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혹한이던 겨울이 끝나간다. 하지만 북한의 겨울은 이제 더 혹독해 질 것으로 보인다. 세계와 담을 쌓고 한층 더 강한 대치국면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독립신문 김승근 편집장] 북한이 오는 11일부로 한반도 정전협정을 백지화 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는 정전, 휴전 상태이던 한반도를 형식적으로나마 전쟁상태로 되돌리겠다는 의미다.
60여년 전 한국전쟁의 정전 협약서에 남북이 각각 사인함으로써 한국전쟁은 일시 중단됐다. 종전이 아닌 정전이다. 어떤 목적을 위해 서로의 교전을 중지한다는 의미다.
북한은 지금껏 정전상태임을 명확히 인식하며, 그런 자세로 임해왔고 장거리 미사일 발사나 핵 실험까지 하며 정전 이후를 생각해 왔다. 반면 우리는 어떤가. 우리는 이미 평화의 시대를 살고 있다고 착각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북한에 가서 김정일에게 국민들의 주적관이 바뀌었다며 환담했다고 하지 않는가. 예전에는 국민들에게 있어 주적 1위가 북한이었지만, 이젠 미국과 일본에 이어 3위라는 게 노무현 전 대통령이 김정일에게 말한 통일을 위한 노력이었다고.
우리는 평화에 너무 익숙해졌다. 미군철수를 외치거나 스스로 국방력을 약하게 만드는 일들을 하고 있는 것이 그 예다. 제주해군기지 건설 반대는 어떤가. 구럼비 바위가 중요하다고 나라를 지키는 해군기지를 못 짓게 하다니.
그러든 아니든 결국 우리가 잊고있던 현실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인민군 최고사령부 대변인이 “이번 전쟁연습이 본격적인 단계로 넘어가는 3월 11일 그 시각부터 형식적으로나마 유지해오던 조선정전협정의 효력을 완전히 전면 백지화해 버릴 것”이라고 발표한 것이다. 북한은 북한군의 판문점대표부 활동도 전면 중지하고 북미간 군사통신도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북한의 한반도 정전협정 백지화는 유엔에서 진행되고 있는 대북제재와 한미합동 군사훈련인 ‘키 리졸브’에 반발한 조치라고 한다.
북한을 정전 백지화까지 선언케 한 ‘키 리졸브’는 어떤 훈련인가. 유사시에 한반도 이외의 지역에서 미군 증원 전력을 수용, 대기, 전방이동 및 통합하는 것을 포함해 여러 국면에 숙달하도록 훈련하고, 한국군의 전시 지원, 상호 군수 지원, 동원, 후방지역 조종관 업무, 전투력 복원 절차 등을 익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렇지만 사실 ‘키 리졸브’는 1976년부터 매년 봄마다 실시해온 정기적인 훈련이다. 북한이 이토록 강하게 반대하는 게 새삼스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북한은 지금 키 리졸브가 자신들을 위협한다고 생각하는 게 아닐거다. 모르긴 몰라도 미국과 한국을 위협하기 위한 하나의 매개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보다는 자존심을 걸고 배짱 싸움을 하고 있다고 보는 게 맞다. 혼자서 러시안룰렛 게임을 하고 있는 것과 같다. 스스로 자멸할 지도 모르는 위험한 선택을 매번 강행하고 있다. 올해 북한은 권총안에 들어 있는 한발의 총알을 당기게 될 지도 모른다.
김정은이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이 러시안룰렛은 북한 혼자서 계속 방아쇠를 당기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내리는 북한에 대한 결정은 미국은 물론 유엔 등 세계와 공조한 채 진행되는 압박이라 위험성이 없지만 북한은 스스로 내리는 각각의 선택이 자멸할 수도 있는 자충수다. 매번 혼자 러시안룰렛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북한이 정전협정 백지화를 외치자마자 각종 검색어 포털 상위권이 정전협정으로 채워졌다. 처음으로 보인 반응들은 어리둥절한 것들이었다. ‘한반도가 언제 전시 상황이었어?’, ‘뭘 백지화 한다는 거야?’ 등이다.
과거 좌파정권 10년이 바꿔놨다는 주적관이, 결국 오늘날의 허술한 안보의식을 만들게 됐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어찌됐든 우리가 명백히 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한반도가 이제 곧 전시 상황이 된다는 거다. 북한은 과거 핵실험을 강행하기 전 NPT를 탈퇴하는 조치를 취했다.
자. 이제 북한이 정전상태 해지를 선언했다. 그것은 북한과 충돌할 일이 많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매우 길고 불안정했던 한반도의 평화가 이제 긴장국면으로 접어든다.
한반도에 대북리스크가 높아지면 국제신용평가사에서 한국의 신용등급을 강등할 가능성이 커진다. 그렇게 되면 해외의 직간접적 한국 투자가 줄어든다. 그리고 다시 이는 한국의 저성장과 경기침체를 가져올 수 있다.
북한의 정전 백지화 선언이 대한민국을 뒤흔들 의도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북한이 이렇게 호전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은 그들이 그만큼 절박하다는 증거일 테다.
미국과 유엔을 비롯한 세계의 북한 경제 제재는 연일 거세지고 있다. 미국에선 중국과 연결돼 있는 북한의 금융생명선을 마저 잘라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고 한다.
북한이 발버둥쳐서 말을 들어줄 미국이 아니다. 그들의 위협상대는 그저 우리가 될 뿐이다. 그 점을 모두가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북한이 자존심에 배짱 싸움을 벌이고 있지만, 착각이다. 혼자만의 싸움일 뿐이며 어리석고 위험한 싸움이다. 북한이 하루하루 자신의 운을 믿고 권총을 당기고 있지만 이대로 배짱 싸움을 계속한다면 언젠가 자신의 머리를 관통할 날이 올 것이란 걸 명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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