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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후칼럼] ‘대만은 왜 중국에 맞서는가’, 타이완의 과거, 현재, 미래가 모두 응축된 책

“대만은 중국의 일부가 아니며, 그렇기에 ‘하나의 중국’이라는 중공 측의 슬로건은 허구라는 역사적 논거를 확실하게 제시”

[박상후 · 문명개화TV 대표 (전 MBC 베이징특파원·국제부장)]

뤼슈렌 전 대만 부총통의 역저 ‘대만은 왜 중국에 맞서는가 : 뤼슈렌 전 대만 부총통이 진단하는 동아시아 위기와 전기’는 중국어판 원제인 兩岸恩 怨如何了?, 그리고 영어판 원제인 Taiwan and China : Whither to Go? 를 훨씬 넘어서 대만의 모든 것들을 일목요연하면서도 포괄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뤼슈렌 전 부총통은 여성으로서, 또 민진당 출신으로서는 최초로 10대, 11대 부총통을 지냈다. 일치(日治) 시기인 1944년에 태어난 뤼슈렌은 엄혹했던 국민당 계엄통치 시절인 1979년 이른바 ‘메이리다오(美麗島)’ 사건에 연루돼 12년형을 선고받고서 5년을 복역한 바 있다. 또한 11대 대선 유세를 치르던 중에는 당시 부총통으로서 천수이벤 당시 총통과 함께 괴한의 총격을 받기도 했다. 대만 현대사의 굴곡을 그야말로 몸소 경험한 것이다. 



대만 민주화, 여성운동, 나아가 대만독립 운동의 기수로 평가받는 뤼슈렌 전 부총통은 대만이 나아갈 길을 일찍이 제시해왔다. ‘9.6공식(九六共識)’과 ‘평화중립(和平中立)’이 바로 그것이다. ‘9.6공식’은 리덩후이 총통이 대만해협의 군사적 위기를 극복하고 대만 역사상 최초로 민선 총통이 된 해인 1996년에 당시 야당 정치인이었던 뤼 전 부총통이 제시했던 원칙이다. 대만인들이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 지도자를 선출했으니 대만은 이제 당당한 독립국가라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평화중립’은 뤼 전 부총통이 이끌었던 대만의 독립파 정치단체인 희락도연맹(喜樂島聯盟) 차원에서 2018년 국민투표에 붙이자고 제의되기도 했던 방안이다.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빠져있는 미국과 중공 사이에서 대만이 독립국가로서 중립을 지켜 안전을 보장하자는 합리적 아이디어로서, 비록 현실화되지는 않았지만 이는 여전히 대만 외교안보 정책의 중요 옵션 중 하나로 남아있다. 

뤼 전 부총통은 야권의 민주화 투사뿐만이 아니라 민진당의 대리주석과 타오위안(桃園)현 현장, 입법위원을 지냈다. 그리고 국민당 소속이지만 첫 대만 출신 총통인 리덩후이 총통 시절에는 국책고문를 맡기도 했다. 또한 희락도연맹의 2020년 총통 선거 후보로 추대되기도 하는 등 다양한 정치 스펙트럼을 섭렵해왔다. 그래서 뤼 전 부총통의 국가경영철학에는 인생의 경험과 대만의 역사를 관통하는 깊은 통찰력이 그대로 녹아있을 수 밖에 없다. 

실제 뤼 전 부총통은 퇴임 후에도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어떻게 하면 대만이 중공의 위협에서 탈피해 국가의 생존을 추구할지를 고민하면서 나아갈 방향을 끊임없이 제시하고 있다. 2005년 태평양의 민주국가들의 단합을 촉구하며 민주태평양연맹(Democratic Pacific Union, DPU)이란 NGO를 발족시킨 것도 그런 차원이다. 이는 차이잉원 총통이 추구하는 남방외교와도 그 맥락이 맞닿아 있다.

