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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집칼럼] ‘마법의 무기, 뉴질랜드에 침투한 중국 공산당’을 추천하며

남태평양에까지 뻗어있는 시진핑 중국 공산당의 세계 패권 공작 문제 ... 한국은 뉴질랜드 안팎의 안보 위기를 한국 안팎의 안보 위기처럼 받아들여야

[최대집 · 자유보수당 창당추진위원장(제40대 대한의사협회 회장)]

중국 공산당의 호주 침투 전복 공작 문제를 다룬 내용으로 2021년 상반기에 한국에도 번역 발간된 책 ‘중국의 조용한 침공(Silent Invasion)’은 비슷한 시기 공영방송인 KBS가 그 내용을 대대적으로 조명했을 정도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저자인 클라이브 해밀턴(Clive Hamilton) 교수는 자신의 책에 지적으로 큰 영향을 준 이들 중에 한 사람으로 바로 옆 나라인 뉴질랜드에서 자기보다 앞서 중국 공산당 침투 문제를 고발한 학자인 앤-마리 브래디(Anne-Marie Sharon Brady) 교수를 꼽았다.

“사실 베이징은 뉴질랜드와 더불어 호주를 서구 진영의 ‘약한 고리’ 즉, 미국의 국제적 영향력을 무너뜨리는 전략을 시험하고 시진핑의 중국몽을 실현하는 데 도움이 될 이상적인 장소로 본다. ... 앤-마리 브래디가 중국이 뉴질랜드에 펼친 통일전선 공작을 상세히 설명했는데, 어찌 보면 호주에서 펼친 활동보다 더 진보적이고 저항도 덜 받았다.” (‘중국의 조용한 침공’ 57쪽, 61쪽)


사실상 ‘중국의 조용한 침공’의 프리퀄이라고 할만한 논문을 2017년도에 발표하며 이 분야 연구의 선구자로 떠오른 학자인 앤-마리 브래디 교수는 현재 뉴질랜드 남섬의 크라이스트 처치(Christchurch) 시에 소재한 캔터베리대학교(University of Canterbury) 정치학 및 국제관계학과에서 정교수로 복무 중이다. 그녀는 중국 정치, 남극 관련 국제정치, 뉴질랜드 외교정책, 태평양 지역 정치 등을 주 전공 분야로 하고 있는데, 뉴질랜드 왕립학회(The Royal Society of New Zealand)의 펠로우로 선정됐음은 물론, 미국 우드로 윌슨 센터(Woodrow Wilson Centre)의 글로벌펠로우 및 호주의 호주전략정책연구소(Australian Strategic Policy Institute)의 시니어펠로우로도 역시 같이 선정됐을 정도로 특히 중국 문제에 대해선 국제적 대가로 손꼽히고 있다.

뉴질랜드는 세계에서 네 번째로 넓은, 막대한 해양 영토를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뉴질랜드는 인구가 고작 5백만 명에 불과한 약소국이기도 하다. 이에 뉴질랜드는 서방의 국제규범이 아니라면 자국이 주장하는 영토권 등을 포함한 주권을 강대국으로부터 온전히 존중받기가 어렵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질랜드는 서방의 국제규범을 무시하고 있는 중국을 추종하는 발언과 행동을 언제부턴가 계속해서 보여왔다. 뉴질랜드가 그런 자해에 가까운 일을 해왔던 이유가 무엇일까. 뉴질랜드를 그렇게 타락시킨 힘, 그것이 바로 중국 공산당 ‘마법의 무기’, 곧 통일전선공작임을 앤-마리 브래디 교수는 이 책 ‘마법의 무기, 뉴질랜드에 침투한 중국 공산당(Magic Weapons : China’s political influence activities under Xi Jinping)‘을 통해 고발하고 있다.


