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思] 여전히 청년에 추운 겨울... AI 시대에 ‘진짜 경험’으로 살아남기

인싸잇=강원준 기자 | 대한민국 청년 노동시장에 불어닥친 한파가 매섭다. 단순 일자리 부족을 넘어, “한번 밀려나면 영영 기회를 잡지 못할 수 있다”는 구조적 공포가 청년들을 짓누르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19일 발행한 <청년세대 노동시장 진입 지연과 주거비 부담의 생애 영향 평가> 보고서에서 현 청년층(15~29세)의 고용 여건에 관해 “고용률 등 거시통계로 판단하면 이전 세대보다 대체로 개선됐지만, 노동시장 진입 초기 단계에서 구직 기간이 장기화하는 등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고 진단했다.

 

보고서는 최근 청년층의 구직 기간이 길어지는 배경으로 기업의 경력직 선호 강화, 수시 채용 확대, 경기 둔화에 따른 양질의 일자리 감소를 지목했다.

 

신입 채용의 문이 좁아지고 채용 시점도 불규칙해지면서 경력 개발 초기 단계에 있는 청년들이 첫 일자리를 얻기까지 더 오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지적이다.

 

주목해 볼 점은 이 같은 청년들의 노동시장 진입 지연이 단기적인 불편에 그치지 않는다는 문제다.

 

한국은행은 경력 형성 초기의 장기 미취업이 숙련 기회를 잃게 만들고 인적 자본 축적도 충분히 이뤄지지 못하면서, 그 결과 생애 전반에 걸쳐 고용 안정성이 둔화하고 소득이 감소하는 이른바 ‘상흔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 분석 결과를 보면, 미취업 기간이 1년일 경우 5년 후 상용직 근무 확률은 66.1%였다. 그런데 미취업 기간이 3년으로 늘어나면, 해당 확률은 56.2%까지 떨어졌다. 과거 미취업 기간이 1년 길어질 때마다 현재 실질임금이 평균 6.7% 감소하는 것으로도 추정됐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2026년 경제성장전략 국민보고회’에서 한국 경제의 최대 리스크로 ‘K자형 성장’과 ‘세대 간 일자리 전쟁’을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거시 지표가 나아진들, 청년들이 체감하는 현실은 여전히 ‘잃어버린 세대’의 문턱에 서 있기 때문이다. 청년들을 두고 “단군 이래 최대 스펙 보유자인데, 태조 이래 최악의 취업난을 겪고 있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경력’에 집착하는 기업

 

청년들이 설 자리를 잃어가는 가장 큰 이유는 기업 채용 트렌드의 급격한 변화에 있다. 불황과 불확실성 그리고 고용 경직성의 장기화로 기업은 ‘가르쳐 키울 신입’을 원치 않는다.

 

지난해 12월 이런 현실을 보여주는 통계 결과가 주목을 끌었다. 비즈니스 네트워크 서비스 ‘리멤버’를 운영하는 리멤버앤컴퍼니가 자사의 누적 스카웃 제안 데이터 1000만 건을 분석해 발표한 ‘경력직 블루칩 인재 트렌드’에 따르면, 기업들이 가장 선호하는 인재는 ‘플랫폼 기업 재직 경험’을 가진 경력직이었다.

 

리멤버를 통해 기업들로부터 스카웃 제안을 많이 받은 상위 1% 인재의 경력을 분석한 결과, 약 70% 이상이 플랫폼 기업 근무 이력을 보유하고 있었고, 이커머스 플랫폼 경력자에 대한 선호도가 두드러졌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플랫폼 경력 선호 현상이 개발자 등 IT 직군에 국한하지 않고 전 직무로 확대됐다는 점이다. 인사(HR), 재무회계, 디자인 등 비개발 직무에서도 플랫폼 기업 경력을 가진 인재들이 상대적으로 많은 제안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채용 대상 연차의 폭도 넓어졌다. 리멤버가 채용 솔루션을 처음 선보인 2019년에는 13년 차 이상 시니어급에 대한 제안이 전체의 66%를 차지했으나, 지난해에는 5~8년 차 실무진에 대한 제안 비중이 40%를 기록했다.

 

이는 기업이 단순히 연차가 높은 사람이 아니라, 실무에서 즉각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본 ‘구체적인 경험’을 가진 인재를 점점 원한다는 방증이다.

 

전문직도 흔들린다... AI와 불황이 겹친 ‘고용 대체’의 공포

 

설상가상으로 인공지능(AI)의 확산은 청년들에게 기회보다 공포로 다가오고 있다. 한때 합격만 하면 억대 연봉이 보장된다고 여겨졌던 문과 전문직조차 고용 한파에 이미 익숙해진 분위기일 정도다.

 

대표적인 사례가 공인회계사(CPA)다. 한국회계학회 등에 따르면 2025년도 합격자 1200명 중 수습기관에 등록된 인원(2025.10.22 기준)은 고작 338명(28%)에 불과했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채용 한파가 지속된다면 올해 누적 미지정 회계사가 1000명을 훌쩍 넘길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는 경기 침체와 더불어 AI가 회계 감사의 기초 업무를 대체하기 시작하면서, 회계법인들이 신입 회계사를 뽑아 교육할 유인을 잃어버리고 있음을 시사한다. 전문직마저 ‘경험 없는 신입’의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머스크의 ‘보편적 고소득’, 취업 한파 청년에 낙원을 줄까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현 상황에 미래 전망은 꽤 급진적이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지난달 세계경제포럼(WEF)에서 AI 시대를 예고하며 충격적인 전망을 내놨다.