이 책에서 뤼 전 부총통은 대만은 중국의 일부가 아니며, 그렇기에 ‘하나의 중국’이라는 중공 측의 슬로건은 허구라는 역사적 논거를 확실하게 제시하고 있다. 중화인민공화국은 대만을 단 하루도 통치해본 적이 없다. 더구나 중공의 국부인 마오쩌둥은 1936년 일본제국주의로부터 조선과 대만이 독립하고자 한다면 이를 지지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물론 마오쩌둥이 이후에 대만을 무력으로 병탄하려 시도하기는 했지만 대만이 중공의 일부분이란 생각이 애초에는 없었다는 점을 뤼 전 부총통은 명확히 지적하고 있다.

한편, 뤼 전 부총통은 일찍이 네덜란드나 일본 등이 대만을 거쳐갈 때까지도 정작 중국의 여러 고지도나 문서에서는 대만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전혀 없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다. 청대에 이르러서야 대만은 최초로 중국에 복속되는데, 실제로 청의 옹정제는 대만이 이전부터 중국에 속하지 않았다는 점을 고백하기도 했다. 1894년 일청전쟁(갑오전쟁)에서 청이 패한 뒤에 청은 대만을 일본에 영구히 할양한다는 내용의 시모노세키 조약을 체결한다. 이 조약에 서명한 리홍장이 서태후에게 했던 보고내용도 주목할 만하다. 한마디로 대만은 황무지라 버려도 아깝지 않은 곳이라는 것이다. 즉 대만과 관련해, 그 존재에 대한 인식은 물론이거니와 반드시 수호해야 하는 중국의 영토라는 인식이 중공은 물론, 그 이전의 중국에도 전혀 없었다.





청나라 중기에 이주한 본성인과 국공내전 이후 국부천대(國府遷臺)에 따라 옮겨온 이성인, 그리고 선사시대부터 섬에 거주해온 오스트로네시안 혈통의 여러 원주민들이 혼재하는 대만은 단순하게 정의를 내리기 힘든 문화적 역사적 다양성을 가지고 있다. 태평양의 보석같은 아름다운 섬이란 의미의 포루투갈어 Formosa, 쑨원과 장제스 국민당의 색채가 짙은 中華民國, 그리고 정치적 의미가 없는 지명 臺灣, 중공이 국제사회에 강요하는 中華臺北, Chinese Taibei 등 대만을 지칭하는 여러 표현들은 이렇게 대만을 둘러싼 복잡하면서도 상충하는 인식을 대변하고 있다.  

뤼 전 부총통의 저서에는 타이완의 과거, 현재, 미래가 모두 응축돼 있다.  인류문화학자에 버금가는 다양한 원주민들에 대한 고찰부터 네덜란드, 스페인 시기부터 시작돼 정성공의 대만 점령, 청나라의 200년 통치까지 근대사 이전의 발자취까지 모두 섭렵하고 있다. 필자는 이 책을 리뷰하면서 근래 대만인들을 각성시키고 있는 두 편의 대작 드라마를 떠올렸다. 하나는 2020년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방영된 대만 최초의 정치드라마 ‘국제교패사(國際橋牌社, Island Nation)’다. 계엄하의 민주화 역정, 중공의 위협과 국제사회에서의 고립과정에서 대만의 지도자와 국민들이 어떻게 자랑스러운 대만을 만들어 냈는지를 심도있게 그린 작품이다. 또 하나는 2021년 8월 14일부터 대만PTS방송에서 12부작으로 방영하기 시작한 역사 대하드라마 ‘스카뤄(斯卡羅, SEQALU Formosa 1867)’다. 대만 원주민 파이완족은 미국과 최초로 국제조약을 맺은 주체로, 당시 청나라는 대만의 절반에 대해서는 통치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심도있게 고증한 대작이다. 

한국에서 대만은 의외로 잘 알려지지 않은 나라다. 대만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은 극히 피상적이다. 뤼슈렌 전 부총통의 책이 대만의 역사, 문화, 정치와 관련된 백과사전식 지식을 전해줌은 물론, 아시아, 나아가 국제정치에 대한 시각도 획기적으로 넓혀줄 것으로 기대해 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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