뉴질랜드를 타깃으로 노린 중국 공산당의 ‘통일전선’

중국의 외교 정책 중에 핵심 개념인 ‘통일전선(統一戰線, United Front)’은 공산당이 아닌 세력을 우군으로 만들어 인정과 묵인을 이끌어내는 레닌의 전략전술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는 한 사회 조직의 유력 인사 매수, 정보 관리와 선전 공작, 그리고 전략정보 자원에 대한 접근 등을 총망라하는 것으로, 사실상 공산당 첩보활동의 핵심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앤-마리 브래디 교수는 본서를 통해 특히 시진핑 집권 이후에 중국 공산당의 전 세계 여론 지도층과 정치엘리트를 대상으로 한 통일전선공작이 전례없는 수준으로 확대, 강화되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녀는 이것이 특히 뉴질랜드에서는 중국계 교민사회와 중국계 정치인과 언론매체 장악 등은 물론, 비중국계 정치인들에 대한 매수 등의 형태로 나타났고, 결국 뉴질랜드 현지인들의 표현, 결사, 종교의 자유까지 위협하는 수준으로 치달았음을 조목조목 밝히고 있다.

중국이 하필 뉴질랜드를 세계적 통일전선공작의 시금석으로 삼은 이유가 무엇인가. 뉴질랜드가 호주와 더불어 남태평양에서 주도권을 갖고 있는 국가라는 점, 그리고 남극 대륙에 가장 가까운 주요국이면서 관련 강한 기득권을 갖고 있다는 점, 청정한 자연환경과 값싼 경작지를 갖고 있다는 점 등이 손에 꼽힌다. 무엇보다도 뉴질랜드는 앵글로색슨 국가로서는 독특하게도 중국계가 인구의 5% 이상을 차지하며 나름의 위상을 갖고 행세할 수가 있는 나라다. 사실, 2000년대 들어서 뉴질랜드에 이민자를 가장 많이 보내고 있는 나라가 중국이다. 또한 경제 문제로도 뉴질랜드는 원거리에 있는 중국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2018년도 기준 뉴질랜드의 최대 수출국은 중국으로 그 규모는 전체 수출량의 4분의 1에 달할 정도다. 뉴질랜드는 서구 선진국 중 처음으로 중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했으며 일대일로 관련 협약도 가장 먼저 맺었다. 현재 뉴질랜드의 유제품 시장과 부동산 시장, 관광 시장은 중국인들이 움직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나라를 중국이 어떻게 놓칠 수 있겠는가.

결정적으로, 뉴질랜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가 함께 결성한 이른바 파이브아이즈 첩보 동맹의 일원이기도 하다. 이들 5개국은 서로 신호정보와 인적정보를 공유하고 있으므로 이들 중 한 나라에만 침투하면 다른 4개국의 정보망에도 모두 접근이 가능하다. 안보이익 측면에서도 중국이 파이브아이즈 중에서 가장 약소국인 뉴질랜드를 최우선으로 공략하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인 것이 아닐까. 이런 공략을 통해 결과적으로 뉴질랜드가 최종적으로 파이브아이즈에서 이탈하는 일이 발생하더라도 미국 주도 앵글로색슨 국가들의 결속력을 훼손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중국에 있어선 뉴질랜드는 안성맞춤인 공작 타깃이 아닐 수 없다.

