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 : 8 사망유희 토론회에서의 진중권과 나의 승리 예상 지지율이었다. 일반적인 권투나 축구 경기에서 실력차가 큰 시합의 예상률도 이 정도로 크게 벌어지지는 않는다. 토론 현장에서 바로 이 예상 지지율이 현재 온라인의 여론조작의 현실이라고 받아들였다. 토론이 끝난 이후에는 55 : 45로 역전되었고, 2차 토론회에서는 오히려 황장수 소장이 77:22로 진중권을 예상에서 앞섰다. 단 한번의 토론으로 온라인에서의 기대 여론이 180도 뒤집힌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런 경우를 이변이라 말한다. 그러나 지난 13년 간 진중권과 각종 토론에서 부딪혀본 경험, 토론 전에 이미 NLL의 진실을 파악한 나의 입장에선 전혀 이변이 아니었다. 미디어워치에선 사망유희 토론에서 내가 어떻게 준비했고, 어떻게 진중권의 방해를 넘어 NLL의 최소한의 진실을 알렸는지 수기 형식으로 정리해 본다.
사망유희 토론회는 시작부터 난관이었다. 민사소송을 취하하는 조건으로 10회의 토론을 제안했지만, 진중권 개인이 각종 다양한 10회 토론을 모두 소화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무리였다. 그래서 일단 한국자유연합의 김성욱 대표와 NLL 관련 토론, 미디어워치 이문원 편집장과의 ‘디워와 한류’ 관련 토론, 미래경영연구소 황장수 소장과의 안철수 등 대선 후보 검증 등 세 차례의 토론기획을 먼저 잡았다.
그러나 토론 스케줄이 결정난 11월 3일(토) 김성욱 대표로부터 예정된 17일 토론에 시간을 맞출 수 없다는 연락이 왔다. 난감했다. 이 스케줄을 잡는 데까지 진중권 측과 수차례 서로 신경전을 벌인 터였다. 만약 이대로 스케줄을 맞추지 못한다면, 진중권 측에서 온갖 선동을 할 게 뻔한 일이었다.
김성욱 대표 스케줄 안 맞아, 진중권의 선동 막기 위해 직접 나서
일단 급한대로 또 다른 애국논객 올인코리아의 조영환 대표와 상의를 했다. 조영환 대표는 진중권과의 NLL 토론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일단 한숨을 돌린 뒤, 토론의 사회를 맡은 이상호 기자와 상의했다. 이상호 기자는 난감해했다. 첫 번째 토론부터 스케줄이 뒤틀리면 홍보에서 큰 차질이 온다는 것이었다. 그 순간 판단했다. “김성욱이 도망갔다”는 진중권의 사전 선동을 막으려면 내가 직접 나가는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일단 우파논객으로서 NLL과 같은 안보 사안은 이른바 전공필수 분야이다. 각종 우파단체와의 세미나 혹은 간담회에서 이 정도의 주요 안보 사안은 어깨 넘어 들은 것만으로도 토론하는 데는 큰 무리가 없었다. 또한 김성욱 대표를 지원하기 위해 이미 NLL에 대한 기본 사안은 확인해놓은 상태였다.
다만 진중권이 그 앞전에 간결과의 토론에서 던져놓은 논점 두 가지에 대해서는 대략적인 추측만 했을 뿐, 확실한 반박 근거를 잡아내지는 못한 상황이었다. 첫째, 1992년 발효된 남북기본합의서 불가침 부속합의서에서의 “해상경계선은 추후 협상한다”라는 부분이다. 진중권 등 친노종북 세력들은 이 조항을 근거로 노무현 정권의 NLL 협상을 정당화하고 있었다. 둘째, NLL을 기준으로 등거리, 등면적 공동어로수역을 설정, 북한이 이를 받아들인다면 NLL을 북한이 지키도록 한 것이라는 논리였다. 실제로 노대통령도 바로 이 논리로 NLL을 지켰다고 주장해왔다.
놀라운 것은 그토록 외교안보 사안에 대해 많은 토론을 해온 우파 진영에서 이 두 가지 논리의 반박 증거를 제대로 확보해놓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친노종북 세력에서는 이 두 가지 논리를 앞세워 여론을 장악해갔고, 그 선두주자가 진중권이었다.
그러나, 나는 충분히 반박 증거를 찾을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토록 북한이 거부하던 NLL을 처음으로 인정한 남북기본합의서에서 “추후 협상한다”와 같이 막연한 표현이 들어갔다면 이는 협상한다는 뜻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고 본 것이다. 이것은 남북기본합의서가 체결될 당시의 대화록을 검토하면 분명히 입증될 거라 자신했다.
