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2년 7월 19일 밤, 서울 청담동의 한 고급 술집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당시 법무부 장관이 술자리를 가졌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동석자로 지목된 첼리스트 박모씨는 처음에는 "윤석열, 한동훈이 있었다"고 주변에 말했다가, 경찰 조사에서 진술을 번복했다. 검찰은 이 의혹을 보도한 기자들을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했다.
핵심 근거는 첼리스트의 휴대폰에서 추출한 내비게이션 파일이었다. 경찰은 이 파일을 분석해 첼리스트가 그날 밤 청담동의 '티케'라는 작은 술집에 갔다고 결론 내렸다. 30명이 모일 수 없는 좁은 공간이었다. 그런데 이 장소를 경찰에 알려준 사람이 바로 동석자로 지목된 이세창(전 자유총연맹 총재권한대행)이다. 이세창은 청담동 술자리 은폐에 가담한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그런데 3년이 지난 지금, 그 증거 자체의 진위가 법정에서 다퉈지고 있다.
28일 오후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13단독 재판부는 강진구 기자 등 8명에 대한 9차 공판을 열었다. 김의겸 전 의원은 추정기일이 잡혀 이날 참석하지 않았다. 원래 이날 공판에서는 첼리스트 박모씨에 대한 증인신문이 예정돼 있었다. 그러나 재판부는 증인신문에 앞서 디지털 증거의 진위부터 가리기로 했다. 피고인 측이 신청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감정을 채택한 것이다. 경찰 수사의 핵심 증거였던 휴대폰 포렌식 자료가 조작됐는지 여부를 과학적으로 검증하겠다는 뜻이다. 이날 재판은 피고인 이모씨의 변호인 요청에 따라 공판 과정 전체가 녹음됐다.
피고인석에 있던 강진구 기자는 재판 말미에 발언권을 얻어 국과수 감정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경찰 수사기록에 따르면 첼리스트는 휴대폰 2대를 사용했다. 1대는 통화용, 다른 1대는 내비게이션용이었다. 그런데 경찰에 제출할 때 두 기기의 용도가 뒤바뀐 것으로 보인다. 강 기자는 각 전화번호에 해당하는 휴대폰 기기명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첼리스트가 사건 보도 이후 추가로 개통한 휴대폰에서 발견됐다. 경찰 수사기록에 따르면 첼리스트는 제3자 명의로 휴대폰을 새로 개통했다. 이 휴대폰에 1500여 개의 내비게이션 파일이 저장돼 있었다. 경찰은 바로 이 파일들을 분석해 첼리스트의 동선을 확정했다.
강 기자는 이 파일들을 직접 분석한 결과를 재판부에 제시했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거리를 이동한 것으로 기록된 데이터가 있었다. 같은 날 같은 시각에 서로 다른 장소로 찍힌 파일도 확인됐다. 한 사람이 동시에 두 곳에 있을 수는 없다. 강 기자는 이런 정황이 파일 조작을 뒷받침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전문가들도 같은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첼리스트의 스마트폰에서 추출된 내비게이션 파일 중에는 시속 405km로 4.5km 구간을 40초에 주행한 것으로 기록된 데이터가 있었다. KTX보다 빠른 속도다. 물리 법칙으로 설명할 수 없는 기록이다.
강 기자가 제기한 또 다른 문제는 차명 휴대폰의 존재다. 첼리스트는 청담동 술자리 의혹이 보도된 직후인 2022년 10월 28일, 이세창과 함께 휴대폰을 교체했다. 기존 사용폰을 정지시키고 제3자 명의로 새 번호를 개통한 것이다.
경찰이 포렌식한 휴대폰이 바로 이 새 휴대폰이다. 사건 당시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기기에서 추출된 데이터로 2022년 7월의 동선을 확정한 셈이다. 강 기자는 이 휴대폰의 실제 명의인이 누구인지 확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도 이 문제에 주목했다.
재판부는 경찰 수사기록에 KT 통화내역이 포함돼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수사기관이 통신사 조회를 통해 통화기록을 받았다면, 그 당시 명의인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재판부는 검찰에 해당 통화내역을 경찰이 어떻게 입수했는지 확인해 알려달라고 지시했다.
피고인 측은 명의인 확인을 위한 사실조회를 2차례 신청했다. 재판부는 제3자의 주민등록번호를 알려달라는 요청은 개인정보보호법상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밝혔다. 다만 사실조회신청을 정리해 서면으로 다시 제출하면 검토하겠다고 했다.