뉴질랜드는 ‘통일전선’에 의해 어떻게 잠식되었는가

중국 공산당의 뉴질랜드 침투 공작에 있어서 핵심 터전은 이미 뉴질랜드 현지에서 유권자 집단으로 상당한 위상을 확보하고 있는 중국교포(화교) 사회다. 애초 중국 본토의 여러 지역은 물론, 대만, 홍콩, 싱가포르 등에서 기원하여 다양한 정치 성향을 띠었던 뉴질랜드 화교 사회는 시진핑 집권을 전후로 중국 대사관, 영사관 등 통일전선 공작기관에 의해 감시, 조종을 당하며 결국 그 주류가 중국 공산당이 주도하는 중화인민공화국에 대한 일방적 지지 세력으로 변모하게 됐다. 오늘날 이들은 중국 공산당의 의제를 지지하는 중국계 정치 후보자에 대한 모금 활동과 집중적 투표를 통해 뉴질랜드 정치를 좌지우지 하며 중국의 외교 정책을 뉴질랜드에서 구현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그렇게 중국 공산당이 빚어낸 뉴질랜드의 제도권 정치 현실은, 역시 중국의 정치적 자장권(磁場圈)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나라인 우리 한국에서 보더라도 심각한 수준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얼마전까지도 중국 공산당 출신, 그것도 중국 인민해방군 군사정보 계통에서 15년간이나 일한 전력이 있는 자가 신분을 세탁해 뉴질랜드 국회에 당당히 진출한 사건까지 벌어졌었기 때문이다. 양젠(杨健, Yang Jian) 의원의 사례로, 양젠 의원은 아이러니하게도 뉴질랜드의 보수당인 국민당에서 정치활동의 터전을 닦았고, 국민당의 주요 조직 책임자이자 자금 모집원 역할까지 했다. 레이몬드 후오(Raymond Huo) 의원의 사례는 내용적으로 더 심각하다. 레이몬드 후오 의원은 뉴질랜드의 진보당인 노동당의 중국계 정치인으로, 통일전선 조직과 공공연히 협력해왔다. 그는 “중국인”의 입장에서 뉴질랜드에서 중국의 티베트 정책을 대변하겠다고 노골적으로 말하는가 하면, 시진핑의 정치구호를 뉴질랜드 노동당 선거 운동에 사용토록 하게 했다. 이들 중국계 정치인들을 또한 통일전선과 연루된 뉴질랜드의 중국계 기업, 상공회의소 등이 경제적으로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왔는데, 이에 이미 뉴질랜드 국회에는 중국 공산당 당세포 조직 구축이 완성됐다고 보는 분석까지 나왔다(참고로, 한국은 국가정보원(NIS)이 정보 요원(IO) 제도를 폐지하면서 더 이상 국내 정보 수집 활동 자체를 하지 않고 있다. 일찍이 2014년부터 국회·정당·언론사에 대해선 국정원 정보요원의 출입도 금지되었었기에, 이 영역에서 중국, 북한에 의한 침투 전복과 관련해 국가 방첩 기관들의 정보가 얼마나 제대로 확보되어 있는지, 북한 태생 화교로 서울시 공무원까지 했던 유우성(본명 리우찌아강) 씨와 관련 간첩 의혹이 불거지기도 하는 등 뭔가 미심쩍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만큼, 한국이 뉴질랜드보다 덜 심각한 상황인지 어떠한지 뭐라 단언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중국 공산당의 타깃은 물론 중국계 정치인만이 아니다. 중국 공산당은 중국계 정치인 포섭으로는 모자랄 경우에는 비중국계 정치인을 매수해 정치적 목적을 달성키도 한다. 전형적인 수법은 현재 유력 정치인과 인맥이 닿는 이(주로 전직 고위급 정치인)와 그 가족들을 중국의 국영은행들은 물론 뉴질랜드 현지 중국 기업이나 중국 자금을 지원받는 단체의 고위직에 임명해주는 것이다. 자택 지분을 중국 공산당이 사줬다는 의혹까지 받고 있는 존 키(John Key) 전 총리가 대표적인 사례다. 제니 쉬플리(Jenny Shipley) 전 총리도 퇴임 이후 중국 건설은행(中国建设银行) 뉴질랜드 지부 회장과 중국에 본사를 둔 유제품 기업 오라비다(Oravida) 사의 이사장을 지냈다. 중국 공산당은 이른바 ‘시골을 먼저 점령하여 도시를 포위한다’는 마오쩌둥의 오래된 교리에 따라 지방정부도 적극 공략한다. 중앙정부 소속 기관들은 외교 문제에 대한 지식과 사명감이 있지만 지방정부는 그렇지 않다. 국가적 비전이 약한 만큼 지방정부는 중앙정부와 비교해보면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에 대한 참여 의지도 더 크며, 이는 뉴질랜드에서 지방과 중앙간 갈등을 일으키는 한 요인으로도 작용한다. 뉴질랜드일대일로 추진위원회 회장인 밥 하비(Bob Harvey) 전 와이타케레(Waitakere) 시 시장의 경우가 대표적인 경우인데, 이는 한국으로 치면 광역시나 특례시급 시장이 친중 공작원이 되어버린 것과 같다고 할 것이다.

