유시민 정부 수립을 연상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 주민들은 지난 63년 동안 너무 짓눌려 살았다는데서 반란을 일으킬만한 체력을 키우지 못하였다. 더욱이 중국이 주민폭동으로 인한 공산체제 전복을 반대한다는 데서 루마니아식 변화는 상당 기간 바랄 수 없다.
다섯째, 과도기적 집단지도체제를 몇 년 거치면서 그들 중 하나가 다시 1인 독재자로 권력을 검어 쥐는 형태를 떠올릴 수 있다. 소련에서 스탈린 사망 후 레오니드 브레즈네프가 집단지도체제를 거쳐 1인 독재자로 등장한 사례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누가 집권하던 김일성에 이어 김정일로 이어져 온 폐쇄 정책은 오래 지속될 수 없다. 중국식 개방으로 서서히 갈 수 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북한의 대남 도발도 줄어들고 교류협력의 폭도 넓어질 수 있다. 어쨌던 김정일의 급사를 슬퍼할 사람은 없다. 북한 주민 2300만은 물론 그렇고 평화를 염원하는 5000만 남한 주민들도 그렇다. 다만 슬퍼할 사람은 김정일을 어버이 수령으로 받드는 북한 권력층과 남한 내 깊이 박혀있는 종북좌익 분자들 뿐이다.
정용석 뉴스파인더 논설 고문<단국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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