노무현 정권, NLL 지켰다면서 NLL 폄훼발언 지속한 이유는 등면적 공동어로수역 꼼수
둘째, 노무현 정권에서 기존의 등거리가 아닌 등면적 공동어로수역을 제안했다면, 분명히 등면적에 무언가 꼼수가 있을 거라 추측할 수 있었다. 관련 자료를 보기도 전에, 연평도 이남의 황금어장을 내주고, 백령도 위쪽의 불필요한 바다를 가져와서 면적을 맞추는 수법일 게 뻔하다는 결론을 내려놓고 있었다. 왜냐하면 2007년 8월 18일 청와대 NLL 대책회의에서 이재정 당시 통일부장관 등이 남한 내부에서 NLL 무력화 여론투쟁을 계속한다고 주장했고, 이게 채택되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권이 국민에게 알린 대로, 공동어로수역이 NLL을 지키는 것이었다면, 대통령부터 장관, 수석 등이 그토록 지속적으로 NLL 폄훼발언을 할 이유가 없었다.
이렇게 핵심사안을 추려놓았기 때문에, 이때부터는 관련 자료만 찾아읽으면 되는 일이었다. 토론 당일까지 8일이나 남았기에 시간은 충분했다. 일단 온라인서점을 통해 정천구 외 'NLL 문제의 실체적 해부', 양태진의 'NLL 국경선인가 분계선인가?'를 주문했고, 이상철 장군의 'NLL 북방한계선의 기원 위기 사수'를 교보문고에 가서 직접 사왔다. 이상철 장군의 책은 NLL 관련 과거 남북협상의 대화록이 인용되어 있어, 이미 이 책 한권으로 NLL 관련 기본 설계는 다 끝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특히 남북기본합의서 체결 관련 통일부의 백서가 상세히 인용되어있었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의 진실을 바로 파악할 수 있었다. “추후 협상한다”는 내용은 북한 측의 “남북군사공동위원회에서 협상한다”는 주장을 뿌리치고, 사실 상 남북기본합의서가 제대로 지켜질 때까지 NLL 협상은 없다고 합의한 내용이라는 게 입증되었다. 진중권 등 친노종북세력의 가장 중요한 선동 근거가 반박된 것이다. 실제로 진중권은 “노태우 정권이 NLL을 팔아먹었다”고 거짓선동하고 있었다. 그러나 노태우 정권은 물론 김영삼 정권 심지어 김대중 정권조차 북한과 NLL을 협상한 바 없었다. 바로 남북기본합의서에서 노태우 정권이 북한의 요구를 완전히 뿌리쳤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두 번째 쟁점인 공동어로수역에 관련된 내용은 NLL 관련 서적에서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국회도서관과 인터넷도서관을 통해, 각종 관련 논문을 검색했다. 그 와중에 북한의 수산업 관련 논문, 헌법 상 영토조항에 관련 논문들까지 찾아 읽으면서, 약 20여편 이상의 논문과 보고서를 읽게 되었다. 이렇게 NLL 관련 연관된 문제까지 조사해놓았기 때문에 토론 현장에서 진중권이 엉뚱한 질문을 해도 답할 수 있는 지적 기반을 확보해놓았다.
과거 13년 간 부딪혀본 진중권, 전문실력 없이 친노종북 매체 기사만 읽는 수준
친노종북 세력에서는 진중권을 논리의 최배달로 숭배하고 있었다. 이런 친노종북 세력의 선동은 우파에까지 영향을 미쳐, 제도권 우파 논객들은 의외로 진중권을 높이 평가하고 두려워하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특히 토론 도중 진중권이 상대를 놀리는 기술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가급적 진중권과의 충돌을 피하려 한다.
그러나 1999년 강준만 교수 문제로 진중권과 처음 글을 주고 받은 이후, 2002년 부산대 월장을 중심으로 한 군가산점 논란, 2007년 디워 논란, 2008년 광우병 인터넷 거짓선동 논란, 2010년 한예종 부실사업 논란에 이은 법적 분쟁까지 겪으면서, 나는 진중권에 대해 확신을 갖고 있었다. 해당 분야 대해서 아무런 전문지식도 없고 기껏해야, 한겨레, 오마이뉴스 등 친노종북 매체의 기사나 읽고, 네이버 지식인 검색 등 얕은 지식만 취하고 있다는 것을.