언론 공략도 통일전선공작에 있어서 중요한 과제다. 중국 공산당은 뉴질랜드의 화교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뉴질랜드의 화교 언론에도 적극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했다. 뉴질랜드의 중국어 매체들은 중국 국영언론사로부터 콘텐츠 제휴 관계를 맺고 그들로부터 모든 콘텐츠를 제공받는다. 이로 인해 뉴질랜드 화교는 중국이 아닌 뉴질랜드 현지에서도 중국어로 된 신문을 읽으면 뉴질랜드 현지의 시각이 아닌 중국 본토의 시각에 기초한 비슷한 사설을 보게 된다. 뉴질랜드의 영어 매체들이라고 사정이 특별히 더 나은 것도 아니다. 상당수 광고주들이 이미 중국과 비즈니스 관계로 얽혀있으며, 광고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매체들도 역시 마찬가지여서 친중 보도가 계속 이어져 왔다. 뉴질랜드의 일선 기자들은 중국 대사관들로부터 공공연하게 취재 비용을 지급받아오기도 했다고 한다.

뉴질랜드의 대학교들 역시 통일전선공작의 대상에서 빠질 수 없다. 중국 대사관, 영사관 등에 의해 통제받고 있는 중국계 유학생들 조직은 뉴질랜드의 대학들이 신장위구르, 티베트, 홍콩 등 중국의 인권 문제와 관련해 비판적 목소리를 낼 수 없도록 압박을 가하는 일에 몰두한다. 서방의 최첨단 기술이나 정보가 뉴질랜드의 대학교들을 매개로 중국으로 탈취될 수도 있는 위기 상황이지만, 속수무책이다. 호주와 마찬가지로 뉴질랜드의 대학교들은 중국계 유학생이 주수입원인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미 뉴질랜드의 유학생 3명 중에 1명은 중국계다.

공교롭게도 중국 공산당에 의한 이러한 뉴질랜드 잠식 상황을 고발한 앤-마리 브래디 교수는 본인도 역시 한 사례근거가 되는 방식으로 본인 연구의 진실성을 증명케 된다. 바로 본서 내용의 기반이 되는 동명의 논문을 발표한 직후인 2018년초 그녀의 연구실과 자택에 중국 공산당 관계자인 것으로 보이는 절도범이 침투하는 일이 잇따라 발생했기 때문이다. 절도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그녀는 익명의 편지 한 통을 받았는데 편지 내용은 베이징의 공식노선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보복 조치를 상세히 열거하는 것이었다. 거기에는 “다음 차례는 당신이다”라는 문구도 있었다. 이 절도 사건은 맥락상 그 심각성으로 인해 인터폴은 물론, 저신다 아던 총리까지 공개적 관심을 표명했을 정도로 뉴질랜드 사회를 뒤흔들어 놓았다. 당사자로서 패닉을 겪을만도 했지만 오히려 앤-마리 브래디 교수는 꼿꼿한 자세를 견지하면서 “중국에 체류할 당시 여러 차례 비슷한 사건 을 겪었기 때문에 그다지 놀랍거나 두렵지 않다”면서 “내가 연구하는 주제가 바로 이러한 중국 공산당의 침투 수법”이라고 말하고 있다.

한국에도 한 모델이 될 수 있는 뉴질랜드의 중국 대응 경험

한국은 미국의 오랜 동맹이긴 하지만 오늘날 미중패권경쟁시대에 미국의 시각으로만 중국을 바라볼 수 없는 입장이다. 중국의 편에 서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패권국이 아닌 한국으로선 미국과 완전히 똑같은 입장으로 중국을 대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중국에 대한 대응에 있어서 한국이 눈여겨봐야 할 나라는 비슷한 입지와 위상을 갖고 있는 자유민주국가들인 뉴질랜드, 대만, 캐나다, 호주와 같은 중견국(middle-country)이다. 이들 나라는 다들 중국에 크게 휘둘려보고 또 그에 따라 자유민주적 가치의 훼손도 겪어봤다. 이를테면 뉴질랜드는 2000년대에 내내 친중적 면모를 보여왔었는데 2019년에 화웨이(Huawei) 퇴출 검토 의사를 밝혔다가 중국인 관광객들이 뉴질랜드 방문을 대거 취소하고, 또 상하이에선 에어뉴질랜드 항공기 착륙이 불허되는 등 큰 불이익을 겪었던 적이 있다. 우리의 사드(THAAD) 사태가 떠오른다는 이들이 분명 많을 것이다. 