재판부는 피고인 측에 국과수 감정 대상을 증거순번과 증거기록 쪽수로 구체적으로 특정해 다시 제출하라고 요청했다. 검찰에는 감정 절차와 관련 규정을 확인하라고 지시했다. 첼리스트에 대한 증인신문은 국과수 감정 결과가 나온 뒤로 미뤄졌다.
재판과 별개로 정보공개 전선에서도 움직임이 있다. 법무부는 지난 5일 한동훈 당시 법무부 장관의 수행비서와 전용차량 운전기사가 2022년 7월 19~20일 양일간 총 14시간의 초과근무를 했다고 공개했다. 이의신청을 거친 끝에 나온 결정이었다.
관심은 대통령경호처로 옮겨가고 있다. 지난 9월 12일 윤석열 당시 대통령의 수행인력에 대한 같은 날짜 초과근무 기록 정보공개가 청구됐다. 경호처는 지난 11월 24일 "경호대상자의 안전을 위한 경호목적상 인원, 조직, 근무형태, 경호재원과 관련된 정보"라는 이유로 비공개 결정을 내렸다.
이에 대해 이의신청이 제기되자 경호처는 "소관 부서의 검토가 필요한 사항으로 정해진 기간 내 결정에 어려움이 있다"며 처리기한을 12월 11일까지 연장했다. 경호처도 고심 중인 것으로 보인다.

이의신청서에는 법무부장관도 경호대상자라는 점을 지적했다. 같은 법률을 적용받는 기관이 같은 성격의 정보를 두고 서로 다른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형평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법무부가 공개한 "총 14시간"이라는 정보는 구체적 시각이나 근무 장소를 특정하지 않아 경호방법이 노출될 우려가 없다. 더구나 윤석열 정권은 이미 막을 내렸다. 3년 전 전직 대통령의 수행인력 초과근무 기록이 현 정부의 경호에 영향을 미칠 이유가 없다.
경호처가 법무부와 같은 수준의 정보를 공개할 경우 파장이 커질 수 있다. 한동훈 수행인력에 이어 윤석열 수행인력까지 심야 초과근무가 확인되면, 청담동 술자리 참석 의혹은 더 구체적인 정황을 갖추게 된다.
한동훈은 형사재판과 별개로 뉴탐사 기자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해 지난 8월 1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았다.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인데, 28일 서울고등법원에 항소이유서를 제출했다.
한동훈 측은 1심이 청담동 술자리 의혹을 허위로 판단한 것은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다만 피고들이 '원고가 권력을 이용해 증인과 수사기관을 압박해 진실을 은폐했다'는 별개의 허위사실까지 유포한 점을 1심이 심리하지 않았다고 항소 이유를 밝혔다. 또한 김의겸의 국정감사 발언은 허위임을 알고 한 악의적 공격이므로 면책특권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한동훈 측은 피고들이 1심 패소 후에도 반성 없이 '증거 조작설' 등을 유포하며 가해를 지속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1심이 인정한 손해배상액 총 8000만원은 지나치게 적다며, 위자료 3억원 전액 인용을 구했다.
청담동 술자리를 둘러싼 법정 공방은 현재 3건이 진행 중이다. 한동훈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1심에서는 지난 8월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이 나왔고,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청담동 주점 운영자 이미키가 제기한 5억원 손해배상 청구소송 1심에서는 지난해 7월 원고 패소 판결이 나왔고, 역시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그리고 검찰이 기자들을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한 형사재판이 바로 이번 사건이다.
지난해 7월 이미키 소송 1심 판결에서 재판부는 핵심 쟁점을 이렇게 짚었다. "이 사건 변론종결일 현재까지도 대통령과 법무부장관이 위 술자리가 있었다는 시각의 구체적 행적을 밝히지 않고 있는 바." 윤석열과 한동훈의 당일 행적 공개를 사실상 주문한 것이다. 재판부는 또한 이세창과 첼리스트의 술자리 참석은 사실로 인정했다.
이번 형사재판에서 법원이 국과수 감정을 채택한 것은 증거의 기술적 오류를 확인하는 차원에 그치지 않는다. 포렌식 파일에서 조작 흔적이 발견되면 경찰 수사 결론의 근거가 흔들린다. 그렇게 되면 '왜, 누가 증거를 조작했는가'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뒤따른다. 첼리스트의 진술 번복, 사건 직후 차명폰 개통,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내비게이션 기록. 이 모든 정황이 하나로 연결되면, 이 사건은 단순 명예훼손을 넘어 조직적인 술자리 은폐 의혹으로 번질 수 있다.
다음 공판기일은 오는 12월 17일 오전 11시 10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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