실제로 나는 13년 간 그와 논쟁을 하면서 그로부터 배울 게 전혀 없다는 점을 반복적으로 확인했다. 최소한 군가산점이라던지 한예종 부실사업 같은 것은 전문성이라기 보다는 구체적인 팩트를 하나하나 따져들어가야할 취재와 팩트 취합 능력이 필요한 사안이었다. 그런 사안에서조차 진중권은 팩트의 경중과 진위를 가릴 능력조차 없었다.
또한 이미 2008년 광우병 거짓선동으로 인해 나는 진중권과 국회방송, 야후에서 토론을 해본 경험도 있었다. 국회방송과 같이 2:2 토론의 경우 진중권은 얕은 지식으로도 버틸 수 있었다. 명백한 거짓이지만, 토론의 시간과 순서 탓에 바로잡을 수 없었던 것이다. 반면 야후에서의 토론은 나와 둘이서 무려 2시간에 걸쳐 진행되었다. 본격적인 인터넷정책 관련 토론이었다. 당시 나는 포털피해자모임 대표를 거쳐, 한국인터넷미디어협회 정책위원장으로서 우파진영의 인터넷 정책 총책이라 할 수 있었다. 관련 토론만 100여차례 가까이 나갔을 정도였다. 이렇게 나의 전문 분야에서 토론을 할 때조차 진중권은 오직 언론기사만 읽어대는 수준이어서, 나는 그에게 강의식으로 하나하나 사실관계를 설명해줘야만 했다. 그 당시 미네르바 사건에 대해 여론이 압도적으로 반정부 성향으로 흘러서 그렇지, 그 당시의 야후토론도 이번 사망유희와 같이 비전문가 진중권을 대상으로 한 나의 일방적 강의였다.
진중권의 인신공격 무시하고, 오직 NLL의 진실만 전달하는데 주력하기로
이러한 과거 경험으로 볼 때, 나보다는 당연히 진중권 측의 부담이 클 수밖에 없을 거라 생각했다. 나는 과거 13년 간 늘 진중권을 압도했으나, 친노종북 언론과 포털의 여론선동으로 그 사실이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나 진중권 본인은 잘 알고 있을 것 아닌가. 그래서 나는 진중권이 강도 높은 인신공격을 퍼부을 것도 예상했다. 과거의 토론도 그랬지만, 엄밀히 진중권의 무기는 그거밖에 없었다. 실제로 진중권은 토론 초반 끊임없이 인신공격과 조롱으로 대응했다.
그러나 나는 처음부터 절대 진중권의 인신공격에 대응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지금껏 국민 전체는 물론 우파진영에서조차 알려지지 않은 NLL의 진실을 발견했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라도 이를 시청자들에 효과적으로 전달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문제가 되었던 공동어로수역은 노무현 정권 당시의 강무현 해수부장관과, 최근의 문정인 연세대 정외과 교수의 발언과, 각종 언론에서의 추론 지도로 내용을 상세히 파악할 수 있었다. 나의 예측대로 노무현 정권은 연평도 이남의 황금어장을 내주고, 백령도 이북의 불필요한 바다로 등면적을 맞추려 했던 것이다. 심지어 연평도와 강화도 사이에 평화수역이란 이름으로, 북한과 함께 대규모 해양 개발사업도 추진하고자 했다. 그야말로 서해 전체를 내주면서 등면적이란 술수로 마치 NLL을 지킨 것처럼 국민을 속이려 했던 것이다. 이런 중요한 진실을 알려야 하는데 진중권의 인신공격 하나하나에 대응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다만 토론 전에 트윗을 통해 진중권이 인신공격으로 나올 경우, 토론을 중단하고 물리력을 동원할 수도 있다는 점을 알려놓았다. 실제로 이런 경고가 효과를 봤다고 판단한다. 최소한 진중권이 황장수 소장과의 2차 토론처럼 막나가지는 못했다.
토론이 끝나고 많은 사람들이 진중권의 인신공격에 화가 나지 않았느냐고 물어봤다. 그러나 현장에선 화를 낼 겨를이 없었다. 어떻게 해서라도 내가 찾은 진실을 시청자들에게 알려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고, 정신없이 쏟아냈고, 1시간 정도 지나니 체력이 바닥났을 뿐이다.