중견 자유민주국가들은 중국 공산당이라는 ‘괴물’에 궁극적으로 어떻게 맞서야 하는 것일까. 이 역시 뉴질랜드의 앞선 저항과 투쟁의 경험이 주는 시사점은 크다. 뉴질랜드는 앤-마리 브래디 교수 등의 고언을 받아들여 냉전 초기 조지 케넌(George Kennan)이 미국이 소련에 어떻게 맞서야 하는지를 얘기하면서 제창한 개념인 ‘회복력(resilience)’에 주목했다. 조지 케넌은 ‘긴 전보(Long Telegram)’에서 이렇게 말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의 건강과 활력입니다. 세계 공산주의는 당신의 질병을 먹고 사는 악성 기생충과도 같습니다. 이는 곧 대내정책과 대외정책이 만나는 지점이기도 합니 다. 즉 우리 사회 내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자신감과 규율, 의욕 및 공동체 정신을 개선하려는 그 모든 용감하고 예리한 조치들이야말로 바로 수천 장의 외교문서나 공동성명에 버금가는 외교적 승리인 것입니다. 우리 사회의 결핍에 대한 체념은 갖다버려야 합니다.”



앤-마리 브래디 교수의 문제적 논문 발표 이후, 뉴질랜드안보정보청(NZSIS)은 2018년에 발간한 연례보고서를 통해 외세(중국)에 의한 정치공작 움직임이 있음을 최초로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같은해 뉴질랜드 외무부 장관은 ‘피서픽 리셋(Pacific Reset)’이라는 새 외교정책 방향을 밝히면서 남태평양에서 뉴질랜드의 주도권을 재확립하겠다고 밝혔다. 뉴질랜드는 이후 중국을 사실상 겨냥한 파이브아이즈 공동성명서에도 동참했고, 태평양제도포럼(Pacific Islands Forum) 가입국들(호주, 피지, 마샬제도, 나우루, 팔라우, 프랑스령 폴리네시아 등)과 함께 지역 안보와 관련된 선언에도 함께 했다. 5G 네트워크에서의 화웨이 배제 검토도 들어갔다. 일대일로 참여 문제는 아예 관련 국가적 논의 자체가 중단됐다. 또한 중국의 제도권 정치 개입을 막는 중요한 조치로서, 사실상 여야 만장일치에 의한 외국인 정치기부 제한 법안도 통과됐다. 최근에는 저신다 아던 총리가 조심스럽게 위구르족 인권 상황 문제에 대해서 공개 발언을 하기도 했다.

앤-마리 브래디 교수는 중국 공산당의 통일전선에 맞서기 위한 중견 자유민주국가들끼리의 통일전선 구축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한다. 어떤 사람이 계획적인 괴롭힘을 당한다면, 그것을 멈추기 위해서는 반드시 주변 사람들이 함께 목소리를 내고 공격을 당하고 있는 사람 편에 서줘야 하며 이는 국가의 경우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얼마전 나토 정상회의에서 대중국 견제의 일환으로 뉴질랜드를 포함해 한국, 일본, 호주가 초청받았고, 4자가 별도 정상회담을 가졌다. 중국의 위협 문제에 대한 태평양 지역 중견 자유 민주국가들끼리의 이러한 다자틀적인 대응 논의가, 향후 대만을 포함하여 각국의 안보관계자들 뿐만 아니라 각국의 기업인, 학자, 시민단체 인사끼리도 폭넓게 이뤄져야 한다. 

각국이 자국의 화교 사회에 대해 더 애정을 갖고 들여다보는 일도 있어야 할 것이다. 애초에 중국 공산당이 해외 화교 사회를 최우선 공작 대상으로 삼았던 이유는 해외 화교 사회가 중국의 정치적 변화의 온상이자 거점이 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중화민국의 초대 총통이었던 쑨원(孫文)부터가 신해혁명을 일궈내기 전까지 대부분의 기간을 해외에서 머물면서 중국 바깥 화교 사회의 도움을 받아왔던 인사다. 뉴질랜드를 포함한 민주국가들은 자국의 화교사회를 민주적으로 북돋우면서 중국의 민주화운동을 이끌 ‘제2의 쑨원’을 길러낼 수도 있다고 앤-마리 브래디 교수는 고언하고 있다. 화교와는 다소 다르지만 역시 조선계 혈통 중국인 문제에 대한 고민이 많은 한국도 귀 기울여 봐야 할 고언이 아닐 수 없다.