 

머스크는 “올해 안에 AI가 어떤 단일 인간보다 더 똑똑해질 것”이라며 “2030년쯤에는 AGI(범용인공지능)가 인류 전체의 지능을 합친 것보다 더 뛰어난 수준에 이를 것”이라고 예측했다.

 

특히 그는 “15~20년 후에는 AI와 로보틱스가 거의 모든 노동을 대체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로 인해 기존의 보편적 기본소득(UBI, Universal Basic Income)을 넘어 보편적 고소득(UHI, Universal High Income) 사회가 도래하며, 그 결과 노동이 사라지고 풍요만 남는다는 전망이다.

 

여기서 취업 한파를 겪는 우리 청년들은 한 가지 질문을 던지게 된다. “머스크가 말한 20년 뒤의 ‘보편적 고소득’을 기다리며 지금부터 가만히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인가.”

 

안타깝게도 챗(Chat)GPT의 운영사 Open(오픈)AI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에게 당장의 현실은 ‘낙원’보다 ‘격차’에 가깝다.

 

오픈AI의 보고서에 따르면, 같은 돈을 내고 똑같은 서비스를 쓰는데 어떤 사람은 7배 더 많은 기능을 활용한다. 월 2만 원짜리 요금제를 쓰는 사람들을 조사한 결과, 상위 5%에 속하는 ‘파워 유저’는 평균적인 사용자보다 7배 더 많이  AI의 고급 기능을 활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챗GPT 사용자가 많은 70개 이상의 나라를 비교했더니, 나라마다 AI 활용 수준이 크게 달랐다. 앞서가는 나라는 뒤처진 나라보다 1인당 3배나 더 많은 고급 기능을 사용했다.

 

미국과 인도는 사용자 수가 가장 많았고, 싱가포르와 네덜란드는 인구 대비 사용 비율이 가장 높았다.

 

그런데 베트남과 파키스탄은 코딩과 데이터 분석 등 최첨단 ‘에이전트 도구’ 사용에서 세계 최상위권에 올랐다.

 

이는 AI 활용 능력이 반드시 경제 규모나 소득 수준과 비례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준다.

 

AI 기술은 7개월마다 2배씩 성장하는데, 정작 대부분은 여전히 간단한 질문만 던지는 초보 수준에 머물러 있다. 다른 한편에 선 누군가는 절박하게 도구를 파고들어 생산성의 차원을 달리하고 있다. 오픈AI는 이를 ‘역량 격차’라고 경고했다.

 

“너무 거창하지 않게, 차근차근 시작해보는 게 어떨까”

 

이미 AI 기술이 진입기를 넘어선 지금, ‘AI가 인간을 대체하느냐’는 깊게 고민할 주제가 아니다. ‘AI를 도구로 쓰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 사이의 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다는 걸 심각하게 봐야 한다.

 

기업이 신입 대신 경력직을 선호하는 본질적인 이유를 다시 보자. 그들은 문제를 해결해 본 사람, 즉 ‘맥락’을 아는 사람을 원한다. 과거에는 이 능력을 쌓기 위해 수년의 시간이 필요했지만, 지금은 AI라는 강력한 ‘증강자(Augmentor)’가 있다.

 

물론 지금의 청년들에게 당장 AI를 배우라거나, 매사에 최대한 AI를 활용하길 강요하는 건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

 

파도가 너무 높고 거친 상황에서 당장 바다에 뛰어들라 강요하는 건 사람을 절망과 죽음으로 몰아넣는 일이다. 마찬가지로 AI의 발전 정도가 급진적인 상황에서 모두에게 이 기술의 전문가 수준을 요구한다면 혼란과 비극을 낳을지도 모른다.

 

불안감에 압도돼 20년 뒤 ‘보편적 고소득’ 시대를 기다리기보다는, 오늘 아주 작은 시도 하나를 해보는 건 어떨까 제안하고 싶다.

 

 

거창한 프로젝트가 아니어도 좋다. 내가 관심 있는 분야의 데이터를 엑셀 대신 AI에 분석시켜 보거나, 반복되는 지루한 과제를 AI에 맡겨보는 것부터 시작해보자.

 

남들이 챗GPT에게 한 번 질문하고 말 때 “왜 그렇게 생각했어?”라고 한 번 더 물어보며 꼬리에 꼬리를 무는 대화를 시도해보는 것이다.

 

그렇게 AI에 서서히 익숙해지면서, 밖으로 나가 여러 사람과 소통하고 현장을 직접 경험하며 AI가 대체할 수 없는 ‘진짜 경험’을 쌓아보는 것이다.

 

기업이 원하는 건 완벽한 AI 기술자가 아니다. AI라는 도구를 활용해 문제를 해결해 본 ‘작은 이야기’를 가진 사람일 것이다. 동시에 AI가 해결할 수 없는 창의성, 개성, 끈기, 노력, 인간미, 동료애까지 갖춘다면 오늘날 기업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AI 인재’가 아닐까.

 

겨울이 길다. 춥다고 웅크리고 있기보다, 내 손에 쥐어진 이 새로운 도구를 한번 켜보는 시도. 그 작은 호기심이 얼어붙은 문을 여는 열쇠가 될 것이다.