밤마다 KBS의 ‘NLL 365일’ 다큐 틀어놓고, 영상 감각 잃지 않도록 노력
하나의 진실을 토론 당사자가 아닌 제3의 시청자들에게 전달하는 방법은 약간 다르다. 토론 상대자에겐 논리만 들이대면 되지만 제3의 시청자들에겐 호소를 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자신부터 진실을 알리기 위한 열정을 갖고 있어야 했다. 그 때문에 일주일 동안 KBS의 ‘NLL 365일’과 MBC의 ‘동해의 최북단 저도 어장’ 관련 다큐를 밤새 틀어놓고 반복적으로 보았다. 서해와 동해의 NLL의 현장을 영상으로 머릿속에 넣어두어야 실제 토론 현장에서 발언할 때도 진실성이 묻어나올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토론 당일날까지 NLL에 대한 논리적 감각 이외에 영상적 감각을 잊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심지어 이소룡 주연의 영화 '사망유희'도 다시 봤을 정도였다.
또한 저녁 시간에는 미디어워치와 빅뉴스 기자들과 거의 매일 맥주를 놓고 NLL 및 수산업, 외교안보 사안 관련 대화를 나눴다. 어차피 토론도 대화라 보면, 해당 주제로 다양한 이야기들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수산업과 같은 생소한 분야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를 들으면 다음날 논문 검색을 통해 확인하기도 했다.
토론일이 다가올수록, 그간 읽어놓은 자료들을 어떻게 정리할지가 난관이었다. 논문 발표회가 아니라, 순간적으로 대처해야 하는 일대일 토론이었기 때문에, 상대가 이야기할 것들을 미리 예측해야 문답식으로 정리를 해놓기로 했다.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은 2007년 11월 1일 NLL에 대해 ‘땅따먹기 할때 비슷한 싸움을 지금 하고 있는 것이지요’라고 발언한 바 있다. 과연 NLL은 어떠한 논리적 기준도 없이 땅따먹기용으로 그은 선인가?”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28가지의 문답식 보고서를 정리했다. 이 보고서는 토론 이후 빅뉴스와 뉴데일리에 그대로 보도했고, 티바 주체 NLL 토론회에서도 발제문으로 활용했다.
그러나 이 보고서는 A4 용지로 20장 가까이 되는 장문이어서 토론에서 즉각즉각 답변용으로 활용하기엔 무리였다. 그래서 보고서 중 주요 부분을 볼드체로 정리한 뒤, 그 부분만 발췌하여 8매짜리 또 다른 요약본 보고서도 준비했다. 실제로 토론회에서 내가 들고 이야기한 보고서는 요약본이었고, 진중권의 문제제기는 이 틀을 벗어나지 않았다.
언론은 토론의 승패만 관심 아직도 알려지지 않은 NLL의 진실
토론이 끝난 이후 언론은 승패에만 관심을 보였다. 진중권이 패배를 인정하다 보니 보도는 더욱 승패에만 휩쓸렸다. 이는 이상한 관점이었다. 내가 토론에서 승리했다면, 노무현 정권은 등면적 공동어로수역을 이용해 국민을 속여서 서해바다를 북한 측에 내주려했다는 주장이 맞다는 것이다. 이게 보통 문제란 말이가. 진중권이 토론의 패배를 인정했다면, 당장이라도 문재인을 비판하며 공동어로수역을 공개하라고 요구해야 했다. 그러나 이미 친노종북 정치세력에 깊숙이 줄서있는 그로선 불가능한 일이다. 역시 예상대로 진중권은 누가 봐도 추정지도인지 뻔히 알만한 지도를 핑계로 패배를 번복, 다시 거짓선동에 나섰다.
노무현 정부가 불필요하게 NLL 협상을 시작했고, 서해바다가 위험했다는 진실에 관심을 갖는 언론은 없었다. 그나마 티바 주최 토론회를 앞두고 대선 후보 3인에게 NLL에 대한 입장을 물어, 박근혜 후보 측으로부터 “남북기본합의서 불가침 조항과 비핵화 선언을 지키는 전제로 NLL을 협상하겠다”는 원칙적인 입장을 받아낸 것이 소득이었다. 역시 토론을 오직 승패의 관점에서만 보는 한국사회의 고질적 병폐가 드러났던 것이다.