한국과 뉴질랜드의 관계는 운명이다

중국의 야심은 뉴질랜드 잠식 정도가 아니라 이미 남태평양 전체 장악에까지 뻗어나간지 오래다. 실제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 세계 이목이 쏠려있는 사이 올해 4월 중국은 뉴질랜드 바로 윗편 남태평양 솔로몬제도와 안보협정을 맺으면서 뉴질랜드는 물론이거니와 호주와 미국에도 큰 충격을 줬다. 안보협정의 세부 내용이 공개되지 않았지만, 핵심은 중국이 자국민 보호 등의 명분으로 해당 지역에 군대를 파견할 수 있는 조항이 포함됐다는 것이다. 중국은 뉴질랜드 주변 남태평양 지역을 미국이 설정한 ‘제1열도선’, ‘제2열도선’을 단번에 뚫을 수 있는 탈출로이자, 대만, 한국 등 아시아 각국과 관련한 입지를 강화할 교두보로 보고 있다. 태평양 각 섬나라들이 갖고 있는 배타적경제수역 면적을 다 합치면 현재 중국이 갖고 있는 전체 배타적경제수역 면적의 여섯 배가 넘는다고 한다. 이들 섬나라들은 하필 대부분 약소국이다. 중국의 야심을 이대로 보고만 있는다면 남태평양 전체가 남중국해 신세가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한국은 뉴질랜드 안팎의 안보 위기를 한국 안팎의 안보 위기처럼 받아들여야 한다. 뉴질랜드를 포함한 남태평양이 뚫리면 대만과 한국, 일본은 어차피 자동으로 중국의 세력권에 들어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와 함께 우리가 꼭 깊이 생각해봐야 할 것은 뉴질랜드와 한국의 깊은 관계다. 뉴질랜드는 호주, 캐나다와 더불어 미국을 제외한 한국인들에게 제1순위 이민 선호 국가로, 이미 3만 명(2013년 기준)의 우리 동포가 살고 있는 나라다. 실제로 뉴질랜드 주요 도시인 오클랜드, 웰링턴, 크라이스트처치 모두에 한인회가 있으며, 교민 대상 한국어 신문(‘뉴질랜드타임즈’)까지 발행되고 있다. 뉴질랜드는 한국계 5선 국회의원 멜리사 리(Melissa Lee, 이지연)를 배출한 나라이며, 전설적인 한국계 골퍼인 리디아 고(Lydia Ko, 고보경)를 배출한 나라이기도 하다. 


실은 우리가 뉴질랜드와 처음으로 인연을 맺게 된 계기가 바로 한반도 최대의 안보위기였던 한국전쟁이다. 뉴질랜드는 자기들과 이전에 아무런 인연도 없었던 극동의 한 작은 나라를 지켜주기 위해 목숨을 내건 군인들을 아무런 조건도 없이 파병해줬다. 당시 뉴질랜드 국회는 만장일치 결의로 개전 나흘만인 1950년 6월 29일에 참전을 결정했다고 한다. 뉴질랜드군은 인원으로는 총 6천여 명이 참전해 가평전투를 비롯한 마량산 전투와 고왕산 전투, 그리고 후크고지 전투 등을 수행했다. 부산의 유엔기념공원에는 지금도 30여 명의 뉴질랜드군 전사자가 묻혀있다.

한국에서 한때 MT송으로도 널리 사랑받았던 노래인 ‘연가(戀歌)’는 실은 뉴질랜드군이 한국전쟁 기간 동안 불렀던 마오리족 원주민 노래인 ‘포카레카레 아나(Pokarekare Ana)’에서 유래한 것이다. “비 바람이 부는 와이아푸의 바다는 그대가 건너오게 되면 잔잔해질 것”으로 시작하는 노래 가사는 중국의 패권 확장 문제로 크게 요동치고 있는 태평양, 이를 사이에 둔 한국과 뉴질랜드의 운명적 관계를 새삼 되새기게 한다.


최대집 
자유보수당 창당추진위원회 위원장
(제40대 대한의사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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