토론 이후 문재인 측의 NLL 핵심 브레인 측근과 만나게 되었다. 그가 관심가졌던 것은 어째서 좌파 진영에서 NLL 전문가도 아닌 진중권이 토론 이슈를 주도해서 여론을 악화시켰냐는 것이었다. NLL 자체에 대해서는 그리 깊은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사망유희 이후 쏟아진 관련 기사 중, 당사자가 볼 때 가장 핵심 사안을 잘 정리한 것은 머니투데이 홍재의 기자의 ‘진중권vs변희재 '사망유희' 토론, 승부처 4곳은?’이었다. 토론의 승부처 4곳이 바로 NLL의 진실을 다룬 부분이기 때문이다.
이제 대선은 사실 상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의 양자 대결로 좁혀졌다. 이들 간에 아직까지 NLL의 진실에 대해 국민앞에 제대로 된 입장이 전달된 바 없다. 대선 후보들에게 보다 더 정확한 NLL의 진실을 알리라는 점에서 홍재의 기자의 기사의 일부를 인용하며 수기를 마칠까 한다.
1차 승부처는 UN군 사령부의 입장에 대해 이견을 보인 대목. 진 교수는 "UN군 사령부에서도 NLL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했으나 변 대표는 "1999년 UN군 사령부는 '북방 한계선은 실질적인 해상 분계선이며 지난 40여 년 간 쌍방이 인정하고 지켜온 엄연한 해상 경계선으로 협상 대상이 아니다'는 마지막 입장을 표명했다"고 맞섰다.
진 교수는 변 대표의 설명이 길어지자 "계속 강연을 할 것이냐"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고 급기야 "사회자"를 부르며 중재를 요구하기도 했다. 진 교수가 누리꾼 '간결'씨와 토론할 때 '간결'씨가 사회자를 찾던 상황과 흡사한 장면이었다
이에 변 대표가 "5분을 쓸 테니 진 교수도 5분을 쓰시라"고 몰아붙이자 진 교수는 어이없는 웃음을 지었다.
2차 승부처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시 NLL을 수호하려고 했는가에 대한 토론을 벌이다 이뤄졌다. 변 대표는 "노 전 대통령 정부가 공동어로수역을 설정하면서 등면적 어로수역을 설정해 서해바다를 완전히 북한에 내주려고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진 교수가 "NLL지키는 것은 대화 안하면 쉽다"며 "그러면 대화를 중단해야 하느냐?"고 묻자 변 대표는 "비핵화와 남북기본합의서 들이대면 된다"며 "(북한 측에서)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에 진 교수가 "NLL이랑 비핵화는 별개 사항 아니냐"고 반문하자 변 교수는 "남북기본합의서의 전제는 비핵화"라며 "비핵화 전제로 맺은 것이다. 쏜 순간에 그것은 다 무효가 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에 진 교수는 "오케이"라며 "다음으로 넘어가 보자. 굉장히 연구를 많이 해오셨다"고 인정했다. 변 대표는 "굉장히 많이 했다"며 " 이런 토론은 중요한 팩트들이 있기 때문에 말장난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고 쏘아붙였다.
3차 승부처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당시 이뤄진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토론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진 교수가 "공동어로수역을 설정하는 이유가 그들(북한)에게 NLL을 인정하게 하는 방식이다"고 주장하자 변 교수는 "남북 장성급 회담에서 공동어로수역을 논의하게 돼있고 그거와 별개로 군사 공동위에서 NLL에 대해 논의하기로 조항에 들어가 있다"고 반박했다.
이어 변 대표가 "왜 부정하십니까? 모르셨죠?"라고 되묻자 진 교수는 "네. 그건 몰랐습니다"라고 인정했다.
마지막 승부처는 정문헌 의원이 주장하는 비밀 협의의 존재 유무에 대한 토론을 벌이는 과정에서 나왔다.
변 대표는 "정문헌 의원이 대충 기억하는 정도가 아니라 복기를 하지 않았느냐"며 "등면적 공동어로수역과 평화바다라는 것 자체가 서해바다를 내주고 NLL 무력화 한다는 것인데 그게 정상회담에 들어가 있으니까 공개하자는 것"이라고 남북정상회담 문건 공개를 촉구했다.
이에 진 교수가 "예컨대 등거리든 등면적이든 기점이 어디입니까?"라며 그간 변 대표가 설명했던 내용에 대해 다시 묻자 변 대표는 어이없는 웃음을 지으며 "아까 다 설명하지 않았습니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그는 "NLL 기점으로 서해 최대 어장인 강화도 근방을 내주면 서해 바다가 다 날아간다"고 덧붙였다.
변 대표의 공세에 진 교수는 "특별히 반론이 없다"며 공을 넘겼고 이후 양측의 마지막 발언으로 토론은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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